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의 전원 탈락, 왜 롤드컵에서 한국이 부진했을까?
2018.10.22 17:41게임메카 김미희 기자
▲ 아프리카 프릭스마저 탈락하며 올해 롤드컵에는 한국 대표팀이 단 한 팀도 4강에 오르지 못했다 (사진제공: 라이엇게임즈)
지난 주말 비보가 날아들었다. 이번 시즌 최고의 팀을 뽑는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 챔피언십(이하 롤드컵)’에서 한국 대표팀 3팀이 모두 8강을 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룹스테이지에서 탈락한 젠지 e스포츠에 이어 kt 롤스터와 아프리카 프릭스도 8강에서 뼈저린 패배를 맛보며 4강 진출에 실패했다. 한국이 단 한 팀도 4강에 오르지 못한 것은 2012년 이후 6년 만의 일이다. 작년부터 거론된 LCK(리그 오브 레전드 한국 리그) 위기론이 올해 롤드컵을 통해 수면 위로 떠오른 셈이다.
특유의 버티기가 통하지 않았던 메타, 그리고 라인전 약세
그렇다면 올해 롤드컵에 유독 한국 대표팀의 부진이 두드러지게 나타난 원인은 무엇일까? 경기 내적으로 가장 큰 흐름에서 찾는다면 ‘메타’다. 라이엇게임즈는 2018 시즌에 대대적으로 메타에 큰 변화를 가했다. 의도는 간단했다. 초중반부터 부지런히 싸움을 걸어 전투에서 우위를 보는 공격적인 플레이를 요구한 것이다. 보통 후반 캐리(게임을 주도하는 것)를 지향했던 원거리 딜러 포지션에서 원거리 공격수가 아닌 ‘비원딜’ 챔피언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 그 단적인 예다.
하지만 한국은 2018 시즌에도 팀 대부분이 ‘운영’ 메타를 이어나가는 모습을 보였다. 초중반에는 전령이나 드래곤 등으로 적절히 이득을 챙기고, 이 이득을 후반까지 천천히 굴려가며 거대한 스노우볼을 만들어내는 전략을 유지했던 것이다. 이러한 전략은 안정적인 승리를 보장할 수 있지만 이득을 지키는데 집중해 유리한 상황에서도 싸움을 피하며 상대에게 역전의 빌미를 주는 약점을 드러낼 수 있다.
이러한 측면이 가장 뚜렷하게 드러난 것이 세트 스코어 2:2 상황에서 벌어진 kt 롤스터와 IG의 8강 마지막 세트였다. 풀세트까지 이어진 접전에서 IG는 ‘루키’ 송의진의 ‘르블랑’이 초반 아이템을 맞춰오지 않은 실수가 있었다. Kt 입장에서는 이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은 것이다. 하지만 초반에 더욱 더 적극적으로 움직인 쪽은 IG였으며 결국 ‘킨드레드’의 갱킹을 바탕으로 한 선취점으로 ‘르블랑’이 킬을 기록하며 실수를 만회했고, 이후 오브젝트 싸움에서도 IG가 연이어 득점하며 경기는 IG의 승리로 끝이 났다.
▲ kt는 마지막 세트까지 가는 접전 끝에 4강에 오르지 못했다 (사진제공: 라이엇게임즈)
그러나 사실 이전 롤드컵을 돌아보면 한국이 해외보다 새로운 메타를 받아들이는 속도가 느리다는 것은 올해에만 지적된 부분은 아니었다. 기존에도 한국은 ‘메타’를 씹어먹는 경기 스타일을 보여주며 글로벌 리그에서 두각을 드러내왔다. 이 배경에는 엄청난 ‘라인전’ 능력이 있었다. ‘메타’에 맞지 않는 픽으로도 라인전 단계에서 격차를 벌리고 이를 후반까지 이어가며 준비해둔 운영을 꺼내는 스타일이 먹힌 것이다.
이러한 측면이 가장 극명하게 나타난 것이 2014년 우승을 차지한 삼성 갤럭시 화이트가 보여준 ‘탈수기 운영’이었다. 하지만 올해는 이야기가 달랐다. ‘메타’를 떠나 라인전 단계에서 한국 대표팀이 힘을 쓰지 못하고 우위를 내주고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다. 대표적인 예가 C9에 0:3으로 패배한 아프리카 프릭스의 8강전이다. 전체적으로 ‘기인’ 김기인의 능력은 돋보였으나 미드나 바텀 라인에서 초반 라인전에 무너지는 모습을 보이며 결국 0:3 패배라는 쓰디쓴 결과가 돌아왔다.
