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우드 가든, 인류가 멸망했어도 한 그루의 나무를 심는다
2021.09.07 19:34 게임메카 김미희 기자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스피노자의 명언이 생각나는 힐링 게임 신작이 나타났다. 언뜻 멸망과 힐링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은데 이 게임에서는 제법 잘 어울리는 한 쌍을 이뤘다. 지난 2일 PC(스팀)과 Xbox로 출시된 정원 가꾸기 게임 ‘클라우드 가든이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위치한 인디게임 개발사 노이오 게임즈(Noio games)가 제작한 이 게임은 인적이 사라진 황폐한 도시를 식물이 만발하는 정원처럼 꾸미는 것을 목표로 했다. 스팀에서 작년부터 진행된 앞서 해보기 단계까지 합치면 유저 리뷰 988개에 ‘압도적으로 긍정적’ 평점을 유지 중이다.
스타듀 밸리를 기점으로 농장이나 도시를 경영하는 힐링 게임이 대세가 되며 이러한 매력을 앞세운 신작이 우수수 쏟아지고 있다. 다만 수많은 경쟁작을 뚫고 클라우드 가든이 두각을 드러낸 가장 큰 원동력은 앞서 이야기한 ‘반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인적이 없는 멸망한 도시라면 가장 먼저 아포칼립스가 생각나지만 게임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평온하다. 왜 도시는 멸망했는지, 왜 거대한 도시에 단 한 사람도 남아 있지 않은지는 중요하지 않다. 아무런 방해 없이 조용하게 황폐한 도시를 가꾸는 고독한 정원사라는 역할에 충실한 게임이다.
따라서 전체적인 분위기도 평화롭고, 고요하다. 칙칙한 회색 도시에 초록빛 식물로 수를 놓아서 아름다운 정원처럼 꾸미는 느낌이다. 화분이 될 도시들은 어딘가 낡았지만 따뜻하고 몽환적으로 표현되며, 도시를 확대하면 도트가 튀며 낡은 느낌이 더해진다. 배경음악도 통기타를 메인으로 한 잔잔한 곡이기에 너무 적막하지 않으면서도, 정원 꾸미기에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를 잡아준다.
전체적인 스테이지 구성은 인류가 사라진 거대한 도시를 한 군데씩 탐험하는 느낌이다. 낡은 자동차가 자리한 도로, 철로만 덩그러이 놓인 거리, 인적이 사라지고 건물만 남은 주택가 등이다. 모종의 이유로 인류가 멸망하거나 도시를 모두 떠나고 그 빈자리를 자연으로 채워가는 느낌이다. 더 라스트 오브 어스 1편에 보면 낡은 도시에 수풀과 나무가 무성하고 그 사이에서 기린이 살아가는 장면을 보여주는 일명 ‘기린 씬’이 있는데 클라우드 가든에서는 자연을 번성시키는 주역이 된 느낌이다.
여기에 ‘머리를 쉴 수 있는 힐링게임’이라는 방향성에 맞춰 전체적인 콘텐츠가 짜임새 있게 구성되어 있다. 쿨라우드 가든은 스테이지를 공략하며 정원을 꾸밀 각종 씨앗과 구조물, 소품을 모으는 오버로드, 오버로드에서 모은 여러 재료로 마음껏 정원을 가꾸는 크리에이티브 모드로 나뉜다. 오버로드가 적절한 배치를 찾아가는 퍼즐 게임 느낌이라면, 크리에이티브는 샌드박스에 가깝다.
먼저 오버로드는 빈 깡통이나 각종 건물을 비료나 화분처럼 삼아 식물을 심고, 이를 일정 이상 키워서 달성률 100%에 도달하는 것이 목표다. 한 스테이지에 쓸 수 있는 구조물 수가 제한되어 있고, 식물을 심은 토양에 따라 성장 정도가 달라지기도 한다. 따라서 마구잡이로 배치할 경우 100%에 도달하지 못할 수 있다. 다만 머리가 아플 정도로 과하게 어렵지 않고 십자수를 한 땀씩 신중하게 놓는 것처럼 고심하는 묘미가 있다. 힐링 게임이라는 방향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적정하게 플레이 동기를 자극할 정도의 레벨 밸런싱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크리에이티브 모드에서는 모든 제약이 사라진다. 오버로드에서 모은 각종 씨앗과 소품, 구조물 등을 수량 제한 없이 마음대로 배치해서 정말로 나만의 ‘작은 정원’을 가꿀 수 있다. 모든 재료는 오버로드를 하며 한번씩 써본 물건들이라 사용법을 몰라서 헤매는 경우도 없고, 조작도 간단해서 진입장벽이 낮다.
꾸밀 수 있는 도시도 취향에 따라 천차만별로 갈린다. 낡은 그네, 미끄럼틀, 국내에서 일명 ‘뺑뺑이’로 잘 알려진 회전무대 등을 배치하고, 적절하게 식물을 심으면 인적이 드문 조용한 놀이터를 연출할 수 있다. 이어서 컨테이너 박스 여러 개를 두고 주변을 철조망으로 두르면 오래된 창고, 건물 층 여러 개를 쌓고 주변에 자전거, 가로등 등을 두면 조용한 주택가가 된다.
만약 클라우드 가든에 두 가지 모드 중 하나만 있었다면 정해진 대로만 게임이 흘러가서 ‘황량한 도시의 고독한 정원사’라는 테마가 살지 않거나, 아무것도 모르는 정원사에게 무턱대고 ‘정원을 꾸미세요’를 강요하는 게임처럼 느껴졌을 수 있다. 그러나 두 모드가 서로를 밀어주는 시너지를 발휘하며 샌드박스 게임을 처음 하는 유저도 부담 없이 여러 요소를 배우고, 이를 바탕으로 어렵지 않게 멋들어진 정원을 꾸밀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간단한 게임이지만 구성은 의외로 치밀하다.
전체적으로 클라우드 가든은 ‘머리가 편안해지는 분재 게임’이라는 테마에 모든 것을 집중한 밀도 있는 게임성을 선보인다. 긴장이 풀어지는 편안한 그래픽과 사운드부터 어렵지 않으면서도 점점 진행해나가는 맛을 주는 오버로드, 오버로드에서 배운 노하우를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크리에이티브 모드로 장시간 플레이에도 질리지 않고, 새로 꾸미는 묘미가 있는 분재 게임으로 완성됐다. 퇴근 후 모니터 앞에 느긋하게 앉아 머리를 식힐 수 있는 게임을 찾거나 샌드박스 꾸미기 게임을 좋아하는 게이머라면 취향을 저격하는 타이틀이 될 수 있다.
게임 내에서 공식으로 한국어를 지원하지는 않지만 플레이에 언어를 많이 쓰지 않아서 언어장벽은 낮은 편이다. 또한 앞서 해보기 단계에서는 가격에 비해 콘텐츠 분량이 부족해서 아쉽다는 의견이 있었으나 정식 출시 버전에서는 크리에이티브 모드를 중간중간 곁들이며 스테이지 중반부라 할 수 있는 3스테이지까지 진행하는데 약 8시간 정도가 소요되었다. 스팀에서 출시 기준으로 정가 1만 5,500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분량도 적정한 수준이라 평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