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한국까지, 대 버츄얼 유튜버 시대 개막
2018.08.16 20:40게임메카 안민균 기자
인터넷 방송이 보급되면서 개인이 별다른 기술이나 장비 없이 방송을 진행할 수 있게 되자, 몇 년 전부터 흔히 말하는 ‘1인 미디어’가 인기를 얻고 있다. 오죽하면 초등학생 장래희망 조사결과 상위권에 ‘유튜버’가 존재할 정도다. 그런 1인 미디어 시장에 최근 특이한 존재가 보인다. 일명 ‘버츄얼 유튜버’다.
‘버츄얼 유튜버’는 실제 사람이 아닌 사이버 캐릭터가 유튜브 등지에서 활동하는 것을 말한다. 물론 이러한 버추얼 유튜버는 실제로 인공지능을 이용해 가상의 인물을 창조해낸 것이 아니다. 키즈나 아이를 비롯한 모든 버츄얼 유튜버는 프로그램을 이용해 별도의 가상현실 캐릭터를 제작하고, 실제 사람이 모션 캡처 장비와 더빙을 통해 연기하는 것이다.
▲ 현재 210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 중인 탑 버츄얼 유튜버 키즈나 아이 (사진출처: 영상 갈무리)
이러한 버추얼 유튜버 바람은 일본에서 시작됐다. 일본에는 아래 서술할 '키즈나 아이'를 비롯해 다양한 콘셉트의 버추얼 유튜버들이 활동하고 있다. 그 중 일부는 국내에서도 팬덤을 형성, 영상이 업로드되면 유저들이 자막을 스스로 입히는 경지까지 이르렀다. 이러한 바람을 타고 최근에는 국내에서도 버추얼 유튜버들이 탄생하고 있다. 바야흐로 대 버추얼 유튜버 시대가 열린 것이다.
200만 구독자 키즈나 아이, 그 뒤를 잇는 버츄얼 유튜버들
- 세계 최초의 버츄얼 유튜버, 키즈나 아이
‘키즈나 아이’는 버츄얼 유튜버 열풍의 시작이자 정점을 걷고 있는 캐릭터다. 2016년 10월부터 활동을 시작했으며, 국내에서도 인지도가 높아 댓글에도 드문드문 한국어가 보인다. 유튜브 영상이 업로드된 후 몇 시간 내로 바로 유저 한국어 자막이 달릴 정도다.
활달하면서도 한편으론 바보스러운 성격을 가진 ‘키즈나 아이’는 가상 공간에서 살고 있는 AI라는 설정이라 이름도 아이(AI)다. 방송 소재는 일상, 게임, 만화 등 다양하며, 간혹 시청자 고민 상담을 들어주거나 개인사를 풀어놓기도 하는 등 인간적인 면모를 보인다.
구독자는 16일 기준 211만 명, 이는 국내 굴지의 유튜버 대도서관 구독자 182만 명을 아득히 뛰어넘는 수준이다. 게임 쪽은 별도로 채널을 두고 있으며, 게임만으로 100만 명 구독을 달성하는 등 게이머들 사이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다.
▲ 버츄얼 유튜버 대선배 키즈나 아이 (영상출처: 키즈나 아이 공식 유튜브)
- 겉잡을 수 없는 4차원 매력, 카구야 루나
‘카구야 루나’는 2017년 12월부터 활동을 시작했다. 은발벽안에 특이한 디자인의 원피스를 입고 있으며, 높은 텐션과 특유의 목소리로 일본은 물론 북미권에서도 인기가 많다. 자칭 나이는 무려 143세. 방송 소재는 주로 일상에 대한 주제를 이끌어 나가거나 시청자와 만담을 나누곤 한다. 국내에도 어느 정도 인지가 있어 영상이 업로드된 후 일주일 이내 유저 한국어 자막이 달리곤 한다.
구독자는 16일 기준 79만 명, 버츄얼 유튜버 대선배 키즈나 아이에는 못 미치지만 역시 왠만한 스트리머보다 많은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다.
