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다와 거상, 13년 전 명작 지금 해도 재밌을까?
2018.02.13 18:01게임메카 김헌상 기자
▲ '완다와 거상' 트레일러 (영상제공: SIEK)
지난 2016년 ‘도쿄 게임쇼’ 현장에서 소니 관계자와 ‘라스트 가디언’이 늦어진 이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돌아온 답변은 “우에다 후미토는 게임 발매를 독촉할 수 없는 개발자. ’이코’랑 ‘완다와 거상’을 해봤으면 알 것”이었다. 하지만 기자는 공감하기가 어려웠다. 두 게임 모두 출시 당시엔 너무 어려서 플레이하지 못했고, 지금은 반전도 이미 알고 있어 끝까지 진행할 동기부여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중, SIE 재팬스튜디오와 블루포인트게임즈가 13년의 세월을 넘어 ‘완다와 거상’을 부활시켰다. 그것도 단순한 리마스터가 아니다. 호평을 받은 게임성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기술적인 부분은 PS4에 맞게 처음부터 다시 만들었다. 그 결과물은 성공적이다. ‘몬스터 헌터 월드’를 비롯한 온갖 대작이 득시글거리는 2018년 PS4 생태계에서도 13년 전 게임 ‘완다와 거상’은 여전히 게이머들을 사로잡기에 하등 부족함이 없었다.
▲ 거상에 맞서는 소년의 이야기, '완다와 거상' (사진: 게임메카 촬영)
적막한 세계, 소녀를 구하기 위한 사투
‘완다와 거상’은 전설의 검과 활로 무장한 소년 ‘완다’가 죽어버린 소녀 ‘모노’를 구하기 위해 금단의 땅에서 벌이는 모험을 그린다. ‘완다’는 ‘모노’의 영혼을 되찾기 위해 봉인된 ‘도르민’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그의 명령에 따라 16개의 거상을 혈혈단신 무찌르게 된다. 이미 많은 게이머들이 거상의 정체와 결말부 이야기에 대해 알고 있으리라고 생각하지만, 아직 ‘완다와 거상’을 접하지 못했을 사람을 위해 자세한 스토리 언급은 피하도록 하겠다.
▲ 죽은 소녀 '모노'를 구하려는 '완다'의 이야기 (사진: 게임메카 촬영)
▲ '떡밥'이 이어지며 호기심을 자극한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완다와 거상’은 우에다 후미토의 ‘이코’ 3부작 특징을 고스란히 따르고 있다. 어딘가 낯설면서도 적막한 세계, 대사와 같은 글로 된 설명의 비중을 최대한 줄이며 호기심을 자극하는 스토리 텔링, 서정적이면서도 아름다운 배경음악 등, 다양한 요소를 통해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는 2018년 ‘완다의 거상’에서 더욱 강화됐다. ‘완다와 거상’은 넓고도 적막한 세계를 그리는데, 이 모든 비주얼이 PS4에 맞게 대폭 업그레이드된 것이다. 일단 사진을 그대로 옮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텍스처가 정교해졌다. 깎아지르는 듯한 절벽, 사막의 모래 먼지, 호수 표면에 떠있는 부유물 등은 진짜 자연이라고 해도 믿음이 간다. 정교한 그래픽은 숲에서 장점이 극대화되는데, 나뭇잎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이나, 역광으로 인해 앞이 잘 보이지 않는 현상 등이 게임 내에 고스란히 표현되어 있다. 사진처럼 펼쳐진 게임 속 세계를 만끽할 수 있게끔 UI를 최소화한 것도 높은 점수를 매기고 싶다.
▲ 자연환경은 정말 사실적 (사진: 게임메카 촬영)
▲ 숲에서는 감동했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아울러 PS4 Pro에서는 그래픽 해상도와 프레임레이트 중 어떤 것을 우선할지 고를 수 있다. 따라서 4K의 우월한 해상도로 거상의 위용을 느끼거나, 60프레임의 부드러운 액션을 체감하는 것이 가능하다. 기자는 프레임레이트를 우선해서 플레이했는데, 거상의 몸에 달린 털이 바람에 흔들리는 것이나 물결이 흔들리는 모습 등, 자연환경의 움직임이 한층 더 생동감 넘치게 바뀐다. 말에 타고 달릴 때의 질주감도 뛰어났다. 다른 게임에선 시네마틱 영상으로 볼 수 있을 법한 장면들이 그대로 게임 화면으로 펼쳐진다.
