[순정남] 여심보다 어려운 덕심... 게임 원작 '애니' 잔혹사 TOP5
2017.05.11 11:16 게임메카 김영훈 기자
※ [순정남]은 매주 이색적인 테마를 선정하고, 이에 맞는 게임을 골라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문화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지식재산권(IP)입니다. ‘미키 마우스’나 ‘피카츄’처럼 성공적인 캐릭터 하나가 산업에 미치는 영향력은 엄청나요. 그만큼 대중에게 사랑 받는 IP를 발굴하고 그 가치를 키워나가기 위한 업체들의 노력도 끊이지 않습니다. 이 가운데 원소스 멀티유즈(OSMU) 전략이 대표적이죠.
게임의 경우, 기본적으로 좋은 속편을 개발하는 것은 물론이고 소설과 애니메이션 그리고 영화를 통해 IP를 확대해갑니다. 특히 게임과 만화 양쪽에서 잔뼈가 굵은 일본이 이 방면의 선두주자에요. 성공한 소설이나 게임이 영상화되거나 반대로 애니메이션이 게임으로 만들어지는 경우가 허다하고 아예 처음부터 여러 미디어로 동시 전개하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국내도 IP의 중요성이 대두되며 OSMU를 추진하는 움직임이 부쩍 늘었습니다. 당장 웹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케모노 프렌즈’도 넥슨 모바일게임이 원작이죠. 정작 게임은 흥행 저조로 진즉 서비스 종료했습니다만... 무엇이든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법! 오늘도 후발주자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폭망’ 사례 5선을 꼽았습니다.
5위 무한전기 포트리스(2003)
▲ 멀리 있는 자는 귀로 듣고, 가까이 있는 자는 눈으로 봐라. 포트리스 기사단! (사진출처: SBS)
90년대 말 PC방 최고의 인기 종목은 다름아닌 ‘포트리스 2’였죠. 사이드뷰 전장에서 여러 전차가 저마다 각도와 거리를 조정해 포탄을 쏘는 플레이는 단순하면서도 매우 흡입력이 있었습니다. 데포르메된 각종 전차도 나름 귀여운데, 여기에 착안하여 정말로 한일합작 애니메이션 ‘무한전기 포트리스’가 제작되기에 이릅니다.
그런데 문제는 원작이 이렇다 할 설정이 없다는 거죠. 대부분 망한 게임 애니메이션이 원작을 무시한 탓에 팬덤의 외면을 받는데, 이건 아예 무시할 원작조차 남아있지 않아요. 때문에 ‘무한전기 포트리스’는 평화를 위협하는 ‘다크 포트리스’ 군단과 이에 맞선 기사단, 여기에 수수께기의 소년 ‘유마’를 더하여 독자적인 세계관을 구축했습니다.
▲ 쿨이 부른 박력 넘치는 오프닝송 '더 파워 넘버원' (영상출처: 유튜브 K-HS2)
특히 다소 밋밋하던 전차 외형을 일신하여 동물로 변신하고 합체까지 가능해졌습니다. 그러나 포신이 코로 표현된 디자인이 볼썽사납다는 반응이 이어졌고, 어른이 보기에도 아이가 즐기기에도 미묘한 전개도 걸림돌이었어요. 결국 야심 찼던 ‘무한전기 포트리스’는 아쉬운 실패에 직면하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쿨이 부른 OP ‘더 파워 넘버원’은 아직까지도 회자된답니다.
4위 마법신화 라그나로크(2004)
▲ 오른편에 저 남자 주인공이 암을 유발하는 것으로 악명 높았죠 (사진출처: SBS)
한 시대를 풍미한 MMORPG ‘라그나로크 온라인’은 본래 이명진 작가가 그린 만화 원작이죠. 다만 초창기 온라인게임이 워낙 서사가 빈약한지라 내용상 크게 연관은 없습니다. ‘리니지’나 ‘바람의 나라’와 비슷한 경우에요. 이렇다 보니 게임의 인기에 기댄 애니메이션 ‘마법신화 라그나로크’ 또한 만화와는 전혀 다른 작품이 되어버렸습니다.
어차피 인지도 높은 쪽은 게임이니까 아무래도 상관없어 보이지만, 만화와 달리 게임은 애니메이션의 뼈대가 될 주요 캐릭터나 설정이 부족하기 마련. 어쩔 수 없이 원작 팬덤의 비난을 각오하고 독자 노선을 선택했어요. 대략적인 내용은 소년 검사 ‘로안’과 성직자 ‘유파’가 벌이는 전형적인 판타지 활극입니다. 후술할 엄한(…) 장면을 제외하면 말이죠.
▲ 힙합듀오 '듀스'가 부른 국내 오프닝송이 조금 과하게 힙합니다 (영상출처: 유튜브 no5roll)
‘라그나로크 온라인’은 앙증맞은 그래픽으로 1020 유저의 호응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이 애니메이션은 무슨 생각인지 심야 시간대를 겨냥해 수위 높은 묘사와 이른바 ‘서비스신’이 다수 삽입됐어요. 어른 입장에선 좋지만 시청률은 포기하는 자충수였죠. 심지어 당시 동시간대 라이벌이 훗날 전설로 남을 ‘공각기동대 SAC’였던 터라… 자세한 설명은 생략합니다.
