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특집] 생성형 AI와의 공존 ② 레드징코 김태곤 디렉터
2026.01.05 10:30 게임메카 이우민 기자
작년에 게임 개발 환경에서 ‘생성형 AI’ 활용은 거부하기 어려운 흐름으로 자리잡았다. 그럼에도 이에 대한 찬성과 반대는 엇갈리고 있다. 게임업계에서도 ‘AI 활용이 미래’라며 적극적인 도입을 주장하는 측이 있는 반면, AI 남용으로 인한 질적하락 등에 대한 우려를 드러내며 반대하는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게이머 사이에서도 결과물만 좋다면 AI 사용 여부는 크게 상관이 없다는 반응부터, AI를 사용해 개발한 게임에 불매운동을 벌인다는 부정적인 의견까지 편차가 크다.
이처럼 생성형 AI에 대한 찬성과 반대가 엇갈리는 와중, 국내 유명 게임 개발자나 개발사 대표들은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게임메카는 AI로 인한 변화가 한층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되는 2026년을 맞이해, 국내 대표 게임 개발자를 초빙하여 생성형 AI 활용에 대한 현황과 앞으로의 전망을 들어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김태곤 디렉터는 ‘천하제일상 거상’, ‘임진록’ 등 굵직한 역사 게임을 만들어 온 인물로, 게임 업계에 30년 이상 몸담은 베테랑 개발자다. 엔드림게임즈 공동대표를 거쳐 2024년 레드징코게임즈를 설립한 김 디렉터는 신작 MMORPG '프로젝트 임진' 개발을 총괄하며 현장에서 AI 도입을 적극 실험하고 있다.
김 디렉터는 AI를 게임 시장의 다양성을 회복할 열쇠로 내다봤다. AI를 통한 비용 절감이 리스크를 낮춰, 거대 자본의 논리 대신 개발자 개인의 철학이 담긴 실험적 시도를 가능케 한다는 것이다. 그는 과거 흥행 공식만 좇던 관행에서 벗어나, 기술적 효율화가 역설적으로 창작자의 고유한 색채와 개성을 되살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변화에 따른 그림자도 존재한다. 그는 단순 분업화된 일자리는 감소할 것이며, 전체 공정을 이해하는 통섭형 인재만이 경쟁력을 가질 것이라 진단했다. 또한 AI 활용에 대한 유저들의 반감을 언급하며, 효율성 속에 개발자의 '진정성'을 어떻게 녹여낼지가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맥락과 스토리를 부여하는 영역은 대체 불가능하며, 이것이 결국 인간의 몫으로 남는다는 설명이다.
Q. 먼저 현재 회사 내부에서 AI를 어느 정도 활용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김태곤 디렉터: 기획자, 프로그래머, 디자이너, 마케팅 등 대부분 업무에서 AI를 사용 중이며, 아주 빠른 속도로 개발의 중요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 약 30%의 업무가 AI로 대체됐는데, 기획 쪽보다는 디자인 분야에서 조금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
Q. AI 사용을 굉장히 긍정적으로 생각하시는 것 같다.
김태곤 디렉터: 좋은 기술이 있다면, 이를 사용하지 않을 때 오히려 도태될 위험이 있다. 따라서내부적으로 AI 사용을 적극적으로 권장한다. AI가 도입되며 업무 영역에도 변화가 생겼는데, 예를 들어 예전에는 기획자가 하던 던전 설계를 디자이너에게 처음부터 끝까지 맡겨보곤 한다. AI가 실무를 도와주니, 개발자가 더 넓은 범위의 기획과 설계를 고민할 수 있게 된 셈이다.
Q. 게임 개발에서 AI가 가진 가장 큰 장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김태곤 디렉터: ‘창작자의 개성'과 '게임의 다양성'을 회복할 수 있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영화 감독처럼 게임도 '김태곤 사단', '김학규 사단'이라며 만든 사람의 이름을 내걸고 그들의 철학을 소비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시장이 커지며 막대한 자본이 투입되기 시작하고,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천편일률적인 성공 공식을 따르게 되면서 개발자의 이름은 회사 간판 뒤로 사라져 버렸다.AI를 활용한 작업 효율화는 이 판도를 바꿀 수 있다. 10명이 하던 일을 5명이 할 수 있게 되면 개발 비용이 획기적으로 줄어든다. 마치 노동 집약적이었던 애니메이션 산업이, 디지털 도구의 발전에 의해 이전보다 적은 노동량으로 전 세계적 히트작을 내는 것과 같다. AI를 통해 비용 리스크가 줄어들면, 거대 자본의 논리에서 벗어나 개발자 개인의 철학과 개성이 담긴 실험적인 시도들이 가능해진다. 획일화된 게임 시장에 다시금 다양성을 불어넣는 긍정적인 계기가 될 것이다.
