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스파이어 대장 누님' 스마일게이트게임즈 장인아 대표
2013.12.16 17:07 게임메카 장제석 기자
대표님, 이라는 딱딱한 표현보다는 '누님'이라는 친근한 단어가 더 잘 어울린다. 한 기업의 대표직까지 오른 '누님' 정도면 그에 맞는 품격과 격식 때문에 인터뷰에 잔뜩 힘이 들어갈 수 있지만, 이 '누님'은 그게 싫다는 듯 누구보다 솔직하고 편안하게 이야기보따리를 풀어헤친다. 그렇다고 가볍다는 말이 아니다. 힘을 줄 때 주고, 뺄 때 빼는 스킬을 자유롭게 구사하는데, 여기서 산전수전 다 겪은 노련함이 묻어져 나온다. 오히려 이야기를 듣다 보니 '멋지다'라는 표현이 절로 나올 정도다.
이 '누님'의 정체는 '크로스파이어' 중국신화의 주역, 현 스마일게이트게임즈 장인아 대표다.
장인아 대표는 지난 2007년, 그러니까 스마일게이트가 '크로스파이어'를 국내 서비스하던 시기 회사에 입사했다. 대리로 시작해 자회사(스마일게이트게임즈) 대표직에 오르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7년 남짓. 이 정도면 누가 뭐래도 탁월한 '능력'이 있는 것이 확실해 보인다.
사실 장 대표를 대면하기까지 궁금한 것이 너무 많았다. 스마일게이트 자체가 워낙 수수께끼 같은 이미지가 있고, 스마일게이트게임즈 역시 알려진 것이 너무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궁금증은 장 대표를 만나면서 대부분 풀렸다. 워낙 호탕하고 진솔하게 답변해준 까닭이다. 외부에서 보는 스마일게이트의 시선과 실제 스마일게이트의 사정에는 차이가 있었다. 장 대표의 방을 가득 채운 건담이나 총기모형 같은 '덕'스러운 장식만큼이나, 스마일게이트는 완벽한 '게임회사' 그 자체였다.
▲ 스마일게이트게임즈 장인아 대표
- "닌텐독스가 나오지 않았다면…"
우선 장인아 대표는 게임 개발자 출신이다. 사실 게임과는 무관한 전문경영인 정도로 여겼는데, 그는 실패와 시행착오, 절망 등을 숱하게 겪은 '보통의 게임개발자'와 비슷한 인생을 걸어왔다.
그가 기억하는 가장 대표적인 '실패작'은 로시오(현 싸이칸 엔터테인먼트)에서 제작한 '퍼피온'이다. 이 게임은 강아지와의 교감·성장을 다룬 시뮬레이션 장르로, 당시 장 대표는 PD이자 그래픽 파트를 도맡으며 몇 년 동안 공들여 제작에 전념했다. 그러나 서비스 시기가 가까워졌을 때 '닌텐독스'가 출현하면서 모든 것이 와르르 무너져내렸다. 게다가 해당 장르의 게임은 스마트폰이나 포터블 기기에 적합한데, 당시(2007년)에는 PC온라인 플랫폼 외에 뚜렷한 대안도 없었다. 결국 프로젝트는 엎어졌고, 장 대표 역시 쫓겨나다시피 회사를 나왔다. 지금에서야 "닌텐독스가 나오지 않았다면 대박 쳤을 게임!"이라고 회상할 수 있지만, 당시 그의 나이 32세. 막막한 상황이었다. 스마일게이트와의 인연은 바로 이 암울한 시기에서 시작됐다.
- "여기서라면 뭘 해도 꺾이지 않겠다"
"지인 추천으로 권혁빈 대표와 처음 미팅했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당시 회사를 보니 '크로스파이어'라는 FPS를 만들고 있었고, 전체 규모는 20명 정도였죠. 당시 권 대표님을 보며 느낀 게 하나 있어요. 이런 오너 밑이라면 뭘 해도 꺾이지 않겠다는 거였죠. 그만큼 열정이 대단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입사를 결심했죠"
스마일게이트에 입사할 당시(2007년) 장인아 대표는 로시오에서의 사건으로 회의감에 들던 때였다. 그럴 만하다. 결과물을 보지도 못한 채 애써 노력한 몇 년의 시간이 홀라당 날아갔기 때문이다. 게다가 장인아 대표를 포함해 80명 인원이 전부 해고당한 터라 회의감은 더 커져 있었다.
