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이 지나 돌아온 최고의 RPG '토먼트'
2017.02.28 18:17게임메카 이새벽 기자
▲ '토먼트 타이드 오브 누메네라' 공식 스토리 트레일러 (영상출처: 공식 유튜브)
고전 명작 RPG를 거론할 때마다 꼭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게임이 있다. 바로 1999년에 발매된 ‘플레인스케이프 토먼트’다. 이 불후의 게임은 무려 80만 단어가 넘는 방대한 텍스트를 바탕으로 독특한 세계관과 철학적인 서사를 흥미진진하게 풀어냈을 뿐만 아니라, 이용자가 고른 선택지에 따라 스토리가 달라지는 자유도 높은 진행방식으로 다양한 게임 상을 휩쓸었다.
그러한 ‘플레인스케이프 토먼트’의 정신적 후계작인 ‘토먼트 타이드 오브 누메네라(이하 토먼트)’가 2월 28일에 발매됐다. ‘토먼트’에서도 ‘플레인스케이프 토먼트’의 최대 강점이었던 탄탄한 설정과 스토리텔링은 이번에도 여전한 만큼, 서사성 짙은 RPG에 목말라 있던 팬들의 기대에 충분히 부응할 듯하다. 하지만 ‘토먼트’는 전작과 다른 점도 많다는데, 과연 ‘토먼트’만의 특징은 무엇일까?
새로운 세계에서 벌어지는 새로운 이야기
▲ 10억년 후의 지구를 탐험하는 '누메네라' 세계관 (사진출처: 공식 홈페이지)
‘플레인스케이프 토먼트’의 팬이라면 ‘이름 없는 자’의 뒷이야기가 아직도 궁금할 것이다. 하지만 ‘토먼트’는 ‘플레인스케이프’ 세계관을 배경으로 하지도, ‘이름 없는 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하지도 않는다. 사실상 전작과는 완전히 무관한 셈이다. 하지만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토먼트’도 충분히 개성 넘치는 세계관과 깊은 스토리를 갖추고 있으니 말이다.
판타지였던 ‘플레인스케이프 토먼트’와 달리 ‘토먼트’는 SF 세계관인 ‘누메네라’를 배경으로 한다. 그러나 ‘누메네라’는 SF보다도 판타지의 향기가 더 짙게 난다. ‘누메네라’의 무대는 지금으로부터 10억년이 지나면서 문명이 여러 번 무너지고 재건되기를 반복한 먼 미래의 지구다. 어떻게 보면 포스트 아포칼립스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누메네라’의 세계는 결코 어둡거나 비참하지 않다. 옛 세상을 멸망시킨 재앙은 이미 까마득한 오랜 옛날 일이고, 이미 사람들은 새 문명을 일구어 살고 있기 때문이다. 대신, ‘누메네라’는 경이와 모험으로 가득 차 있다.
▲ 판타지와 SF가 절묘하게 뒤섞인 독특한 분위기를 자랑한다
(사진출처: 공식 홈페이지)
‘누메네라’의 사람들은 중세 수준의 사회를 이루고 살아가지만, 흥미롭게도 그 사회를 떠받치고 있는 것들은 모두 지난 시대의 옛 기술이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사제가 기도문을 읊고 정확한 동작으로 신성한 도구에게 신탁을 요청한다. 그런데 도구는 사실 사용법이 실전된 스마트폰이고, 의식의 동작은 터치스크린을 누르는 것이다. 이처럼 ‘누메네라’에서는 원리가 잊힌 많은 과학과 기술이 신비롭게 간주된다. 이미 익숙한 요소를 ‘누메네라’의 낯설고 새로운 시점에서 보는 것은 독특한 재미를 선사해준다.
특이한 세계관을 배경으로 한 만큼 ‘토먼트’가 보여주는 스토리도 무척 흥미롭다. 주인공인 ‘헌 옷(castoff)’은 버림받은 의체에 깃든 인공인격이다. 이 세계에는 ‘변화하는 신(Changing God)’이라는 불사신이 존재한다. 하지만 사실 ‘변화하는 신’은 이미 오래 전에 실전된 전뇌기술과 의체기술을 손에 넣은 인간으로, 의식을 계속 새 의체로 옮겨 몸을 바꾸는 식으로 삶을 연장해왔다. 그런데 ‘변화하는 신’이 몸을 바꿀 때마다 버린 몸에는 그의 기억과 성격에서 비롯된 새로운 인격이 생겨 깃든다. 그렇게 버림받은 의체에 깃든 인공인격이 바로 ‘헌 옷’들이다.
