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기행] ‘코난’ 세계관에 크툴루와 마블 유니버스가 있다
2019.01.04 14:28 게임메카 이새벽
▲ 야만의 대명사이나 유독 게임업계에서는 입지가 약한 ‘코난’ (사진출처: 다크 홀스 공식 홈페이지)
게임업계에 꾸준히 얼굴을 비추지만, 유독 성공한 작품은 드문 세계관이 있다. 최근 공개된 ‘코난 언컨커드’의 ‘코난’ 세계관이다. 고대 황야에서 피가 낭자한 전투를 벌이고 헐벗은 여인을 취하는 야만인들의 모험을 다룬 ‘코난’은 특유의 잔인함과 선정성으로 유명하다.
'코난'은 높은 원작 인기를 바탕으로 여러 번 게임으로 재탄생하기도 했다. 그러나 1984년 처음으로 게임화가 이루어진 이래 ‘코난’ 게임은 거의 성공한 적이 없다. 그 탓에 게이머들도 세계관에서 독특한 첫 인상을 받았을지 몰라도, 직접 ‘코난’ 게임을 해보거나 원작을 찾아본 이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게이머들에게 ‘코난’은 한 번쯤 들어는 봤어도 잘 알거나 관심 있는 세계관은 아니다.
그런데 사실 ‘코난’ 세계관에는 국내 게이머들에게는 다소 의외일지 모르는 특징이 하나 더 있다. 바로 ‘크툴루 신화’나 ‘마블 유니버스’와 연계된 적 있는 본격 크로스오버 세계관이라는 것이다. 이번 주에는 잔인함과 선정성에 더해 폭넓은 크로스오버 역사가 있는 ‘코난’ 세계관과, 소설부터 게임화까지 이어지는 IP 확장의 역사를 간단히 짚어본다.
‘근육 없으면 무시 당한다’, 원작자의 불우한 과거가 녹아 만들어진 근육 초인 ‘코난’
▲ ‘코난’의 크고 아름다운 근육 사랑은 원작자 과거 경험으로부터 시작됐다 (사진출처: 펀컴 공식 홈페이지)
‘코난 사가’는 오늘날 ‘바바리안’ 하면 떠오르는 무지막지한 근육질 야만인 전사 이미지의 시초로 꼽히는 작품이다. ‘던전 앤 드래곤’이나 ‘디아블로 2’ 등에 나오는 초인 전사 ‘바바리안’의 원조를 되짚어 보면 ‘코난’이 나올 정도다. 그렇다면 ‘코난’의 ‘바바리안’ 이미지는 과연 어떻게 탄생한 것일까? 사실 여기에는 원작자 하워드의 개인적인 성향이 매우 깊게 반영됐다. 작가 본인이 ‘육체적 힘이 없으면 세상에서 무시 당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고, 이 생각이 초인 ‘코난’을 만들었다.
1906년 미국 텍사스에서 태어난 하워드는 의사인 아버지와 병약한 어머니 사이에서 자랐다. 그는 다소 불운한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이는 부모 사이 불화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아버지가 무리한 투자로 큰 손해를 입고 가계가 힘들어지자 잦은 부부싸움을 벌이게 된 것이다. 특히 어머니는 하워드 양육에 아버지가 관여하지 못하게 방해했고, 자기가 좋아한 소설을 탐독시키는 방식으로 아들을 훈육했다.
그런데 하워드가 학업을 시작하며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학교에 적응 못하고 따돌림을 당한 것이다. 마크 핀이 쓴 전기 ‘블러드 앤 썬더: 로버트 E. 하워드의 예술과 생애’에 따르면, 하워드는 학창 시절 타인과 관계를 맺는 데 다소 곤란을 겪었다. 어머니의 방어적인 양육 아래서 자란 그는 학교의 교육 방식이 자신을 억압한다고 느껴 교사들 권위에 자주 반항했고, 또래와 잘 어울리지도 못해 자주 맞거나 괴롭힘을 당했다.
▲ 어린 시절 하워드는 근육과 권투 기술이 있어야 괴롭힘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었다 (사진출처: 로버트 E. 하워드 팬사이트 ‘Sword of REH’)
마크 핀을 비롯한 전기작가들은 이처럼 불우한 과거가 하워드에게 ‘세상은 악의와 위험으로 가득 찬 곳’이라는 의식을 갖게 만들었다고 추측한다. 이러한 추측이 사실이든 아니든 실제로도 그는 누구도 자신을 괴롭히지 못하게 하기 위해 운동에 힘썼고, 성인이 됐을 때는 강건한 체구를 지닌 아마추어 복서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하워드는 끝내 약한 심성은 버리지 못해 우울장애와 극심한 스트레스 속에 일생을 보내야 했다.