사실 장 대표는 당시 사건으로 업계를 떠날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그럴싸한 포트폴리오도 없었고, 무엇보다 게임 하나를 완성해 서비스 단계까지 도달한 경험도 전무하다시피한 형편이었다. 그러나 권혁빈 대표와 만남을 통해 그는 한 번 더 '게임'에 도전해보기로 마음먹는다.
흥미로운 것은 장 대표가 게임 기획자로 입사했다는 것이다. 원래부터 FPS 장르를 무척 좋아한다는 (레인보우식스 초고수였다고) 그는 장르의 깊이나 재미요소가 어디서 발생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때문에 그래픽보다 기획 쪽으로 재능을 살리고 싶었다. 결국 그는 지난 경력을 날리고, 대리 직급(기획)으로 회사에 입사했다. 당시만 해도 그의 꿈은 크지 않았다. 직급이나 연봉이 아니라 게임 하나에 완전히 빠져들어 완성하고 서비스해보고 싶을 뿐이었다. 즉, 끝장을 보고 싶었던 셈이다.
▲ 2007년 국내 서비스를 시작한 '크로스파이어'
- "미쳤던 거 같다, 그랬으니 '서툰어택은 가라!' 같은 문구를 썼겠지"
장인아 대표가 입사한 이후, 스마일게이트는 '크로스파이어'의 국내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 게임이 등장한 07년은 그야말로 FPS 장르가 쏟아져 나온 시기였다. '스페셜포스'와 '서든어택'을 시작으로 불기 시작한 이 광풍은 규모에 상관없이 대부분의 업체가 한 종씩은 내놓을 정도였다.
당시 FPS 장르를 준비하던 업체 대부분은 '서든어택'을 우습게봤다. 저런 그래픽, 저런 게임성으로 성공했다고? 자, 봐라. 우리가 훨씬 더 잘 만들어주지. 이런 관념이 팽배했다. 그러나 '서든어택'을 무너뜨리기 위해 나온 신작은 그 누구도 벽을 넘지 못했다. 게이머들은 여전히 '서든어택'에 손을 들어주고 있었고, 새로 나온 FPS 게임은 관심 자체를 두지 않으려 했다.
스마일게이트도 이런 자신감 충만한 회사 중 하나였다. 비록 그 규모가 작긴 했으나, 게임 내용만큼은 자신 있었다. 무엇보다 FPS의 가장 기본이 되는 '쏘고 맞추고'에 대해서도 '개념'이 충만하다고 여겼다. 그만큼 그들은 다분히 개발자 적인 전지적인 시각에서 게임을 평가했다. 그러나 결과는 다른 게임과 다를 게 없었다. '실패'라는 단어를 써도 될 법한 미비한 성과에 그쳤다.
장 대표는 그 시절을 회상하며 "무모했다"고 평가했다. 보통 온라인게임은 개발 50%, 사업 50%를 기반으로 성과가 드러나는데, 당시 스마일게이트는 90% 이상 순수한 개발자 마인드로만 접근했다는 것이다. 사소한 버그라도 그게 게이머들이 '가지고 놀 수 있는' 정도 수준이라면 그냥 두는 것도 하나의 방법인데 스마일게이트는 이런 센스조차 없었다. '서든어택'이 높은 산을 쌓았으면, 다른 산을 쌓는 형태로 사업 전략을 세웠어야 했는데, 이런 건 아예 생각하지도 않았다. 오로지 '서든어택' 아니 당시 그들 표현으로 '서툰어택'을 잡는다, 이 생각밖에 없었다. 어찌 보면 실패는 당연한 결과였다. 그리고 실제로 '크로스파이어'는 실패라는 씁쓸한 결과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결국 스마일게이트는 워낙 규모가 작았던 만큼, 무너지지 않기 위해 무엇이라도 해야 했다. 그렇게 내린 결론은 하나였다. 더 큰 벽으로 여겨지던 중국시장으로의 진출이었다.