스토리는 도입부부터 매우 극적으로 진행된다.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헌 옷’인 주인공은 게임이 시작되자마자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에게 공격 받고 쫓기게 된다. 곧 이 문제가 ‘변화하는 신’ 때문에 벌어진 것임을 깨달은 주인공은, 자신이 안전해질 수 있는 방법을 묻기 위해 그를 찾아 여행을 떠난다. 그 과정에서 주인공은 여러 동료를 만나고, 다양한 사건에 휘말리며 ‘누메네라’의 위험하고도 신비한 세계를 탐험하게 된다.
크라우드펀딩 모금 초기부터 제작진이 거론한 ‘토먼트’의 가장 중요한 네 가지 요소 중 둘이 바로 세계관과 스토리였던 만큼, ‘토먼트’는 경이로 가득 찬 먼 미래세계에서 벌어지는 환상적인 탐험 이야기를 내세웠다. 특히 판타지와 SF를 독특한 방식으로 결합시킨 ‘누메네라’ 세계관을 뛰어나게 스토리텔링한 점은 ‘토먼트’에서 가장 기대되는 부분이다. 더군다나 ‘토먼트’는 올해 2분기 국내에 번역되어 출시될 예정이므로, 방대한 분량의 텍스트를 영어로 볼 걱정은 안 해도 좋다.
당신의 선택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 ‘엣지’와 ‘사이퍼’ 통한 선택의 재미
‘플레인스케이프 토먼트’의 특징 중 하나는 자유도 높은 스토리 전개였던 만큼, 이번 ‘토먼트’도 다양한 선택지에서 파생되는 풍부한 스토리를 보여준다. 여기에 더해 ‘토먼트’는 이용자의 선택을 강조한 두 가지 특징적인 요소를 도입했다. 바로 ‘엣지(Edge)’와 ‘사이퍼(Cypher)’가 그것이다.
▲ 얼마나 '엣지'를 소모하는지에 따라 행동 성공률이 달라진다
(사진출처: 게임메카 촬영)
‘힘(Might),’ ‘속도(Speed),’ ‘지성(Intellect)’ 세 종류로 나뉘는 ‘엣지’는 캐릭터가 지닌 능력치에 따라 주어지는 일종의 소모성 자원이다. ‘엣지’는 해당 능력치에 관계된 행동을 할 때 사용하면 성공할 확률을 높여주거나 추가 선택지를 제공해준다. 적을 나노기술로 공격할 때 ‘지성 엣지’를 사용하면 보다 큰 피해를 입히고, 바위에 가로막힌 좁은 통로를 지나가야 하는 상황에서 ‘힘 엣지’를 사용하면 바위를 밀어 치운다는 선택지를 추가로 고를 수 있는 식이다.
하지만 ‘엣지’는 휴식을 취하거나 소모성 아이템인 ‘사이퍼’를 사용하기 전에는 회복되지 않으므로 함부로 낭비하다가는 곤란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전투에서 쉽게 적을 물리치겠다고 ‘힘 엣지’를 전부 사용해버리면 나중에 좁은 통로를 막고 있는 바위를 치울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따라서 ‘엣지’를 사용할 때는 늘 주어진 상황을 감안해서 얼마나 쓸 것인지를 선택해야 한다. ‘엣지’라는 한정된 자원을 통해 선택과 집중을 강조한 셈이다.
▲ '사이퍼'를 적재적소에 사용해야 원활한 진행이 가능하다
(사진출처: 게임메카 촬영)
‘사이퍼’도 한정된 자원을 사용해 추가적인 선택지를 만들어주는 요소다. ‘사이퍼’는 특별한 기능을 지닌 1회용 아이템의 총칭으로, 어떤 ‘사이퍼’는 사용하면 ‘엣지’를 회복시켜주고, 다른 ‘사이퍼’는 스토리에 새로운 선택지를 추가해주기도 한다. ‘토먼트’는 진행 과정에서 여러 종류의 ‘사이퍼’를 자주 제공하며, 이를 적절히 사용해야만 게임을 원활히 진행해나갈 수 있다.
