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정남] 이 게임 캐릭터들의 뿌리가 북두의 권이라고?
2021.01.28 17:23 게임메카 류종화 기자
※ [순정남]은 매주 이색적인 테마를 정하고, 이에 맞는 게임이나 캐릭터, 사건 등을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넌 이미 죽어있다”로 유명한 만화 북두의 권. 2021년 기준으로 탄생 38주년을 맞이한 이 작품은 연재 초반에만 해도 매드 맥스 시리즈와의 유사성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으나, 매력적인 캐릭터와 무술 등을 앞세워 독자적인 세계관을 구축하는 데 성공. 현재는 동양식 포스트 아포칼립스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작품이 됐다.
북두의 권은 유명세에 걸맞게 당대 일본 서브컬쳐계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는데, 게임업계 역시 그 영향을 많이 받았다. 특히 북두의 권이 한창 인기를 끌었던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까지는 만화에서 깊은 감명을 받은 격투게임 제작자들에 의해 게임 속에 북두의 권 오마주 캐릭터를 넣는 것이 유행처럼 번진 적도 있다. 오늘은 뿌리를 북두의 권에 두고 있는 게임 캐릭터들을 알아보도록 하자.
TOP 5. 나장 ‘한’에서 영감을 받은, KOF ‘제로’
KOF 99 엔딩에 등장해 보스인 크리자리드를 숙청하고, KOF 2000 최종보스로 나온 제로. 깔끔하게 빗어넘긴 올백머리와 신사다운 콧수염으로 KOF 미중년 순위 안에 꼽히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이런 제로의 모티브는 바로 북두의 권에 나오는 캐릭터 ‘한’이다.
한은 북두의 권 2부격인 수라국 편에 등장하는 보스 중 한 명이다. 수라국을 지배하는 3명의 나장이자, 시종일관 여유와 매너가 넘치는 쿨가이 분위기를 풍겨 인기를 모았다. 제로는 이런 한의 외모와 성격을 그대로 가져왔는데, 초필살기 백라멸정과 옥쇄참진, 암류천파 등의 이름까지 따올 정도로 철저하게 오마주했다. 참고로 KOF 시리즈에는 제로가 두 명(오리지널, 클론) 나오는데, 외모는 클론 제로가, 성격은 오리지널 제로가 더 한과 닮았다.
TOP 4. 카산드라 옥장 ‘위글’과 꼭 닮은, 히포드롬 ‘폰’
1989년 발매된 격투게임 히포드롬. 검투사가 되어 다양한 괴물이나 이종족, 마법사 등과 싸워 이겨야 하는 이 게임에도 북두의 권에서 영감을 받은 캐릭터들이 나온다. 수라국에 나오는 쌍둥이 암살자와 닮은 중간보스 쌍둥이 형제도 있지만,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최종보스인 폰이다.
거대한 몸집, 뿔이 달린 투구, 무성한 수염… 그렇다. 이 캐릭터는 북두의 권 초반에 나와 강렬한 인상을 준 카산드라 옥장 ‘위글’을 모티브로 했다. 위글처럼 쌍조편을 휘두르진 않지만 나름 쇠사슬이 달린 방패를 던지며, 집채만한 어깨 근육으로 돌격하는 태클 기술은 위글 옥장의 대표 기술인 몽고패극도 그 자체다. 여기서 인기를 끈 폰은 후속작 격인 데스 브레이드에서 헤라클레스라는 이름의 플레이어블 캐릭터로 승격했으며, 타이틀 메인에도 등장했으니 나름 해피 엔딩이다.
TOP 3. 레드베레 대장 카넬에서 뻗어나온 두 캐릭터, KOF ‘하이데른’과 스파 ‘로렌토’
북두의 권 초반부에 등장하는 카넬은 레드베레라는 특수부대 대장으로, 세계 멸망 후 악의 제국 골란을 세워 갖은 만행을 저지르고 다니다 켄시로에게 응징당한다. 그러나 남두무음권을 정식으로 익힌 데다 암살자로서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묘사돼, 일회용 악역 치고는 꽤나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베레모를 쓰고 다니는 날렵한 암살자 군인의 콘셉트가 강한 인상을 줬는지, 무려 두 개 게임에서 오마주 됐다. KOF 시리즈에 등장하는 용병부대장 하이데른과 파이널 파이트를 거쳐 스트리트 파이터에까지 진출한 로렌토다. 하이데른의 경우 날렵한 움직임과 암살권, 남두성권 특유의 베는 공격 등 액션 위주로 가져간 한편, 로렌토는 부패한 군인이자 군인들로만 이루어진 나라를 만들겠다는 사상을 계승했다. 결과만 보면 악당인 로렌토보다 카리스마 선역에 가까운 하이데른 쪽이 더 큰 인기를 누렸다.
TOP 2. 수라의 나라에 처음 나오는 놈 같은 걸로, 스트리트 파이터 ‘발로그’
앞서 설명한 로렌토보다 훨씬 더 유명한 캡콤표 북두의 권 캐릭터가 있으니, 바로 스트리트 파이터 2 사천왕으로 등장한 가면 갈고리남 발로그(해외판 베가)다. 2018년 출판된 스트리트 파이터 캐릭터 메이킹 제작비화에 따르면, 발로그는 원래 스페인이나 태국 닌자로 구상됐다. 캐릭터 디자이너였던 카츠라기는 처음엔 태국 닌자로 작업을 진행했지만, 도중에 윗선에서 “스페인이 낫겠다, 북두의 권 수라의 나라에 처음 나오는 놈 같은 것”이라고 지시가 내려와 지금의 모습을 만들었다고 한다.
참고로 저 ‘수라의 나라에 처음 나오는 놈’은 2부의 무대가 되는 수라국 해변을 지키는 문지기 같은 존재로, 수라국은 잡졸마저도 이렇게 강하다는 충격을 줬다. 가면을 쓰고 나와 어린 나이부터 수많은 침입자들을 때려눕힌 실력자임에도 불구하고 수라로서의 실력 등급이 낮아 아직 이름을 받지 못했다는 설정이다. 괜히 캡콤 윗선에서 저런 식으로 부른 게 아니라는 것. 비록 원작 캐릭터는 끝까지 이름도 받지 못한 채 생을 마감했지만, 그 가면 만큼은 발로그로 이어져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TOP 1. 권왕 라오우와 성제 사우저가 합체, 월드 히어로즈 2 제트 ‘제우스’
시공간을 뛰어넘은 무인들의 격투, 월드 히어로즈 2 제트의 최종 보스인 제우스. 잭과 여포를 꺾으면 등장하는 인물로, 엄청난 덩치와 근육, 카리스마를 자랑한다. 기본적인 기술인 메가톤 펀치 한 방만 잘못 맞아도 엄청난 연타와 함께 절반이 넘는 체력을 깎아버리는데, 광범위하게 기를 뿜는 기술들까지 갖추고 있어 그야말로 태산과도 같은 존재감을 뽐낸다.
제우스의 모티브가 된 북두의 권 캐릭터는 당연하게도 권왕 라오우다. 실제로 그가 서 있는 장면을 보면 라오우의 전투형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며, 필살기인 아토믹 히트는 라오우의 원거리 투기 공격인 북두강장파를 떠오르게 한다. 여기에 갑옷이나 표정 등은 남두성권 최강의 사나이이자 ‘성제’로 불리는 사우더를 꼭 닮았다. 북두와 남두에서 최강으로 손꼽힌 두 명이 한 몸에 들어왔으니, 당연히 성능도 사기급일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