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탈 워 삼국, 코에이 삼국지가 못 한 것을 해냈다
2019.05.17 18:28 게임메카 서형걸 기자
지난 30년 동안 ‘삼국지 게임=코에이’는 당연한 공식이었다. 코에이는 치열한 전투와 교묘한 책략의 난무 속에서 개성 뚜렷한 군웅이 할거하는 소설 ‘삼국지연의’의 매력을 시뮬레이션 게임으로 잘 녹여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코에이가 만든 삼국지 게임의 위상은 흔들리고 있다. 시리즈가 거듭되며 매너리즘에 빠져 이전과 같은 재미와 신선함을 제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와중, 크리에이티브 어셈블리(이하 CA)라는 영국 게임 개발사가 삼국지를 소재로 한 게임을 만든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바로 '토탈 워: 삼국'이다. 삼국지 팬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수 천명 규모의 군대가 맞붙는 대규모 실시간 전투로 인기를 끈 ‘토탈 워’ 시리즈 개발사라는 점에서 나오는 기대와, 서양 개발사가 만드는 삼국지에 대한 우려가 혼재했다.
‘삼국지’ 시리즈와 ‘토탈 워’ 모두 밤을 새워가며 즐겼던 경험이 있는 기자는 사실 기대보다 우려가 컸다. 작년부터 발매 연기와 표절, 고증오류 등 좋지 않은 소식이 있었기에 예약구매를 망설이고 있었다. 그 와중 제작 중인 게임을 미리 해 볼 수 있는 프리뷰 기회가 찾아왔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코에이 ‘삼국지’ 천하를 뒤흔들 만한 빼어난 삼국지 게임이었다.
삼국지의 진정한 스케일을 만나다
중국 관련 이야기가 다 그렇지만, 모든 면에서 스케일이 어마어마하게 크다. 우리나라나 서양에서 몇천 명 몇만 명 단위 전쟁이 한창일 때, 중국에선 그 수십 배 대군이 움직인다. 삼국지 시대인 2~3세기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전 세계 인구 3명 중 1명이 중국 한나라 사람이었다는 조사결과만 봐도 알 수 있듯, 정규군은 기본이 만 단위고 의용군도 몇천 명 규모로 모집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여기에 소설 ‘삼국지연의’는 문학적 과장이 들어가 실제보다 스케일이 더 커졌다. 수십 만 명 단위 군대는 옆집 개 이름만큼이나 흔히 언급된다. 적벽대전에서는 백만 대군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그러나 기존 코에이 ‘삼국지’는 이와 같은 병력 규모를 수치상으로 구현했을 뿐, 시각적으로는 수십 수백 명이 툭탁거리는 것에 그쳤다.
‘토탈 워: 삼국’은 이러한 코에이 ‘삼국지’의 한계를 극복했다. 수 천명 단위로 이뤄진 아군과 적군이 드넓은 전장을 새까맣게 채운 모습은 장관 그 자체다. 대군이 팽팽하게 대치하고 상황에서는 실제 전장을 보는 듯 한 긴장감이 감돌며, 마침내 창칼을 맞대고 치열한 난전을 벌이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적벽에서 전장을 관망하는 제갈량이 된 기분까지 든다.
이러한 대규모 실시간 전투는 ‘토탈 워’ 시리즈의 정체성이기도 하다. 여기서 그쳤다면 그냥 삼국지 스킨을 씌운 '토탈 워' 일 뿐이다. 그러나 '토탈 워: 삼국'은 삼국지 속 장수들에게 특별한 능력을 부여하며 삼국지 게임으로서 정체성을 확실히 했다. 기존 ‘토탈 워’ 시리즈처럼 실제 역사에 가까운 ‘정사 모드’에서는 장수의 역할이 한정적이지만, 소설적 묘사가 반영된 ‘연의 모드’에서는 우리가 익히 아는 삼국지 특유의 명장면을 많이 만나볼 수 있다.
