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케인이 만든 제2의 포스포큰, 레드폴
2023.05.04 11:44 게임메카 신재연 기자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비어있는 필드, 긴장감 없는 전투, 목소리로만 진행되는 밋밋한 스토리텔링, 플레이에 방해가 되는 자잘한 최적화 문제, 실망스러운 비주얼, 무엇보다 핵심적인 볼륨 부족까지. 얼핏 올해 1월 출시된 포스포큰에 대한 평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 지난 2일 출시된 따끈따끈한 신작 이야기다. 개발사의 이름과 트레일러를 통해 모은 기대감이 출시와 함께 무너졌다는 것마저도 비슷하지만, 어쨌든 다른 게임 이야기다.
문제의 신작은 ‘레드폴’, 이머시브 심의 대가인 아케인 스튜디오가 개발한 게임이다. '이상하다', '독특하다'는 말을 들을지언정 '실망했다'는 말을 듣는 일은 거의 없었던 개발사였는데,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뱀파이어에게 점령된 마을처럼 황망한 게임 ‘레드폴’을 직접 살펴봤다.
살아 움직이는 뱀파이어의 마을, 레드폴
레드폴을 살필 때 자연스럽게 기대한 것은 바로 ‘환경’이었다. 아케인 스튜디오가 가진 독보적 장점이 바로 절로 몰입하게 만드는 현실감 있는 환경 아닌가. 이는 본작에서도 뚜렷한 어필 포인트가 되어줬으며, 실제로도 이런 환경이 준비돼 있었다. 어딘가에 있을 법한 미국의 소도시가 구현된 맵에서는 갑작스러운 사고에 휘말리며 폐쇄적으로 변한 사람들의 모습이나 교회에 모여 상황이 나아지기를 바라는 이들 등, 다양한 환경이 플레이어를 반겼다.
여기에 빈 집이나 차에 붙어 있는 메모나 그림 등의 메시지는 급변한 레드폴과 주민들의 혼란을 적나라하게 보여줘 더욱 몰입을 살린다. 특히 아이들의 일기나 구석에 처박힌 보드게임, 찢어진 다이어리 등은 레드폴에 벌어진 참사가 얼마나 비참한지를 간접적으로 묘사하는 요소가 되어준다.
이런 몰입감을 살린 환경 구성은 전투에도 적용된다. 필드에는 뱀파이어와 이들을 숭배하는 광신도, 그리고 모종의 사유로 레드폴에 자리를 잡게 된 용병회사 벨웨더 직원들이 각자의 목적을 위해 배회하며, 간혹 서로 충돌할 경우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이를 활용해 일부러 한 진영 부근에 총성을 내며 충돌을 유발, 뒤엉켜 전투를 진행하는 동안 몰래 빠져나와 스토리를 순탄하게 진행하는 등, 주어진 환경을 활용해 이익을 보는 플레이를 편리하게 즐길 수 있었다.
전투도 마냥 밋밋하지만은 않다. 특정 적을 제거할 경우 다른 적이 찾아오거나, 터렛이 플레이어에게 겨눠지는 등 하나의 행동에 부가적으로 이어지는 요소들이 다양하게 준비돼 있다. 더해 뱀파이어의 경우 회복을 막기 위해 '말뚝'을 박아 처치해야한다는 설정에 맞춰 체력을 깎아낸 뒤 무기에 단 말뚝을 박아 뱀파이어를 처단하게 되는데, 그 때의 타격감도 상당히 인상 깊었다.
정정한다, 살아 움직’였던’으로
하지만, 이 모든 장점에도 불구하고 레드폴을 추천하기는 다소 꺼려진다. 게임에서 이루어지는 상호작용 자체만 보면 꽤 흥미롭지만, 여기에 플레이어가 관여하는 순간 그 모든 상호작용의 재미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우선 부정적인 평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타격감’이 가장 큰 문제다. 게임패드의 경우 할당된 진동이 약해 무언가를 '공격한다’는 생각보다 ‘툭 친다’에 가까운 피드백이 돌아왔다. 그나마 진동이라도 있는 게임패드와는 달리, 키보드/마우스 환경에서는 청각적 요소를 제외하면 이 타격감을 본격적으로 느낄 수 있는 요소가 거의 없다시피 했다.
그나마 이를 보완해주는 것이 전투에 도움을 주는 필드 환경의 밀도다. 도로에 버려진 차와 변압기, UV 라이트와 온갖 생활용품을 곳곳에 배치해 화상이나 감전, 뱀파이어 석화 등 상태이상으로 전략을 확보할 수 있는 요소나 자원을 확보할 수 있는 환경이 촘촘하다. 이런 밀도 있는 필드와 앞서 설명한 적들간의 상호작용이 더해지면 난전이 벌어진 곳의 변압기를 쏴 모두를 감전시키거나, 차량의 폭발로 소음을 유도해 적들의 시선을 그곳으로 몰아버릴 수도 있다. 필드에서 회수한 생활용품들은 자동으로 재화로 변환돼 번거로움도 한결 줄었다.
