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시아 왕자 호위에서 주인공으로, 어쌔신 크리드의 10년
2018.03.22 15:33 게임메카 이새벽 기자
▲ 강연을 맡은 쟝 귀동 유비소프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사진: 게임메카 촬영)
하나의 전통 있는 프랜차이즈를 확립하기란 대단히 힘든 일이다. 그렇기에 2007년 첫 발매 이래 유명세를 잃지 않는 것은 물론이요, 오히려 인기가 커지고 있기까지 한 ‘어쌔신 크리드’는 매우 특별한 프랜차이즈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오랜 세월 동안 흔들리지 않고 가치를 키워온 게임 프랜차이즈는 매우 드물기 때문이다.
과연 어쌔신 크리드’는 어떻게 오늘날 같은 거대 프랜차이즈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것일까? 올해 GDC ‘어쌔신 크리드 브랜드 진화의 10년’은 바로 이러한 질문에 답이 될 수 있는 강연이었다. 이 강연에서 유비소프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쟝 귀동(Jean Guesdon)은 ‘어쌔신 크리드’가 어떻게 생겨나 성장했고, 브랜드 가치를 확립했으며, 발전하고 있는지를 전했다.
귀동은 이번 강연에서 ‘어쌔신 크리드’ 역사를 세 부분으로 나누어 설명했다. ‘어쌔신 크리드’ 창조, 확장, 그리고 쇄신이다. 귀동은 이 강연을 통해 ‘어쌔신 크리드’ 프랜차이즈가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 팬들에게 전함과 동시에, 다른 개발자들과 ‘명품 프랜차이즈’를 확립하는 데 필수적인 조건에 대한 이해를 나누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 '어쌔신 크리드' 프랜차이즈 역사를 세 시기로 나누었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이미 널리 퍼진 사실이지만, 사실 ‘어쌔신 크리드’는 본래 신규 프랜차이즈를 세우기 위해 제작된 게임이 아니었다. 2004년 유비소프트는 ‘페르시아의 왕자: 시간의 모래’ 외전을 만들 생각이었다. 이 게임은 왕자가 주인공이 아니라, 왕자를 어둠 속에서 호위하고, 때로는 적을 먼저 제거해주기도 하는 암살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제작 중 보다 빠르고 독특한 체험을 제공하기 위해 게임을 완전히 새로 고안하자는 제안이 나왔다. 이에 다소의 재창조 과정을 겪은 끝에 탄생한 것이 바로 ‘어쌔신 크리드’였다.
‘어쌔신 크리드’는 ‘페르시아의 왕자’보다 빠르고 세련된 것은 물론, 성인 취향에 맞춰 사실적인 체험을 제공하도록 기획됐다. 그에 따라 무대는 중동 판타지가 아닌 12세기 3차 십자군 전쟁으로 수정했고, 과거의 끝난 이야기가 아니라 21세기와 이어질 수 있도록 ‘애니머스’라는 설정을 도입했다. 또한 새롭고 멋진 암살자 캐릭터 이미지를 창조하기 위해 다양한 모티프를 실험적으로 적용하기도 했는데, 그 결과 최종적으로 남은 것이 맹금류였다.
▲ '페르시아의 왕자'보다 멋지고 세련된 게임을 만들자는 취지에서 시작됐다고 (사진: 게임메카 촬영)
여기에 사실성을 강조하기 위한 난이도 높은 작업들을 병행했다. 그 중 하나가 ‘파쿠르(Pakour)’ 액션이었다. 파쿠르는 ‘페르시아의 왕자’ 외전으로 기획된 프로젝트 어쌔신 시절부터 게임의 핵심 요소로 기획됐다. 그런데 캐릭터가 자유롭게 벽을 타고 뛰어다니기 위해서는, 밟고 뛸 수 있는 벽과 지붕의 물리적 오브젝트가 모두 짜여있어야 했다. 또한 플레이어가 가장 쾌감을 느낄 만한 이동경로도 계산하고 설계해야 하는 등 수반되는 작업량도 만만치 않았다.
