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 2006, 세계최초 모바일 MMORPG '아이모' 아십니까
2019.07.29 20:19 게임메카 이재오 기자
영화 '서칭 포 슈가맨'은 남아공의 한 시절을 풍미했던 가수 '식스토 로드리게즈'를 찾아나서는 여정을 다루고 있다. 로드리게즈는 단 두 장의 앨범만을 낸 채 홀연히 사라진 터라 몇 십 년이 지난 현대에는 많은 사람들이 그가 고인일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멀쩡히 살아서 홀로 조용히 3집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 영화 이후로 한 시대를 풍미했거나 시대를 앞서나갔다가 사라진 가수들을 '슈가맨'이라고 부르는 법칙이 생겼다.
모바일 게임계에도 이런 작품이 있다. 모바일게임이 아직 캐주얼에 머물러 있던 2006년, 피처폰에서 시작한 세계 최초 모바일 MMORPG '아이모: 더 월드 오브 매직(이하: 아이모)'가 그 주인공이다. 세계 최초라는 타이틀처럼 많은 관심을 받으면서 시작했지만 현재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져 역사가 되어버린 이 게임은, 사실 '슈가맨' 마냥 아직까지도 꽤 많은 유저들의 사랑을 받으며 서비스 되고 있다. 게임메카는 '아이모'의 현 개발자인 최원종 PD와 이용진 PD를 만나 '아이모'에 얽힌 13년 간의 이야기를 들어 봤다.
2006년부터 서비스를 시작한 모바일 MMORPG
'아이모'가 서비스를 시작한 시기는 2006년, 스마트폰 등장은 아직 한참 먼 시기였다. 참고로 동시기에 출시된 게임이 바로 '미니게임천국 2'와 '슈퍼 액션 히어로'다. 대충 어느 시대인지 감이 잡힐 것이다. 물론 '영웅서기' 같은 모바일 RPG도 있었지만, 핸드폰에서 온라인으로 많은 유저들과 만나 게임을 즐긴다는 개념은 그야말로 최초였다. 10년 전 '아이모' 개발에 참여한 최원종 PD는 "초기 PD분에 따르면, 당시 제작되고 있던 '이노티아 연대기'를 기초로 해서 MMOPRG를 제작해보기로 결정했다고 하더라"라며 제작 배경을 설명했다.
그렇다고는 해도, 피처폰에서 MMORPG를 만든다는 것 자체가 고난의 연속이었다. 제한된 용량과 출력 환경만으로 PvE는 물론 PvP, 심지어는 RvR 진영전까지 갖추기 위해 게임 용량을 줄이고 줄이고 또 줄여야 했다. 5년 전 피처폰 서비스 끝무렵 '아이모' 개발에 참여했다는 이용진 PD는 "타일 하나에 사용할 수 있는 색이 12개 밖에 없었다"며 "당연히 맵 하나, 캐릭터 하나를 만들더라도 일일히 손으로 도트를 찍어야 했다"고 말했다. 참고로 '아이모'는 피처폰 서비스를 유지해 오던 2014년 까지 이 같은 오래된 작업 방식을 유지했다.