이러한 하워드의 육체적 힘에 대한 선망과 고독은 그의 작품세계에도 그대로 반영됐다. 1920년대 인기를 끌던 펄프 모험 소설을 좋아하던 그는 자신도 다양한 작품활동을 하며 기고에 나섰다. 1925년부터 돈을 받고 글을 쓰기 시작한 하워드는 이듬해 전업 작가로 데뷔했는데, 그의 주요 작품 ‘솔로몬 케인’이나 ‘쿨’ 등은 모두 뛰어난 힘과 의지를 지닌 고독한 전사가 황야를 여행하며 사악한 마법사나 괴물을 사냥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시기 하워드가 쓴 판타지 소설은 오늘날 대중적인 미국식 ‘검과 마법’ 판타지 장르의 시초가 됐다. 그리고 이 장르가 완숙된 작품이 바로 ‘코난’이었다. 이 소설은 먼 역사 속으로 사라진 전설의 시대에 야만인 전사 ‘코난’이 세상을 여행하며 여러 기괴한 일을 겪는 판타지 모험담이었다. 물론 여기서도 주인공 ‘코난’은 근본적으로는 근육에서 오는 순수한 육체의 힘과 강인한 의지로 싸우는 하워드 식의 고독한 전사였다.
▲ ‘코난’의 첫 이야기 ‘피닉스 온 더 소드’ 표지 (사진출처: RMWC Reviews)
소설 속에서 주인공 ‘코난’은 오직 힘만이 정의인 야만의 세계에서 피와 성적인 유혹으로 가득한 모험에 나선다. 이처럼 자극적인 구성 덕분에 ‘코난’은 큰 인기를 끌었다. 하워드 자작물을 관리한 에이전트 글렌 로드가 쓴 ‘더 라스트 켈트: 로버트 어빈 하워드 전기 및 서지’에 따르면 하워드 수입은 ‘코난’ 이후 꾸준히 증가해 대공황 여파가 지속되던 1930년대에도 큰 부족함 없이 살 수 있었다고 한다.
다만, 하워드의 ‘코난’은 그리 오래 연재되지 못했다. 인생에 단 한 번 해본 연애가 실패하고 어머니 병세가 악화되자, 그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한 하워드가 극단적인 선택으로 생을 마감했기 때문이었다. 그때까지 출판된 ‘코난’은 모두 17편에 불과했고 그나마도 대부분은 단편소설이었다. ‘코난’이 처음 발간된 것이 1932년 일이었으니, 4년만에 연재 중단의 위기에 처한 것이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코난’은 원작자의 죽음에도 계속됐다. 많은 작가들이 하워드의 뒤를 이어 계속 소설을 써 나간 것이다.
사실 그렇게 되기까지의 과정은 조금 안타까웠다. 하워드 사후 어머니는 하루 만에 세상을 떠났고, 상속 대상으로 지목된 그의 친구는 유언 집행을 거부했다. 결국 소설들에 대한 권리와 미완 원고는 유일한 상속자인 아버지에게로 갔다. 돈을 제외한 아들의 유산에 큰 관심이 없던 아버지는 미완 소설과 일부 소설에 대한 권리를 매각했다. 남은 소설 권리들은 몇 해 후 아버지까지 심장마비로 사망한 후 그 동료에게 넘어가는 식으로 계속 이동했다. 그렇게 권리가 판매되고 이동하는 동안 ‘코난’은 자연 여러 출판사와 작가의 손을 거치게 됐다.
크로스오버부터 영화화까지, 다양하게 각색된 ‘코난’ 세계관
▲ 판권 이동 과정에서 ‘원더 우먼’과도 크로스오버된 ‘코난’ (사진출처: DC 코믹스 공식 홈페이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코난’은 원작자 하워드를 시작으로 여러 작가의 손을 거친 시리즈다. 덕분에 ‘코난’의 세계관 ‘하이보리아’는 다양한 변용을 거치며 확장됐다. 그 중에서도 특기할 부분은 폭넓은 크로스오버가 이루어진 부분인데, 러브크래프트의 ‘크툴루 신화’를 시작으로 ‘마블 코믹스’ 세계관에 이르기까지 무척 다양한 작품과 설정이 공유되고 있는 상황이다. 의외로 크로스오버와 미디어 프랜차이즈에 능한 세계관인 셈이다.
