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나더 어드벤처, 꿈을 좇는 이에게 '카뮈'가 건네는 이야기
2017.03.24 12:00게임메카 김영훈 기자
‘어나더 어드벤처’는 중국 인디 개발사에서 만든 어드벤처 게임이다. 각기 다른 삶을 사는 네 사람의 이야기가 글과 그림으로 보여지며 간간히 간단한 조작과 미니게임도 가능하다. 넉넉잡아도 2시간이면 끝나는 짧은 분량이라 가격은 스팀 기준 2,200원. 전체적인 내용은 프랑스의 대문호 ‘알베르 카뮈’ 철학 에세이 ‘시지프의 신화’에서 영향을 받았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시지프’는 타고난 사기꾼으로, 어찌나 교활한지 심지어 신까지도 골탕 먹일 정도였다. 한번은 자신을 잡으러 온 죽음의 신을 거꾸로 포박하기까지. 행실이 이렇다 보니 결국 천벌을 받았는데, 커다란 바위를 산꼭대기까지 밀어 올리고 그러다 반대편으로 굴러 떨어지면 그걸 다시 미는 영원한 고역에 처해졌다.
▲ 영원히 바위를 밀어 올려야 하는 '시지프' (출처: 게임메카 촬영)
누가 봐도 꿈도 희망도 없는 지경이지만 ‘카뮈’는 되려 이러한 ‘시지프’가 행복하다고 보았다. 그는 쓸데없는 희망이나 증오에 매몰되지 않고, 부조리한 상황을 가감 없이 인정하며 자신의 의지로 형벌을 수행한다. 이에 대하여 ‘카뮈’는 “조금씩 더 깊숙이 내려가는 그 순간순간 ‘시지프’는 운명보다 더 우월하다”고 적었다.
좀처럼 이해하기 어렵다. ‘카뮈’ 실존주의 철학이 원채 어렵거니와, 기자에겐 알기 쉽게 풀어서 쓸만한 깜냥도 없으니까. 다행히도 ‘어나더 어드벤처’는 ‘카뮈’에 대하여 전혀 몰라도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됐다. 철학 서적처럼 달달 외우지 않아도 게임을 즐기며 자연스레 삶과 꿈에 대하여 고민해보고 사유화할 수 있다.
▲ '어나더 어드벤처' 공식 트레일러 (출처: 유튜브 Games Trailers Channel)
꿈은 높은데 현실은 시궁창, 네 사람의 삶
여기 네 사람이 있다. 열성적인 대학생 ‘조니’는 매일 아침 6시에 알람을 맞춰놓지만, 매번 뒤척이다 늦게 일어나기 일쑤. 그러고도 SNS에 “날 깨우는 것은 알람 따위가 아니라 나의 꿈이다”라고 적는다. 그렇게 강의가 시작하기 직전에 되어서야 출석하고, 교수의 가르침이 시대에 뒤쳐진다고 속으로 폄하한다. 진실하고 알찬 정보는 모두 SNS에 있다고 믿는다.
프로그래머 ‘잭’은 매일 산더미 같은 코딩 업무를 맡아 1과 0(이진수 코드) 사이에서 씨름한다. 스스로 ‘힙’하다 생각하는 그래픽 티셔츠와 반바지를 입고, 훗날 스티브 잡스처럼 세계를 바꾸리라 다짐한다. 그러나 현실은 온갖 무의미한 코딩을 반복하거나 상사와 회사를 욕하며 하루를 보낸다. 신형 툴은 초심자들이나 쓰는 거라며 익히지 않는다.
여기 네 사람이 있다. 열성적인 대학생 ‘조니’는 매일 아침 6시에 알람을 맞춰놓지만, 매번 뒤척이다 늦게 일어나기 일쑤. 그러고도 SNS에 “날 깨우는 것은 알람 따위가 아니라 나의 꿈이다”라고 적는다. 그렇게 강의가 시작하기 직전에 되어서야 출석하고, 교수의 가르침이 시대에 뒤쳐진다고 속으로 폄하한다. 진실하고 알찬 정보는 모두 SNS에 있다고 믿는다.
프로그래머 ‘잭’은 매일 산더미 같은 코딩 업무를 맡아 1과 0(이진수 코드) 사이에서 씨름한다. 스스로 ‘힙’하다 생각하는 그래픽 티셔츠와 반바지를 입고, 훗날 스티브 잡스처럼 세계를 바꾸리라 다짐한다. 그러나 현실은 온갖 무의미한 코딩을 반복하거나 상사와 회사를 욕하며 하루를 보낸다. 신형 툴은 초심자들이나 쓰는 거라며 익히지 않는다.
▲ 멋진 미래를 꿈꾸는 대학생 '조니'와 스티브 잡스가 되고픈 '잭' (출처: 게임메카 촬영)
청년 ‘로버트’는 지루한 직장 생활 대신 여행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고자 한다. 영혼을 정화하고자 ‘티벳’으로 향하며, 주위의 걱정스런 시선을 무시하고 되려 조롱한다. 마침내 도착한 ‘티벳’ 사원에서 명상을 취하자 상처받은 정신이 치유 받는 기분이다. 그러나 실상은 여행이 길어질수록 그의 마음 속에 외로움만 겹겹이 쌓여간다.
게임 개발자 ‘케빈’은 스스로 예술가라 칭한다. 언젠가 자신만의 놀라운 기획을 완성시켜 AAA급 대작을 만들 계획이다. 헌데 그가 주로 하는 일은 매출 상위권에 있는 게임을 거의 그대로 모방해 내놓는 것. 먹고 살기 위한 잠깐의 타협이라며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다. 대신 양산형 게임이 범람하는 시장과 게이머들의 저급한 수준을 탓할 뿐.
