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문, 로보토미-라오루 관통하는 주제는 '인간성'
2021.06.14 10:30 게임메카 이새벽
최근 데브시스터즈로부터 20억 규모의 재무투자를 받아 화제가 된 인디게임 개발업체가 있다. 그 주인공은 바로 ‘로보토미 코퍼레이션’과 ‘라이브러리 오브 루이나’로 유명세를 얻고 있는 회사 프로젝트 문. 아직 두 개의 게임만 만들었을 뿐이지만, 첫 게임인 ‘로보토미 코퍼레이션’만 해도 벌써 입소문으로 50만 장 판매를 돌파하는 등 작지만 무서운 회사다. 두 번째 게임 ‘라이브러리 오브 루이나’도 스팀 앞서 해보기 기간에만 벌써 10만 장 판매를 넘어섰다.
그렇다면 이처럼 흥행가도를 달리는 프로젝트 문의 힘은 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그에 대한 대답을 듣기 위해 직접 프로젝트 문 김지훈 대표와 이유미 기획자를 만나봤다. 이들과의 심층대화를 통해 프로젝트 문이 추구하는 가치부터, 개발자들이 직접 말해주는 ’로보토미 코퍼레이션’과 ‘라이브러리 오브 루이나’ 이야기, 그리고 앞으로의 브랜드 확장과 차기작에 대한 계획까지 들을 수 있었다.
프로젝트 문의 가치는 '깊고 어두운 오타쿠 시장' 경쟁력
우선 축하부터 드립니다. 최근 데브시스터즈에서 20억 규모 재무투자를 받으셨죠. 창사 목표였던 부와 명예를 둘 다 얻은 셈 됐네요.
김지훈 대표(이하 김): 아, 감사합니다. 그렇게 됐네요.
그것도 개발에 간섭 없는 좋은 조건으로 투자가 확정됐지요. 아마 그만큼 프로젝트 문의 잠재적 가치가 높다고 판단된 결과 같습니다. 프로젝트 문의 어떤 특성이 가장 큰 가치로 주목 받은 것 같나요?
김: 저희 자체적으로 판단해보면 아마 저희가 추구하는 오타쿠 시장에서의 방향성 덕분인 것 같아요.
오타쿠 시장에서의 방향성이라고 하면?
김: 오타쿠 시장의 입맛은 시대에 따라 흐름이 계속 바뀌어 왔어요. 1990년대 중후반에는 에반게리온, 2000년대 초반에는 하루히, 2000년대 후반에는 러키스타가 인기를 끌었죠. 그런데 제 생각에 2010년 이후로는 점점 가볍게 소비할 수 있는 상품들이 많아지는 것 같았어요.
하지만 점점 가벼워지는 오타쿠 시장의 흐름은 제 취향과 조금 차이가 있었어요. 스스로도 깊고 어두운 주제와 분위기의 상품들에 갈증을 느꼈고요. 그래서 게임을 만드는 김에 내가 좋아하는 걸 만들자고 생각했어요.
확실히 오타쿠 시장에서 요즘 어둡고 무거운 주제를 다루는 작품이 다소 줄었다는 느낌이 드네요. 하지만 유행이 지났다고 해서 옛날 취향 수요층이 아예 없어지는 건 아니니, 그런 틈새시장을 공략하기로 하신 거군요.
김: 틈새시장을 전략적으로 추구한 것까진 아니고… 만들고 싶은 걸 만들다 보니 그렇게 된 거죠.
요즘은 스팀 진출을 시도하는 중소규모 개발업체들이 하나씩 늘고 있지만, ‘로보토미 코퍼레이션’이 나온 당시만 해도 국내에서는 게임을 만들면 당연히 PC 온라인 아니면 모바일이라는 풍토가 있었는데요. 어쩌다 패키지 게임을 만들 생각을 하셨나요?
김: 저는 중학생 때부터 패키지 게임을 좋아했어요. 특히 ‘악튜러스’가 가장 기억에 남네요. 이 게임을 보면 굉장히 색다르면서 특이한 설정들이 나오고 스토리도 몰입감이 있었어요. 그래서 나도 이런 게임을 만들고 싶다 생각했고, 처음에는 QA를 목표로 삼았어요. 그러다 나중에 아예 패키지 게임을 개발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돼 진로를 개발자로 잡았어요. 계속 공부하면서 같이 개발할 사람을 찾다 결국 ’로보토미 코퍼레이션’을 만들 수 있었죠.
이유미(이하 이): 저는 던전 앤 파이터로 게임을 시작했는데, 어쩌다 대학 게임개발 동아리에서 김지훈 대표님을 만나서 그때부터 같이 일하게 됐어요.