‘코난’의 무대가 되는 세계 ‘하이보리아’는 엄밀히 말해 지구다. 이 세계관에서 지구는 고생대부터 외계에서 온 신들과 종족들에 의해 지배 당했으나, 빙하기를 거치며 기원전 10만년 전 신생대 홍적세 말기에는 대부분 심해나 극지방에 잠들었다. 이 틈을 타서 당시만 해도 바다에 가라앉지 않았던 아틀란티스나 투리아 같은 전설 속 대륙에 인간의 첫 거대 문명들이 일어섰고, 이후 여러 사건을 통해 기원전 1만년까지 흥망성쇠를 거치며 오늘날의 지구가 됐다는 이야기다.
‘하이보리아’ 세계관은 아틀란티스 대륙 출산 야만족 용사 ‘쿨’의 이야기를 다룬 하워드의 소설 ‘그림자의 왕국’에서 처음 구상됐다. 이후 모종의 사건으로 아틀란티스와 투리아 대륙은 재앙으로 바다에 가라앉게 되는데, 생존자들은 간신히 선박을 타고 살아남지만 얼마 안 남은 자원을 놓고 자신들 싸운 끝에 문명이 야만 상태로 퇴보했다. ‘하이보리아’는 이 생존자들이 유럽과 아시아에 막 정착하고, 아직까지 세상 곳곳에 남아있던 옛 신들과 괴물들에 맞서던 시절의 이야기다.
▲ 게임 ‘코난 엑자일’에도 ‘크툴루 신화’의 유물과 괴물이 직접적으로 등장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사진출처: 펀콤 공식 홈페이지)
여기서 특기할 점 하나는, 빙하기 이전 지구를 지배하던 신과 종족들이 하워드 P. 러브크래프트의 ‘크툴루 신화’에 등장하는 존재라는 점이다. 러브크래프트와 펜팔 친구였던 하워드는 소설 설정을 공유해왔다. 그런데 마침 러브크래프트 소설도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지구의 괴기스러운 과거를 다루었고, 두 작가는 자신들이 만든 신과 고대 종족 설정이 서로의 작품에 반영되게 했다. 일종의 느슨한 공동 세계관이었던 셈이다.
‘하이보리아’와 ‘크툴루 신화’ 사이의 연결고리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가 바로 바로 ‘발루시아의 뱀 인간(Serpent People of Valusia)’이라는 종족이다. 하워드가 쓴 ‘쿨’과 ‘코난’에는 먼 옛날 심해로 가라앉은 투리아 대륙에 ‘발루시아’라는 땅이 있고, 이곳은 이족보행을 하는 파충류인 ‘뱀 인간’이 지배했다는 이야기가 언급된다. ‘쿨’은 실제로 ‘뱀 인간’ 잔당을 찾아 싸우기도 하고, 훗날 ‘코난’도 이 종족과 몇 번 조우하게 된다.
이 ‘발루시아의 뱀 인간’은 러브크래프트의 소설 ‘광기의 산맥에서’도 언급된다. 인류 역사가 시작되기 전 지구는 지금과 많이 다른 모습이었고, 당시에 ‘발루시아’라는 땅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어서 러브크래프트의 소설 ‘어둠 속을 헤매는 것’에서도 ‘발루시아의 뱀 인간(Serpent-men of Valusia)’은 인류 이전 지구를 지배했던 종족으로 한 번 더 등장한다. 공식적으로 같은 세계관을 가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러한 방식으로 두 작가는 세계관 설정을 직접적으로 공유했다.
▲ 게임 ‘코난 엑자일’에 등장한 ‘뱀 인간’ 변종 (사진출처: 펀콤 공식 홈페이지)
원시 지구를 무대로 했다는 점, 그리고 여러 작가의 손을 거친 점 탓에 ‘코난’은 다른 작품과도 여러 번 세계관을 공유하게 됐다. 또 하나의 특기할 크로스오버는 바로 유명 만화 세계관 ‘마블 유니버스’와의 합작이다. ‘코난’은 1952년 처음 만화로 발매된 이래 만화 회사들 사이에서도 큰 주목을 받았는데, 1970년에는 마블이 ‘코난’ 만화화 라이선스를 획득해 오리지널 스토리 ‘코난 더 바바리안’을 시작으로 만화 ‘코난’ 시리즈를 출판하기에 이르렀다.