또 다른 핵심특징인 ‘암살’도 쉽지 않았다. 유비소프트는 ‘어쌔신 크리드’ 암살을 군중 속에 숨어 대상에게 몰래 접근해 급습하는 것으로 기획했다. 그런데 이러한 암살 방법을 실제로 실행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NPC가 저마다의 행동패턴에 따라 움직이고, 플레이어는 이를 계산하고 이용할 수 있어야 했다. 여기에 모델도 시대고증에 맞춰 세세히 작업해야 했으니, NPC 제작 작업만 해도 예상을 훨씬 웃도는 시간이 소요됐다.
▲ 저 점 같은 것 하나 하나가 전부 '어쌔신 크리드' 캐릭터 모델링이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그 탓에 ‘어쌔신 크리드’는 콘텐츠가 다소 부족한 채 발매됐다. 독특한 내러티브와 멋진 주인공, 아름답고 사실적인 배경, 자유로운 파쿠르 액션은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콘텐츠 종류가 적고 반복적인 점은 크게 비판을 받았다. 귀동은 당시 ‘이 게임은 테크 데모’라는 쓰라린 일침까지 나왔었다고 회고했다. 다만 전체적인 판매량은 좋았던 덕분에 프랜차이즈를 개발할 수 있는 허가를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절치부심하여 전작의 단점들을 개선한 작품이 바로 ‘어쌔신 크리드 2’였다.
‘어쌔신 크리드 2’는 전작의 독특한 장점들은 그대로 유지한 채 부족했던 콘텐츠를 확충했다 특히 집중한 부분은 ‘어쌔신 크리드’ 특유의 파쿠르, 그리고 군중 속에 숨은 채로 대상에게 접근하는 암살방법이었다. ‘어쌔신 크리드’ 발매 후 유비소프트는 치밀한 포스트모템, 소비자 설문, 커뮤니티 모니터링을 통해 플레이어 만족도를 분석했다. 그 결과 대부분의 플레이어가 파쿠르와 암살을 이 게임의 장점으로 꼽았지만, 정작 이를 임무에 활용할 여지가 적어 아쉬워한다는 점을 깨달았다.
▲ 기획은 좋지만 콘텐츠 볼륨이 빈약했던 '어쌔신 크리드' (사진: 게임메카 촬영)
이에 유비소프트는 ‘어쌔신 크리드 2’ 콘텐츠를 ‘전투’, ‘길 찾기’, ‘군중을 이용한 은신’ 세 가지로 분류했다. 경비병 종류도 그에 따라 세 종류도 분화됐고, 암살지점을 찾기 위해 건물 지붕과 벽을 밟고 뛰는 구간은 증가했으며, 매춘부를 고용해 움직이며 그들 사이에 숨는 시스템도 추가됐다.
역사 콘텐츠도 전작보다 더 나아가, 실제 역사적 사건과 인물들을 등장시키기도 했다. 예를 들어 ‘어쌔신 크리드 2’ 메인 스토리는 메디치 가문이 피렌체 정권을 잡게 된 ‘파치 음모 사건’과 깊은 관계가 있다. 덕분에 이 작품은 플레이어에게 그 자신이 역사적 사건에 직접 연관된 듯한 특별한 체험을 제공하고, 한층 깊은 재미를 선사할 수 있었다.
‘어쌔신 크리드 2’는 게임의 근간이 되는 정체성과 핵심 콘텐츠를 명확히 파악한 덕에 성공할 수 있었다. 프랜차이즈는 2004년부터 개발을 시작한 ‘어쌔신 크리드’를 시작으로 ‘어쌔신 크리드 2’, ‘어쌔신 크리드 2: 브라더후드’를 거치며 성립됐다.
▲ 전작의 장점들을 훨씬 예리하게 다듬은 '어쌔신 크리드 2' (사진: 게임메카 촬영)
귀동은 ‘어쌔신 크리드’ 프랜차이즈가 확장을 시작한 작품으로 ‘어쌔신 크리드 2: 리빌레이션’을 꼽았다. 이후 ‘어쌔신 크리드3’, ‘블랙 플래그’, ‘유니티’, ‘신디케이트’ 등을 거치며 세계관과 콘텐츠가 확충돼 오늘날에 이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 시기가 바로 ‘어쌔신 크리드’ 프랜차이즈가 맞은 두 번째 시대, 확장기였다.