다리 건너 들으니 재학 시절부터 패키지 게임을 만들 거라며 사람 모으고 다니셨다고...
김: 중학생 때 이미 진로를 잡아서 대학 때도 개발 공부를 했어요. 대학에 오니 게임 개발 동아리가 있어 거기서 만난 친구들과 같이 습작을 만들었죠. 축제 때마다 게임을 하나씩 만들었는데, 그때 같이 게임 제작할 동료를 많이 구했어요.
그러고 보니 로보토미 코퍼레이션이 나왔을 때 한참 스팀 그린라이트가 유행이었죠? 아직 인디포칼립스가 심각한 때도 아니었고요.
이: 네. 저희가 끝물이었어요. 로보토미 코퍼레이션을 출시하고 얼마 후 그린라이트 제도가 사라졌더라고요.
김: 저희도 스팀 그린라이트 초기에 나온 인디게임들을 보며 자극을 많이 받았어요. 메시지가 있는 게임들이 꽤 있었잖아요? 그런 것에 로망이 있었죠.
말씀하시는 걸 들어보면 어떤 게임을 만들고 싶다는 목표가 옛날부터 명확했던 것 같은데, 혹시 만드는 게임 시리즈를 관통하는 주제나 가치가 있을까요?
김: 인간성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정리하기는 힘들지만…
이: 인간이 어떤 심각한 문제에 부딪치고 갈등을 겪으면서 드러나는 인간성의 여러 모습을 폭넓게 드라마로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겠네요. 그러한 과정 속에서 인간성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해볼 수 있게 해주는 것이요.
그렇게 보면 라이브러리 오브 루이나도 비슷하네요. 인간을 책으로 만들고 정보를 흡수하는 괴물 ‘앤젤라’와, 복수를 위해 모든 걸 포기할 각오를 한 ‘롤랑’이 엮이며 진행되는 이야기잖아요? 둘 다 분명한 욕망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여러 사람과 엮이며 자신을 반추하고 변화해가는 입체적 인물들이죠. 그런 면모를 보여주는 드라마를 추구하는 것인가요?
김: 그렇게도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로보토미 코퍼레이션과 라이브러리 오브 루이나는 어떻게 완성됐나
로보토미 코퍼레이션은 괴물을 가둬놓고 정신 에너지를 뽑아내는 시설을 관리하는 게임이죠. 발매 당시 주제와 소재가 참신하다는 호평을 많이 받았는데요, 영화 ‘케빈 인더 우즈’나 인터넷 괴담 창작물 모음집인 ‘SCP재단’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건 이제 유명한 얘기가 됐습니다. 그럼 게임 장르적으로는 어디서 영감을 얻으셨나요?
김: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역시 ‘주 타이쿤’이예요. 확장팩에 공룡 동물원을 운영하는 게 있었는데, 일부러 공룡을 풀어놓고 방문객들이 혼비백산해 도망치는 모습이 재밌었어요. 심시티 4에서도 재앙을 일으켜 도시를 위기에 빠뜨리곤 했고요. 플레이어가 자신에게 재앙이 될 수도 있는 요소를 스스로 관리한다는 면은 그런 게임들을 하며 영향을 받은 것 같아요. 그리고 던전 키퍼도 빼놓을 수 없겠네요. 직접 던전을 파고 관리하는 게임이잖아요?
그런데 영감의 원천만으로는 장르적 구체성을 배울 수 없었어요. 부분적으로 참고할 건 많았는데, 검증된 레퍼런스가 없었던 거예요. 그래서 시행착오를 많이 겪을 수밖에 없었어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고 하기는 좀 그렇지만, 직접 참고할 게임이 정말 적었거든요.
그래서 ‘로보토미 코퍼레이션’도 ‘앞서 해보기’ 단계에서 꽤나 많은 변화가 있었죠. 특히 초반에는 스토리가 별로 중요하지 않은 실험적인 타이쿤 장르 게임이라고 생각했어요. 처음부터 스토리 비중이 커질 예정이었나요?
김: 처음부터 로보토미 코퍼레이션’스토리 비중은 컸어요. 다만 개발 초반에는 스토리를 부각시킬 역량이 부족했어요. 그래서 실험적인 인디게임 느낌으로 일단 발매를 했고, 업데이트를 통해 차츰 스토리를 보강했죠.
후속작에 해당하는 라이브러리 오브 루이나도 앞서 해보기 단계에서 많은 일들이 있었죠. 우선 게임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들을 수 있을까요?