실제로 지금도 '아이모' 게임화면을 보면 레트로풍 그래픽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SD 도트로 구성된 아기자기한 캐릭터는 물론, 그래픽도 예전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심지어 최근 모바일 MMORPG에선 필수가 된 자동사냥도 없다. 그야말로 '옛 것'의 향기가 물씬 느껴진다. 이용진 PD는 "피처폰 시절 감성적인 그래픽과 그 속의 하드코어 PvP를 모두 원하는 유저들의 교집합이 잘 어우러진 게임이라고 생각한다"며 "최근 진행되는 모든 업데이트도 이 같은 익숙함에서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극한의 환경에서 제작되고 서비스된 게임
다시 2000년대로 돌아가 보자. 아무래도 화면도 작고 도트도 큰 피처폰 환경에서 MMORPG를 구현하려다 보니 생기는 문제점이 한 둘이 아니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문제가 바로 피아식별 문제였다. 보통 적과 아군 유저를 구분하기 위해서는 테두리와 HP바 색을 다르게 하거나 보이는 모양을 다르게 하는데, 피처폰 환경에선 구현할 수 있는 색과 그래픽 정밀도에 한계가 있다 보니 이런 방법들을 사용하지 못한 것이다. 최원종 PD는 "교환할 수 있는 데이터도 적고, 그래픽도 압축에 압축을 가하다 보니, 피아식별에 문제가 생겼다"며 "이는 나중에 스마트폰으로 포팅했을 때도 문제가 됐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워낙 오래 전 극한의 환경에서 제작된 게임이다 보니 최근까지도 운영과 개발에 있어 불편함이 없진 않은 편이다. 특히 제작 툴 부분에서 문제가 많았다. 2010년 iOS로 출시된 이후에도 제작툴은 피처폰 시절의 그것을 사용해야만 했다. 이용진 PD는 "제작 툴이 워낙에 불편했던 지라 게임을 오래 가져가기 위해 툴을 조금씩 교체해 갔다"며 "현재는 제작 툴은 물론 그래픽도 유저들 알게 모르게 많이 개선된 상태"라고 말했다.
게임이 오래돼서 도움이 된 부분도 있었다. 오히려 피처폰과 같은 열악한 환경에서 서비스를 진행하다 보니 게임 용량이 적고 압축이 잘 되어 있어 스마트폰 포팅이 매우 쉬웠던 것이다. 실제로 '아이마'는 피처폰 당시 용량이 35mb였는데, 현재도 용량이 45mb 밖에 안 될 정도다. 최원종 PD는 "아이폰이 국내 정식 출시되기 전부터 스마트폰 포팅을 준비했는데, 막상 해 보니 iOS와 구글 안드로이드는 물론 윈도우 CE에도 쉽게 대응할 수 있었다"고 당시 상황을 회상했다.
스마트폰 이식 뿐 아니라 글로벌 서비스에서도 피처폰 시절 경험은 큰 도움이 됐다. '아이모'는 스마트폰 서비스 당시 국내 서버보다 글로벌 서버를 먼저 개설했는데, 피처폰의 2G 전송률에서도 가동되던 게임이 스마트폰과 3G 환경을 맞이하자 글로벌 서버에서도 랙 없이 쾌적한 게임 환경을 곧바로 제공할 수 있었던 것. 최원종 PD는 "극악의 환경에서 단련을 해서 그런지 끊김 현상이 거의 없었다"며 "덕분에 유럽이나 북미 쪽 유저들이 더욱 좋아했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때 접한 유저가 군인이 되어 돌아오다
14년째 유지되는 게임이다보니, 복귀 유저들의 사연도 상당히 독특하다. 초등학교 때부터 게임을 즐기던 한 게이머가 성인이 된 것도 모자라서 군대를 전역한 뒤 복귀를 했는데 문제가 생겨 찾아온 일도 있었다. 최종원 PD는 "당시 초등학교, 중학교를 다니던 유저들이 20대 중후반이 되서 복귀하는 경우가 많다"며 "그때 그 추억을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이용진 PD 또한 오래된 유저들이 보여주는 게임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다고 말했다. 그는 "마냥 게임을 소비하는 고객이 아니라 게임이 어떻게 발전하고 바뀌었으면 좋겠는지 깊이 있게 이야기 해 주신다"며 "개발 속도가 느려서 즉각적인 피드백을 드리지는 못하지만, 그만큼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고 있다는 점은 알아주시길 바란다"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두 PD는 기회가 닿는 데까지 이 게임을 서비스하고 싶다고 말했다. 최원종 PD는 "10년이면 강산이 바뀐다고, 피처폰 시절에 이 게임을 만들던 분들은 대부분 은퇴하시거나 다른 곳에서 게임을 만들고 계신다"며 "그야말로 TV 프로그램 '가요무대'처럼 많은 관심을 받진 못해도 꾸준히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임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이용진 PD는 "5년째 '아이모'를 개발하고 있는데, 회사 내에는 10년도 더 전 부터 이 게임에 참여했던 분들이 많이 계신다"며 "말 그대로 최초이자 최후의 RPG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