▲ 아프리카 프릭스에서는 '기인' 김기인이 분전했으나 홀로 경기를 이끌고 나가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사진제공: 라이엇게임즈)
‘리그 오브 레전드’에서 라인전은 기초 체력과 다름 없다. 중후반 싸움을 대비해 힘을 키우는 단계이기 때문에 상대보다 우위에 서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한다. 하지만 아프리카 프릭스는 전반적으로 초반 라인전에서 상대를 압도하기보다 운영으로 버티며 후반에 한타로 승패를 결정지으려는 모습이 강했다. 이러한 모습은 2013년, 2014년에 라인전부터 상대를 찍어 누르며 공포감을 심어준 한국의 모습과 큰 차이가 있었다.
인재 영입에 약한 소극적인 투자
올해 롤드컵에서 주목할만한 부분은 해외 팀에서 뛰고 있는 한국 코치진과 선수들의 활약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아프리카 프릭스를 3:0으로 잡아내고 첫 4강 진출에 성공한 북미 대표팀 C9은 감독 및 코치진이 한국 ‘리그 오브 레전드’ 선수 출신이다. 감독은 ‘래퍼드’ 복한규가 맡고 있으며 코치는 ‘빠른별’ 정민성에 롤드컵을 앞두고 ‘쏭’ 김상수를 보조 코치로 영입했다. 여기에 중국 대표팀 중 유일하게 4강에 오른 IG 역시 한국 출신인 김정수 수석 코치가 활동 중이다.
▲ 북미 C9을 이끌고 있는 '래퍼드' 복한규(상)과 중국 IG를 4강에 올려놓은 김정수 수석 코치 (하) (사진제공: 라이엇게임즈)
해외 팀에서 두각을 드러낸 한국인 선수 다수도 조명되고 있다. 8강에서 중국 강호 RNG를 격파하며 4강에 오른 유럽 ‘G2 e스포츠’에는 롤드컵 수훈장으로 떠오른 ‘와디드’ 김배인이 활동 중이다. 여기에 IG에는 ‘더샤이’ 강승록, ‘루키’ 송의진, ‘듀크’ 이호성까지 한국인 선수가 무려 3명이나 활동하고 있다.
▲ G2 e스포츠에서 두각을 드러낸 '와디드' 김배인(상)과 IG 탑 라인을 책임지고 있는 '더샤이' 강승록
‘리그 오브 레전드’ 강국으로 알려진 한국 출신 선수와 코치진이 해외에서 활약하고 있다는 것은 한국 인재가 해외에서도 종횡무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반대로 보면 우수한 인재를 한국에 붙잡지 못하고 해외에 내보내고 있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즉, 좋은 인재가 장기적으로 한국에 머물게 하는 기반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리그 오브 레전드’ 국내 e스포츠 시장에서는 점점 더 대기업이 발을 빼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삼성과 CJ E&M이 ‘리그 오브 레전드’ e스포츠 팀 운영에서 철수한 것이다. 그 이후에 락스 타이거즈를 인수한 한화생명이 구원수로 등장했지만 현재 ‘리그 오브 레전드’는 대기업 중심에서 팀 브랜드를 앞세운 클럽 팀 위주로 재편된 것이 사실이다.
기업팀과 클럽팀은 장단점이 있지만 자본력에서는 기업팀이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다. 여기에 ‘리그 오브 레전드’를 포함한 e스포츠 시장 전체적으로 봐도 중국은 물론 서양에서도 e스포츠에 대한 투자가 적극적으로 이뤄진 반면 e스포츠 종주국이라 할 수 있는 한국에서는 외연적인 성장이 더뎠다.
다시 말해 e스포츠에 대한 투자의 차이가 경기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엑소더스라 불릴 정도로 선수 이탈이 심했던 2014년에는 ‘롤드컵’을 비롯한 글로벌 리그를 한국 대표팀이 휩쓸며 위기감이 고조되지 않았다. 하지만 2014년부터 올해까지 점점 시간이 흐르고, 그 사이에 지속적으로 해외로 인력이 유출되며 한국의 노하우가 해외에 축적되는 기간도 길어졌다. 이를 기반으로 간극이 좁혀지고, 결국 올해는 해외 팀이 한국을 추월하는 결과가 나오고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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