김: 일단 표방하기로는 ‘도서관 배틀 시뮬레이션’인데… 조금 더직관적으로 설명하면 스토리 비중이 크고 덱 빌딩 요소가 있는 턴 기반 전투 RPG입니다. 다만 덱을 맞추는 게 핵심은 아닙니다. ‘슬레이 더 스파이어’처럼 본격적으로 로그라이크 요소가 있고, 카드를 모아 덱을 만들어 캐릭터 자원으로 삼는 걸 핵심 재미로 삼지는 않거든요.
전작 로보토미 코퍼레이션과 매우 다른 장르로 보이는데요, 세계관과 스토리는 이어나가면서도 장르는 급격한 변화를 추구한 이유가 있나요?
이: 원래는 던전 키퍼 같은 게임을 만들 예정이었어요. 무엇인가에 대한 해답을 찾는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도서관이 있고, 플레이어는 도서관을 지키는 사서들을 배치하는 거예요. 그러면 사서들은 도서관에 오는 사람들을 인공지능 패턴에 따라 요격하고요. 요격에 성공하면 쓰러진 사람은 책이 되고, 실패하면 도서관에 온 사람이 원하는 책을 찾아 나가는 식이었어요. 플레이어는 도미나나 풋볼 매니저처럼 사서의 관리와 배치만 하고요.
그런데 그렇게 하자니 생각보다 등장해야 할 인물도 많아지고 그래픽 리소스도 많이 필요했어요. 또 기획 상 자동전투가 흥미진진하게 이루어질 수 있어야 하는데, 인공지능 패턴을 정교하고 다양하게 만들 역량도 부족했어요. 그래서 결국 원래 기획은 포기해야 했어요.
김: 그래서 1~2년 정도 계속 계획을 세웠다 갈아엎었다 했어요. 그 시기에 ‘슬레이 더 스파이어’를 재밌게 했는데, 이 요소를 써보면 괜찮지 않을까 싶었죠. 그래서 스토리 중심 RPG에 덱 빌딩 요소를 살짝 얹은 게임으로 방향을 전환했습니다.
스토리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로보토미 코퍼레이션 안 해 본 사람은 라이브러리 오브 루이나 초반 스토리를 따라가기 힘들다는 이야기가 많이 보이더군요.
이: 기존에 로보토미 코퍼레이션을 플레이 하신 플레이어와 그렇지 않은 플레이어 사이에 온도차가 있었어요. 저희는 전작을 안 해보신 분도 라이브러리 오브 루이나 스토리를 따라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미 전작을 해보신 분 입장에서는 기존 스토리를 모를 시 이번 게임의 많은 부분을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들 하시더라고요.
김: 그 부분은 제 판단 착오였어요. 우선 초반에 세계관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 고유명사가 많이 나오면 흥미를 유발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당장의 상황을 정확하게 이해는 못 해도 기대감을 품게 될 거라고요. 실제로 조금 플레이를 진행하면 곧 그 용어에 대한 설명이 나오기도 하고요. 하지만 현실은 플레이어에게 혼란을 주는 면이 컸습니다. 설계 미스였어요.
아직 앞서 해보기 단계니 라이브러리 오브 루이나 스토리를 깊게 얘기하지는 못할 것 같고, 전반적 스토리 특징에 대해서 간단히 소개하자면?
김: 라이브러리 오브 루이나는 저희 시리즈 세계관의 문을 여는 게임입니다. 전작 로보토미 코퍼레이션은 지하의 폐쇄된 시설에서 벌어지는 일만 다루었기 때문에 전체 세계관을 제대로 보여줄 기회가 없었어요. 하지만 이 게임에서 최초로 세계관의 주요 무대인 도시가 나왔고, 각종 조직과 중요한 인물들도 등장했어요. 본격적으로 세계관과 스토리를 보여주기 시작하는 게임이예요.
스토리는 어디서 많이 영감을 받으셨나요?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바벨의 도서관’을 모티브 삼았다고 들었는데…
김: 보르헤스 단편집에서 얻은 약간의 영감도 있지만, 주요 레퍼런스로 삼은 건 아니었어요. 사실 고전은 대학에 와서야 접하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당시 저는 이미 오타쿠 매체들에 너무 절여진 상태였기에 크게 자극적이거나 기억에 남지는 않았습니다. 고전의 가치를 폄훼하는 게 아니라, 이미 다른 취향으로 굳어진 저에게는 생각만큼 큰 만족감을 주지 못했어요. 그래서 게임 제작에도 주요 레퍼런스로 사용할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스토리 모티브는 사실 제가 어릴 때부터 설정한 공상의 세계였어요. 초등학생 때부터 나만의 세계와 스토리를 상상하곤 했거든요. 처음부터 그 공상으로 게임을 만들 계획은 아니었는데, 막상 게임 만들다 보니 욕심이 생기더군요. 그래서 제 자작 세계관이 도시의 프로토타입이 됐습니다.
