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간 '강호의 약속'을 지킨 발로란트의 역주행
2021.06.21 18:08 게임메카 이재오 기자
한국은 FPS의 무덤이라고도 불린다. 정확히 말하자면 상위권 게임들의 장벽이 워낙 탄탄해 후발주자들이 밀고 들어올 여지가 없다시피 하다. 전세계적으로 오랫동안 사랑받고 있는 게임인 카운터 스트라이크나 레인보우 식스 시리즈가 국내에서 힘을 쓰지 못하고, FPS 장르 PC방 점유율 순위가 수 년째 거의 바뀌지 않고 유지되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카운터 스트라이크의 대체재로 출시된 발로란트도 국내에선 초반 고전을 면치 못했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은 어느덧 인기게임의 반열에 올랐다. 기존 유저들에게 약속했던 다양한 요소들을 추가하고, 새로운 요원과 맵 추가, 6개월 단위로 진행되는 에피소드 등 꾸준한 업데이트로 조용히 인기를 끌어 올리고 있었던 것이다.
알고 보면 조용히 역주행하고 있었다
앞서 설명했 듯 발로란트는 카운터 스트라이크의 대체재를 노리고 만들어진 작품이다. 총기의 반동이라던가, 매 라운드 주어진 돈을 이용해 총기를 사야 한다는 점 등 게임성과 관련된 문법들을 카운터 스트라이크에서 차용해왔다. 초기부터 카운터 스트라이크 전 프로게이머이자 맵 제작자를 레벨 디자이너로 영입한 것에서부터 이런 성향이 잘 드러난다. 즉, 발로란트는 총을 잘 쏘지 못하더라도 얼마든지 활약할 수 있는 오버워치나 팀 포트리스 2 같은 하이퍼 FPS와는 사뭇 다른 양상의 게임이다.
이런 발로란트는 출시 초반 국내에서 크게 환영받지 못했다. 라이엇게임즈 신작이라는 것 때문에 관심은 반짝 끌었으나, 이내 힘이 빠졌다. 실제로 게임트릭스 사용시간을 보면, 출시 초반이었던 6월부터 8월까지는 꾸준히 10위 안에 들었으나, 9월부터는 10위권 밖을 전전하며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다.
이 같은 초기 부진을 단순 게임성 문제 하나 때문으로 볼 수는 없다. 제트의 한국인 같지 않은 한국인 논란이나 안티치트 프로그램인 뱅가드의 오작동 등 여러 논란이 겹친 결과였다. 특히 뱅가드 오류는 PC방을 주무대로 삼아야 하는 국내 시장에서 치명적인 문제였다. 제작진도 초기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고 나름 결과물을 내긴 했지만, 게임에 박힌 부정적인 인식까지 온전히 덜어내지는 못했다.
하지만 지난 5월 5일, 발로란트가 다시금 게임트릭스 사용시간 전체 순위 10위권 안에 재입성했다. 이후에도 계속 10위에서 15위 사이를 오가며, 역주행 이후 기세를 어느 정도 이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게임메카 인기게임 순위에서도 지난 2월 16일 8위로 뛰어오른 후 매달 한 번 이상은 TOP 10 안에 들며 안정적으로 순위를 방어하고 있다.
해외에선 더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작년 3월에는 트위치 평균 시청자 수 5위를 달성했으며, 5월에는 동시 시청자 수 100만을 넘기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6월 3일 기준으로 발로란트는 월 1,400만 명의 액티브 유저를 확보하며, 주요 경쟁작인 카운터 스트라이크 글로벌 오펜시브의 절반 정도 접속자 수를 달성했다. 북미에서는 큰 성공을 거뒀다고 볼 수 있는 셈이다.
유저와 약속했던 내용을 그대로 이행
발로란트가 다소 느리지만 천천히 인기를 회복하게 된 이유는 제작진이 일전에 약속했던 사항을 꾸준히 이행해왔기 때문이다. 우선 처음 발표한 개발 로드맵을 철저히 지켰다. 6개월 마다 새로운 에피소드를 통해 대규모 패치를 진행하고, 2개월에 한 번씩 새로운 요원이나 맵, 신규 모드 등을 출시하며 게임을 즐기는 유저들이 지루함을 느낄 틈이 없도록 했다. 지금까지 게임에 추가된 캐릭터만 5명, 맵은 3종, 모드만 4종에 달할 만큼 꾸준히 콘텐츠 추가가 이뤄졌다.
특히, 업데이트 과정에서 유저들이 필요로 하는 콘텐츠를 우선적으로 업데이트한 부분이 많은 호평을 받았다. 제작진은 자유롭게 총을 쏘는 연습을 할 모드가 없다는 유저들의 요구를 들어주기 위해 게임 출시 이후 '데스매치' 모드를 바로 개발했다. 더불어 플레이어가 신규 요원보다 맵을 선호한다는 피드백을 듣고, 신규 맵인 '아이스박스'를 예정보다 두 달 앞당겨 출시하기도 했다. 이 외에도 게임 내 밸런스 조정을 위해 리그 오브 레전드 못지 않게 상시 패치를 진행하는 등 게임 운영에 부단히 신경쓰는 모습을 보여줬다.
너무 늦지 않은 시기에 본격적으로 e스포츠를 전개한 것도 역주행 및 유저층 안정화에 큰 도움을 줬다. 게임 출시 후 6개월 만에 지역별 대회인 퍼스트 스트라이크를 열었으며, 글로벌 대회인 '발로란트 챔피언스 투어(이하 VCT)'를 올해 3월 부터 본격적으로 개최하고 있다. 지난 5월 말에는 첫 오프라인 국제대회인 '2021 VCT 마스터 스테이지 2 레이캬비크'를 개최하기도 했다. 참고로 해당 대회에 출전한 한국 팀 누턴 게이밍은 이 대회에서 3위라는 좋은 성적을 기록하면서 한국이 정통 FPS에 약하다는 평가를 씻어내는데 성공했다.
뿐만 아니다. 게임을 즐기는 유저뿐만 아니라 신규 유저들이 게임에 보다 쉽게 유입될 수 있도록 다양한 시도를 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유튜브를 이용한 웹 예능이다. 유명인들의 게임 실력을 확인할 수 있는 에임폭발, 발로란트 초보 스트리머와 함께 게임을 배우는 '세상에 나쁜 발린이는 없다' 등이 그것이다. 그 중에서도 FPS 전문 스트리머 이태준이 스트리머들을 직접 가르쳐 대회에 나가는 스토리를 다룬 '코치 발로란트'는 200만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하며 큰 인기를 얻었다. 이 유튜브 영상을 보고 많은 유저들이 발로란트에 입문하기도 했다.
e스포츠와 모바일 버전으로 기세 이어간다
발로란트는 지난 3일, 발로란트 정식 출시 1주년을 맞아 모바일 버전을 준비 중이라고 전했다. 더불어 e스포츠 또한 11월에 있을 세계 대회인 발로란트 챔피언스에 진출할 팀을 가리는 '2021 VCT 마스터즈 스테이지 3 베를린'을 오는 9월에 개최한다. 과연 발로란트가 지금의 기세를 오랫동안 이어갈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