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지 이후 최고의 명작, 헤일로 인피니트
2021.12.06 17:55 게임메카 이재오 기자
헤일로 인피니트는 평범한 시리즈 넘버링 신작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Xbox 진영을 대표하는 헤일로 시리즈의 20주년 기념작인 데다가, 헤일로 4부터 이어져 온 계승자 3부작의 마지막을 장식할 작품이기도 하다. 더 나아가서는 헤일로 5: 가디언즈가 받은 최악의 평가를 뒤집고 올라서야 할 역할을 지니고도 있으며, 출시된 지 1년이 지났지만 어찌 되었건 최신 콘솔인 Xbox 시리즈 X를 대표할 간판 타이틀이기도 하다.
놀랍게도 343 인더스트리는 이 모든 무게감을 견뎌내고 헤일로 인피니트를 최고의 완성도를 자랑하는 게임으로 선보였다. 사실상 출시된 상태인 멀티플레이를 제외하고 오롯이 싱글플레이를 기준으로 봐도 훌륭하다. 레벨 디자인은 시리즈의 장점을 그대로 담아내 고전적이면서도 도전적인 구성을 자랑하며, 이를 바탕으로 한 세밀하고 똑똑한 전투도 인상 깊었다. 스토리 또한 현 3부작을 마무리함과 동시에 이 시리즈를 영원히 기대하게 만들었다.
세미 오픈월드로 구현된 헤일로 인피니트의 서사
헤일로 인피니트는 넘버링 신작답게 전작에서 이어진다. 코타나를 필두로 한 피조물 봉기에서 패배한 인류와 그 인류의 마지막 희망이자 군벌, 인피니트 함선이 외계종족 코버넌트의 잔당 세력인 베니시드로부터 침략을 받게 된다. 이 과정에서 우리의 주인공 마스터 치프는 베니시드의 수장 에이트리옥스에게 패배하면서 우주로 표류한다. 이후 6개월 만에 펠리컨 파일럿 에코-216의 손에 의해 깨어난 마스터 치프는 제타 헤일로에서 새로운 AI '무기'와 함께 UNSC의 잔당 세력을 모아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여정을 떠난다.
헤일로: 전쟁의 서막을 정신적으로 계승한다는 취지대로 이번 작품은 세미 오픈월드 시스템을 채용했다. 하나의 거대한 필드를 제공하지만, 자유도보다는 진행은 스토리와 전투에 집중해 있는 식이다. 다만, 주요 임무는 순서대로지만 그 임무가 진행되는 장소에 도착하는 과정과 방식은 플레이어가 자유롭게 설정할 수 있다. 가령 스토리 임무 수행을 위해 첨탑으로 가는 도중에 필드 보스를 해치우거나 묠니르 수트 업그레이드를 위한 장비를 수집하러 가는 것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이 세미 오픈월드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이 바로 FOB다. 이번 작품은 철저하게 FOB라 불리는 전방 작전 기지의 탈환과 활용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플레이어는 적에게 점령당해있는 거점을 수복해 UNSC의 집결 지점으로 바꿀 수 있으며, 미션에 투입하기 전 필요한 자원이나 물자 이동수단, 심지어는 병력까지 이곳에서 수급할 수 있다. 필드 중간중간에 있는 베니시드의 각종 구조물들, 이를테면 첨탑이나 스피커, 감시탑 등을 파괴하면 얻을 수 있는 용맹이란 자원으로 인류 측 무기나 장비, 병력의 수준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
장르의 단점을 상쇄시킨 영리합
종합적인 평가를 스포일러하자면, 전반적인 게임의 수준이 굉장히 높다. 우선 레벨 디자인과 그 구성이 정말 치밀한 편이다. 위에서 말했듯이 이 게임은 오픈월드임에도 철저히 스토리와 주요 임무를 중심으로 굴러간다. 평범한 오픈월드게임이라면 한 가지 임무가 끝나면 저 멀리 있는 또 다른 임무를 찾아가기 위해 표류하게 되고, 그로 인해 이동 시간 낭비 등의 단점이 발생한다. 하지만, 다음 임무를 위해 이동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그 중간이나 다음 임무 장소 근처에 있는 FOB를 만날 수 있도록 해 놓았다. 플레이어는 결과적으로 임무에 필요한 자원을 수급할 수 있는 FOB를 미션 수행 전에 자연스럽게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이 FOB는 지역별로 수복 난이도가 다르다. 기본적으론 순서상 현재 진행해야 하는 임무 근처에 있는 FOB일수록 적이 약하다. 게임에서 자연스럽게 유도하는 동선과 다른 곳에 위치한 FOB엔 엘리트를 비롯한 상위 병력이 많이 배치되어 있는 것은 물론 도달하기 힘든 위치에 있기 마련이다. 더불어 FOB에서 가까운 주요 미션을 하러 가는 와중에도 필드 보스나 스파르탄 코어 같은 오픈 월드 수집 요소 등을 배치해 길지 않은 동선임에도 가는 길이 심심하지 않게 만들어 놨다.
