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言] 키보드 종횡무진하는 게임 ‘키키캐키캡’
2024.06.29 11:00 게임메카 신재연 기자
현대에는 게임 속 세상을 조망하는 다양한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이들은 대개 기존의 게임을 오마주해 공감을 얻거나, 세계관 자체를 게임에서 차용해 독특한 배경과 이야기로 게이머들의 공감을 사며 인기를 끌곤 한다. 하지만 이런 소프트웨어 속 세상이 아니라 하드웨어의 세상이 배경이라면 어떤 스토리가 등장할까?
오는 11월 출시 예정인 ‘키키캐키캡’은 하드웨어들이 사는 ‘전자기기 마을’을 배경으로, 마을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키보드의 마지막 키를 조작해 거대하고 악랄한 전자기기들을 파괴하는 게임이다. 다만, 세계관보다 더 특이한 제목과 비주얼에 도대체 이게 어떤 게임인지 감을 잡기가 어렵다. 모든 것이 생소한 키키캐키캡의 이야기를 들어보기 위해 개발팀 ‘이게게개임’의 꾸덕 팀장에게 직접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키보드 키 캐릭터 키캡이 선보이는 액션 만들기, 이게 게임 개발임!
‘키키캐키캡’은 ‘키보드 키 캐릭터 키캡’을 줄인 제목 그대로 ‘키’를 조작해 다양한 키캡(아이템)을 획득하며 전투를 벌이는 2D 액션 로그라이크 게임이다. 플레이어는 키보드의 마지막 ‘키’로서 몰살당한 키보드 종족의 복수를 위해 마을의 다른 모든 전자기기와 맞서게 된다. 맞서는 방식은 캐릭터가 장착한 축, 그리고 장착한 키캡에 따라 달라진다. 각 축은 공격 방식을 결정하고, 키캡은 아이템으로 활약하며 일종의 버프 효과를 제공하는 장치로 쓰인다.
이 과정에서 제목만큼이나 독특한 것을 만나볼 수 있는데, 바로 직관적 조작이다. 플레이어는 키보드에 있는 53개의 키를 게임의 필드이자 입력키로 활용하게 된다. 이에 따라 상호작용을 원하는 위치의 키를 누르기만 하면 게임을 즐길 수 있다. 겉보기에는 사용하는 키가 많아 어려워 보일 수 있지만, 의외로 매우 직관적인 조작 시스템인 셈이다.
이같은 기획은 키보드의 특징인 ‘누를 수 있는 버튼이 많다’는 요소에서 시작됐다. 초기에는 많은 키들을 다 사용하는 게임을 만들어보자는 의도에서 시작했다. 다만 사용하는 키가 많다는 것은 조작의 복잡함과 직결되기에, 해당 키 위치에 직접 상호작용하는 시스템을 택했다. 이는 “조작이 어려울 수는 있어도, 복잡해지진 말자”라는 모토가 담긴 결과다.
키키캐키캡은 조작만큼이나 장르 선정에도 꽤 많은 고민이 이루어졌다. 우선, 액션과 플랫포머라는 장르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만 했다. 플랫포머를 채택할 경우 입력한 키 위치에 발판이 생겨, 밟고 지나가거나 발판을 이용해 굴러오는 돌을 막는 등의 시스템이 등장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여러 키를 연타하며 진행하는 액션이 더 마음에 들어 ‘액션’ 장르를 채택했다고.
이렇게 주 장르를 선택한 뒤에는 세부 장르를 고민했다. 당시 유행 중이던 통칭 ‘뱀서류’ 장르와 ‘로그라이크’가 선택지였다. 그러다 뱀파이어 서바이버와 같이 넓은 맵에서 즐기기보다, 키보드 크기만큼의 맵에서 진행하는 것이 좀 더 '키보드 게임'이라는 콘셉트와 어울린다 생각해 로그라이크를 채택하고, 지금과 같은 시스템을 구축하게 됐다는 것이 꾸덕 팀장의 말이다.
방식이 정해진 뒤에는 게임의 세계관을 정립해야 했다. 앞서 언급된 '키보드 크기만큼의 맵'에서 누른 키로 공격한다는 시스템과 어울리는 콘셉트를 생각하기 위해 많은 논의가 이루어졌다. 초반에는 마법사 콘셉트로 ‘마법을 시전하는 위치를 키보드로 정한다’는 느낌이나, 돌연 동물 콘셉트로 노선을 틀어 고슴도치 캐릭터는 가시를 발사하고, 곰 캐릭터는 누른 키 위치로 할퀴는 공격하는 등 다양한 콘셉트가 제시됐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팀 내에서 ‘이거다!’라는 생각이 드는 주제가 정리되지 않았다. 그러다 배경 콘셉트도, 맵도, 캐릭터도 키보드에서 시작해보자는 이야기가 등장했다고. 꾸덕 팀장은 “그러자 기계식 키보드의 특징을 차용해 축마다 다른 공격방식이나, 전자기기와 싸우는 세계관 등 게임의 주요 콘셉트가 머릿속에 그려지기 시작했다. 가장 좋아하는 말 중 하나인 '좋은 아이디어는 하나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아이디어다'라는 말이 이런 게 아닐까 싶었다”고 전했다.
