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기행] CD 프로젝트 레드 '사이버펑크' 위쳐 만든다
2018.01.18 19:19 게임메카 이새벽 기자
▲ '사이버펑크 2077' 공식 홍보영상 (영상출처: CD 프로젝트 레드 공식 유튜브 채널)
최근 '위쳐' 개발사 CD 프로젝트 레드가 준비 중인 새 작품이 올해 E3에 출품된다는 소문이 돌며 큰 화제가 됐다. 소문의 주인공은 '사이버펑크 2077'. 폴란드 정부지원금만 한화로 84억을 투자 받아 제작 중인 이 게임은 다양한 미래기술이 적용된 무기, 신체개조들, 자유로운 캐릭터 제작 등 게이머라면 누구나 혹할 만한 요소를 내세웠다.
그러나 CD 프로젝트 레드는 2012년 첫 발표 이래 '사이버펑크 2077' 정보를 거의 풀지 않아서 많은 게이머들의 속을 타게 만들었다. 가끔 개발자 인터뷰에서 부분적인 정보가 흘러나올 때도 있었지만, 사실 전반적인 게임 내용을 유추하게 해줄 만한 정보는 거의 없다시피 했다. 올해 E3에 보다 자세한 정보가 공개될 거라는 소문도 있지만, E3까지는 아직도 몇 개월이나 남았다. 솔직히 기다리기 힘든 시간이다.
그런데 사실, 올해 E3가 오기 전에 미리 '사이버펑크 2077'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사실 이 게임은 원작이 있다. 게다가 원작자가 제작에 참여해서 함께 설정을 짜고 있다니, 원작 세계관이 반영될 가능성은 상당히 높다. 원작을 보면 '사이버펑크 2077'의 분위기와 내용을 미리 파악할 수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과연 '사이버펑크 2077'은 세계관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까? 직접적으로 연관됐다고 발표된 원작, '사이버펑크 2020'을 통해 미리 확인해보자.
욕망에 미친 어두운 미래를 그린 원작 '사이버펑크 2020'
▲ '사이버펑크 2020' 규칙서 표지 (사진: 게임메카 촬영)
SF 게임이나 영화를 보면 다양한 신체이식장치들이 자주 등장한다. 이러한 작품들 속에서 인간은 신체 일부를 기계로 대체해 멋지고 여유로운 삶을 사는 것으로 묘사된다. 예를 들어 뇌에 작은 기계장치를 부착해 실시간 통역 지원을 받는가 하면, 눈 대신 광학렌즈를 심어서 뛰어난 시각은 물론 적외선 감지까지 가능해진다. 이와 같은 신체이식장치는 '데이어스 엑스', '오버워치', '워해머 40K' 등 다양한 게임에서 폭넓게 등장한다.
그런데 신체를 조금씩 기계로 바꾸다 보면 언젠가는 몸 전체가 기계가 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과연 기계가 된 인간의 삶은 행복할까? '사이버펑크 2077'의 원작인 '사이버펑크'는 바로 이러한 질문으로 시작한 TRPG였다. SF 소설 '뉴로맨서', '하드와이어드' 등을 바탕으로 1988년에 쓰인 이시리즈는 암울한 미래세계에서 벌어지는 비인간적인 사건들을 주제로 했다. 그 중에서도 '사이버펑크 2077'과 직접 관계된 '사이버펑크 2020'은 2020년을 배경으로 한 시리즈 두 번째 작품이다.
▲ '데이어스 엑스'에는 뇌에 부착하는 신체강화이식물이 등장했다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사이버펑크 2020'은 기술적으로는 진보했지만 도덕적으로는 퇴락한 미래 지구를 무대로 했다. 이 세계는 실제 역사보다 디지털 기술이 빠르게 발달했다. 하지만 20세기 말 기나긴 냉전 끝에 많은 국가가 전세계적 금융위기로 도산하거나 약화됐고, 정보화 시대에 접어들며 '넷' 상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업과 범죄를 통제할 수 없게 된다. 정부가 힘을 못 쓰자, 세상은 이익을 위해서는 뭐든 하는 냉혹한 대기업들의 자본주의 원칙에 의해 지배되기 시작했다.
