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펑크 2077 팬텀 리버티 체험기, 큰 변화는 보지 못했다
2023.06.13 10:00 게임메카 류종화 기자
벌써 3년 전인가, 사이버펑크 2077 정식 출시 전 미디어 시연을 통해 초반 4시간 분량을 플레이 해 본 것이. 당시만 해도 기자는 주변에 "사이버펑크는 최고의 게임이에요"라며 호평을 하고 다녔다. 매력적인 2077년의 나이트 시티, 수많은 사이버웨어, 다양한 스킬 트리, 수많은 캐릭터와 상호 작용, 서로 얽히고 설켜 선택에 따라 달리 진행되는 퀘스트, 오픈월드를 가득 채운 즐길거리들...... 그리고 제작진이 게임 초중반에만 힘을 잔뜩 줬고 중후반으로 갈수록 힘이 점점 빠졌다는 것을 정식 출시 후에야 깨달았다.
실제로 사이버펑크 2077의 중후반부는 선형적이고 단순한 퀘스트만으로 구성됐으며, 이마저도 밀도가 상당히 낮았다. 나중에 알려진 CDPR의 내부 상황 등을 들어보니, 모두의 기대가 몰린 상태에서 발매 일정에 쫒기다 보니 당초 구상했던 이야기를 미처 다 풀어내지 못한 채 출시된 것이 거의 확실해 보인다. 그 탓에 식스 스트리트나 부두 보이즈, 스캐빈저 등의 갱단은 거의 엑스트라에 가까운 낮은 비중을 보였으며, 산토 도밍고나 퍼시피카 지역은 가끔 벌어지는 돌발 퀘스트 정도를 제외하면 텅 빈 느낌이 들 정도였다. 출시 후 시간이 지나며 수많은 버그는 나름 정상화 됐지만, 이러한 콘텐츠적 측면은 개선되지 않았다.
사실 콘텐츠적 문제는 패치가 아니라 DLC나 확장팩으로 풀어내야 할 숙제였다. 그리고 오랜 기다림 끝에, 그 답을 제시해 줄 첫 확장팩인 '팬텀 리버티'가 오는 9월 출시된다. 잘 다져 놓았지만 생명력이 부족했던 나이트 시티라는 기반에, 드디어 추가 내용물이 들어찰 때가 온 것이다. 과연 팬텀 리버티는 이 같은 아쉬움을 달래줄 수 있을지, 서머 게임 페스트를 필두로 한국을 포함한 전세계 각국에서 진행된 미디어 시연 이벤트를 통해 체험해 봤다.
신규 지역 도그타운과 첩보 스토리
일단, 시연 버전을 시작하고 나면 곧바로 새로운 스토리가 시작된다. 옛 동료였던 T-버그가 그랬듯, 의문의 넷러너 송버그가 렐릭의 존재를 안다며 V의 머릿속으로 통신을 보내 대통령 경호 의뢰를 한다. 사실 가장 흠칫했던 건 그 신캐릭터의 목소리가 T-버그와 비슷했다는 부분이었는데, 아마 같은 성우가 아닐까 싶다. 어쨌든, 그렇게 렐릭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 그녀의 부름에 응답하는 것이 신규 스토리다.
신규 스토리에서도 주인공은 V다. 머나먼 과거나 엔딩 후의 이야기가 아니라, 본편 스토리를 진행하던 중에 벌어지는 일이다. 시연 버전에서는 V가 타케무라와 함께 오다 산다유를 만나 아라사카 하나코에게 사부로의 죽음과 관련된 일을 전하는 이벤트 바로 전 시점이었는데, 예상과는 달리 최후반 이야기가 아니어서 조금 당황스러웠다. 기존 사이버펑크 2077을 플레이 한 유저들이라면 대부분 최종 엔딩 직전 세이브파일을 가지고 오픈월드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즐기고 있을 텐데, 중반부터 시작되는 이야기 진행을 위해 게임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 상당한 부담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걱정이 들었다. 다만, 이에 대해 CDPR 관계자는 '해당 이벤트가 발생하는 시점은 유저가 선택 가능하다'고 언급했기에, 걱정은 기우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해당 퀘스트는 대통령이 탄 비행선이 시내에 추락하고, 그를 구하러 가는 V의 시점에서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사실 이 신규 퀘스트에 대해서는 여기서 할 말이 없다. 기자는 신규 퀘스트보다는 신규 확장팩 적용 후 기존 세계가 얼마나 달라질 것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퀘스트 초반에 지역을 이탈해 해당 퀘스트를 의도적으로 실패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송버드의 알찬 욕설을 들으며 나이트 시티로 복귀할 수 있었다.