▲ 높은 텐션과 4차원 언행이 매력 포인트, 카구야 루나 (영상출처: 카구야 루나 공식 유튜브)
- 6천만 엔의 주역, 미라이 아카리
‘미라이 아카리’는 2017년 10월부터 활동을 시작했으며, 금발벽안에 노출도가 높은 복장이 특징이다. ‘미라이 아카리’라는 캐릭터가 탄생하기까지는 여러 비화가 존재했는데, 그 중 유명한 것이 버츄얼 유튜버 프로젝트를 완성시키기 위해 담당자가 6천만 엔(한화 약 6억 1,200만 원)에 이르는 돈을 대출했다는 것이다. 당시 버츄얼 유튜버 진입장벽이 어느 정도 높았는지 대략 감이 오는 부분이다.
방송 소재는 주로 일상이지만, 종종 게임 방송도 진행하곤 한다. 특히 버츄얼 유튜버이면서 VR장비로 가상 현실 게임을 즐기는 모습은 웃음을 자아낸다. 한국어 자막은 간간히 달리는 편이며, 구독자는 16일 기준 65만 명이다.
▲ 항아리 게임을 즐기는 미라이 아카리 (영상출처: 미라이 아카리 공식 유튜브)
- 청순계 얀데레? 반전 매력 ‘전뇌소녀 시로’
‘전뇌소녀 시로’는 2017년 8월부터 활동을 시작했다. 외견은 백발벽안, 다른 버츄얼 유튜버들과 비교해 의상이 자주 바뀌는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청순계 아이돌을 콘셉트로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방송을 이어나간다. 방송 소재는 주로 일상이나 게임, 가끔 보여주는 호러틱한 모습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있다. 한국어 자막은 간간히 달리는 편이다.
구독자는 16일 기준 52만 명이며, 앞서 언급한 키즈나 아이, 카구야 루나, 미라이 아카리, 그리고 전뇌소녀 시로를 합쳐 ‘버츄얼 유튜버 사천왕’으로 부르곤 한다.
▲ 반전 매력을 지닌 버츄얼 유튜버, 전뇌소녀 시로 (영상출처: 시로 공식 유튜브)
- 프로게이머 아냐? 게임 실력이 수준급, 네코미야 히나타
‘네코미야 히나타’는 2018년 2월부터 활동을 시작했으며, 버츄얼 유튜버 사이 떠오르는 샛별 같은 존재다. 방송 소재가 오직 게임이기 때문에 게이머들이 즐겨 찾는 편이다. 특히 FPS 게임에 강한 모습을 보여 ‘배틀그라운드’, ‘포트나이트’ 등을 재밌게 플레이해 급속도로 인기를 얻었다. 수준급 게임 실력과 어린 캐릭터 외형 및 목소리에서 나오는 갭이 호평이다.
구독자는 16일 기준 37만 명, ‘버츄얼 유튜버 사천왕’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반년 만에 구독자 30만 명을 돌파하고 꾸준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어 조만간 오천왕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 FPS 게임에 강한 모습을 보이는 버츄얼 유튜버, 네코미야 히나타 (영상출처: 히나타 공식 유튜브)
일본에서 시작된 버추얼 유튜버, 한국에서도 재탄생
이처럼 일본에서 시작된 버추얼 유튜버 열풍은 한국에서도 많은 인기를 얻었다. 한국 시청자들이 버추얼 유튜버에 열광하는 모습이 보이자, 자연스레 한국에서도 자체적인 버추얼 유튜버를 만들고자 하는 시도가 다수 있었다. 그 역사가 불과 한두 달에 불과하지만, 초기부터 많은 관심을 받으며 한국에서 '버추얼 유튜버' 시대를 열어가는 중이다.
- 게임홍보를 이렇게도 해? 버츄얼 유튜버 ‘세아’
지난 7월 2일 '에픽세븐'을 홍보하기 위해 독특한 존재가 나섰다. 버츄얼 유튜버 ‘세아’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세아는 '에픽세븐을 소개하고 유저들에게 더 친근하게 다가가고 싶어서 만들어진 딥러닝이 가능한 AI'라는 콘셉트를 가지고 있다. “키즈나 아이 같은 유명한 AI가 되고 싶다”라고 언급하는 등 일본 쪽에서 영향을 받았음을 간접적으로 인정했다.