스토리 자체도 그냥 똑같은 미션의 반복이 아니라, 적절한 분량의 전투와 보스전이 함께 구현돼 있다. 진짜 아무것도 안 하고 스토리만 플레이해도 30분에 한 번씩 보스전을 즐길 수 있으며, 강력한 적이 나오는 곳엔 근처 병기창에 높은 화력을 자랑하거나 약점을 공략할 수 있는 무기가 배치되어 있어, 어느 상황에서도 막힘없이 재밌게 스토리를 진행할 수 있도록 구성돼 있다.
고전적인 방식의 스토리 진행임에도 오픈월드의 재미는 명확히 즐길 수 있도록 해놓은 영리한 레벨 디자인만큼 전투는 더욱 촘촘하고 스마트하게 진행된다. 일단 플레이어는 마스터 치프 한 명인데, 적들은 잘 구성된 분대와 살벌한 인공지능을 바탕으로 방위작전을 펼친다. 상대적으로 약한 잡졸들은 방패를 들고 철저히 총알받이로 활용하며, 몸집이 큰 만큼 각종 방어구를 두르고 있는 브루트는 플레이어가 멀리 있을 땐 은폐와 엄폐를 활용해가며 화력전을, 가까이 오면 바로 육탄전을 시도한다. 수류탄은 물론 폭발 코어 같은 근처에 있는 폭발물을 던지기도 하며, 심지어는 자폭병도 플레이어에게 던진다. 가끔 플레이어가 아니라 다른 곳에 던질 때도 있는데 이는 퇴로를 차단하려는 목적이다.
이게 전부가 아니다. 엘리트 같은 상위 병종은 쉴드를 두르고 나오기 마련인데, 이 녀석들은 쉴드가 벗겨지면 회복될 때까지 근처 엄폐물에 몸을 숨기고 앉아서 쉰다. 에너지 검을 장착한 녀석들은 은신 기능을 달고 측면에서 플레이어를 기습하며, 잡병들도 대체 어디서 나오는 건지 모를 정도로 수없이 많이 등장한다. 저격수를 비롯해 모든 적들의 총기 명중률도 굉장하기 때문에 한 번의 작은 전투에도 정찰과 전략 수립이 꼭 필요하다.
이 두 요소는 보기 좋게 시너지를 이룬다. 오픈월드 특유의 과도한 이동으로 인한 지루함과 직접 미션과 스토리를 완성하러 다니는 피곤함은 선형적인 구조와 전투의 재미로 상쇄된다. 또한 FPS의 고질적인 단점인 똑같은 형태의 전투 일변도는 치밀한 동선 구성을 기반으로 한 수많은 보스전과 수집 요소 등으로 해결했다. 20년에 달하는 고전 하이퍼 FPS를 이토록 영리한 수준으로 끌어올린 점이 놀랍다.