입대도 진학도 그들을 막을 수 없다 ‘이게게개임’
팀 이게게개임은 ‘이게 게임 개발임’의 줄임말로, 고등학생 시절인 2022년 초 대학 진학을 목표로 대화를 나누던 중 결성된 팀이다. 이후 2022년 9월부터 키키캐키캡을 제작하기 시작했으며, 현재는 프로그래머 겸 팀장 ‘꾸덕’, 사운드 담당 ‘눈감아’, 아트 담당 ‘티오’, 기획 및 마케팅 담당 ‘함모리’까지 총 4인으로 구성돼 있다. 사실 숨겨진 기획 담당자인 ‘엠케이’도 있는데, 개발 중 입대를 하게 되며 자리를 비우게 됐다고. 이에 따라 4인 체제이되 구성원은 5인인 기묘한 팀이 됐다.
이게게개임은 결성 직후, 우선 단순 포트폴리오 용으로 비주얼 노벨 게임을 개발한 바 있다. 당시 개발한 작품은 공모전에서 은상을 수상하는 등 성과가 있기는 했지만, 팀원들의 기준에서 재미있는 게임이라 말하기에는 다소 아쉬웠다. 이에 진짜 재미있는 게임을 만들자는 목적으로 다음 작품인 ‘키키캐키캡’ 개발을 시작했다. 개발 초기 당시 “잘 만들어서 지스타에서 전시도 해보자!”라는 농담이 실제로 이루어지기 까지는 약 1년 가량이 걸렸다.
이 과정에서 시행착오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프로그래머를 맡았던 꾸덕 팀장의 경우 자칫 쉽게 지루할 수 있는 화면에 변화를 주기 위해 준비한 ‘테마 시스템’에서 머리를 싸맸다.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인 기능을 만들다 새로운 버그가 튀어나오기도 하는 등 여러 고난을 겪었기 때문이다. 꾸덕 팀장은 “그래도 만들면 굉장히 유용할 것이라는 마음 하나로 밤샘 작업을 이어나가 완성해냈을 때 ‘내가 이겼다!’라는 생각이 들며 굉장히 신이 났다”고.
다른 팀원들에게도 멜로디는 보존하되 테마에 맞춘 변주를 시도하거나, SNS를 통한 홍보 만화를 연재한다거나, 입대하거나, 합류와 함께 크라우드 펀딩 페이지를 만들며 굿즈를 기획하는 등 여러 고난이 이어졌다. 하지만 꾸준한 노력과 대화 및 시도를 통해 모두 극복해내는 것에 성공했다고. 특히 함모리 기획은 “줄바꿈 방법을 몰라 하나하나 스페이스바로 여백을 만들다 ‘SHIFT+ENTER’를 사용하면 줄바꿈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됐을 때 그만큼 ‘웃픈 상황’이 없었다”며 당시를 소회했다.
신생 개발팀과 키캡의 모험, 앞으로 어떻게 될까?
키캐캐키캡의 예상 출시 일정은 오는 11월로, 꾸덕 팀장은 “출시 직후 당장 DLC를 준비하거나 추가할 계획은 없다”고 전했다. 대신 출시 이후 꾸준한 업데이트를 거쳐 새로운 적들과 아이템, 맵 등을 선보일 예정이다. “개발자로서는 당연히 여러 콘텐츠나 DLC도 만들고, 더 많은 것들을 보여주고 싶지만, 당장 중요한 것은 게임의 완성도이기 때문”이라는 것이 꾸덕 팀장의 설명이다.
이어 “지금 스팀에 올라와있는 데모버전과 공개된 내용들 외에도 아직 보여드리고 싶은 것들, 보여주지 못한 것들이 엄청나게 많다. 잘 준비해서 좋은 모습으로 보여드리겠다”며, “언제나 큰 관심과 사랑을 주시며, 기대해주시는 팬 분들께 항상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처음 시작할 때의 초심과 열정은 지금도 역시 잃지 않았다. 여러분들께서 주셨던, 응원과 기대들 전부 너무나도 감사히 잘 받았다. 꼭 좋은 게임으로 반드시 보답하겠다”는 말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키키캐키캡은 2일 기준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 텀블벅에서 달성률 459%를 기록하며 선전하고 있다. 이게게개발은 이 중 10% 가량의 금액을 다국어 로컬라이징에 배정한다 밝혔기에 여러 국가에서 키캐캐키캡을 더욱 편하게 즐길 수 있을 전망이다. 우선 한국어, 영어, 일본어 출시가 확정됐으며, 아시아 시장 확보를 위해 중국어를 우선 순위에 두었다. 이후로는 키보드/마우스 사용률이 높은 국가를 중심으로 로컬라이징을 추진할 계획이다. 이들이 세계로 전할 ‘전자기기 마을’ 속 갈등과 키의 복수가 과연 어떤 결말을 맞이할지 정식 출시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