통제를 벗어난 신기술 개발과 상업화는 대중의 욕망을 괴물 같이 키워놓았다. 그 중심에 서 있는 상품이 바로 사이버웨어, 혹은 사이버네틱스였다. 2010년대 본격적으로 대중에 보급되기 시작한 사이버네틱스 신체이식강화장치는 쉽게 말해 몸에 이식하거나 신체 일부를 대체하는 기계다. 이 기계를 이용하면 간단하게는 자신을 예쁘게 꾸미는 것부터, 인간을 초월한 연산속도를 얻거나, 고통을 느끼지 않는 등 다양한 효과를 누릴 수 있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사이버펑크 2020'에서 문신을 하고 싶다면, 간단히 '빛살 문신(Light Tatto)' 패션웨어를 피부 아래 이식하면 된다. 이 매우 얇은 사이버네틱스 조명장치는 피부 아래서 특정 모양의 빛을 발하여, 마치 문신을 한 것처럼 피부상에 글씨, 그림, 무늬 등을 띄운다. 물론 전기 신호를 통해 문신 내용과 색을 바꿀 수 있고, 전원을 끄면 문신도 말끔히 사라진다. 이를 응용해 눈이나 피부 색을 바꾸는 패션웨어도 존재한다.
▲ '사이버펑크 2020'에 실린, 사이버옵틱 이식 시술을 받고 있는 여성 (사진: 게임메카 촬영)
돈만 있으면 누구나 빠르고 쉽게 자신이 꿈꾸던 이상적인 모습이 될 수 있다는 점도 매혹적이지만, 아예 인간을 뛰어넘은 힘을 주는 사이버네틱스도 있다. 뉴럴웨어가 그 대표다. 뉴럴웨어는 척추와 뇌에 설치돼 각종 신경을 조정할 수 있게 해주는 장치다. 이러한 뉴럴웨어는 기초적인 반사신경 증폭부터, 연산속도 강화, 고통 둔화, 영화 '메트릭스'처럼 뇌를 '넷'이나 컴퓨터에 직접 접속시켜 의식을 전송할 수 있는 '링크' 등이 있다.
아예 신체 일부를 대체하는 사이버네틱스도 흔하게 사용된다. 안구를 적출하고 그 자리에 끼우는 사이버옵틱은 기본적으로 AR과 VR 기능을 지원하며, 반사광 차단, 시야 확대, 열 감지에, 보이는 영상을 바로 촬영하는 디지털 녹화까지 가능하다. 다른 게임에 흔히 나오는 강화된 의수, 의족, 의체 등도 물론 존재한다. 몸을 인공신체로 갈아 끼울 수 있으니 나이, 성별, 인종, 외모도 얼마든 원하는 대로 바꿀 수 있다.
▲ 아예 팔을 기계로 대체한 사람은 흔하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이처럼 '사이버펑크 2020'에서는 누구나 사이버네틱스만 있으면 인간 이상의 존재가 될 수 있다. 대기업들은 이러한 사이버네틱스를 구매해 '더 우월한 존재'가 되라고 유혹하며, 대중은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몸을 기계로 바꾸는 쉽고 간단한 방법을 택한다. 그렇게 사이버네틱스를 부착할 때마다 몸에서 살과 피로 이루어진 부분은 점점 적어진다. 하지만 이 시대에 자신이 사이보그가 되는 것을 무서워하는 사람은 이미 거의 없다.
