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반지를 담기엔 모자란 항아리(반지의 제왕: 반지의 전쟁)
2004.01.02 13:24게임메카 윤주홍
절대반지를 담기엔 모자란 항아리
톨킨의 원작을 통해 이미 알려질 대로 알려진 반지의 제왕이 영화를 통해 불러온 결과는 예상외의 막강한 돌풍이었다. 실상 소설을 많이 읽어본 사람도 없었거니와 톨킨의 판타지세계관에 정통한 사람이라 해도 치밀하고 방대하기 이를 데 없는 소설을 어떻게 영상으로 옮겼을지 궁금했던 탓에 영화는 역대사상 ‘최고’의 수식어를 여러 부문에서 갈아 치우며 파죽지세의 상승을 거듭했다. 물론 영화의 완성도가 워낙 뛰어나기 때문이라는 사실이 이러한 성공의 가장 큰 뒷받침이었지만 말이다.
어쨌든 이러한 돌풍은 결과적으로 소설을 비롯한 관련컨텐츠의 기대도가 동반 상승하는 효과를 불러왔고 게임계의 큰 손이라고 할 수 있는 EA와 비벤디유니버셜이 반지의 제왕 라이센스에 뛰어들며 ‘절대반지’를 손에 넣기 위한 제 2 라운드가 펼쳐졌다. 이후 EA는 뉴라인시네마가 제작한 영화에 대한 라이센스를 취득했고 비벤디유니버셜은 소설판권을 게임화 하는 자격을 획득, 액션게임으로 제작된 ‘반지의 제왕: 두개의 탑’과 ‘반지의 제왕: 반지원정대’로 첫 번째 결투를 벌였다. 결과는 EA의 승리.
두 번째 대결은 EA가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을 내놓는 시점에서 펼쳐질 뻔 했으나 비벤디유니버셜 측이 반지 원정대의 후속작 격이라 할 수 있는 ‘아이젠가드의 반역자’ 제작을 포기함으로써 승부는 실시간전략시뮬레이션인 ‘반지의 전쟁’으로 초점이 맞춰지기 시작했다.
EA가 제작하고 있는 반지의 제왕 실시간전략시뮬레이션 판인 ‘중간계 전투(Battle For Middle Earth)’가 2004년 하반기에 선보일 계획인 만큼 진검승부의 시기를 뒤로 늦출 수밖에 없겠지만 어쨌든 비벤디에서 출시된’반지의 전쟁을 살펴보자면 EA와의 정면대결을 피한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반지의 제왕으로 변신한 배틀렐름
반지의 전쟁은 리퀴드엔터테인먼트가 과거에 제작한 베틀렐름 엔진을 이용하고 있다. 물론 똑같은 엔진은 아니고 반지의 제왕에 맞게 훨씬 강화시킨 버전으로 실제를 연상시키는 수면 효과와 바람에 따라 휘날리는 깃발과 옷의 효과, 충돌물리엔진을 도입해 화살이나 돌이 날아올 때 불규칙하게 튀는 기능을 보여주는 등 배틀렐름이 나왔을 당시에도 높은 평가를 받았던 ‘실제 전쟁을 즐기는 듯한’ 느낌을 충실히 구현했다. 하지만 이렇게 사실적인 느낌을 재현하기 위해 반지의 전쟁은 필요이상으로 높은 사양을 요구하고 있으며 옵션에서 디테일을 낮춘다 해도 게임의 속도가 개선되지 않아 게이머들의 적지 않은 불만을 야기시키고 있다.
바람에 나부끼는 나무와 흐르는 물의 느낌을 보여준다 |
반지의 전쟁에서 게임의 축을 이루는 것은 자유민과 어둠의 종족에 속한 14여개의 유니트와 영웅들이다. 유니트는 소설에서도 등장한 엘프와 드워프, 오크 등으로 구성되며 영웅이라 함은 세계적인 히로인이기도 한 레골라스, 아라곤, 간달프 등이다. 여기서 영웅은 부대에게 영향을 미치며 통솔을 맡는 역할로 워크래프트 3만큼 절대적으로 게임 내 의존도가 높은 편은 아니지만 이들이 가지고 있는 특수기는 게임의 전세를 한번에 역전시킬만큼 높은 위력을 자랑한다. 워크래프트 3에서 몹을 잡으며 경험치를 올려야하는 노가다 아닌 노가다를 싫어했던 게이머라면 반지의 전쟁이 보여주는 영웅시스템도 꽤 괜찮은 매력요소로 다가올만 할 듯.
영웅과 페이트 파워의 활용은 전세를 바꾼다 |
반지의 전쟁에서는 전투로 얻게 되는 경험치를 일종의 자원으로 표기한 페이트(명성, Fate) 시스템을 ?타 전략시뮬레이션과의 차별화 요소로 내세우고 있다. 전투를 통해 쌓이는 페이트 수치는 영웅을 만들거나 잠겨진 스킬을 열 수 있고 이들이 사용하는 마법의 원천으로 이용된다. 마나와 경험치의 개념을 일종의 자원으로 만들어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인데, 싱글플레이를 제외하면 활용도가 크게 높지 않아 제작사가 내세우고 있는 만큼의 효력을 발휘하지는 못하는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싱글플레이의 시나리오는 소설의 작은 축약판을 보듯 큰 사건을 중심으로 한 스토리 전개방식으로 소개된다. 반지의 원정대에 김리를 비롯한 여러 영웅들이 영입되는 과정에서부터 반지를 찾게 되는 과정까지 원작과의 일관성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소설에서 언급은 됐지만 자세히 묘사되지 않은 전투에 살을 붙인 것이 이 작품이 보여주는 시나리오의 특징이다.
적어도 영화에서 보인 장면만 가지고 개발되고 있는 EA의 '중간계 전투'보다 풍부한 스토리를 선사할 것이라는게 게임제작을 총 지휘한 에드 델 카시티요의 설명이지만 영화에서 보여준 이야기와 이 작품이 보여주는 싱글플레이에서의 뚜렷한 차이점은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색깔이 느껴지지 않는 게임
과거 리퀴드엔터테인먼트에서 출시한 배틀렐름은 여러 가지 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대중적으로 성공하지는 못했다. 물론 반지의 제왕은 배틀렐름보다 비약적으로 발전했고 익숙한 세계관을 바탕으로 흥미진진한 게임플레이를 맛볼 수 있다는 점에서 과거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하지만 워크래프트 3나 여타 판타지를 배경으로 한 전략시뮬레이션게임, 심지어는 킹덤 언더 파이어에서도 느낄 수 있었던 게임의 특징적인 요소가 반지의 전쟁에서는 보이지 않는 점이 아쉽다.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을 이용, 영화의 후광을 받아 시너지효과를 발휘해보겠다는 비벤디의 노력은 가상하지만 이렇게 어중간한 느낌으로는 또다시 EA와의 승부에서 패배의 쓴잔을 마시진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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