- "우리가 중국간다고하니, 코웃음을 치더라"
"사실 크로스파이어는 처음부터 재미있었어요. 게임 자체는 확신하고 있었죠. 그런데 저는 늘 시장이 걱정됐어요. 성향 자체가 다르니까요. 때문에 게임을 잘 만드는 것뿐 아니라, 시장에 적합하게 가공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무리 봐도 눈이 피로하지 않고, 아무리 들어도 귀가 아프지 않은 그런 식의 개선작업이 필요했죠. 무엇보다 누구든지 쉽게 할 수 있는 게 가장 중요했고요. 중국 진출을 준비할 당시에는 이런 고민밖에 한 적이 없는 거 같아요"
스마일게이트는 중국 진출을 준비하며 '크로스파이어'의 많은 부분을 개선했다. 한 번의 실패로 배운 게 많았던 만큼, 이 게임을 시장에 맞게 개선하는 작업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겼다.
당시 장인아 대표는 이 과정에 있어 철두철미한 준비를 거쳤다. 서비스사로 확정된 텐센트 측에서도 '크로스파이어'에 묻어 있는 하드코어한 기운을 억제해 달라고 요청한 만큼, 우선 게임이 쉬워야 한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표였다. 당시 장 대표는 이 '쉬운 게임'을 위해 개발진에게 왼손잡이용 마우스를 쥐여주고 테스트하게 만들었다. 오른손잡이가 왼손으로 플레이해도 어렵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또, 게임 '진입단계'도 무척 중요하게 생각했던 장 대표는 친구들까지 끌어 모았다. 가정주부, 직장인 등 게임과 관계 없는 친구들을 찾아가 무작정 "야, 해봐"라면서 '테스트'를 거듭했다. '쉬운게임'에 대한 그의 철칙은 그를 더 집요하게 만들었다.
게임 내용도 개선작업을 수없이 거쳤다. 총기 사운드는 몇 시간 들어도 귀가 아프지 않게 가장 높은 음역대를 걸러내고 대체하면서 완성해나갔다. 타격감도 개발진은 '좋다'고 평가했지만, 더 좋게 할 수 있는 방법을 계속 연구했다. 프로그래밍 버그 등으로 나타나는 현상도 '게임성'으로 써먹을 수 있다면 놓치지 않았다. FPS 장르에 대한 풍부한 장 대표의 경험이 빛을 발휘했다.
그렇게 한국 초기 버전과 완전히 달라진 '크로스파이어'는 08년 중국서 테스트에 돌입했다. 주변에서는 '절대 안 된다'라거나 관심 자체를 두지 않았지만 장 대표는 최소한의 확신이 있었다.
▲ 장인아 대표는 털털한 '누님' 정도의 분위기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 "동접 100만 돌파? 집어치워! 그런 거 필요 없어!"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07~09년도 당시 중국 게임시장은 엉망이었다. 특히 온라인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PC사양과 네트워크 인프라가 잘 갖춰지지 못했다. '대박게임'이 나기 어려운 구조였다.
다행히 '크로스파이어'는 주피터 엔진을 기반으로 만들어져 PC요구사양이 낮았다. 덕분에 사양 문제는 해결할 수 있었는데, 문제는 네트워크였다. 게다가 FPS는 그 어떤 장르보다 핑(PING)이 중요한 만큼, 이 부분은 반드시 해결해야 했다. 결국 스마일게이트는 맨땅에 헤딩하는 가장 원시적인 방법을 택했다. 서버구조를 P2P에서 CS로 바꾸고, 일단 밀어붙여 보기로 한 것이다.
