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정남] ‘어른의 사정’ 때문에… 그 이름은 안 됩니다! TOP 5
2021.09.09 18:16 게임메카 류종화 기자
※ [순정남]은 매주 이색적인 테마를 정하고, 이에 맞는 게임이나 캐릭터, 사건 등을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홍길동은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했다. 분명 생물학적 친아버지가 맞거늘, 서자에 대한 사회적 차별과 아버지의 체면, 주변 사람들의 시선 등으로 인해 대감님이라 불러야만 했다. 말 그대로 어른의 사정으로 일어난 비극이다.
게임계에서도 계약이나 저작권, 이미지, 사건사고 등 게임 외적 요인으로 인해 제 이름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누가 봐도 A인데, A라고 부르지 못하고 B로 통칭한다거나 얼버무리는 경우 말이다. 오늘은 이러한 ‘어른의 사정’으로 다른 이름을 쓴 게임 속 사례들을 모아보았다.
TOP 5. 누가 봐도 하울인데? 제2의 나라 ‘소드맨’
넷마블이 서비스 중인 제2의 나라는 레벨파이브의 RPG ‘니노쿠니’ 시리즈를 원작으로 한다. 니노쿠니 하면 레벨파이브가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인 지브리와 협업해 만든 시리즈다. 실제로 원작 발매 당시 레벨파이브보다 지브리가 더 강조될 정도로 지브리의 그림자가 짙었다. 이를 기반으로 한 제2의 나라 역시 지브리가 전면에 나섰다면 좋았겠지만… 안타깝게도 지브리가 제작 부문을 해체하면서 넷마블은 지브리가 빠진 레벨파이브의 ‘니노쿠니’ IP만을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이러한 이유로 제2의 나라는 지브리라는 표현을 직접적으로 쓰지 않고, 대신 간접적으로 표현했다. 가장 대표적인 부분이 소드맨이다. 소드맨은 헤어스타일이나 눈 색, 복장, 전체적 인상 등 누가 봐도 ‘하울의 움직이는 성’ 주인공인 하울이 떠오른다. 실제로 한국판 성우까지 하울과 똑같다 보니, 유저들 사이에서도 다들 하울이라 부르는 형편이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그는 공식적으로 ‘소드맨’일 뿐이다.
TOP 4. 아스톨포, 페그오 때문에 어감이 이상해져버린 그 이름
인물 수집형 게임의 단골 소재는 역사와 신화다. 라이선스도 필요 없고 재해석의 여지도 넓기에, 같은 인물이라도 게임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그려진다. 예를 들어 아서왕만 해도 밀리언아서 시리즈에서는 제목 그대로 백만 명이 나오며, 페이트 시리즈에서는 세이버 형태로 TS 되어 비교하는 맛을 살렸다. 보통은 같은 인물이 다른 게임에서 전혀 다른 이미지로 등장하더라도, 그 차이를 즐길 뿐 딱히 화내거나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다만, 한 작품의 캐릭터가 그리 좋지 않은 쪽으로 너무 유명해져 버리면 다른 작품의 동일 인물 기반 캐릭터들도 피해를 입기 마련이다. 대표적인 경우가 샤를마뉴 대왕의 12기사 중 한 명인 아스톨포다. 그는 페이트 시리즈에서 겉모습은 영락없는 여자지만 성별은 남자인 ‘오토코노코’로 등장했다. 이 이미지가 워낙에 충격적인데다 널리 퍼져버려서, 이제는 아스톨포라 하면 신화 속 인물보다 오토코노코 이미지가 더 퍼져버렸다. 사이게임즈에서 서비스했던 모바일 카드 게임 ‘바하무트: 배틀 오브 레전드’에 등장하는 멋진 기사 아스톨포 경 역시 볼 때마다 오토코노코가 연상된 나머지 끝내 그 이름을 제대로 부르지 못했던 캐릭터 중 하나다.