▲ 속도감도 제대로! (사진: 게임메카 촬영)
뛰어난 음악도 빼놓을 수 없다. 과거 많은 게이머들이 거상과의 전투에서 전율을 느꼈다고 한 이유는 적재적소의 음악 사용에 있다. 평소에는 새 지저귀는 소리나 말 발굽 소리 등을 제외하면 아무런 음악도 깔리지 않아 쓸쓸한 분위기를 풍기지만, 거상을 발견할 때부터 훌륭한 음악이 흘러나오며 긴장감을 한껏 끌어올린다. 명곡들로 가득한 ‘완다와 거상’이지만, 특정 거상을 상대할 때 나오는 음악 ‘리바이브드 파워’는 거대한 적을 쓰러트릴 수 있다는 희열을 제대로 전달한다. 들을 때마다 어찌나 용기가 솟던지, 아침에 알람으로 맞춰두면 월요일 출근도 힘차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 '리바이브드 파워'는 직접 전투에서 듣고 느껴보시라 (사진: 게임메카 촬영)
효과음 역시 게임 몰입감을 높이는데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육중한 거상이 움직일 때의 소리는 눈 앞에 진짜 돌로 된 거대한 조각상이 움직이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든다. 아울러 카메라가 물 속을 비출 때는 정말로 잠수하는 것처럼 소리를 차단하고, 물에 젖은 ‘완다’가 걸어 다닐 때는 신발이 젖은 듯한 소리가 나기도 한다. 이러한 세세한 효과음이 게임 속 세계에 몰입하도록 유도한다. 리메이크를 통해 시각은 물론, 청각까지도 사로잡은 것이다.
▲ 움직일 때마다 박력이 장난 아닌 3번째 거상 (사진: 게임메카 촬영)
공략과 컨트롤 모두 중요, 거상 전투 쾌감은 여전
이처럼 ‘완다와 거상’은 기술적으로는 큰 발전을 거쳤다. 하지만 게임성 자체는 변화하지 않았다. 2005년도의 것을 그대로 현대에 맞게 만드는 것을 목표로 내세운 만큼, 13년 전에 플레이했던 것을 그대로 다시 하게 되는 셈이다. 이에 너무 익숙하거나, 다소 낡았다고 느껴지지는 않을지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그럴 걱정은 없다. 2005년에 이런 게임이 나왔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완다와 거상’은 공략하는 재미가 탁월하다.
기본적으로 ‘완다와 거상’은 2단계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탐색 과정이다. 신전에서 목소리만 나오는 ‘도르민’이 ‘완다’에게 잡아야 할 거상에 대해 설명해주고, ‘완다’는 애마 ‘아그로’와 함께 거상을 찾아 넓디 넓은 대지를 달려나간다. 이러한 탐색 과정에서는 별다른 특이한 콘텐츠가 없다. 경치를 감상하거나, 곳곳에 숨겨진 도마뱀이나 과일을 찾는 것 정도다. 리메이크판에서는 숨겨진 동전이 추가되어 수집요소가 조금 더 늘어났지만, 게임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부가 요소 수준에 그친다.
▲ '도르민'이 타겟을 정해준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 검에서 나온 빛을 따라가면 거상이 나온다고? (사진: 게임메카 촬영)
▲ 말처럼 쉽진 않은 것이 사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 수집요소가 하나 정도 더 추가된 수준 (사진: 게임메카 촬영)
핵심 콘텐츠는 결국 거대하고 육중한 거상과의 전투 과정이다. 특히 거상은 한낱 인간 따위는 대수롭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강력한데다가 몸통은 단단한 돌덩이로 이뤄져 있으니 칼을 휘두르는 것은 무의미하다. 결국 거상을 쓰러트리기 위해서는 거대한 몸 곳곳에 숨겨진 급소를 찾아 전설의 검을 찔러 넣는 수밖에 없다. 따라서 거상은 쓰러트려야 할 보스 몬스터이면서, 동시에 플레이어가 극복해야 할 다양한 함정으로 무장한 던전이기도 하다.
▲ 기본적으로 규격 외의 존재에 맞선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이러한 거상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올라탈 수 있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각 거상에는 ‘완다’가 손으로 쥐고 기어 올라갈 수 있는 털이나 틈새 등이 있다. 그 외의 약점도 전체적으로 어두운 색상의 거상에서 혼자서 밝게 빛나는 등, 대놓고 ‘내가 약점이니 공략하라’고 유도한다.