‘어쌔신 크리드’ 인기가 확인되자 유비소프트는 이 프랜차이즈를 보다 확장시키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다. 유비소프트 프랜차이즈 관리에서 가장 중요한 철학은 계속 ‘신선함’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쌔신 크리드’가 파쿠르와 군중을 이용한 암살이라는 새롭고 독특한 콘텐츠로 성장했듯 앞으로도 계속 참신한 모습을 보여주어야 했다. 그러지 못하면 아무리 신기한 콘텐츠도 곧 식상한 것이 되고, 이내 인기를 잃을 것이기 때문이다.
▲ 사실 팀 확충 자체는 '어쌔신 크리드 2: 브라더후드' 때 이미 시작됐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유비소프트는 보다 다양하고 창의적인 콘텐츠 기획을 위해 ‘어쌔신 크리드’ 개발에 참여하는 팀을 확충했다. 이전부터 ‘어쌔신 크리드’를 담당하던 몬트리올 스튜디오 외에도 안시, 싱가폴, 소피아, 퀘벡 등 다양한 국가와 도시의 스튜디오가 함께 ‘어쌔신 크리드’를 제작했다. 몇몇 스튜디오는 한 작품의 콘텐츠를 나누어 개발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어쌔신 크리드: 오리진’ 무덤과 피라미드에 관계된 퀘스트는 소피아 스튜디오에서 개발했지만, 투기장과 전차경주는 부카레스트 스튜디오가 제작했다. 그리고 해상전은 싱가폴 스튜디오가 담당했다.
이처럼 여러 스튜디오가 함께 작업하는 방식의 장점은 다양성이었다. 한 스튜디오에서 단독으로 개발하는 것에 비해 다양한 관점의 아이디어가 제시되고, 이를 바탕으로 훨씬 독특하고 재미있는 콘텐츠를 만들 수 있었다는 것이다. ‘어쌔신 크리드 2: 리빌레이션’의 갈고리 칼날을 이용한 로프 액션, ‘어쌔신 크리드 3’의 자연 배경 활용 및 해상전, ‘어쌔신 크리드: 블랙 플래그’ 심리스 월드는 모두 여러 스튜디오간의 합작을 통해 나올 수 있었던 새로운 요소들이다.
▲ 매 작품마다 새로운 요소를 선보인 '어쌔신 크리드' (사진: 게임메카 촬영)
귀동은 시리즈 중 가장 성과가 안 좋았던 ‘어쌔신 크리드: 유니티’도 의미 있는 새 시도를 했던 작품이라고 언급했다. ‘어쌔신 크리드: 유니티’에서 대대적인 그래픽 엔진 개선을 이룬 것은 물론, 캐릭터와 사물들 사이의 비율조정도 이루었다는 것이다. 귀동은 이러한 변화가 꼭 좋은 성적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프랜차이즈 관리라는 차원에서는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새로운 콘텐츠와 품질개선 없이는 장기간 프랜차이즈를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프랜차이즈 규모가 커짐에 따라 세계관 관리도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다. 프랜차이즈 팬들은 작품 하나만 즐기는 것을 넘어, 시리즈를 관통하는 세계관을 알고 싶어한다. 이에 유비소프트는 모든 작품의 이야기가 이어지게 촘촘한 설정을 짜는 것은 물론, 게임에서 못 다룬 이야기를 보여주기 위해 트랜스미디어를 시도했다. 예를 들어 ‘어쌔신 크리드 2’ 주인공 ‘에지오’의 죽음을 그린 단편 애니메이션 ‘어쌔신 크리드: 앰버’는 팬들로부터 매우 좋은 반응을 얻었다.
마이클 패스벤더 주연 영화 ‘어쌔신 크리드’도 프랜차이즈 관리 차원에서는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 그는 유비소프트 조사 결과, 영화가 개봉한 2017년에는 전년도 대비 프랜차이즈 인지도가 9%나 상승했다고 설명했다.
▲ 미디어믹스 및 트랜스미디어가 모두 성공한 건 아니지만, 인지도 상승에는 도움이 됐다고 (사진: 게임메카 촬영)
그러나 다양성이 언제나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신규 콘텐츠 중 일부는 없는 게 낫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실제로 ‘어쌔신 크리드’ 프랜차이즈에서도 일부 신규 콘텐츠는 새로운 전통이 되어 이후 작품에 계속 적용되지만, 일부는 첫 등장 이후 바로 묻히기도 한다.
