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단간론파 심의거부는 게임이 악(惡)임을 인정한 것
2017.08.03 17:34 게임메카 류종화 기자
▲ 시리즈 중 유일하게 '등급거부'를 당한 '뉴 단간론파 V3' (자료출처: 게임위)
얼마 전, SIEK에서 한국어화 발매 예정이던 ‘뉴 단간론파 V3: 모두의 살인게임 신학기’가 게임물관리위원회로부터 등급 거부 판정을 받고 출시를 포기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 게임은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살인사건 범인을 잡는 추리 게임으로, 범죄 과정 등에 대한 직접적인 표현이 포함돼 있다.
재미있는 점은 이 게임과 유사한 폭력성과 범죄 표현을 갖춘 전작 ‘단간론파’ 1편이 이미 청소년 이용불가 등급으로 국내 정식 발매됐다는 점이다. 이번에만 이례적으로 등급거부 판정을 내린 이유에 대해 게임위 측은 최근 ‘인천 여중생 살인사건’ 등으로 인한 모방범죄가 우려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인천 여중생 살인사건은 다시는 일어나지 말아야 할 비극적 사태임이 틀림없다. 원인 중 하나로 범인들이 게임 커뮤니티에 소속돼 있었다는 사실이 대두되긴 했지만, 사건 원인을 단편적으로 파악하는 것은 위험하다. 이번 사건은 각종 사회문제가 점철된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을 반영하고 있으며, 보다 다각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그 와중, 이번 게임위 결정은 실로 유감스럽다. ‘인천 여중생 살인사건’에 대해 게임에 죄가 있다고 나서서 인정한 꼴이다. 막상 ‘단간론파’ 이상 범죄 묘사가 담긴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 등은 잠잠하다. 특히 게임위는 여론을 의식해 자체적으로 내렸던 이전 심의 판례를 뒤집으면서까지 심의 거부 판정을 내렸다. 과연 게임위에 명확한 심의 판정 기준이 있긴 한지 되묻고 싶어지는 대목이다.
물론 해외에서도 큰 사건이 터졌을 때 문제가 될 만한 게임 출시가 연기되거나 취소되는 경우가 없진 않다. 한 예로 동일본 대지진 발생 시 국민 여론을 의식해 재난을 소재로 한 게임들이 줄줄이 출시를 연기하거나 아예 취소한 바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정부나 심의기관이 아닌 개발사와 퍼블리셔가 자발적으로 결정한 것이다.
지금까지 한국 사회는 커다란 사건이 일어날 때 마다 특정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책임을 돌렸다. 80~90년대 만화산업이 그랬고, 이후 게임산업이 바통을 넘겨받았다. 지난 2014년 동료들을 무참히 살해하고 탈영한 ‘임 병장’ 사건에 대해서도 게임이 원인이라는 주장이 보도됐으며, 여성가족부 국정감사 현장에서는 ‘게임중독은 폭력과 살인, 방화의 원인이다’라는 말까지 나왔다.
그러나 게임산업에 대한 마녀사냥은 정작 문제의 근본적인 본질을 감췄다. 그 결과 사건이 터질 때마다 범인 처벌과 게임산업에 대한 공격 여론만 형성한 채, 근본적인 해결책은 제시되지 못했다. 게임 탓만 하는 사이에 대한민국의 내부적인 문제는 곪아 터지고 있다.
‘뉴 단간론파 V3’ 심의거부 사태를 보며, 게임위가 앞장서서 ‘게임이 문제다’라고 외치는 대신 흔들림 없는 공정한 평가를 보여줬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게임위가 국가를 대표해 게임을 관리하는 심의 기관이라면, 여론에 흔들리지 않는 정확한 기준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