일단 초인적인 힘을 가진 영웅들의 전투가 백미다. 실제로 강동의 호랑이 ‘손견’을 단기로 적 부대에 돌격시켰는데, 초반이었음에도 모든 적이 쓸려나갔다. 그리고 장수끼리 1 대 1로 맞붙는 삼국지의 꽃 일기토도 할 수 있는데, 모션이 기대 이상으로 다채로워 꽤나 괜찮은 구경거리였다.
한국어 음성 역시 영웅에 대한 캐릭터성을 부각시킨다. 유비의 입에서 자유의 투사 ‘짐 레이너’ 목소리가 나오고, 장비에게서는 녹색 예수 ‘스랄’ 목소리가 들리니 등장인물의 개성이 두드러진다. 원작 설정과 인물의 성격을 반영한 장수 간 상성도 존재한다. 상성이 좋은 장수들을 함께 군대로 편성하면 시너지를 얻고, 사이가 나쁜 장수들은 싸운 뒤 주군에게 불만을 털어놓는다. 이처럼 인물 하나하나에 몰입할 수 있는 장치가 있어 삼국지 세계에 절로 빠져든다.
군소 세력에 대한 조명도 인상적이다. 코에이 삼국지 게임에서는 주요 세력과 군소 세력 간 격차가 매우 크다. 군소 세력은 나약한데다가 설정도 평면적이어서 웬만큼 독특한 플레이를 추구하는 고수가 아닌 이상 손이 잘 가지 않는다. 반면 ‘토탈 워: 삼국’은 공주, 장연과 같은 군소 세력 뿐 아니라, 황건적 두령까지도 개성이 뚜렷해 해당 세력 플레이를 유도한다.
서로 자극이 되는 경쟁자가 되길
‘토탈 워: 삼국’은 인물 중심의 삼국지와 대규모 실시간 전투가 강점인 ‘토탈 워’ 시리즈를 잘 엮어낸 수작이다. 그러나 아무래도 삼국지를 다룬 첫 작품이다 보니 아쉬운 점도 종종 눈에 띄었다.
앞서 말했듯 장수 별 특성을 강조하긴 했지만, 막상 고유 일러스트를 갖춘 장수는 조금 적었다.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는 시리즈를 거듭하며 별의별 장수들에게 다 고유 일러스트를 부여했다. '토탈 워: 삼국'에 그 정도를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이름만 들어도 알 유명 장수도 고유 일러스트가 없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손견’ 세력에서는 노숙과 주태가 고유 일러스트가 없다. 한 명은 오나라 총사령관을 지냈고, 다른 한 명은 손권을 내려치는 창칼을 막기 위해 몸을 던진 인물인데 말이다.
영토 확장이 쉽지 않다는 점은 호불호가 갈릴 듯하다. 거점과 거점 사이는 물론, 거점에서 그에 딸린 부속 지역으로 병력을 이동시키는 것도 많은 턴이 소모된다. 인구밀도가 높은 화북 지방은 그나마 사정이 나아 1턴만에 이동할 수 있는 지역이 몇 있지만, 장강 이남은 기본 2, 3턴은 소모해야 거점을 공략할 수 있다. 주인이 없는 버려진 거점 점령에도 꽤 많은 비용이 들기 때문에 빈 땅 공략도 어렵다. 이 과정에서 재미를 느낄 수 없다면 게임에 대한 전체적인 인상이 다소 지루해 질 수 있다.
인공지능의 난이도는 적절하지만, 간혹 이애할 수 없는 행동을 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격과 상황에 맞지 않는 정략결혼을 요구한다거나, 화북지방에서 땅을 넓혀야 할 조조가 장강 이남에서 놀고 있는 등 의아한 장면들이 펼쳐진다. 인공지능의 자유도가 높다고 할 수도 있지만, 삼국지 팬으로서는 살짝 꺼림칙한 부분이다.
삼국지의 이야기는 방대하다. 더불어 ‘토탈 워’는 방대한 스케일로 유명한 게임이다. 많이 닮은 이 둘의 만남은 꽤나 큰 시너지 효과를 보였다. 코에이 삼국지와 직접 비교는 어렵지만, 최근 매너리즘에 빠진 코에이 삼국지로서는 강력한 경쟁자의 등장에 긴장해야 할 필요가 있지 않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