Q. 게임 개발에 있어서 향후 3~5년 내에 AI가 어느 정도까지 확대될 것이라 보는지? 그에 따른 일자리 변화를 어떻게 전망하나?
김태곤 디렉터: 일자리 감소는 이미 시작됐고 불가피하다. 과거에 10명이 하던 일을 5명이, 혹은 2명이 하게 될 것이다. 나사만 조이거나 도색만 하는 식의 분업화된 전문가는 AI에게 자리를 뺏길 위험이 크다. 때문에 나사도 조이고 도색도 할 줄 아는, 전체 공정을 이해하는 사람이 살아남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혼자서 기획, 촬영, 편집을 다 하는 유튜브 크리에이터들처럼, 게임 개발에서도 전체 맥락을 이해하고 총괄할 수 있는 'PD형 인재' 혹은 통섭적 능력을 갖춘 사람만이 경쟁력을 가질 것이다. 한 가지를 엄청 깊이 있게 파는 것보다는, 폭넓은 지식을 갖춘 사람이 성공하기 유리하다고 생각한다.
Q. 게임 내 AI 사용에 대한 유저들의 반감도 적지 않다. 이에 대한 견해를 듣고 싶다.
김태곤 디렉터: AI 사용에 대해 유저들이 반감을 가지는 건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예를 들어 남의 집에 초대받았는데, 주인이 컵라면을 내놓았다고 치자. 컵라면은 위생적이고 맛있는 훌륭한 음식이지만, 손님 입장에서 '좋은 대접을 받았다'고 느끼긴 어렵다. 그들은 효율성이나 편의성보다 주인의 '진정성'과 '성의'를 기대하기 때문이다.개발사가 유저에게 "이게 AI 기술로 만든 효율적인 결과물입니다"라고 내놓는 것도 이와 같다. 때문에 유저 입장에서 AI로 만들어진 콘텐츠가 달갑지 않은 것은 인지상정이다. 통조림이 발명됐어도 손님에게는 셰프나 본인이 직접 만든 요리를 대접하는 게 예의인 것처럼, 개발자 입장에서는 효율성을 추구하되 사람의 손길과 정성을 기대하는 유저들의 마음을 이해해야 한다. 아직은 AI 도입이 얼마 되지 않은 과도기라 혼란이 있지만, 효율성 사이에 어떻게 진정성을 녹여낼지가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Q. 업계 실무자 입장에서 AI 사용이 실제 매출이나 유저 반응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것이 체감되는지?
김태곤 디렉터: AI 느낌이 강하게 나는 이미지에 대해서는 여지없이 유저들의 비판이 따른다. 정량적으로 매출 피해를 산출하긴 어렵지만, 유저들의 반발 심리는 명확하다고 할 수 있다. 자동차가 생겨서 이동이 편해졌지만 교통사고라는 리스크가 생긴 것처럼, AI도 편의성을 주지만 '유저 반감'이라는 리스크를 유발한다. 따라서 개발사는 이 리스크를 관리하는 것까지 개발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하고, AI가 만든 결과물에 개발자의 정성을 입히는 재공정 절차가 필요하다.
Q. 가까운 미래에 AI가 인간의 독창성을 완전히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는지?
김태곤 디렉터: 불가능하다고 본다. 사람들이 컵라면이나 공산품에 애정을 느끼지 않는 이유는 '맥락'과 '스토리'가 없기 때문이다. AI 기술이 아무리 고도화되어 세상의 모든 그림을 예쁘게 그려낸다 해도, 모든 결과물이 다 예쁘다면 결국 변별력이 사라진다.사람들이 명품 가방이나 유명 맛집, 좋은 여행지를 찾는 것은 기능이나 결과물만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장인 정신과 세월의 이야기도 소비한다. 예를 들어 에펠탑 사진을 AI가 완벽하게 그려줘도 굳이 파리에 가서 줄을 서는 이유는 현장의 감성을 느끼고 싶어서다. AI는 그런 심상과 경험을 줄 수 없다. 기술은 계속 발전하겠지만, 인간의 감성을 건드리는 다양성과 진정성의 영역은 영원히 사람의 몫으로 남을 것이다.
Q. 마지막으로 AI 시대를 맞아 스스로 지향하는 개발 목표나 가치를 듣고 싶다.
김태곤 디렉터: 기술은 도구일 뿐, 우리가 전달하고자 하는 가치를 얼마나 선명하게 표현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많은 게임사들의 색깔이 모호해지고 있는데, AI가 보편화될수록 각자만의 색깔을 뚜렷하게 보여주는 게 경쟁력이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는 역사를 통해 교훈과 감동, 지식을 전달하고 싶다는 목표가 확실하다. AI로 개발 효율을 높이되, 그 결과물에는 우리가 의도한 역사적 맥락과 스토리를 선명하게 담아내는 것이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