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정남] 하라는 게임은 안 하고! 게이머 재능낭비 TOP 5
2018.10.11 18:04 게임메카 이재오 기자
※ [순정남]은 매주 이색적인 테마를 선정하고, 이에 맞는 게임을 골라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학교 다닐 적에 손재주가 지나치게 좋은 친구가 한 명 있었다. 학교 소나무밭에 널려있는 나뭇가지와 노끈으로 활과 화살을 만드는 건 예삿일이고 고장 난 우산과 실리콘을 이용해 투창을 만들거나, 나무젓가락으로 석궁을 만든 다음 젓가릭을 발사해 나무에 꽂히게 만들 정도로 비범한 녀석이었다. 재밌게도 이 모든 것들은 수업시간에 뒷자리에서 몰래 작업해서 완성한 것들이다. 그야말로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자신의 재능 발산에 온 힘을 쏟는 녀석이다.
게이머중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다. 게임에서 시키는 것은 안 하고, 자신의 재능을 기묘한 방법으로 발산하는 것이다. 게임 속 콘텐츠를 극한으로 끌어올려 즐긴다던가, 각종 모드를 만들어 말도 안 되는 궁금증을 해결해 본다던가, 혹은 아예 색다른 무언가를 창조하는 유저들 말이다. 오늘은 하라는 게임은 안 하고 이상한 딴 짓만 일삼는 유저들의 놀라운 결과물 TOP 5를 골라봤다.
TOP 5.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머시니마
최근엔 게임을 오랫동안 즐긴 유저들을 속칭 '고인물'이라 한다. 비아냥거리는 의미가 있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게임을 오래한 고수들을 지칭하는 신조어라 볼 수 있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이하 와우)'는 14년에 달하는 그 역사만큼 상상을 초월하는 실력을 지닌 고수들이 어마어마하게 많다. 10명이 칼 같이 움직여야 겨우 클리어할 수 있는 레이드 보스를 혼자서 잡는다던가, 36개 계정을 동시에 키우는 등 상상을 초월하는 고인물들이 차고 넘친다.
개중에서 최고 고인물은 역시 '와우' 내 게임엔진을 가지고 '머시니마' 영상을 만드는 유저들일 것이다. 그러니까 하라는 게임은 안하고 게임 속에서 영화를 찍느라 바쁜 사람들 말이다. 오래된 게임엔진으로 만드는 영화가 좋아봐야 얼마나 좋겠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완성도가 상당하다. 보통 게임 속 컷신이나 트레일러를 실제로 재현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실제 트레일러보다 훨씬 사실적이고 세밀한 묘사를 보여주는 경우도 더러 있을 정도다. 이쯤 되면 현실에서 영화를 만들어도 좋을 것 같다.
TOP 4. 롤러코스터 타이쿤 인간 도미노
▲ 인간 도미노라고 하는데 사실상 인간 계곡이라고 봐야 할 것 같다 (영상출처: JimboVids 유튜브 채널)
시키지도 않은 짓 하기에는 경영 시뮬레이션게임 만한 장르가 없다. 컨트롤도 쉽고 따로 스토리도 없으니 원하는 것이면 뭐든지 해도 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경영 시뮬레이션 장르는 유저의 지나친 이상행동을 방지하기 위해 NPC AI나 물리 엔진부터 경제, 정치, 문화, 종교 등 다양한 시스템을 최대한 현실적으로 꾸며놓지만, 재능낭비 유저에게 그런 건 아무 의미 없다. 그들은 항상 게임 속에서 답을 찾았고 상상을 초월하는 플레이로 게임의 본 목적을 뒤틀었었으니까.
'롤러코스터 타이쿤'은 그야말로 이 분야의 선두주자라 볼 수 있다. 처음엔 평범하게 놀이공원을 만들던 유저들도 어느샌가 자기도 모르게 관람객 괴롭히기에 빠져 지내게 만들기 때문이다. 일례로 한 유저는 게임의 훌륭한 물리 엔진을 십분 활용해 인간 도미노를 만든적이 있다. 사람들을 최대한 일렬로 많이 세워 놓고 억지로 넘어뜨린 것이다. 계곡물마냥 흘러내려 오는 관람객들을 보고 있으면 헛웃음밖에 안 나온다. 딱히 잔인하다고 느껴지지는 않지만, 자연스럽게 만든 유저의 정신상태가 의심스러워지는 건 덤이다.