만화 ‘코난’ 시리즈가 인기를 끌자 1979년 마블은 자못 독특한 시도를 했다. 당시 마블은 ‘만약에(What if)’ 시리즈라는, 원작 설정을 벗어난 기발한 내용의 만화를 내고 있었다. 예를 들어 ‘캡틴 아메리카가 제2차 세계대전 중 실종되지 않았다면?’이나 ‘닥터 스트레인지가 도르마무의 제자가 됐다면?’ 같은 가정을 바탕으로 원작과 달라진 세계관을 보여주는 것이 시리즈 묘미였다. 마블의 결정은 ‘코난’도 이 대열에 합류시켜 ‘마블 유니버스’에 엮어 보자는 시도였다.
시작은 1979년에 나온 ‘만약 코난 더 바바리안이 오늘날 지구를 걷는다면’이었다. 이 작품에서는 ‘코난’이 20세기 지구로 와 벌어지는 황당한 사건이 벌어지는데, 이 만화가 생각보다 큰 인기를 끌자 마블은 본격적인 크로스오버에 나섰다. 뒤이어 ‘만약 더 마이티 토르가 코난 더 바바리안과 싸운다면’과 ‘만약 울버린이 코난 더 바바리안’과 싸운다면’ 등이 나왔고, 여기서 ‘코난’은 ‘토르’와 ‘울버린’을 비롯한 ‘마블 유니버스’ 캐릭터들과 전투를 벌이게 됐다.
▲ 마블에 IP 권리가 있던 시절에는 ‘토르’와 싸움이 붙여지기도 했다 (사진출처: Den of Geek)
이렇듯 다양한 크로스오버와 만화화를 거치며 인지도가 상승한 ‘코난’은 급기야 1982년 영화화 되기에 이르렀다. 하워드 원작소설이 아닌 만화 ‘코난 더 바바리안’을 원작 삼아서 제작된 이 영화는 높은 잔인성과 선정성으로 많은 논란을 불렀지만, 인기도 어마어마했다. 뉴욕 타임즈 보도 기준 전세계에서 1억 3천만 달러에 달하는 수익을 낼 정도였으니 말이다. 아놀드 슈왈츠제네거가 명배우 반열에 들어간 것도 ‘코난 더 바바리안’에서 주인공 ‘코난’ 배역을 맡고 나서부터였다.
영화 ‘코난 더 바바리안’의 폭발적인 인기는 1984년 후속작인 ‘코난 더 디스트로이어’로 이어졌다. 두 번째 영화까지 성공하자 ‘코난’은 확실히 가치 있는 IP로 인정 받았다. 그에 따라 보다 다양한 매체가 ‘코난’ 세계관을 활용하기 시작했는데, 1984년 시작된 이 새로운 ‘코난’ 붐의 선두에 있던 것이 바로 당시 빠르게 성장하고 있던 게임산업이었다. 드디어 만화와 영화의 뒤를 이어서 ‘코난’ 게임이 등장한 것이다.
영화 대박으로 시작된 ‘코난’ 게임화, IP에만 기댔다
‘코난’ 게임화는 아놀드 슈왈츠제네거의 영화에 큰 빚을 지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 영화의 성공에 힘입어 게임화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초기 ‘코난’ 게임들은 대부분 표지 이미지로 영화 속 ‘코난’으로 분한 아놀드 슈왈츠제네거의 이미지를 사용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게임업계는 자신만의 ‘코난’ 이미지를 자체적으로 구축하기 시작했고, 최근에는 노르웨이 게임 개발사 펀컴 중심으로 세계관을 확장해 나가고 있다.