하지만 이 모든 요소를 망치는 것이 바로 적의 AI다. 레드폴의 적들은 자신들끼리는 있을 때 열띤 사격과 난전을 벌이며 전투를 벌이지만, 정작 플레이어를 인식하면 총을 들기까지 3~5초가량 시간을 허비해 샷건이나 라이플을 들고 있는 유저라면 진작 처리를 끝낼 정도로 반응이 늦다. 더군다나 대부분 준비하는 동안 자리 이동조차 없이 총만 뽑아 드는 동작만 취하니 이미 총을 든 유저 입장에서는 준비된 과녁을 쏘는 기분만 든다. 일반적으로 성장은 전투를 즐겁게 만들고, 전투의 즐거움은 성장의 원동력이 되어준다. 그러나 전투의 즐거움이 없다 보니 성장의 원동력이 사라진다. 강해져 봐야 저 멍청한 AI들이나 상대해야 하다 보니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
주인공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스토리 전개 방식에도 문제가 많다. 최근 모바일게임도 본격적으로 지원하는 입술 동기화나 표정 변화 등이 미비해 안전지대에서 함께 생존하는 생존자들로부터 감정적 피드백을 거의 느낄 수 없다. 스토리를 이야기하는 방향도 밋밋하다. 메인 퀘스트를 진행할 때마다 정지된 화면을 비추며 목소리만 들려주는 스토리텔링은 진부함에 가깝고, 호기심을 이끄는 이야기는 게임에 집중해야 할 동기를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런 점들이 종합돼 레드폴은 ‘분명 살아 숨 쉬는 환경일 텐데도 주인공이 난입하기만 하면 모두가 숨을 참는’ 기묘한 상황만 남는 게임이 된다. 분명 조금 전까지 광신도와 격렬한 전투를 벌이던 베테랑 벨웨더 직원은 물음표 세 개만 띄우며 멍하니 서 있는 신입사원이 되어버리고, 문을 여는 열쇠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창문 앞에서 눈을 마주한 광신도나 뱀파이어는 플레이어를 알아차리지 못한다.
여기에 버그까지 더해져 플레이어 캐릭터 앞에 있는 뱀파이어가 적을 인식하지 못하고 몇 발의 총을 쏴도 잠에 들어 있고, 제한된 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중요한 게임임에도 잔탄수 표기에 오류가 발생하는 등 여러모로 곤란한 상황들이 연출된다. 이렇듯 레드폴의 세계는 얼핏 생동감이 넘쳐 보여도 플레이어가 끼는 순간 일관성이 없는 세상이 되어버리니, 그 어떤 환경에서도 재미를 느끼기가 힘들어진다.
가격, 최적화, 게임성의 부정적 삼위일체
더해 PC 환경에서는 RTX 40시리즈에서도 최적화 문제가 발생하거나, 콘솔에서도 프레임 방어가 잘 되지 않는 등 기술적 문제도 산적한 실정이다. 물론 제다이 서바이버처럼 게임은 잘 만들었고 기술적 부분에서만 문제가 있다면 지속적인 업데이트나 패치를 통해 평가가 회복되는 게임도 존재한다. 그러나 레드폴이 그런 게임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되지는 않는다. '이 게임이 무엇을 보여주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할 수 있는 답변이 쉽게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리 잘 짜인 환경이 제공되더라도 레드폴은 루트 슈터 장르다. 플레이어가 재미를 느끼는 부분은 환경을 살피는 것이 아니라 게임이 제시하는 문제 혹은 고난을 마주할 때다. 하지만 이 게임은 조악한 AI로 문제가 없다시피 하며, 슈팅 중심의 게임임에도 총 소리 이외에는 마땅한 타격감이나 역동적인 고난을 느낄 수도 없다.
출시 이틀이 지난 4일 기준, 레드폴의 스팀 유저 평가는 대체로 부정적(1,124개 중 30%가 긍정적)을 유지 중이다. 7만 9,900원에 달하는 가격임에도 최적화와 게임성, 둘 모두에 결함이 있는 상태로 출시됐기에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리뷰를 정리하고 게임을 하면서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가격대가 낮았다면, 최적화가 좋았다면, 게임성이 지금보다 나았다면 평이 조금은 달라졌을까? 최근 풀프라이스 게임에 배신당하는 경우가 많아지며, 유저들은 많이 날카로워진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아케인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모쪼록 실망한 유저들의 발걸음을 돌릴 수 있는 새 소식을 하루빨리 들을 수 있기만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