다만 한 번에 소지할 수 있는 ‘사이퍼’ 개수에 제한이 있으므로 언제 어떤 ‘사이퍼’를 사용할지는 신중히 정해야만 한다. 거기에 더해 어떤 ‘사이퍼’는 잘못 사용하거나, 상성이 안 맞는 ‘사이퍼’와 동시에 지니고 다니면 치명적인 문제를 발생시킬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두 ‘사이퍼’가 실은 같이 두면 방사능 오염을 발생시키거나 폭발을 일으키는 고체 화학물질일지도 모른다. ‘사이퍼’는 유용한 만큼 제한사항과 위험부담도 따르는 셈이다.
▲ 잘못 다룬 '사이퍼'는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사진출처: 게임메카 촬영)
이처럼 ‘토먼트’는 단순히 나열된 선택지를 고르게 시키는 대신, ‘엣지’와 ‘사이퍼’라는 두 가지의 요소를 통해 선택에 따르는 비용을 부담하게 했다. 이는 게임 진행에 있어 매 선택을 고민하는 재미를 줄 뿐만 아니라, 거기서 파생된 결과도 더욱 의미 있게 느끼게 하여 깊은 몰입감을 준다. 그렇다고 잘못된 선택지를 고를까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시도가 실패해도 스토리는 막히지 않고 계속 진행된다. 그저 본래는 의도하지 않았던 방식으로 흥미롭게 진행될 뿐이다.
전투는 줄이고 서사에 집중한 게임성
▲ 직접 보여주기 보다는 텍스트를 통해 상상하게 만드는 방식의 진행
(사진출처: 게임메카 촬영)
여러 흥미롭고 재미있는 요소에도 불구하고 일견 ‘토먼트’는 그래픽이나 게임 진행 방식에 있어 조금 구식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인터페이스는 옛날 ‘발더스게이트’나 ‘플레인스케이프 토먼트’에 사용된 인피니티 엔진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이고, 턴제인 전투는 속도감이나 역동성이 떨어질 것 같은 불안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제작진의 입장은 명확하다. ‘토먼트’의 방향성은 전투보다는 서사에 있고, 모든 게임 요소는 서사에 몰입하는 재미를 주는 데 초점을 맞췄다는 것.
실제로 ‘토먼트’는 신비한 세계를 탐험하는 흥미진진함, 그리고 이용자가 내린 선택들의 연속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가는지 보여주는 스토리텔링에 집중했다. 이 철학은 ‘토먼트’만의 ‘크라이시스(Crisis)’를 통해 상징적으로 나타난다. 다른 게임의 전투에 해당하는 ‘크라이시스’는 총체적인 위기상황을 다루는 ‘토먼트’의 독특한 시스템이다.
▲ 무의미한 전투는 최대한 줄이고, 스토리에 중요한 전략적 전투만 남겼다
(사진출처: 게임메카 촬영)
‘크라이시스’에 돌입하면 캐릭터들은 마치 턴제 전투 게임처럼 주어진 턴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 하지만 ‘크라이시스’는 실제로 적과 싸우는 전투일 수도 있고, 제한된 시간 내에 위험을 돌파해야 하는 극적인 상황일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영화 인디아나 존스에서처럼 치명적인 함정들이 작동되는 와중에 무너지기 시작하는 유적에서 탈출해야 하는 상황도 ‘크라이시스’로 다룬다.
‘크라이시스’는 일반적인 턴제 전투와 달리 적들을 물리치는 데 중점을 두지 않는 대신,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는 데 중점을 둔다. 제한된 턴 안에 기계장치를 작동시키는 것이 목표일 수도 있고, 어딘가에 숨어들어가야 할 수도 있고, 누군가를 설득해야 할 수도 있다. 즉 단순한 싸움이 아니라 여러 모험 상황을 해결해나가는 게임적 과정인 셈이다.
▲ '크라이시스'에서는 전투 외에도 다양한 행동을 통해 난관을 극복해야 한다
(사진출처: 게임메카 촬영)
이처럼 ‘토먼트’는 전투 외의 방식으로 스토리를 풀어나가고 즐기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만약 ‘플레인스케이프 토먼트’처럼 인물의 대화를 보고, 선택지를 고르고, 내가 원하는 스토리를 만들어가는 ‘롤플레잉’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이번 ‘토먼트’에서도 큰 만족감을 느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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