▲ 아놀드 슈왈츠제네거 사진이 그대로 쓰인 ‘던전즈 앤 드래곤즈’ 시나리오 ‘코난 언체인드!’ (사진출처: Wayne's Books)
‘코난’ 게임화 역사는 TRPG ‘던전 앤 드래곤’부터 시작한다. 1984년 ‘던전 앤 드래곤’을 만든 회사 TSR은 1984년 ‘코난’ 게임화 라이선스를 얻고 ‘어드밴스드 던전 앤 드래곤’ 규칙을 응용한 시나리오 ‘코난 언체인드!’를 만들었는데, 디지털 게임은 아니어도 최초로 ‘코난’ 세계관을 게임의 영역으로 끌고 왔다는 점에서는 특기할 만하다. 이 시나리오에서 플레이어는 ‘코난’과 그 동료들의 역할을 맡아 ‘하이보리아’를 누비며 납치된 공주를 구해야 했다.
1984년에 발매된 ‘코난’ 게임은 ‘코난 언체인드!’만이 아니었으니, 첫 ‘코난’ 디지털 게임 ‘코난: 홀 오브 볼타’도 같은 해 출시됐다. 1984년은 영화 ‘코난 더 디스트로이어’가 개봉해 인기를 끌었던 해로, 반사이익을 노린 게임들도 비슷한 시기에 잇따라 출시됐던 것이다. 그렇기에 이 시기 발매된 게임은 영화 이미지를 차용했을 뿐 실제 콘텐츠는 다소 식상한 감이 있었다. 데이터소프트의 ‘코난: 홀 오브 볼타’도 게임 자체는 당시 만연했던 보통 플랫폼 게임과 다르지 않았다.
▲ ‘코난: 홀 오브 볼타’는 IP만 따왔을 뿐 ‘코난’ 세계관 특징은 담지 못했다 (사진출처: Mobygames)
1991년에도 두 개의 ‘코난’ 게임이 동시에 발매됐다. 마인드스케이프의 ‘코난: 더 미스터리즈 오브 타임’과 버진 게임즈의 ‘코난: 더 키메리안’이었다. 그러나 이 게임들도 반응이 그리 좋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NES 플랫폼 게임 ‘코난: 미스터리즈 오브 타임’은 당시 기준으로도 열악한 그래픽과 진부한 구성으로 큰 비판을 받았다. 도스 및 아미가 사양으로 발매된 RPG ‘코난: 더 키메리안’은 그래픽과 게임성 측면에서 더 나은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이 또한 큰 반향을 얻지는 못했다.
▲ ‘코난: 더 키메리안’ 스크린샷 (사진출처: Retro Gamer)
IP에 기댄 ‘코난’ 게임들이 잇따라 소리 소문 없이 묻히자 한동안 ‘코난’ 게임화도 침체를 겪었다. 이후로도 2004년 TDK 메디액티브의 Xbox 어드벤처 게임 ‘코난’과, 2007년 THQ의 Xbox360/PS3 어드벤처 게임 ‘코난’ 등 몇몇 작품이 발매됐지만, 어느 것도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TDK 메디액티브의 ‘코난’은 거의 언급조차 되지 않았고, THQ의 ‘코난’은 ‘갓 오브 워’ 복제나 다름 없다며 메타크리틱 기준 69점이라는 아쉬운 점수를 기록했다.
이처럼 과거 대부분의 ‘코난’ 게임은 콘텐츠에서 ‘하이보리아’ 세계관 분위기를 살리는 데는 실패하고 IP에만 기대는 우를 범했다. ‘코난’이 만화와 영화로 제작되며 원작을 뛰어넘는 세계관으로 확장된 것과는 대비되는 일이었다. 특히 THQ의 ‘코난’은 주인공 성우로 유명 영화배우 론 펄먼 기용 등 부차적인 가십으로만 화제가 됐다. 다른 매체와 달리 게임업계에서 ‘코난’은 단 한 번도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 THQ에서 출시한 ‘코난’ (사진출처: Gamepressure)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있다. 앞에서도 잠시 이야기한 것처럼 ‘코난’ IP는 하워드 사후 여러 사람 손을 오고 갔는데, 2002년에는 스웨덴의 패러독스 엔터테인먼트라는 회사에 매입된 것이다. 이 회사는 당시 ‘크루세이더 킹즈’ 시리즈로 유명한 패러독스 인터랙티브의 모회사였고 ‘코난’ 영화화 및 게임화를 다시 한 번 열정적으로 추진 중이었다. 이 회사는 TDK 메디액티브와 THQ의 실패 후 마지막 승부수를 띄웠는데, 그 작품이 바로 펀컴이 만든 MMORPG ‘에이지 오브 코난’이었다.