문제는 돈이다. 고성능 사이버네틱스는 어마어마하게 비싸고, 지속적인 업데이트와 보수로 계속 돈을 쓰게 만든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사이버네틱스를 구매하고 유지하는 데 필요한 돈을 모으기 위해 악랄한 행위도 서슴지 않는다. 신체강도질도 흔하게 벌어진다. 안구나 팔다리를 빼앗겠다고 드는 것이다. 아예 살인을 저지른 후 시체를 해체하는 일까지 있다. 인간의 재능과 역량은 훔칠 수 없지만, 사이버네틱스는 빼앗을 수 있기 때문에 벌어지는 비극이다.
▲ '사이버펑크 2077'에서도 사이버네틱과 의체는 자주 보여진다 (사진출처: '사이버펑크 2077' 공식 홈페이지)
'사이버펑크 2020'의 비인간적인 세상에서 대부분의 인간은 한낱 물건으로 전락해있다. 누군가를 고용할 때는 그 사람이 어떤 사이버네틱스를 장착하고 있는지부터 본다. 은행에서 돈을 빌릴 때 신용도를 측정할 때도 사이버네틱스를 확인한다. 그리고 만약 누군가가 죽으면, 생전 채무자들이 피라냐 떼처럼 나타나 빚 대신 죽은 몸에 붙어있는 사이버네틱스를 떼간다. 가식적 수준의 슬픔조차 남지 않은, 완전히 메말라 버린 물질만능주의적 세상이다.
'사이버펑크 2020'가 보여주는 세상은 기술에 잡아 먹힌 디스토피아적 미래다. 몸을 기계로 바꾼 인간은 그 자신도 물건이 되었고,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를 물건으로 대한다. '사이버펑크 2020'은 이렇듯 겉보기는 멋지고 황홀하지만 내면은 탐욕과 욕망에 찌든 세상에서 벌어지는, 비인간적인 음모와 범죄를 건조한 내러티브로 담아내고 있다.
'테세우스의 배'가 되어버린 인간
▲ '사이버펑크 2020'은 사람도 '테세우스의 배'와 같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사진출처: Quora)
고대 그리스 신화의 비유 중 '테세우스의 배'라는 것이 있다. 영웅 테세우스가 탄 배는 오랜 세월 신성시된 나머지 여러 번 유지 보수되었다. 사람들은 배의 부식된 널빤지를 뜯어내고 튼튼한 새 목재를 덧대 붙이기를 거듭했는데, 그 결과 수 세기가 지난 후에는 배 전체가 바꾼 부품들로만 이루어진 꼴이 되었다. 이에 사람들은 이 배를 테세우스가 탔던 배로 보아야 할지, 아니면 후세 사람들이 만든 배로 보아야 할지에 대해 답을 내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사이버펑크 2020'의 인간은 '테세우스의 배' 같다. 조금씩 몸을 갈아치우다 보니 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진정한 나'인지, 애초에 '진정한 나'라는 게 존재하기는 하는 것인지도 확실치 않아진 것이다. '사이버펑크 2020'는 이처럼 과도한 사이버네틱스 착용, 인간 정신의 전산데이터화 등을 통해, 인간성이 상실되어가는 과정을 음울한 분위기 속에서 묘사하고 있다.
▲ 뇌, 안구, 음성 등 다양한 사이버네틱이 지원될 예정인 '사이버펑크 2077' (사진출처: Reddit)
'사이버펑크 2020' 속의 사람들은 굉장히 일상적으로 자신을 바꾼다. 냉철하고 논리적인 사람이 되고 싶으면 감정변화의 폭을 줄이고 연산과 기억을 강화하는 뉴럴웨어를 설치한다. 멋진 외모를 갖고 싶어서 안면 플레이트를 최신 모델로 바꾸고 의족도 조금 긴 것으로 새로 구매해 장착한다. '사이버펑크 2020'에서 사이보그는 특이한 존재가 아니라 삶의 스타일이다.