덕분에 테스트 한 번 할 때마다 아주 난리가 났다. 툭 하면 서버는 마비되고 다운되기 일쑤였다. 특히 스마일게이트 자체가 '대작게임(한국기준)'을 서비스한 경험이 없었던 만큼, 한국과 차원이 다른 중국 유저들의 폭격기 같은 수준의 접속은 그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10만 동접만 넘어도 이에 대한 대비책과 노하우가 필요한데, 중국에서는 이게 장난이었다. 여기서 고난이 시작됐다.
특히 2008년 7월 중국 정식서비스가 시작됐을 때, 이들의 고난은 최고조에 달했다. 언제 서버가 떨어져나갈지 모르는 불안감 때문이다. 결국 몇 달 동안 이어지는 철야는 기본에, 수면시간을 줄여가며 하루하루 체크하고 반복하며 '생'으로 고쳐나가야 했다. 당시 장인아 대표와 함께 했던 직원들은 이 무시무시한 일정이 반복되자 모두 날카로워졌고, 말 한 마디에 마우스가 날아다니고 말 한마디에 감정조절이 안 되는 살얼음판 같은 상황을 감내해야 했다.
한 가지 무척 다행스러운 것은 성과였다. '크로스파이어'는 중국 정석서비스 이후 10만 동접을 금방 달성한 이후, 20만, 30만, 50만을 차근차근 돌파했다. 서비스 9개월 만에 어느새 동접은 '100만'이라는 기록적인 수치를 만들어냈다. 스마일게이트 내부에서조차 믿기 어려운 성과였다.
이런 성과를 보며 당시 장인아 대표는 무엇을 느꼈을까? 돌아온 대답은 예상외로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였다. 물론 멋있게 표현하면 "희열을 느꼈다" "모두가 감동의 도가니였다" 정도로 상황을 포장할 수 있다. 그러나 장 대표는 너무나 솔직히 말했다. 그만큼 당시 생활이 너무 혹독했기 때문이다. 동접 10만이 오를 때마다 장 대표를 비롯한 멤버들은 걱정부터 했다. 또, 말썽이 생기면 어쩌나, 이런 생각뿐이었다는 거다. 덕분에 하루하루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었다. 터지고 또 터지고. 막고 또 막고. 동접은 장 대표의 근심과 스트레스 수치와 비례하게 올라갔다.
이렇게 고생하던 사이, 결국 '크로스파이어'는 2010년 들어 동접 200만을 돌파하며 기네스북에 등재됐다. 그야말로 중국의 '국민게임'이 된 셈이다. '카운터스트라이크'나 '서든어택'도 하지 못했던, 중국 최초의 '제대로 작동하는 온라인 FPS'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장 대표를 비롯한 당시 스마일게이트 직원들은 그제야 비로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동접 200만 기록은 이제 기술적으로도 서비스 방향적인 부분에서도 '게임이 안정됐다'라는 걸 증명했기 때문이다.
▲ 다양한 모드를 기반으로 '크로스파이어'는 2009년 4월 동접 100만을 기록한다
-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지만 해야 했다, 절박하면 그렇게 된다"
장인아 대표는 흔치 않은 여성 게임개발자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FPS 장르의 기획자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궁금해지는 게 있었다. 장 대표는 왜 그렇게 혹독한 과정까지 감내하며 서비스에 매달렸을까? 돌아온 답변 역시 쿨했다. "절박하면 누구나 그렇게 된다" 바로 이거다.
절박하다는 표현이 무척 공감됐다. 당시 스마일게이트 상황이 그랬기 때문이다. 게다가 장인아 대표는 자존심이 무척 강하다. 여기서 자존심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한국의 게임개발사라는 데에서 나오는 자존심, 그리고 또 하나는 여성 개발자로서의 자존심이다. 후자의 경우 자존심이라는 표현보다는 자존감이라는 표현이 조금 더 적합할 거 같다.