다만, 게임이 보이는 것처럼 쉽지는 않다. 각 거상마다 존재하는 독특한 공략법이 있기 때문에, 단순히 빈틈을 찾는 것 외에도 특정 지점을 공격하도록 유도하거나 떨어진 지형지물을 활용해야 한다. 사실상 주어지는 단서라고는 ‘도르민’이 알쏭달쏭 수수께끼처럼 읊조리는 것 뿐이니, 급소가 뻔히 보이는데도 어떻게 올라가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아서 시간을 허비하기도 했다.
▲ 놈의 다리가 하얗게 빛나고 있군! (사진: 게임메카 촬영)
아울러 컨트롤도 중요하다. 연약한 ‘완다’는 거상의 발구르기 한 번에도 비틀거려 좀처럼 급소에 도달할 수 없다. 또한, 악력 게이지가 떨어지면 힘겹게 오른 거상의 위에서도 버티지 못하고 떨어지기 때문에, 발버둥치는 거상 위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는 순간도 마련해야 한다. 특히 급소를 찔린 거상은 고통스러운 것처럼 마구 움직이는데, 버틸 악력이 부족해 최후의 일격을 날리지 못하고 떨어질 때가 있다. 이 때는 ‘다크 소울’에서 보스를 단 한 방 남기고 죽어서 처음부터 다시 도전해야 하는 것처럼, 큰 절망을 느끼기도 한다.
기자처럼 게임 실력이 일천한 사람이라면 30분 동안 약점을 찾아내지 못해서 전전긍긍하거나, 기껏 다운시킨 거상을 오르는데 컨트롤 미스로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는 불상사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처럼 게임이 공략하기 어렵게 구성되어 있는 만큼, 성공했을 때의 성취감은 이루 말할 데가 없다. 물론 거상이 쓰러질 때마다 엄숙한 분위기의 음악이 흐르며 마치 애도하는 듯한 분위기가 연출되지만, 저 집채만한 거구를 이쑤시개 같은 칼 한 자루로 쓰러트렸다는 것에 마치 영웅이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 쓰러트리기 힘든 만큼, 해냈을 때의 성취감도 크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다만, 너무도 충실하게 원작을 재현한 만큼, 2005년도에 쓰여진 공략을 보고 게임을 진행하는데도 아무런 지장이 없었기 때문이다. 실력이 부족해 시도해보지는 않았지만, 인터넷에 공개된 타임어택 공략법을 시도해도 성공할 것 같다. 따라서 이미 13년 전 게임을 플레이해 본 사람에게는 다소 심심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다시 플레이할 가치는 충분하다. 앞서 말했듯이 보다 강력한 비주얼로 무장하고 있는 만큼, 거상과의 전투에서 더욱 가슴 뛰는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13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거상’은 풍화되지 않는다
이처럼 ‘완다와 거상’은 아주 멋지게 PS4로 찾아왔다. 기술적인 발전은 더 칭찬하면 입이 아플 정도이며, 정교한 레벨디자인과 공략법은 13년 후 현재 게이머에게도 좋은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다. 원작을 해보지 않았다면 이번 게임을 놓치기가 매우 아까울 것이고, 설령 해봤더라도 개인차는 있겠지만 다시 한 번 거상에 도전하는 쾌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사소한 아쉬움도 남는다. 특히 카메라가 제멋대로 움직이는 것이 게임을 진행하는데 어려움으로 작용했다. 특히 ‘아그로’를 타고 활을 쏴야 하는 구간에서는 카메라 무빙 때문에 조작 난이도가 몇 배는 높아진 것 같다. L2버튼을 꾹 누르는 락온에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마음처럼 되지 않는 조작에 짜증이 나기도 했다.
▲ 이 부분 넘어갈 때 고생을 많이 했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그럼에도 불구하고 패드를 손에서 놓을 수 없었다. 매력적인 스토리와 눈과 귀를 황홀하게 만드는 게임 속 세계, 그리고 해냈다는 쾌감을 전달하는 전투까지 더해지며, ‘완다와 거상’의 끝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13년 전 ‘완다와 거상’은 2018년에도 ‘현재진행형’이다.
▲ '완다와 거상'은 2018년에도 현재진행형 (사진: 게임메카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