하지만 너무 많은 신체부위를 사이버웨어로, 금속과 플라스틱으로 대체할수록 사람은 정신적으로 문제가 생긴다. 정신과 신체 양면에서 극단적인 변화를 거듭할수록 정체성에는 혼란이 생기며, 이 혼란이 너무 심해지면 매우 위험한 상태에 이르게 된다. 이처럼 과도한 사이버네틱스 사용으로 생긴 정신이상은 '사이버정신증(Cyberpsychosis)'이라 하며, 환자는 '사이버싸이코'라고 불린다.
'사이버싸이코'는 대부분 생리적으로 인간과 매우 동떨어진 존재다. 자거나, 먹거나, 호흡할 필요가 없는 것은 기본이며 아예 사고방식 자체가 사람보다는 컴퓨터에 가까워진 자들도 있다. 생리적인 차이가 크다 보니 감정적인 면에서도 일반인과는 다르게 느낄 때가 많은데, 그 중에서도 이들이 겪는 가장 두드러지는 공통된 증세는 바로 타인에게 공감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사이버싸이코'가 타인과 공감할 수 없는 이유는 매우 단순하다. '사이버싸이코'는 대부분의 사람과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느끼고, 이해하고, 행동한다. 그러니 감성적으로도 비인간적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기 힘들어짐에 따라 사회관계를 맺거나 유지할 수도 없게 된다는 것이다. 이에 많은 '사이버싸이코'가 극한 고립 속에서 정신적으로 뒤틀리게 된다.
'사이버펑크 2020'의 특징적인 시스템 중 하나는 이러한 정신적 변화를 나타내기 위한 '공감(Empathy)'이다. 모든 캐릭터는 시스템적으로 '공감'이라는 수치를 지니고 있다. 사이버네틱스를 달 때마다 '공감' 수치는 조금씩 떨어지며, 캐릭터가 타인 감정을 이해하고 관계 맺기도 점점 힘들어진다. 그러다 '공감'이 최저수준으로 떨어지면 더 이상 플레이어가 조종할 수 없는 캐릭터가 된다. 사실상 게임 오버를 당하는 셈이다.
▲ '사이버펑크 2077' 동영상에 등장한 '사이버싸이코'에 의한 대량학살 (사진출처: 영상 갈무리)
'사이버정신증'은 '사이버펑크 2020'에서 상당히 중요한 문제로 인식된다. 조금씩 정도에 차이는 있지만, 사실 대부분의 사람이 잠재적 '사이버싸이코'이기 때문이다. 사이버네틱스를 일상적으로 바꿔 끼우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자기도 모르는 사이 정체성 혼란이 시작될 수 있다. 그리고 일단 '사이버싸이코'가 되고 나면 도벽, 가학증, 극도의 잔인성, 인격분열, 극단적 기분 변화 등 다양한 증상이 나타나다, 마지막으로는 대량학살에 나선다.
'사이버싸이코'는 극단적으로 자기 신체를 개조한 자다. 쉽게 말해 고성능 사이보그다. 그렇기에 원래 일반인이었다 해도, 일단 사람을 해치기로 작정하면 순식간에 여러 명을 해칠 수 있다. 기본 신체기능부터 보통 사람의 몇 배는 되는 데다, 온갖 뉴럴웨어로 반응속도와 전술계산을 고속으로 처리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의체에 자율반응 스마트건이나 살상용 칼날 등의 무기를 장착하고 학살에 나설 시 위험성은 훨씬 높아진다.
