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GC 2014' 에서 강연을 진행한 스즈키 유
세가 AM2 스튜디오를 이끌며 '버추어 파이터'와 '행온', '쉔무' 등을 개발한 천재 게임개발자 스즈키 유가 6일, 한국국제게임컨퍼런스에 등단해 '버추어파이터의 탄생과 진화'라는 주제로 강연을 진행했다.
스즈키 유는 1983년 세가에 입사해 '행온', '아웃런' 등 다양한 아케이드 게임을 만들었다. 당시는 기기 성능 문제로 3D 그래픽을 사용할 수 없어서, 3D 형태로 계산한 데이터를 2D 그래픽으로 표현하는 유사 3D 게임을 주로 제작했다. 그러나 대학 졸업 논문부터 3D 건축 프로그램을 다룬 스즈키는 3D 게임에 대한 열망을 항상 불태웠다.
그 기회는 1992년, 세가의 첫 3D 기판 'MODEL-1'이 출시되면서 주어졌다. 스즈키는 ‘MODEL-1’ 기판으로 자신의 최초 3D 게임 '버추어 레이싱'을 제작했다. ‘버추어 레이싱’에서는 레이싱 도중 피트 워크에 들어가면 사람들이 나와서 타이어를 갈곤 하는데, 당시 기준으로 봐도 조금 조잡한 감이 없지 않았다. 이 때부터 스즈키는 제대로 된 사람이 등장하는 게임을 개발하겠다고 다짐했고, 이는 ‘버추어 파이터’ 개발로 이어졌다.
사실 스즈키는 처음부터 ‘버추어 파이터’를 만들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다. 사실적인 인체를 표현하고 싶었을 뿐이다. 가장 먼저 스포츠 게임을 떠올렸는데, 축구나 럭비 등은 사람이 너무 많이 등장해 연산이 어려웠다. 반면 대전 격투는 사람이 단 두 명만 등장해 비교적 쉽게 만들 수 있겠다는 판단 하에 ‘버추어 파이터’를 개발하기로 한다.
▲ 스즈키로 하여금 '버추어 파이터' 개발을 결심하게 한 '버추어 레이싱'
그러나, ‘버추어 파이터’가 개발되던 1993년에는 '스트리트 파이터 2'라는 대전격투게임의 제왕이 군림하고 있었다. ‘스트리트 파이터 2’의 대히트 이후 전세계적으로 600개 이상의 대전격투 게임이 나왔지만, '스트리트 파이터 2'를 넘어선 게임은 없다시피 할 정도였다. 그러나 스즈키는 '스트리트 파이터 2'를 뛰어넘고 싶었고, 5가지 주요 포인트를 정했다. ▶시장 가치 ▶차별화 요소 ▶평균 플레이 시간 ▶인터페이스 ▶반복성이었다.
시장 가치와 차별화 요소는 크게 문제되지 않았다. 대전격투 게임은 이미 게임업계의 대세였으며, 차별화 측면에서는 세계 최초의 3D 격투 게임이라는 점 하나로 충분했다.
문제는 나머지 3항목이었다. 우선, 스즈키는 평균 플레이 시간을 1게임 당 3분 이내. 정확히는 1분 20초로 설정했다. 이는 아케이드를 대상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설정된 수치로, 1게임당 3분, 하루 200게임(10시간 기준), 2P 대전 시 400게임, 8만 엔의 수익을 내려는 목표(그리고 이 목표는 실제로 이루어졌다)였다. 3분이라는 다소 짧은 시간 내에 플레이어로 하여금 적당한 피로감과 짜릿한 경험을 선사하는 것. ‘버추어 파이터’의 게임 템포는 그렇게 결정됐다.
인터페이스 역시 기존 게임과 다른 방향을 추구했다. '스트리트 파이터'는 버튼이 6개였지만, 스즈키는 보다 단순하고 직관적인 조작을 추구했다. 버튼을 최대한 줄이거나, 아예 수십 개의 버튼을 삽입해 하나하나를 누르기보다는 전체를 문지르는 방식으로 구현하고자 했다. 후자의 경우 스마트폰 터치 조작과도 비슷하지만, 수십 개의 버튼을 넣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웠기에 결국 '버추어 파이터'는 펀치와 킥, 방어의 3개 버튼 체계를 채택했다.
버튼 외에도 직관적 게임 플레이를 위한 수많은 장치를 만들었는데, 그것이 바로 상황 별 자동화 기술 발동 시스템이다. 예를 들면 같은 펀치 버튼을 누르더라도 상대방과의 거리에 따라 가까운 거리에선 잽을, 먼 거리에선 스트레이트 펀치를 뻗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먼 거리에서는 펀치 버튼만 연타해도 상대에게 다가가며 기술을 쓸 수 있도록 해 조작에 대한 유저 부담을 줄였다.
▲ 조작 체계를 단순화하기 위해 수많은 고민을 했다
마지막은 반복성이다. 스즈키는 게임의 승패가 갈린 후 패자의 심리에 주목했다. 사람이 많이 몰려 있는 아케이드 게임센터에서 너무 처참하게 패배할 경우, 창피한 마음에 게임을 다시 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스즈키는 ‘버추어 파이터’에서는 너무 일방적인 승부가 나지 않도록 시스템을 설계했다. 우연이 겹친다면 요행으로 승리하는 것도 가능하게끔 한 것이다.
이를 위해 스즈키는 게이머가 아닌 사무직 여성, 어린이, 청소부 아주머니 등을 테스터로 초청해 아케이드 게임기 앞에 앉혀 놓고 아무렇게나 버튼을 두들기게 했다. 이후 그 데이터를 수집 분석하니 공통적인 초보자들의 조작 패턴이 발견됐고, 그 커맨드에 유효한 기술을 할당했다. 덕분에 ‘버추어 파이터' 는 운만 따라주면 초보가 고수를 이길 수 있게 디자인됐고, 지더라도 '아깝게 졌다' 라는 느낌을 줬다. 이러한 노력 덕에, ‘버추어 파이터’는 ‘스트리트 파이터 2’에 이어 게임센터를 주름잡는 인기 격투게임으로 탄생할 수 있었다.
'버추어 파이터' 개발 역사는 천재 프로그래머 스즈키를 중심으로 한 최신 기술에 대한 도전이었다. 그러나, 스즈키는 단순히 게임의 성능만을 맹신하지 않았다. 그는 카운터 어택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중국 소림사와 팔극권의 달인에게서 권법을 직접 배우고, 그 과정에서 뼈에 금이 가고 혹이 생기기까지 했다. 자신 뿐 아니라, 팀 내 모든 직원들에게 직접 무술을 배우게끔 해, 잘 하는 사람만 다시 컴퓨터 앞에 앉힐 정도로 사실성을 추구했다. ‘버추어 파이터’의 성공을 이끈 그의 무서우리만치 세심한 개발 철학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게임 개발자들에게도 많은 교훈을 안겨준다.
▲ 중국 무술을 배우기 위해 중국까지 찾아간 젊은 날의 스즈키 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