초반에는 게임홍보를 위해 제작된 기업형 버츄얼 유튜버라는 점에서 거부감을 가지는 사람도 많았지만, 홍보 영상 뿐 아니라 일상 영상도 업로드 하는 등 소탈한 모습을 보여 전체적인 평은 나쁘지 않다. 여기에 각종 커뮤니티 등지에서 유행하는 유머를 동반한 유쾌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에 신기함 반 재미 반으로 괜찮은 반응을 끌어내고 있다. 16일 기준 구독자는 약 4만 명, 활동한 지 한 달 정도밖에 안됐다는 점을 미뤄보면 기분 좋은 출발임은 확실하다.
▲ 각종 유머를 능수능란하게 구사하는 버츄얼 유튜버, 세아 (영상출처: 세아 스토리 유튜브)
- 국내에 개인 버츄얼 유튜버가? ‘세렌디’
보통 버츄얼 유튜버로 활동하기 위해선 최첨단 기술과 백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국내에 그 통념을 깨는 버츄얼 유튜버가 한 명 등장했다. ‘세렌디’는 지난 6월 27일부터 활동하기 시작한 개인 버츄얼 유튜버로, 보급형 VR장비를 이용해 비교적 저렴한 버츄얼 스튜디오를 구성했다.
‘세렌디’는 고가의 모션 캡처 장비 대신 모션 트래킹이 가능한 VR 헤드셋 ‘바이브’를 이용해 캐릭터를 조종한다. 기기 한계상 손가락 마디 하나까지 움직이는 섬세한 동작은 할 수 없지만, 표정 변화나 몸짓 등 일반적인 활동을 보여주는 것에는 문제없다. 방송 소재는 주로 게임이지만, 가끔씩 일상을 주제로 다루기도 한다. 16일 기준 구독자는 6만 명, 국내에서 공식적으로 활동하는 버츄얼 유튜버 중에는 최고 수준이다.
▲ 게임 방송을 주로 하는 국내 개인 버츄얼 유튜버, 세렌디 (영상출처: 세렌디 유튜브)
진입 장벽 낮아졌다, 대 버추얼 유튜버 시대 열리나
과거 버추얼 유튜버는 고도의 기술과 자본이 필요한 콘텐츠로 '그들만의 리그'로 불렸다. 모션 캡처 장비 마련이나 프로그램 제작 등으로 인해 '미라이 아카리' 프로젝트에만 6천만 엔이 들었다는 일화가 좋은 예다.
하지만 가상현실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버츄얼 유튜버도 마냥 먼나라 이야기만은 아니게 됐다. 실제로 보급형 VR 헤드셋을 활용하면 개인도 충분히 버츄얼 스튜디오를 구성할 수 있다. VR 헤드셋은 ‘모션 트래킹’이라는 기능을 지원하는데, 이를 이용해 사용자와 가상현실 캐릭터의 움직임을 일치시킬 수 있다. 현재 시중에서 판매 중인 VR헤드셋은 바이브, 오큘러스, 윈도우 MR 등이 있으며, 저렴한 제품은 30만 원 내외로 구매할 수 있다.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버츄얼 스튜디오를 생각하면 상당히 저렴한 셈이다.
▲ VR헤드셋은 국내에서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 (사진출처: 바이브 공식 홈페이지)
여기에 최근에는 여러 프로그램을 통해 가상현실에서 사용할 캐릭터도 직접 만들 수 있게 됐다. 8월 1일 일루전이 스팀에 무료 공개한 ‘V카츠’는 정해진 프리셋에 따라 버츄얼 유튜버 활동에 필요한 캐릭터를 생성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또 8월 3일 픽시브에서 무료 공개한 ‘VRoid’는 그림을 그려서 가상현실 캐릭터를 만들 수 있게 하는 등 다방면의 기술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 버츄얼 아바타 생성을 돕는 'V카츠' (사진출처: 스팀 웹페이지)
▲ 그림을 그려서 캐릭터를 만들자, VRoid (사진출처: VRoid 공식 웹페이지)
버추얼 유튜버는 개인방송에서 시청자와 소통하고 싶지만 실제 모습을 내보이는데 부담을 느꼈던 사람들에게 좋은 기회로 다가온다. 용기가 부족한 사람에게 가상의 존재를 몸에 두른다는 타협안을 제시하는 것이다. 아직까지는 이런 존재를 낯설어 하는 사람도 많지만, 선발주자가 순풍을 타고 있는 만큼 다양한 후발 주자들이 따라붙으며 새로운 장르를 구축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