▲ 부딪친 총알이 가루가 될 정도로 튼튼한 '사이버싸이코' 의체 (사진출처: 영상 갈무리)
CD 프로젝트 레드가 제작 중인 '사이버펑크 2077'에서 '사이버싸이코'는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공개된 게임 동영상이 '사이버싸이코'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영상에는 자동소총 탄환을 맞고도 흠집만 나는 수준의 고강도 안면 플레이트에, 접이식 칼이 내장된 의수를 장착한 의체 여성이 등장한다. 주위에는 무차별적으로 학살된 민간인 시체가 여러 구 보이며, 중무장한 경찰 특공대가 포위하고 있다. '사이버싸이코'에 의한 학살 사건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 영상에서 여성은 '사이버싸이코'답게 매우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또 영상에는 '나를 보통 사람 대하듯 대해달라'는 여성 음성이 나오는데, 이 역시 극심한 사이버네틱스 신체로 인해 정체성과 사회관계에 문제가 생긴 바 있음을 암시하는 부분이다. 그리고 후술하겠지만, 이 게임이 '사이버싸이코'를 중요하게 다룰 예정임을 알게 하는 점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사이버싸이코'를 체포하는, 'MAX-TAC'이라 쓰여진 옷을 입은 요원이다.
'사이버펑크 2020'의 위쳐, '사이버스쿼드'
▲ '사이버싸이코' 전문 사냥꾼, '사이버스쿼드' (사진출처: 영상 갈무리)
CD 프로젝트 레드가 제작한 게임 '위쳐'에는 독특한 괴물 사냥꾼 집단이 등장한다. '위쳐'라는 이 조직은 자신에게 연금술 영약과 괴물 유전인자를 주입해 일반인을 상회하는 힘을 얻었지만, 대신 감정이 메말라 버린 전사들로 구성됐다. 그런데 '사이버펑크 2020'에도 '위쳐'와 꽤 비슷한 조직이 등장한다. 바로 '사이버싸이코'를 사냥하는 특수무장집단 '사이버스쿼드'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사이버싸이코'는 극도로 위험한 존재다. '사이버펑크 2020'의 세계는 이미 치안이 막장으로 치달은 상태라 일반 경찰도 시내를 순찰 할 때 기관총으로 무장한 장갑차를 탈 정도다. 하지만 '사이버싸이코'는 이처럼 중무장한 경찰도 감당하기 힘들다. 그렇기에 정부에서는 특단의 조치로 주요도시마다 '사이버싸이코' 전담부대인 '사이버스쿼드'를 배치해두고 있다.
'사이버스쿼드'는 소속된 지역이나 기관에 따라 C-SWAT(사이버네틱스 SWAT), CYB-집행부대, MAX-TAC(최대화력 전술부서)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린다. 동영상에 등장해 '사이버싸이코'를 체포했던 'MAX-TAC'의 정체도 바로 이 '사이버스쿼드'다. 어쨌거나 이름이 뭐든 간에 하는 일은 대개 비슷하다. 가장 치명적인 개인화기로 무장하고 '사이버싸이코'를 사냥하는 것이다.
▲ '사이버싸이코'를 제압하거나 사살하는 것이 '사이버스쿼드'의 주 임무 (사진출처: '사이버펑크 2077' 공식 홈페이지)
하지만 총만 갖고 '사이버싸이코'에 맞서기 쉽지 않다. 인간의 타고난 신체로는 '사이버싸이코'의 움직임을 제대로 쫓아갈 수도 없거니와, '사이버싸이코'가 육탄전을 시도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사이버스쿼드'는 맨몸으로 '사이버싸이코'와 맞설 수 있게 고도의 신체개조를 받는다. 괴물에 맞서기 위해 그들 자신도 괴물이 되는 셈이다.