TOP 3. 마인크래프트 화상 전화
▲ 4분 55초 부터 영상통화하는 장면이 나온다 (영상출처: CaptainSparklez 유튜브 채널)
'마인크래프트'는 원래 모든 게 네모난 세상에서 네모난 재료들을 가지고 네모난 집을 짓는 게임이었다. 헌데 언제부턴가 건축이 아니라 블록 하나하나를 이용해 그림을 그리는 유저가 나오더니 아예 한 나라를 혼자 만들어 버리는 등 상상을 초월하는 플레이들이 난무하기 시작했다. 헌데 시간이 지나자 아예 여기서 프로그래밍을 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어떤 모드의 도움 없이 8비트 컴퓨터를 게임 속에서 만들어내더니 아예 팩맨을 구동시키기도 한다. 그런데 이 정도는 약과다.
덕중 덕은 양덕이라더니 한 양덕후가 화상통화가 가능한 아이폰을 마인크래프트로 만들었다. 미국 통신사 '버라이즌'의 지원을 받아 게임 내에 기지국도 설치하고, 각종 소스도 직접 연결해서 가동이 되는 아이폰을 만들어낸 셈이다. 게임 속 블록이 픽셀이 되서 통화 대상의 얼굴을 실시간으로 표현하는 세밀함이 특히 압권이다. 고맙게도 버라이즌은 이 프로그램을 오픈소스로 공개해 '마인크래프트' 유저라면 누구나 게임 속에 거대한 아이폰 하나를 마련할 수 있도록 했다.
TOP 2. 비시즈 천공의 성 라퓨타
▲ 분명히 말해두지만 이 영상은 '비시즈'로 제작한 영상이다 (영상출처: Héctor Salva 유튜브 채널)
2015년에 앞서 해보기로 출시된 '비시즈'는 일단은 '공성 시뮬레이터'다. 그러니까 스테이지에 있는 성을 부수는 공성 병기를 만드는 게임이란 뜻이다. 근데 이 뜻이 유저들에게 잘못 전달된건지, 아니면 유저들의 실력을 제작자가 얕본 것인지 몰라도 이 게임에서 순수하게 공성 병기를 만드는 사람은 이제 거의 없다. 최첨단 전투기, 트랜스포머 로봇이나 최소 융단 폭격기 정도는 만들어 줘야 '비시즈'좀 해봤구나 할 수 있는 수준이다.
그중에서도 압권이 있다면 역시 미야자키 하야오의 명작 애니메이션 '천공의 성 라퓨타'를 재현한 영상 되시겠다. 게임 속 부품들을 총동원해서 만들어낸 해당 영상은 도저히 '비시즈'라는 느낌이 들지 않을 만큼 깔끔한 영상미와 카메라 구도, 놀라운 묘사를 보여준다. 하늘을 날아다니며 비공정을 격파하는 로봇도 놀라운데, 하늘에 자연스럽게 떠 있는 '라퓨타'까지 등장하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TOP 1. 스타크래프트 2 트리스트럼의 저주
▲ '트리스트럼의 저주' 공식 오프닝 영상 (영상출처: egodbout2 유튜브 채널)
원래 '스타크래프트' 시절의 유즈맵은 게임 내에 있는 소스를 적당히 활용해서 만드는 정도였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게임의 한계를 넘어선 유즈맵들이 나오기 시작하더니 '워크래프트 3'에서는 아예 새로 폴리곤을 만들어 또다른 게임을 창조하는데 이르렀다. 유저들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스타크래프트 2'까지 마수를 뻗쳤다. 특히, '스타크래프트 2'에서는 모델링 수정을 지원해 3D RPG나 3인칭 슈팅게임을 만드는 것이 가능해질 지경이었다.
캐나다의 한 인디 게임 개발자는 이를 이용해 '디아블로 2'의 리메이크 버전을 '스타크래프트 2' 유즈맵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이게 그냥 재미로 만든 수준이 아니라 몇 년에 걸쳐 캐릭터와 NPC는 물론 맵과 인터페이스, 기술 이펙트까지 전부 완벽하게 구현한 것이 특징이다. 심지어는 당시 최고로 인기 있던 사냥터 카우방까지 구현됐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올해 중으로 완성된다고 하던데, 기약 없는 블리자드의 '디아블로 2' 리마스터보다 이게 더 기대되는 건 마냥 기분 탓은 아닐 것이다.
▲ 전설의 카우방 까지 구현돼 있는 '스타크래프트 2' 유즈맵 (사진출처: egodbout2 유튜브 영상 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