TOP 3. 아무리 봐도 레고지만, 그냥 마인브릭스 모드로 퉁칩시다
흔히들 레고라 하면 돌기가 있는 블록을 통칭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레고는 엄연한 상품명이다. 비록 레고라는 단어 자체가 호치키스나 스카치테이프처럼 상당 부분 일반명사화 됐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덴마크 레고 그룹에서 제작하고, 공식 라이선스를 취득한 제품에만 ‘레고’ 표기를 쓸 수 있다.
게임업계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마인크래프트 복셀을 레고 블록처럼 바꿔 주는 텍스쳐 팩 ‘마인브릭스’가 대표적이다. 이 모드를 적용하면 게임 속 세계가 레고 블록으로 쌓아올린 장난감 마을처럼 바뀌기에, 흔히들 ‘레고 모드’라고 부른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레고 사와 공식 파트너십을 맺지 않은 개인 제작 모드라, 홈페이지나 모드 내 어디에도 레고라는 표기는 없다. 실제로 블록을 확대해보면 LEGO 표기 대신 MINE, CRAFT 라고 새겨져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저, 이를 쓰는 유저들만이 ‘마인크래프트 레고 모드’라고 부를 뿐이다.
TOP 2. 텔피와 맥그레스터 유라이셋의 맞대결, 엄청나군요!
앞서 레고의 사례처럼, 대다수 상품들에는 상표권이라는 게 존재한다. 게임에서 흔히 다뤄지는 실존 총기나 차량, 의류, 액세서리 등도 소유권자의 허가를 받아야만 해당 명칭과 외관 등을 가져다 쓸 수 있다. 흔히들 라이선스 취득이라 부르는 과정 말이다. 다만, 라이선스비가 부담이 되거나 특정 업체와 독점 라이선스 계약이 체결돼 있는 등 다양한 이유로 허가를 얻지 못한 경우엔 해당 제품의 외형과 이름을 미묘하게 바꿔 게임에 등장시키는 ‘꼼수’를 쓰기도 한다.
이 중 가장 유명한 사례가 바로 위닝일레븐(PES, 현 e풋볼) 시리즈다. 위닝 시리즈는 피파에 비해 유독 클럽팀 라이선스에 취약했는데, 그래서 일부 타이틀에선 실제 팀과 미묘하게 다른 이름과 앰블럼을 지닌 팀들이 등장한다. 예를 들어 영국 프리미어리그의 첼시는 ‘텔피’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맥그레스터 유라이셋’, 리버풀은 ‘리갈스’, 토트넘은 ‘톨드럼’이 되는 식이었다. 일부는 유저 패치를 통해 이름과 앰블럼을 바꾸기도 했지만 음성은 그대로라, 첼시 대 맨유 전이 중계에선 텔피와 맥그레스터의 접전으로 다뤄지곤 했다.
TOP 1. 입에 담기도 부끄러운 이유로 이름을 잃은 맥크리
대망의 1위는 “석양이 진다” 라는 대사로 잘 알려진 오버워치 영웅 맥크리다. 맥크리는 앞서 언급된 사례들처럼 업체 간 계약이나 권리 문제가 얽혀 있지도 않고, 다른 게임의 동명이인이 활개치고 다닌 것도 아니다. 다만, 영웅 이름의 모티브가 된 실제 블리자드 개발자가 대형 사고를 쳤을 뿐이다.
블리자드 개발자였던 제시 맥크리는 최근 액티비전블리자드를 휩쓴 성추문 사태의 가해자 중 한 명으로 지목받고 있다. 그는 여성 비하와 성희롱을 일삼는 그룹 채팅방(미국 유명 개그맨이자 성폭행범인 빌 코스비의 이름을 따 ‘코스비 크루’로 이름 붙여진)에 참여한 것으로 드러났다. 직원들의 일탈을 막아야 할 선임 개발자가 이런 행위를 부추긴 셈이다. 결국 그의 이름을 게임 내에서 빼라는 시위가 일어났고, 블리자드가 요청을 받아들이면서 맥크리라는 이름은 게임 내에서 사라진다. 입에 담기도 부끄러운 추잡한 이유로 자신의 이름을 잃어버린 무명 영웅에게 묵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