아예 '사이버싸이코'를 '사이버스쿼드'로 만들 때도 있다. 모든 '사이버싸이코'가 처음부터 학살을 일으키는 것은 아니다. 대개는 미약한 증세부터 시작해 계속 증세가 악화되어가는 것인데, 일부 요원들은 '사이버정신증' 고위험군에 속하는 사람에게 미리 접촉해 선택지를 준다. 어차피 얼마 안 가서 '사이버싸이코'가 될 텐데, 지금 암살될지 '사이버스쿼드'가 될지 정하라는 것이다. 이렇게 반쯤 강제로 '사이버스쿼드'가 된 잠재적 '사이버싸이코'는 정부요원으로 등록되고 주기적 사이버정신 진단과 치료를 받는다. 지속적인 감시 하에 놓이는 셈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사이버스쿼드' 내에는 '사이버싸이코'에 준할 정도로 정신상태가 불안정한 인물도 여럿 존재한다. 그 탓에 '사이버스쿼드'는 종종 '싸이코스쿼드'로 불리기도 한다. 경찰 조직 내에서도 '사이버스쿼드'에 대한 대우는 좋지 않다. 언제 미칠지 모르는, 그것도 일반적 '사이버싸이코'보다 훨씬 우수한 전투기술을 갖춘 위험성 높은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이에 일부 지역 경찰은 비밀리에 산하 '사이버스쿼드' 요원 의체에 임플란트 폭발물을 심어두기까지 한다. 유사시 '사이버스쿼드' 요원을 제거하기 위해서다. 괴물을 잡기 위해 괴물이 됐지만, 그 탓에 사람들에게 의혹의 눈초리를 받는다는 점도 '위쳐'와 비슷하다.
▲ 징집된 '사이버싸이코'가 MAX-TAC으로 다시 등장할 모양이다 (사진출처: Reddit)
CD 프로젝트 레드의 '사이버펑크 2077'에도 '사이버스쿼드'에 징집된 '사이버싸이코'가 등장할 듯하다. 발표된 사항 중 "동료 중 한 명은 사이버싸이코일 것"이라는 언급이 있기도 했고, 동영상에 등장한 '사이버싸이코' 여성도 체포된 후 'MAX-TAC' 요원이 된 모습으로 다시 나오기 때문이다. 징집된 '사이버싸이코' 여성이 다른 '사이버싸이코'와 싸우는 모습이 담긴 유출 이미지도 있다.
이처럼 지금까지 공개된 요소들로 미루어볼 때 '사이버펑크 2077'은 사이버네틱스에 대한 욕망과 광기, 그리고 그 산물이라 할 수 있는 '사이버싸이코' 문제를 중심으로 다룰 것으로 예상된다. 또 주인공은 기본적으로 '사이버스쿼드'일 가능성이 높다.
기술에 의한 인간성의 쇠퇴를 그린 디스토피아 세계관
▲ 원작은 사이버네틱스 외에도 다양한 미래기술의 문제를 소재로 삼았다 (사진출처: '사이버펑크 2077' 공식 홈페이지)
그렇다면 이 모든 요소가 '사이버펑크 2077'에 그대로 나올까? 아마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사실, 애초에 '사이버펑크 2020'도 '사이버싸이코'에 대해서만 다루지는 않는다. 그 외에도 '넷러닝'으로 대표되는 '사이퍼펑크(Cypherpunk)'와 무정부주의, 인간복제 등 다양한 소재로 '미래기술에 의한 인간성의 변화'를 그리고 있다.
여기에 또 한 가지 감안해야 할 것이 있다. '사이버펑크 2077'가 원작 '사이버펑크 2020'으로부터 50년 이후의 세계를 그리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원작자 마이크 폰드스미스가 직접 설정을 작성했고, 원작에 가상 도시 '나이트 시티'가 게임의 무대이긴 하지만, 어쨌거나 원작 설정 그대로는 아니다. 바뀌는 점은 있을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물질만능주의와 탐욕에 의한 인간의 기계화라는 주제는 여전히 이 게임의 핵심을 이룬다. 모든 것을 물질적인 이익으로 환원해 생각하는 물질만능주의적 사고방식이 인간마저 물질로 바꿔버린다. 모두가 자신의 욕망만을 좇아 아무렇지도 않게 비도덕적인 일을 일삼고, 인간성의 가치는 쇠퇴해 사라지고 있다. '사이버펑크 2020'이 그리는 세계의 핵심은 바로 여기 있다. 기술에 의한 인간성의 쇠퇴, 그리고 이러한 변화에 지켜보는 슬프고 우울한 감수성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