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지스터, 공짜라고 목록만 채우기에는 아까운 게임이다
2019.04.23 18:25 게임메카 서형걸 기자
수 개월 동안 진열된 상품이 없어 한적했던 에픽게임즈 스토어가 활기를 띄고 있다. 지난 12일, 국내 정식 출시와 함께 17개 론칭 타이틀로 국내 팬들을 찾은 것이다. 게다가 ‘연쇄할인마’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스팀에 맞서기 위해 2주마다 한번씩 무료게임을 선정해 배포한다.
현재 에픽게임즈 스토어는 지난 2014년 출시됐던 슈퍼자이언트 게임즈가 만든 인디 액션RPG ‘트랜지스터’를 오는 5월 2일까지 무료로 배포하고 있다. 사이버펑크 세계관을 기반으로 ‘클라우드 뱅크’라는 도시에서 벌어지는 주인공 ‘레드’와 적대세력 ‘카메라타’의 대립을 다루고 있는 ‘트랜지스터’는 지난 5년 동안 주요 해외매체와 유저들로부터 충분히 검증된 게임이다.
공짜라면 무엇이든 마다하지 않기에 ‘트랜지스터’를 직접 플레이해봤다. 유명 예술작품을 연상케 하는 아트워크와 감미로운 선율의 배경음악, 그리고 독창적인 전투시스템 등 기대했던 것 이상의 즐거움을 주는 게임이었다. 최근에 출시된 게임이라고 하더라도 손색이 없었다.
이것은 게임인가 예술작품인가?
‘트랜지스터’는 사이버펑크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게임으로, 주인공 ‘레드’가 들고 다니는 무기이기도 하다. 게임을 진행하면 배경과 인물들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가 계속해서 쏟아지는데, 이 파편적인 조각들을 모아 스토리를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다만 플레이어에게 실시간으로 주어지는 정보량이 너무 많은데다가, 게임 시작 시 세계관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없다는 점은 불친절하다고 느껴졌다.
이처럼 스토리에 대한 매력은 게임이 어느 정도 진행된 시점부터 느낄 수 있다. 이 빈틈을 채워주는 요소가 그래픽과 사운드다. 이 두 가지가 플레이어의 시각과 청각을 강하게 자극해 게임에 몰입하게 만든다.
그래픽은 게임 분위기에 딱 들어맞게 만들어졌다. 주인공 ‘레드’ 주위를 둘러싼 배경은 아름답고 귀여운 색감을 갖춘 동화 같은 느낌임과 동시에 묘하게 몽환적이고 음울한 분위기를 풍긴다. 스토리 컷신과 다양한 등장인물들은 세련된 아트워크로 묘사된다. 놀라운 것은 광원만 3D로 처리했을 뿐 그 외 모든 것이 수작업으로 만든 2D라는 점이다. 이런 정성 덕분인지 ‘트랜지스터’만의 개성이 잘 드러난 인상적인 그래픽이었다.
개발사 슈퍼자이언트 게임즈는 전작 ‘배스천’에서도 수준 높은 배경음악으로 찬사를 받았다. ‘배스천’ 배경음악 작곡을 맡았던 대런 코브(Darren Korb)가 ‘트랜지스터’에도 참여했다. 배경음악이 게임 분위기에 정말 잘 어울릴 뿐만 아니라 노래만 감상하더라도 허전함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잘 만들었다. 또한 주인공 ‘레드’가 목소리를 잃은 유명가수라는 설정에 착안해 콧노래로 배경음악을 흥얼거릴 수 있는데, 굉장히 매력적인 콘텐츠였다.
전투는 실시간으로 진행하거나, ‘플래닝 모드’를 통해 턴제처럼 진행할 수 있다. 주인공 ‘레드’가 기본 회피기가 없고, 이동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대단한 피지컬 소유자가 아니라면 ‘플래닝 모드’로 전투를 진행하게 된다. 이 ‘플래닝 모드’가 압권인데, 이를 발동시키면 게임이 모든 움직임이 정지되고, 사용할 스킬과 이동경로를 지정할 수 있다. 이후 ‘플래닝 모드’를 해제시키면 ‘레드’가 빠른 속도로 움직이며 행동을 취한다. 지정할 수 있는 행동량이 정해져 있으며, 스킬 연계를 통해 더 큰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에 전략성을 부각시킨다.
참고로 ‘트랜지스터’에서 스킬은 ‘함수(function)’란 이름으로 표현된다. 이는 스토리를 진행하거나 레벨업을 통해 얻을 수 있으며, 획득한 ‘함수’는 무기 트랜지스터에 장착해 사용할 수 있다. 이 ‘함수’는 등장인물들의 인격이기도 하기에 ‘함수’마다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 스토리를 전투뿐 아니라 스토리를 즐길 수 있도록 한다.
취향이 아니라면 꺼려질 수는 있다
이처럼 ‘트랜지스터’는 상당한 매력을 지닌 게임이다. 다만, 장점으로 다뤘던 스토리, 전투시스템 등과 같은 부분들이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우선 스토리는 앞서 말한 것과 같이 도입 부분이 다소 불친절하다는 점에서 매력이 떨어질 수 있다. 또한 여러 정보들이 내레이션과 함께 실시간으로 주어지는데, 내레이션 성우 음성이 매우 듣기 좋은 중저음이긴 하지만 말이 너무 많아 집중을 방해한다. 때문에 게임에 적응하지 못한 1회차 플레이에서 전투와 스토리를 함께 즐기기 매우 힘들다. 그나마 유저 한국어 지원 패치가 2가지나 있어 외국어 독해까지 하는 고생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은 다행이다.
실시간 전투가 이뤄지는 호쾌한 액션RPG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트랜지스터’가 취향에 맞지 않을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 주인공 ‘레드’의 이동속도가 매우 느리고 기본 회피기가 없기 때문에, 실시간 전투는 거의 불가능하다. 만약 ‘플래닝 모드’를 사용하지 않은 채 엔딩까지 보고자 한다면, ‘소울’ 시리즈나 ‘세키로’ 정도는 마스터 한 뒤에 ‘트랜지스터’를 플레이 해야 한다.
‘트랜지스터’는 취향을 타는 요소가 분명한 작품이다. 그러나 장인정신이 느껴지는 그래픽과 배경음악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또한 독창적인 전투시스템으로 전략적인 요소를 부각시켜 다른 RPG와 차별화되는 스타일을 선보이고 있다. 출시 5년이 지났음에도 신작과 같은 신선함이 느껴져 정가 2만원을 지불하더라도 아깝지 않을 게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