그렇다면 어떤 콘텐츠를 계속 발전시킬지, 혹은 도태시킬지 정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귀동은 그 기준을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체성’과 ‘팬들의 요구’다. 전자는 프랜차이즈 핵심가치가 무엇인지 스스로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며, 후자는 정체성을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팬들의 요구에 유연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어쌔신 크리드’ 정체성에도 부합하지 않고, 팬들이 좋아하지도 않는 콘텐츠는 남겨둘 이유가 없었다.
▲ 기본 정신과 틀은 유지하되, 세부사항은 세련되게 수정해야 한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유비소프트는 ‘유니티’와 ‘신디케이트’ 이후 불필요한 콘텐츠를 배제하고 장점은 세련되게 다듬는 ‘쇄신’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렇게 제작된 작품이 바로 지난 해 출시된 ‘어쌔신 크리드: 오리진’이다. 이 작품은 스토리상으로도 ‘암살단’ 기원을 파헤치는 내용이지만, 프랜차이즈 역사를 볼 때도 원점으로 돌아간다는 '쇄신'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
‘오리진’은 ‘어쌔신 크리드’ 핵심 축인 ‘전투’, ‘길 찾기’, ‘암살’을 크게 개선했다. 전투에서는 히트 박스 시스템 도입, ‘암살검’ 외에도 여러 무기를 유의미하게 활용할 수 있는 다양성, 성장에 따라 캐릭터를 원하는 대로 발전시킬 수 있는 선택권이 제공됐다.
▲ 원거리 무기의 유용성 증대도 고심 끝에 이루어진 변화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길 찾기는 ‘오리진’ 초기 기획 단계에 가장 곤란했던 부분 중 하나였다. 기존에는 밟고 뛰어다닐 건물이 많았지만, 고대 이집트에는 고증상 높은 벽과 지붕을 촘촘히 배치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이에 활용된 것이 높은 절벽 등의 자연환경과 고대유적 등이었다. 무엇을 기어오르는지는 변했지만, 파쿠르 액션이라는 콘텐츠 본질은 놓지 않은 셈이다.
암살은 NPC 인공지능 향상을 통해 보다 샌드박스에 가깝게 진행할 수 있게 만들었다. ‘오리진’의 모든 NPC는 각자의 인공지능 패턴에 따라 시간과 환경 별로 다른 활동을 하며, 다른 NPC들과 상호작용을 하기도 한다. 이를 통해 플레이어는 군중을 이용해 암살 대상에게 다가가는 방법을 보다 자유롭게 계획할 수 있게 됐다. 또한 암살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돌발변수도 배가됐고, 암살의 긴장과 성취감 또한 크게 증대됐다.
그 외에도 캐릭터 디자인상 많은 점을 ‘어쌔신 크리드’의 ‘알테어’와 비슷하게 만들었다. 시네마틱 영상에서 ‘아야’가 군중 속으로 사라지는 것은 ‘어쌔신 크리드’ 최초 시네마틱 영상에서 ‘알테어’가 사라지는 것과 정확히 같은 구도다. 그런가 하면 ‘바예크’의 의상, 포즈도 의도적으로 ‘알테어’와 유사하게 제작됐다. 팬들이 ‘어쌔신 크리드’ 프랜차이즈에 기대하는 익숙함을 제공하기 위해서다.
▲ 동일 프랜차이즈임을 인식시키기 위해 '알테어'와 비슷하게 만들어진 '바예크' (사진: 게임메카 촬영)
하지만 핵심적인 부분 외에는 많은 콘텐츠를 제거하거나 수정했다. 너무 많은 요소가 무분별하게 쌓이다 보면 ‘어쌔신 크리드’의 가장 중요한 장점들이 묻힐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오리진'은 '어쌔신 크리드' 핵심 틀만 지킬 뿐, 세부사항에 있어서는 굉장히 큰 변화를 단행했다.
귀동은 ‘어쌔신 크리드’ 프랜차이즈가 이토록 오랜 세월 동안 발전해올 수 있었던 것은 단 하나의 철학 덕분이었다고 강연을 요약했다. ‘네 브랜드를 알라’는 것이다. 프랜차이즈의 장점과 팬들이 기대하는 것을 파악하면, 프랜차이즈를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 길이 보이리라는 이야기다.
▲ 팀워크는 기본이고, 브랜드 핵심 가치를 스스로 알고 있어야 한다는 귀동 (사진: 게임메카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