중국 서비스를 준비할 당시, 장 대표는 PM 역할을 했는데 텐센트와의 기 싸움에 이리저리 시달려야 했다. 게다가 텐센트가 '슈퍼 갑'으로 일컬어지는 만큼, 여기서 오는 스트레스가 상당했다. 그럼에도 장 대표는 스마일게이트가 지향하는 '게임 방향' 만큼은 절대 훼손할 수 없었다. 그들의 요구에 맞춰 게임내용에 수정을 가할 수는 있어도, 뿌리 자체를 바꾸는 건 절대 허용하지 않았다.
게다가 장 대표는 여성 개발자라는 어감에서 오는 주변의 선입견을 잘 알고 있다. 어떤 결과가 좋지 않았을 경우 그 자체를 두고 냉정하게 평가하는 게 아니라 '그래, 여자니까 뭐…' 라는 식의 평가는 죽기보다 싫어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때문에 장 대표는 자존감을 더 확고히 했다. 여자니까, 이런 것보다는 나도 해야 할 명분이 있으니까, 정도로 스스로 강화해 나선 것이다.
그러면서도 장 대표는 '크로스파이어'의 '성공'에 대해 겸손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그는 그저 게임이 성공할 수 있는 여러 퍼즐 중에 한 조각 정도를 본인이 맞췄다고 생각하고 있다.
"사실 저는 FPS를 좋아하는 사람이지, FPS 전문 개발자는 아니잖아요. 게다가 여성개발자라고 하니, 중국에서는 당연히 수군거렸죠. 보통의 사람이라면 '여성개발자=카툰풍' 같은 선입견을 떠올리게 마련이니까요. 저는 이게 싫었어요. 쓸데없는 자존심이 발동한 거죠(웃음). 덕분에 (중국) 물갈이를 하며 죽고 싶은 지경에서도 포기할 수가 없었어요. 무엇이든 해야 했죠. 역시 절박하면 사람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거 같아요. 물론 이런 제 노력과 크로스파이어의 중국 성공은 별개입니다. 시장도 좋았고, 운도 따랐고, 무엇보다 우리 회사가 무엇을 해야하는 지 잘 알고 있었죠"
▲ 장인아 대표는 '게임광' 답게 피규어 모으는 취미가 있다고
- "한국 서비스는 우리 자존심이다, 진정성 있게 서비스하겠다"
장인아 대표는 과거 이야기를 하며 농담 반, 진담 반 섞어가며 편안하게 이야기했다. 듣는 이 입장에서는 흥미로웠고, 여러 에피소드를 들으며 쾅쾅 웃음도 터져 나왔다. 그러나 이 부분 역시 '지금이니까' 가능한 상황이기도 하다. 장인아 대표 역시 '지금이니까' 언급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의 말을 듣다 보니 최근 한국 정식서비스를 재개한 '크로스파이어'가 떠올랐다. 사실 가장 궁금한 것 중 하나였다. 대체 스마일게이트는 왜 '크로스파이어' 서비스를 재개하는 것일까?
답은 이미 나와 있다. 스마일게이트와 장인아 대표 입장에서는 '크로스파이어'가 자존심이기 때문이다. 맨땅에 헤딩하며 일궈낸 거대한 성적이긴 하지만 스마일게이트는 한 번도 '크로스파이어'가 한국게임이 맞다는 사실을 잊은 적이 없다. 한국의 개발력, 한국의 자본, 한국의 서비스 노하우, 한국의 기술로 중국에서 어마어마한 성과를 이룩한 것은 변함 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장인아 대표와 스마일게이트의 생각은 일치한다. 그게 100명이 됐든 1000명이 됐든, 일단 한국에 당연히 서비스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게임이니까 당연한 사실이다.
한국 서비스에 대한 장인아 대표의 사업 계획은 뻔뻔할 정도로 단순하다. 얼마 안 되는 유저를 끌어모으고, 차근차근 유저를 불려나가겠다는 정말 클리셰 전략 그 자체였다. 게임 내적으로 한국 유저만을 위한 특별한 콘텐츠나 시스템이 추가되는 것도 아니다. 중국 버전과 동일하다.