세계관의 얼개가 상당히 넓게 짜여 있다는 느낌이 드는군요
김: 세부사항은 아직 못 정했지만, 큰 틀에서의 설정체계와 스토리의 중요 마일스톤 및 끝은 이미 구상해 뒀어요. 차차 풀어나갈 계획입니다.
스토리 이야기의 연장선이 될 수 있겠는데... 팬덤에서 엔딩과 향후 브랜드 방향성에 대해 불만이 있었던 것 때문으로 알고 있습니다. 흔치 않게 스팀 평가가 V자를 그렸죠. 어떤 문제가 있었나요?
김: 로보토미 코퍼레이션에서 시작된 중요 사건이 해소되지 않은 상태로 라이브러리 오브 루이나를 끝낼 계획이었어요. 후속작이 그 사건을 다룰 예정이었고요. 그랬더니 제대로 스토리 정리도 안 한 상태로 중요한 설정을 후속작으로 넘겨버린다는 반발이 있었어요.
저한테 로보토미 코퍼레이션과 라이브러리 오브 루이나는 다른 게임이었습니다. 로보토미 코퍼레이션 결말은 ‘백야’라고 하는 정체불명의 빛이 도시를 비추고, 그 후부터 도시에 기이한 현상들이 벌어지기 시작해요. 세계관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사건이에요.
한편 라이브러리 오브 루이나는 ‘앤젤라’와 ‘롤랑’이라는 두 인물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당시 시점의 도시는 ‘백야’의 영향은 받았지만, 굳이 게임에서 그 이야기를 깊게 다룰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어요. 그보다는 두 주인공에 집중하자고요.
하지만 제 오산이었어요. 제 머릿속에는 세계관에서 벌어질 주요 설정들이 어떤 순서로 풀어질지 나름의 연대기가 정리돼 있지만, 플레이어 입장에서는 아니니까요. 당장 전작에서 내가 플레이 한 내용이 세계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바로 보여주는 게 맞았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유저 평가가 V자를 그리며 재기에 성공했죠. 흔치 않은 사례인데 어떻게 가능했나요?
이: 일단 스팀 리뷰를 하나씩 읽어보며 문제 파악을 했어요.그래서 얻은 결론은 로보토미 코퍼레이션을 플레이 하신 분들 체험을 저희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거였어요. 로보토미 코퍼레이션에서 플레이어는 시설 관리자인 주인공 시점으로 플레이 하게 됩니다. 그래서 몰입도 강하고, 게임 끝에 주인공이 일으킨 백야 사건에도 깊은 관심이 있을 수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후속작에서 백야를 언급 없이 넘어가니 전작의 체험이 부정된 것처럼 느낄 수 있겠다 싶었어요.
김: 그 외에는 정말 진정성이라고 밖에 말 못하겠네요. 문제 개선을 약속하고 실제로도 수정했어요. 아마 그런 진정성을 알아주셨으니 다시 평가가 회복된 거겠죠.
정리하면 앞서 해보기 단계를 ‘서비스로의 게임(Game as Service)’으로 잘 활용했다는 이야기가 되겠네요. 단순히 미완성 게임을 판매해서 플레이어에게 테스트를 시키는 것이 아니라, 플레이어 요구를 파악하고 피드백 하는 과정으로 삼았으니까요.
김: 맞습니다. 게임의 완성이라는 목표를 두고, 플레이어 분들이 원하는 목표치를 확인하며 완성도를 높이는 과정이었어요. 플레이어 분들과 같이 게임을 완성한 셈입니다.
프로젝트 문의 미래는?
다음은 브랜드와 미래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네요. 많은 팬들이 세계관을 더 알고 싶어하는데,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세계관을 보여주실 생각인가요?
김: 일단은 게임 만드는 회사이니 게임으로 푸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당장의 구체적이고 현실성 있는 계획이 아니라 포부를 얘기한다면 ‘서비스로의 게임’을 만들고 싶어요.
이: 페이트/그랜드 오더 같은…
김: 네. 페이트/그랜드 오더처럼 결말이 정해진 게 아니라 라이브 서비스를 통해 계속 스토리를 이어 나가는 게임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어요. 그게 MMORPG일지 모바일게임일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장기적으로 세계관을 확장해 나갈 수 있는 게임을 만들고 싶어요. 페이트/그랜드 오더 광고를 볼 때마다 굉장히 부러웠거든요. 하나의 주제를 밀도 높고 완결성 있게 다룰 때는 지금처럼 패키지로 내고요.