2008년 출시된 ‘에이지 오브 코난’은 ‘하이보리아’ 분위기를 콘텐츠에 녹인 첫 디지털 게임이라고 할 수 있었다. 본격 성인용 게임을 표방한 ‘에이지 오브 코난’은 잔인함과 선정성이라는 ‘코난’의 두 특징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전투에서 적의 목과 사지 등을 절단하는 페이탈리티가 발생하는가 하면, 레벨 보정 없는 무차별 PK를 허용, 말 그대로 무법세계에서의 삶을 연출했다. 또한 대놓고 누드 및 매춘 요소가 등장해 국내 서비스 당시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에이지 오브 코난’은 2010년 국내에서도 네오위즈를 통해 서비스됐지만, 극악한 약육강식 논리와 높은 난이도에 질린 게이머들이 이탈해 2년만에 서비스가 종료되는 비운을 맞았다. 다만 해외에서 ‘에이지 오브 코난’은 상당한 인기를 누리며 나름 장수하는 데 성공했다. 2019년 현재도 ‘에이지 오브 코난’은 부분유료화로 전환돼 서비스되고 있으며, 메타크리틱 기준 80점이라는 꽤 준수한 성적을 유지 중이다. ‘코난 게임’ 중 최초의 성공이었다.
▲ 잔인함과 선정성을 테마로 한 ‘에이지 오브 코난’ 공식 월페이퍼 (사진출처: 펀콤 공식 홈페이지)
지금까지 ‘코난’ 게임 중 가장 성공적인 성공을 거둔 펀컴에게, 패러독스 엔터테인먼트는 두 번째 기회를 줬다. 그렇게 만들어진 펀콤의 두 번째 ‘코난’ 게임이 2017년 출시된 멀티플레이 1인칭 생존게임 ‘코난 엑자일’이다. 야만 세계 ‘하이보리아’에서 살아남는 과정을 그린 이 게임은 ‘에이지 오브 코난’을 뛰어넘는 잔인함과 선정성으로 발매 초기부터 화제가 됐다. 피가 낭자하고 사지가 절단되는 거친 전투는 물론, 남성과 여성 모두 성기가 여과 없이 노출되는 연출로 충격을 주었다. 물론 생존게임답게 대신 일해줄 노예를 잡거나 허기를 달래기 위해 인육도 먹어야 하는 등 괴기한 요소도 많다.
▲ ‘코난 엑자일’ 스크린샷 (사진출처: ‘코난 엑자일’ 위키)
34년 만에 펀컴 품에 정착한 ‘코난’ 게임, 시리즈는 계속된다
‘코난 엑자일’은 발매 초기 많은 버그, 부족한 세부 콘텐츠, 부조리한 밸런스 등으로 비판을 받았으나, 동시에 사실적으로 묘사된 ‘하이보리아’를 자유롭게 모험할 수 있는 작품이라는 찬사도 동시에 받았다. 여기에 최근에는 여러 번에 걸친 무료 콘텐츠 업데이트를 통해 스팀 평가도 ‘대체로 긍정적’까지 상승한 상태다. 이에 자신감을 얻은 펀컴은 최근 여러 게임쇼를 통해 ‘코난 엑자일’을 계속 확장할 계획임을 전했다.
게다가 최근에는 또다른 펀컴의 ‘코난’ 게임 개발 소식도 공개됐다. ‘코난’ 최초 전략게임 ‘코난 언컨커드’다. 공개된 정보에 따르면 2019년 2분기 발매될 예정인 이 작품은 펀컴이 유통만 맡고 개발은 ‘듄 2’와 ‘커맨드 앤 컨커’ 등을 만든 웨스트우드 출신 RTS 전문 개발자가 모여 설립한 페트로글리프 게임즈다. 페트로글리프 게임즈는 ‘코난 언컨커드’와 함께 ‘커맨드 앤 컨커: 리마스터즈’도 동시 제작 중이다.
▲ ‘코난’ IP 최초로 RTS 장르에 도전한 ‘코난 언컨커드’ (사진출처: 스팀)
이렇듯 ‘코난’ 세계관은 처음 게임화가 이루어진 1984년 이래 무려 34년만에 펀컴이라는 개발업체에 정착했다. 유구한 역사에도 유독 게임업계에서는 제자리를 못 찾던 ‘코난’. 이제라도 펀컴 품에서 잠재성을 꽃피워 보다 완성도 높은 작품을 낼 수 있길 바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