이후에는 본격적인 나이트 시티 탐험을 진행했다. 먼저 새로 추가된 지역 '도그타운'은 앞서 본편에서 공사중으로 막혀 있던 지역이다. 전체맵을 보면 퍼시피카 동쪽에 커다란 경기장이 보이는데, 이 지역이 바로 도그타운이다. 팬텀 리버티에서는 이 지역이 오픈됨에 따라 해당 지역을 꽉 채운 새로운 퀘스트, 새로운 픽서(중개인), 새로운 세력 등을 만날 수 있다.
기자는 이 지역에서 두 개의 사이드 퀘스트를 수행했다. 브레인댄스(BD) 제작자 중 한 명을 구출하는 퀘스트, 그리고 전직 경찰 두 명을 구출하는 퀘스트다. 중간에 이런저런 스토리가 진행되긴 하지만, 결국엔 일자 진행 속에서 (몰래 잠입/다 쓸어버리기)라는 두 가지 길을 택하는 정도의 분기점이 존재한다. 아쉽게도 시간이 제한된 시연에서는 다른 퀘스트와 엮인다거나 향후 어떤 내용이 추가로 전개되는가에 대한 확인은 불가능했다. 적의 수장을 죽일 지 말 지에 대한 선택지가 있었기에, 이 선택이 향후 다른 퀘스트에 영향을 미치길 바랄 뿐이다.
샅샅이 조사해 본 것은 아니지만, 도그타운의 전체적인 모습은 마치 본편 초반부 V의 집이 위치해 있던 메가타워를 보는 듯 했다. 지나가는 행인들도 뭔가 역할이 부여된 채 생기가 넘쳐 흐르며, 상호 작용 가능한 부분도 많다. 다만, 앞서 그랬듯이 첫인상만으로 이 지역이 뭔가로 가득찬 곳이라고 판단하긴 어려워 보인다. 일단은 DLC의 메인 지역이니 어느 정도 납득될 정도로 퀘스트가 짜여 있긴 하겠지만, 이는 훗날 출시 후 직접 눈으로 봐야만 확신할 수 있을 것 같다. 초반만 보고 두 번씩 속을 순 없으니까.
기존 지역들은 얼마나 변했나?
사실 이번 시연에서 목표했던 부분은 신규 지역이나 대통령이 어쩌고 하는 신규 퀘스트가 아니었다. 바로 기존 지역들이 얼마나 알차게 바뀌었는가를 확인하고 싶었다. 용두사미라는 지적을 받았던 퀘스트 밀도, 뒤로 갈수록 선형적이고 반복적으로 변해 갔던 퀘스트 전개, 후반 지역으로 갈수록 적어지는 오픈월드 속 상호작용 요소, 끝내 맥거핀으로만 남은 수많은 '잠긴 문' 등... 이런 부분이 얼마나 보완됐을지가 가장 큰 관심사였다. 팬텀 리버티가 단순한 추가 콘텐츠 DLC 정도로 남을 지, 아니면 사이버펑크 2077을 완벽한 게임으로 거듭나게 하는 필수 확장팩이 될 지가 바로 여기에 달렸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이러한 부분을 확인하기 위한 여정은 실패로 끝났다. 시연 시간이 제한되어 있었던 것이 가장 큰 원인이며, 시연용으로 제공된 세이브파일이 나이트 시티 전 지역을 돌아다니며 진행한 파일이 아니었던 것이 두 번째 원인이었다. 빠른 이동 포인트가 비활성화 되었기에 도그타운에서 식스 스트리트가 장악한 산토 도밍고 지역으로 이동하는 데만 해도 오랜 시간이 걸렸고, 도착한 후에 수많은 퀘스트 표시를 찾아다녔으나 본편에서 이미 다 진행했던 기존 퀘스트들이었다. 기존 퀘스트를 100%에 가깝게 완료한 세이브파일에 팬텀 리버티 DLC를 적용했다면 새로운 요소들만 체험하며 시연을 알차게 보낼 수 있었을 텐데, 이로 인해 상당한 시간을 허비하고 말았다.
일단 기존 지역에 새로운 퀘스트가 빼곡히 들어차거나 한 것은 확인하지 못했지만, CDPR 관계자에 의하면 기존 지역에도 돌발 퀘스트 형태로 콘텐츠가 다수 추가된다고 한다. 예를 들어 도그타운에서는 보급 물자를 두고 쟁탈전을 벌인다거나, 도시 곳곳을 돌아다니며 자동차를 배달하고, 부동산을 구매하는 등의 다양한 행동이 가능해진다고. 실제로 메일함과 메시지를 보면 기존 지인 캐릭터들이 보낸 수많은 글을 읽을 수 있는데, 이러한 신규 활동들을 암시하는 내용이 상당수 보였다. 뭐, 본편에서 보지 못했던 새로운 내용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반가울 뿐이지만.