▲ 티벳으로 훌쩍 떠난 '로버트'(상)과 스스로 예술가라 믿는 '케빈' (출처: 게임메카 촬영)
부조리한 세계를 직시하고, 치열하게 반항하라
보다시피 이들은 모두 생각과 행동이 따로 노는 부류다. 요즘 유행어로 표현하자면 “꿈은 높은데 현실은 시궁창”이랄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네 사람을 고발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이다. 축약해서 적어놔서 답답하고 한심하게 보이겠지만, 직접 게임을 해보면 이것이 남의 얘기가 아님을 느낄 수 있다.
다시 그리스 신화로 돌아가서, 영원히 바위를 밀어 올리는 ‘시지프’는 부조리한 현실에 시달리는 네 사람과 닮았다. 다만 부조리한 상황을 인지한 ‘시지프’와 달리 이들은 꿈과 미래, 낭만과 희망에 현혹되어 기계적으로 일상의 쳇바퀴를 돌고 있다. ‘카뮈’의 표현을 빌리자면 제대로 ‘의식이 깨어있지 않은’ 것이다.
보다시피 이들은 모두 생각과 행동이 따로 노는 부류다. 요즘 유행어로 표현하자면 “꿈은 높은데 현실은 시궁창”이랄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네 사람을 고발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이다. 축약해서 적어놔서 답답하고 한심하게 보이겠지만, 직접 게임을 해보면 이것이 남의 얘기가 아님을 느낄 수 있다.
다시 그리스 신화로 돌아가서, 영원히 바위를 밀어 올리는 ‘시지프’는 부조리한 현실에 시달리는 네 사람과 닮았다. 다만 부조리한 상황을 인지한 ‘시지프’와 달리 이들은 꿈과 미래, 낭만과 희망에 현혹되어 기계적으로 일상의 쳇바퀴를 돌고 있다. ‘카뮈’의 표현을 빌리자면 제대로 ‘의식이 깨어있지 않은’ 것이다.
▲ 무지와 희망 때문에 좌절하는 사람들, 너 나 우리의 얘기 (출처: 게임메카 촬영)
‘카뮈’는 부조리(L’Absurde)를 인간의 피할 수 없는 숙명으로 보고, 이것을 명확히 인식하라고 주문한다. 또한, 그럼에도 부조리에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치열하게 반항하는 것이 인간답다고도 했다. 허황된 꿈은 부조리한 세계를 직시하지 못하도록 가릴 뿐이며, 그보다는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굳은 믿음이다.
물론 여기에 동의할지는 순전히 플레이어 스스로에게 달렸다. 어차피 모든 철학이 그렇듯 ‘카뮈’ 실존주의도 숱한 반론이 존재한다. 무엇보다 ‘어나더 어드벤처’를 ‘카뮈’ 본인이 만든 것도 아니니 개발자의 생각이 섞여들 수밖에 없다. 꿈을 좇는 네 사람의 얘기에 공감했다면, 후일담은 자신의 삶 속에서 직접 만들어가는 것이 어떨까.
▲ '카뮈'를 굳이 알 필요도 없다, 게임을 해보고 스스로 느끼면 그만 (출처: 게임메카 촬영)
멀게만 느껴지던 철학을 친근하게 만드는 게임
혹자는 ‘어나더 어드벤처’가 오디오북에 가깝다고 한다. 하고자 하는 말을 일방적으로 전달할 뿐, 플레이어가 개입할 여지가 거의 없으니까. 조작하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그저 연출의 일종일 뿐 실질적인 자유는 없다. 가령 좌우 방향키를 연타해 ‘죠니’를 깨우는 부분에선, 목표 수치가 무한히 늘어나며 ‘잠에서 깨기 힘든’ 상태를 극적으로 묘사한다.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게임의 힘이다. 만약 ‘어나더 어드벤처’가 정말 오디오북이었다면 이 정도로 몰입되진 않았을 것이다. 그림판으로 그린 듯 하면서도 매력적인 원화, 적절히 흘러나오는 클래식BGM, 그리고 장난스런 패러디로 점철된 미니게임이 버무려진 후에야 네 사람의 얘기가 이채로운 빛을 발하게 됐다.
혹자는 ‘어나더 어드벤처’가 오디오북에 가깝다고 한다. 하고자 하는 말을 일방적으로 전달할 뿐, 플레이어가 개입할 여지가 거의 없으니까. 조작하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그저 연출의 일종일 뿐 실질적인 자유는 없다. 가령 좌우 방향키를 연타해 ‘죠니’를 깨우는 부분에선, 목표 수치가 무한히 늘어나며 ‘잠에서 깨기 힘든’ 상태를 극적으로 묘사한다.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게임의 힘이다. 만약 ‘어나더 어드벤처’가 정말 오디오북이었다면 이 정도로 몰입되진 않았을 것이다. 그림판으로 그린 듯 하면서도 매력적인 원화, 적절히 흘러나오는 클래식BGM, 그리고 장난스런 패러디로 점철된 미니게임이 버무려진 후에야 네 사람의 얘기가 이채로운 빛을 발하게 됐다.
▲ 그림과 음악, 미니게임이 한데 어우러져 몰입도를 높인다. (사진출처: 게임메카 촬영)
앞서 말했듯 ‘카뮈’의 철학은 어렵다. 하지만 ‘어나더 어드벤처’는 쉽고 재미있다.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만한 예시를 앞세워 복잡한 내용을 거부감 없이 흡수시킨다. 그림과 음악, 미니게임이라는 조미료가 더해져 2시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간다. 책이나 영상과 다른, 게임의 강점이 도드라지는 순간이다. 앞으로도 이런 흥미로운 작품을 많이 만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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