포부가 상당히 크시네요. 게임 외에도 웹툰 ‘원더랩’이 꽤 인기가 좋았는데, 추가 미디어믹스 계획도 있나요?
김: 웹툰과 소설은 계속 연재하고자 합니다. 원더랩은 저희가 볼 때도 반응이 좋았어요. 현재 새 웹툰을 만들기 위한 작가분을 구인 중입니다.
혹시 팬덤의 규모는 어느 정도로 파악되고 있나요? 판매량이라거나.
김: 판매량은 로보토미 코퍼레이션이 약 50만 장, 라이브러리 오브 루이나가 약 10만 장이었습니다. 팬덤 규모는 잘 파악은 안 되는데, 일단 대부분은 국내와 일본이예요. 특히 일본에서는 니코니코동화 채널에서 게임 실황 방송으로 게임 부문 1위를 여러 번 차지했어요. 저희 캐릭터를 일종의 밈처럼 각종 게시판에서 사용하기도 하고요. 중국도 큰 것 같기는 한데 잘 파악이 안 됩니다. 아무래도 중국 내에서만 쓰이는 마켓 플랫폼이 많고, 국내나 일본에 비해 팬덤 접촉도 쉽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러시아에도 팬들이 좀 계신데, 최근 라이브러리 루이나부터 영미권에서도 관심이 늘고 있더군요.
여러 국가에 출시한 만큼 로컬라이즈 부담도 컸을 것 같습니다. 번역에 교열만 해도 비용이 상당했을 거 같은데, 실제로는 어땠나요?
김: 시행착오가 많았죠. 하지만 결과적으로 팬 분들 덕분에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아마추어 지인들에게 파트를 나눠서 번역을 요청했어요. 그런데 저희가 의도한 것과는 다른 자의적인 번역어가 나오기도 하고, 파트를 나누다 보니 같은 용어가 상황마다 다르게 번역되는 일도 있었어요. 저희가 번역 관계된 일은 아예 처음이어서 용어집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도 몰랐거든요. 그래도 다 다시 했어요.
다행스럽게도 팬 중 번역을 맡아주겠다는 분이 계셨습니다. 실력도 훌륭하고, 무엇보다도 업체보다 게임 세계관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서 결과물이 좋았어요. 그 후로도 다른 팬 분들 중에도 번역을 도와주겠다는 분들이 연락 주셨고, 지금은 번역용 디스코드 방을 운영 중이예요.
보기 드물게 충성도 높은 팬덤이네요. 신생 게임 개발업체 치고는 특이할 정도의 인기인데, 혹시 비결이 있나요?
김: 저희는 2차 창작을 하는 분에게 깊은 감사함과 궁금함을 품고 있어요. 저희 게임에 어떤 생각을 하고, 또 어떤 해석을 해 주시는지 열심히 찾아봐요. 그래서 동인행사도 가급적 자주 참여해요. 가서 팬 분들이 만든 창작물을 저희가 구매하기도 하고, 팬 미팅도 같이 진행하고요.
사실 마음 같아서는 더 소통하고 싶어요. 저희가 만든 게임을 저희도 생각 못한 방식으로 어떻게 더 풍성하게 가꿔주고 계신 지 알고 싶으니까요. 하지만 사업상 개발자와 유저 사이에 어느 정도 선은 유지할 필요가 있어요. 그래서 늘 그 선을 재야 하는 게 힘들고 또 아쉽습니다.
그럼 마지막으로 후속작에 대해서 얘기해볼까요? 지난해 말 개발자 방송을 통해 후속작들에 대한 말씀을 했었죠. 가칭 ‘로보토미 코퍼레이션 브랜치’ 라거나… 여전히 개발 계획이 있나요?
김: 만들 예정은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진척도는 거의 백지 상태예요. 투자를 크게 받으면서 ‘로보토미 코퍼레이션 브랜치’ 구상을 공개했던 때보다 훨씬 다양한 개발 시도를 해볼 수 있게 됐거든요.그 래서 차기작이 어떤 게임이 될 지는 아직 확정된 바 없습니다.
이: 그래도 ‘던전화된 로보토미 코퍼레이션 탐사’라는 소재는 꼭 그대로 가지고 갈 거예요. 그 아이디어는 정말 마음에 들었거든요. 그 외에도 도시의 한 지구를 가꾸는 심시티 같은 게임도 구상 중이고요. 여유가 생긴 만큼 더 볼륨 있고 완성도 높은 게임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