아, 월드맵에서만 확인한 거긴 하지만 도그타운 외에도 추가로 오픈되는 지역이 하나 더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바로 다운타운과 다리로 연결된 서쪽 바다위 섬, 아마도 나이트 시티 공항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이 곳도 활성화가 되어 있었는데, 찍고 이동하려 하니 네비게이션이 제대로 루트를 연결해주지 않아 이동할 수가 없었다. 향후 스토리 전개에 따라 이곳까지 영역이 확대될 것으로 기대되는 부분이다.
또한, 운전 도중 기존에 보지 못했던 두 가지 특징점이 보였다. 경찰 앞에서 남의 차를 뺏거나 행인을 차로 치는 등 사고를 쳤을 때 수배 명령이 떨어지는데, 이 때 나를 잡기 위한 경찰들의 무전이 들려와 쫒고 쫒기는 재미를 극대화시킨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카 체이스다. 사람이 타고 있는 차를 들이받으면 각각의 탑승자에 대미지 표시가 뜨고, 간혹 선량하지 못 한 시민들이 길거리에서 자기 차를 들이받은 주인공을 쫒아오며 추격전을 벌이기도 한다. 여기에 일부 이벤트에서만 제한적으로 선보여졌던 '차 탄 채로 총 쏘기'가 활성화돼, 본격적인 카 체이스가 가능해졌다. 아마 신규 퀘스트에는 이런 카 체이스에 초점을 맞춘 것도 상당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전투에서는 꽤 달라진 부분이 여럿 보였다. 먼저 돌발 퀘스트 수행 중 적이 내 총알을 카타나로 방어하는 모습이 비춰졌는데, 실제로 카타나로 적의 총알을 막는 기능이 추가됐다. 그리고 검을 휘두르거나 총을 쏘는 등 전투 동작에 스태미너를 소모하는 것이 확인됐다. 당초 스태미너는 달리기에서만 소모될 뿐 딱히 전투에서는 큰 활용도가 없었는데, 이를 통해 전투를 더욱 체계적이고 전략적이게 만들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다만, 기존 전투에 익숙해진 상황에서는 갑자기 하나의 제약이 생긴 셈이기에 조금 불편하게 느껴진다. 실제로 스태미너가 떨어지면 검을 제대로 휘두르지 못한다던지 에임이 크게 튀는 등 전투에 제약이 생기는데, 이런 상황에서는 스태미너를 회복하기 위해 잠시 피신하는 것이 강제된다. 전반적인 전투의 템포가 한 단계 낮아지는 느낌인데, 검으로 총알 막기 외엔 좋아졌다고 할 만한 기능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이 부분은 추가적인 확인이 더 필요해 보인다.
더불어 팬텀 리버티에서는 신규 특성도 해금됐다. 과거 에러 형식으로 잠겨 있던 '렐릭' 성향이 오픈된 것인데, 아쉽게도 이번 시연에서 전투다운 전투 없이 오픈월드 탐험에 힘쓰다 보니 해당 성향에 포인트를 투자하지는 못했다. 렐릭 특성들의 활용도가 얼마나 크냐에 따라 위에서 언급한 전투의 긍정적 액션으로 작용할 듯 하다.
아직 좀 더 두고봐야 한다
전반적으로 이번 시연에서는 나이트 시티가 확장팩을 통해 진정으로 개벽했다는 생각이 들진 않았다. 짧은 시연 시간과 클리어가 덜 된 세이브파일 때문에 기존 세계의 큰 변화를 느끼긴 어려웠다. 물론 팬텀 리버티의 메인 퀘스트와 도그타운 내부에 구현된 새로운 콘텐츠들은 나름 호평을 받고 있고 기존에 없던 새로운 경험들을 제공한다고 하지만, 전체적인 게임을 바꿀 정도인가에 대해서는 아직 물음표 상태다.
사실 이번 시연은 도그타운에서 일어나는 신규 퀘스트 진행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보였다. 개발진이 강조한 방향도, 사전 공개된 영상과 내용들도 대부분 여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러나, 기존 사이버펑크 2077을 충분히 즐긴 이들에게는 그저 신규 지역 하나의 추가일 뿐이다. 그 안에 얼마나 많은 콘텐츠가 담겨 있건, 2년 반 동안 즐겨온 기존 게임에 큰 변화가 없다면 게임을 다시 시작할 동기부여로는 조금 부족하다. 추가 스토리는 개발자 시연 영상 정도로 풀어내고, 직접 시연 버전은 기존 세계를 더욱 충실하게 만들 만한 변화를 체험하는 데 초점을 맞춘 빌드였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참고로 CDPR은 팬텀 리버티 출시 전 바뀐 시스템 일부를 패치 형태로 선 적용하고, 확장팩을 통해 추가 콘텐츠를 제공하는 방법을 고민 중이라고 한다. 과연 패치와 확장팩을 통해 나이트 시티에 생명력이 불어넣어질 수 있을 지, 아니면 이번에도 용두사미로 끝날 지. 좀 더 시간을 갖고 지켜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