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게임광고] 일본해는 없다
2019.05.21 17:16 게임메카 류종화 기자
한국 게임의 성숙기였던 1990년대를 기억하십니까? 잡지에 나온 광고만 봐도 설렜던 그때 그 시절의 추억. '게임챔프'와 'PC챔프', 'PC 파워진', '넷파워' 등으로 여러분과 함께 했던 게임메카가 당시 게임광고를 재조명하는 [90년대 게임광고] 코너를 연재합니다. 타임머신을 타고 90년대 게임 광고의 세계로, 지금 함께 떠나 보시죠
[잡지보기]
동해-일본해 표기 문제는 예나 지금이나 한일 간 뜨거운 이슈입니다. 1990년대부터 국내에서는 해외에서의 일본해(Japan Sea) 표기를 동해(East Sea)로 바로잡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왔고, 그런 노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19세기부터 일본이 전파해 온 일본해 표기는 여전히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게임도 마찬가지인데요, 실제로 해외 게임들에서 동해 표기를 일본해로 단독 표기했다가 국내 게이머들에게 항의를 받는 경우가 종종 발생합니다. 특히나 국내 정식 출시되는 게임에서 일본해 표기가 발각되면 그 게임의 인상은 최악으로 굳어지기에, 유통사 입장에선 꽤나 예민한 문제입니다.
1996년에도 이 같은 일본해 표기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스펙트럼 홀로바이트에서 개발한 ‘탑 건: 파이어 앳 윌’이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위 광고를 보면 ‘일본해는 없다’ 라는 멘트가 검붉은 색으로 눈에 띄게 적혀 있습니다.
이 작품은 톰 크루즈 주연 영화 ‘탑 건’을 소재로 한 비행 시뮬레이션 게임입니다. 개발사는 ‘팰콘’ 시리즈 등을 제작하며 비행 시뮬레이션의 명가로 떠오른 미국의 스펙트럼 홀로바이트로, 당시 비행시뮬레이션 팬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고 있었죠. 국내 역시 마찬가지로, 이 게임을 즐기기 위해 전용 컨트롤러까지 준비하고 기다릴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당시 제작사는 극동 지역 맵을 다루며,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했습니다. 이 게임이 출시된 1990년대 중반은 우리나라가 동해 표기 운동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시기이기도 했고,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전세계에서 동해/일본해 병기 비율이 0.2%밖에 되지 않을 정도였기에 딱히 제작사 잘못이라고 몰아갈 수는 없습니다. 다만, 이 게임을 국내에 출시해야 하는 쌍용에서는 애가 탔죠. 유저 반발을 우려한 쌍용은 일본해 표기를 동해로 고쳐줄 것을 제작사에 요청했지만, 시간 문제로 아예 해당 표기 자체를 빼버리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일본해 표기를 삭제하고 ‘우리 하늘, 우리 바다, 우리 땅’을 내세운 애국심 마케팅을 실시한 ‘탑 건: 파이어 앳 윌’은 당시 상당히 높은 판매고를 올렸습니다. 1년 후 플레이스테이션으로 ‘에이스 컴뱃 2’가 나오기 전까지는 비행 시뮬레이션 팬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회자된 게임이기도 합니다.
참고로 이 게임은 스펙트럼 홀로바이트 이름을 달고 나온 마지막 작품이기도 합니다. 1993년 스펙트럼 홀로바이트는 시드 마이어가 세운 마이크로프로즈 사를 인수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마이크로프로즈 측 이름값이 더욱 컸기에 회사명을 마이크로프로즈로 바꿨죠. 이후에도 3년 간 스펙트럼 홀로바이트 이름을 달고 다양한 게임이 나왔지만, 1996년 ‘탑 건: 파이어 앳 윌’을 마지막으로 그 명맥이 끊겼습니다.
이후 마이크로프로즈는 해즈브로에 인수당했고 이후 해즈브로가 인포그램즈에 흡수되며 2002년 공중분해됐으나, 2007년 해즈브로 산하였던 아타리에서 부활했습니다. 이후 10여년 간 명목만 유지하다가, 지난 2018년 보헤미아 인터렉티브 설립자인 데이비드 라게티(David Lagettie)가 인수한 이후 비행 시뮬레이션 신작 ‘워버드 2020’ 개발에 들어가는 등 다시금 비행 시뮬레이션 업계에 이름을 알리려 하고 있습니다.
*덤으로 보는 B급 광고
오늘의 덤으로 보는 광고는 ‘듀크 뉴켐 3D’ 입니다. 사실 게임 자체는 B급 감성이 짙은 AAA급 게임으로, 명작이라 칭송받으며 높은 판매고를 올렸기에 여기에 싣는 것이 맞나는 생각도 드네요. 다만, 이 작품 이후 ‘듀크 뉴켐’ 시리즈가 걸어온 가시밭길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눈물이 납니다.
모두들 알다시피, ‘듀크 뉴켐 3D’의 뒤를 이어 개발된 ‘듀크 뉴켐 포에버’는 야심차게 개발이 시작됐으나, 게임 역사상 전례없는 14년이라는 개발 기간과 세 번의 엔진 교체, 두 세대의 콘솔을 뛰어넘어 2011년에야 그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하지만 결과물은 실망스러웠고, 결국 한 시대를 풍미했던 ‘듀크 뉴켐’ 시리즈는 그렇게 가장 좋지 않은 형태로 역사 속에 묻혔습니다. 미래에 어떤 일이 닥칠 지도 모르고 근육을 뽐내며 총을 쏘고 있는 듀크 뉴켐의 모습이 꽤나 처량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