3위 메이플스토리(2007)
▲ 절대 주인공 디자인을 이렇게 하면 안된다는 교과서적인 사례 (사진출처: TV도쿄)
넥슨은 일찍부터 해외 진출과 OSMU에 힘써온 덕분에 게임 원작 애니메이션을 여럿 배출했습니다. 이 가운데 ‘메이플스토리’는 현대와 중세 판타지를 아우르는 유연한 세계관 설정에, 이미 게임 내에서 수준 높은 애니메이션 트레일러를 여럿 선보인 만큼 기대가 남달랐죠. 이에 해당 트레일러를 외주 제작한 매드하우스가 직접 애니메이션화에 나섰습니다.
매드하우스는 거의 50년 가까이 존속 중인 애니메이션 명가로, 얼마 전 ‘원펀맨’으로 다시금 정상의 자리를 차지했죠. 다만 매 작품마다 완성도가 상당히 오락가락 하는 편인데 하필 ‘메이플스토리’가 그 최저점을 찍은 작품이었어요. 거짓말 조금 보태서 주인공만 슬쩍 보아도 ‘이건 답이 없다’는 불길한 예감이 팍- 옵니다.
▲ 그래도 윤하가 부른 오프닝송은 호평일색입니다 (영상출처: 유튜브 UploaderOo)
뭐랄까, 전체적으로 캐릭터 디자인이 성의가 없을뿐더러 주인공은 ‘지나가는 남캐 A’를 방불케 하죠. 그나마 ‘주황버섯’ 등 비인간형은 원작을 그대로 따라서 귀엽지만 가장 많이 나오는 주인공이 이래서야. 내용면에서도 원작을 존중하는 척이라도 하는 여타 게임 애니메이션과 달리 아주 과감하게 설정파괴를 일삼습니다. 이럴 바에야 완전 창작을 하지 그랬어요.
2위 던전앤파이터 슬랩 업 파티(2009)
▲ 원작 일러스트에 익숙한 팬덤의 멘탈을 붕괴시킨 바로 그 디자인 (사진출처: 대원미디어)
국내를 넘어 일본에서도 선전 중인 넥슨 효자 IP ‘던전앤파이터’ 역시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진 바 있습니다. 당시 ‘크로노 크루세이드’와 ‘암굴왕’의 산실인 곤조가 제작한다는 소식에 유저들 사이에서 큰 화제가 됐어요. 그런데 사실 ‘슬랩 업 파티’가 나온 2009년 즈음 곤조는 수년간 침체기로 몰락하기 직전이었습니다. 애당초 멀쩡한 작품이 나올 리 없었죠.
일단 내용을 살펴보면 세계관이나 설정은 그럭저럭 원작에 충실합니다. 남성 귀검사 ‘바론’과 격투가 ‘륭메이’, 거너 ‘카펜시스’ 그리고 마법사 ‘익시아’과 프리스트 ‘제다’, 유령이 된 흑요정 ‘록시’가 겪는 좌충우돌 모험담을 그렸어요. 허나 일견 멀쩡해 보이는 애니메이션은 방영 직후 원작 팬덤의 멘탈을 급속도로 붕괴시키며 엄청난 혹평을 받았습니다.
▲ 작화만 견뎌낼 수 있다면 나름 볼만하다는 평도 적잖다 (영상출처: 유튜브 팡은)
액션 RPG ‘던전앤파이터’는 그렇게까지 서사가 중요한 게임은 아니지만, 그래도 유저들에게 나름 진중한 이야기로 기억됩니다. 그러나 ‘슬랩 업 파티’는 진지함이라곤 1g도 없는 개그만화로 기획됐죠. 그나마도 곤조가 뽑아낸 작화와 동화 수준은 B급 이하였고요. 보는 내내 눈이 괴로울 정도인데 내용은 또 꽤나 볼만해서 더욱 슬퍼집니다.
1위 블레이드앤소울(2014)
▲ 포스터는 괜찮아 보이지만 실상은… 이와중에 귀여운 화중 사형 (사진출처: TBS)
온라인게임은 유저가 생성한 캐릭터 하나하나가 주인공이며 저마다 플레이하는 과정 자체가 서사의 핵심입니다. 따라서 명확한 등장인물과 전개가 존재하는 소설, 만화에 비해 애니메이션화 하기 까다로울 수밖에 없죠. 그런 면에서 ‘블레이드앤소울’은 애니메이션화에 최적화된 작품입니다. 내용이 선형적인데다 설정도 훌륭하고, 기억에 남는 캐릭터도 여럿 있고요.
‘블레이드앤소울’은 왕도적인 무협 복수극을 보여줍니다. 홍문파 막내 제자인 주인공은 갑자기 들이닥친 여검사 ‘전서연’에 의해 사부와 사형들을 잃고 사경으로 헤매게 되죠. 이후 구사일생으로 회복하여 점차 여러 기연을 만나고 다양한 사건에 휘말리며 강해져요. 이 과정을 국내 최고의 일러스트레이터 김형태가 디자인한 등장인물들이 채워줍니다.
▲ 보는 내내 '쟤가 왜 저기서!?'란 충격이 이어집니다 (영상출처: 유튜브 Pika HopeMon)
이만하면 원작만 충실히 따라가도 중박은 칠듯합니다만 애니메이션 ‘블레이드앤소울’은 놀랍게도 그조차 실패했습니다. 동양인 캐릭터를 죄다 ‘바렐’, ‘로아나’ 등으로 개명한 것도 모자라 굳이 독자적인 내용을 밀어붙였죠. 매화마다 등장인물이 죽어나가는 황당한 전개에 작화 붕괴가 날로 심해진 끝에, 결국 시청률과 블루레이 판매량 모두 나락으로 떨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