믿기지 않는 세심함과 치밀함
새삼스럽지만, 이런 굵직한 부분을 떼어놓고 봐도 이 게임의 매력 포인트는 구석구석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모든 적들은 부위별 피격 모션이 다르다. 팔과 다리, 몸, 머리는 물론 심지어는 그런트 등에 있는 배터리나 헌터의 무릎에 있는 작은 방어구 틈새도 공격할 수 있다. 이를 활용하면 방패를 들고 있는 적을 무력화하거나, 방어구를 두르고 있는 적을 한 방에 눕힐 수도 있다. 전작에는 없었던 기능인 데다가 부위 파괴가 구현된 다른 게임과 비교해봐도 무척이나 세심하게 만들었단 것을 알 수 있다.
출시 전에 우려가 됐던 비주얼도 현시점에선 장점이라 칭할 정도로 뛰어나다. 여러 날씨와 낮과 밤 등 시간이 적용되어 있는 제타 헤일로의 풍경은 아름다울 지경이며, 적들도 첫 공개 당시 조롱을 받았던 것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디테일하게 표현돼 있다. 심지어는 비슷하게 생긴 브루트 들도 하나하나 개체별로 문신이나 착장이 다 다르다. 1인칭 시점에서 컷신으로, 반대로 컷신에서 1인칭으로 바뀌는 장면을 보면 각 캐릭터들의 피부나 털, 땅이나 고철 등의 질감 표현도 굉장히 훌륭하다. 새로운 음악감독이 제작한 음악과 사운드도 환상적이다.
다소 줄어든 무기 종류는 오래된 팬 입장에선 조금 아쉽게 다가올 수 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는 좋은 선택이었다. 오히려 덕분에 각 무기들의 특성이 더욱 잘 살아났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상위 무기가 너무 많은 나머지 니들러 같은 무기가 쉽게 버려지기 마련이었는데, 여기선 완전 기본 무기인 MA 돌격소총조차 상황에 따라 충분히 쓸 만할 정도로 무기 밸런스가 좋은 편이다. 덕분에 작전과 적 성향에 따라 전략적으로 무기 세팅을 하는 재미가 높아졌다.
타격감 부분은 냉정하게 이야기해서 호불호의 영역에 있다. 전반적으로 멀티플레이와 상이하지 않다만, 싱글플레이 쪽은 적들의 체력과 실드량이 상대적으로 훨씬 높다. 특히나 커버넌트 종족들 중에서도 유독 덩치가 큰 브루트가 많은 베니시드 특성상 상대하는 적들의 맷집도 만만하지 않은 편이다. 자칼이나 그런트, 드론을 잡을 때는 적이 죽을 때의 묵직한 타격감이 그대로 살아있지만, 쉴드를 잔뜩 두르고 있는 상헬리나 엘리트는 물론 각종 방어구를 두르고 있는 보스를 상대하는 동안에는 지금 공격이 제대로 되고 있는지 의심이 든다. 한 발 한 발의 타격감을 중시하는 유저라면 멀티플레이에 비해서 조금은 심심한 타격감일 수 있다.
스토리에 대해선 자세히 이야기할 수 없지만, 적어도 6편에 들어선 헤일로의 장중한 서사를 비장미 있게 마무리했음은 확실하다. 무엇보다 계승자 3부작의 마무리로는 더할 나위 없이 충분했다.
우리를 배신하지 않은 2021년 하반기 기대작
헤일로 인피니트는 거대한 여정을 담고 있지만, 그것이 절대 지루하지 않게 느껴질 만큼 치밀하고 영리한 구성을 자랑하는 게임이다. 5편에서 겪었던 악평을 넘어서 시리즈 역사를 통틀어도 손에 꼽을 정도로 훌륭한 완성도를 보여준다. 헤일로 인피니트는 온갖 기대작들의 실패 속에서 한편의 방주 같은 역할을 맡을 것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