그러나 장인아 대표는 한국 서비스의 차별성으로 '진정성'을 꼽았다. 감사한 마음으로 서비스를 이어가겠다는 의미다. 실제로 장인아 대표가 직접 관리하는 스마일게이트게임즈의 '크로스파이어' 전담 팀은 작년 7월 국내 서비스가 종료될 때까지 게임을 즐긴 유저들의 연락처를 모두 가지고 있다. 그리고 한국 서비스 준비 과정에서 사사로운 것까지 이들과 직접 통화하며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지난 WCG '크로스파이어' 한국 대표 모집할 때에도 모두 직접 연락해 예선전을 진행했다. 당시 스마일게이트게임즈는 200명 정도를 예상했는데, 생각보다 참가율이 높아 300명 조기마감했다고. 당시 예선전을 찾아온 유저를 보며 장인아 대표는 "매우 고마운 분들"이라고 표현했다.
"스마일게이트 돈 많잖아요. 단순히 유저를 끌어모은다고 마음 먹으면 대형 포털에 배너 올리고 마케팅 비용 풀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번 한국 서비스에 진심을 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정말 고마운 분들이니까요. (서비스 종료 당시) 유저들과 직접 연락하고 이야기를 주고받는 과정도 그중에 일부죠. 특히 WCG 한국대표 선발전은 감동의 도가니였어요. KTX 타고 멀리서 오신 분도 있고, 엄마 손잡고 온 분도 있었죠. 바로 여기서 우리는 '진심이 통했다'고 느꼈어요. 진심이 통했으니까 300명이나 되는 분들이 찾아준 거겠죠. 이렇게 진심을 담아 서비스할 예정이에요"
▲ 장인아 대표가 '진정성'이 통했다고 느꼈던 '크로스파이어' WCG 한국대표 선발전 현장
- "뭘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뭘 하면 안 된다는 건 명확하게 알고 있다"
장 대표가 수장으로 있는 스마일게이트게임즈는 현재 캐주얼게임을 전담으로 맡고 있다. '크로스파이어'를 비롯해 '크로스파이어2' '펜타킬' '파이팅스타' 등을 개발하고 있으며, 해외 외주를 맡긴 게임 개발까지 포괄하고 있다. 그리고 아직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패키지게임을 온라인화 시키는 작업도 준비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크로스파이어'가 수백만 동접을 유지하며 성공했다는 것은, 그만한 노하우와 기술력이 충분하다는 것이 같은 궤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다수의 해외 업체로부터 러브콜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 역시 스마일게이트게임즈의 사업목표 중 하나다.
"스마일게이트게임즈는 앞으로도 '크로스파이어' 외에도 다양한 사업을 해 나갈 거예요. 우리는 명확한 게임회사이고, 앞으로도 게임 사업을 더 키워나가야겠죠. 그런데 뭘 해야 하는지는 아직 모르겠어요. 그저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큰데, 어떻게 잘할 건지에 대해서는 정답이 없는 상황이죠. 상투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저는 목적이 같은 사람이 모여서 사업을 넓혀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특히 저는 '무슨 일이든지 해라'를 직원들에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효율이 떨어지고 조직관리 못한다고 평가받을 수도 있겠지만, 정말로 필요하다면 남에게 요구하기보다 내가 먼저 하는 것이 맞다고 봐요. 바로 이게 위기감이고 목적이 명확한 것이니까요. 정말로 하고 싶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하는 것이 된다는 가능성의 가장 기본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대장누님'의 조직관리는 '크로스파이어'의 성공과정과 닮아 있다. 그의 말만 따나 효율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할 수도 있겠지만 '필요하면 내가 무엇이든지 한다!는 가장 정직한 전략이기 때문이다. 장인아 대표는 조직 전체가 이런 마인드를 갖출 경우 무엇이든 '된다'는 가능성을 확신하고 있다. 물론 이 가능성은 망상이 아니다. 이미 '크로스파이어'를 통해 배운 '기술'이기 때문이다.
▲ 사진 촬영이 어색한… 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