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김택진 대표 큰 결심했다
2018.10.26 18:11게임메카 김미희 기자
▲ 올해 5월에 열린 '리니지M' 1주년 기자간담회 현장에 참석한 김택진 대표 (사진: 게임메카 촬영)
현재 게임업계 눈과 귀는 29일에 열리는 문화체육관광부 국정감사에 쏠려 있다. 엔씨소프트 김택진 대표가 증인으로 출석하기 때문이다. 김택진 대표가 증인으로 채택됐다는 이야기는 10월 초부터 나왔으나 그가 직접 현장에 나가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출석을 거부하거나 대리자를 보내지 않겠냐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는데, 이는 국정감사에서 김택진 대표가 다룰 이슈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바로 '확률형 아이템' 문제다.
김택진 대표를 증인으로 신청한 손혜원 의원은 작년에도 ‘확률형 아이템’은 도박이다’라고 질타했다. 올해도 손혜원 의원은 김 대표와 게임위 이재홍 위원장을 상대로 ‘확률형 아이템’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이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물어보는 형태로 질문과 답변이 오고 갈 가능성이 높다. 손혜원 의원은 이전에 선동열 의원을 상대로 호통 국감을 이어가다가 '야알못'이라며 여론의 비판을 받은 바 있다. 따라서 이번에는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작심하고 준비할 것이다. 김 대표 입장에서는 ‘확률형 아이템’이라는 이슈도 부담스러운 가운데 강성으로 알려진 손 의원을 상대로 답변을 이어가야 하는 상황이다.
국정감사에서 업계 대표로 ‘확률형 아이템’ 지적을 받는다면, 엔씨소프트나 본인이 이 문제에 대한 대부분의 책임을 떠안을 수 밖에 없게 된다. 더욱이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불만은 게이머는 물론 정치권에서도 극에 달한 상황이라 부담이 더 클 수 밖에 없다. 작년에는 서양에서도 ‘랜덤박스’ 규제 움직임이 일었다. 미국에서는 21세 미만에게 ‘확률형 아이템’이 있는 게임을 팔지 말라는 법안이 발의됐고, 벨기에와 네덜란드는 ‘피파 18’, ‘오버워치’ 등 ‘확률형 아이템’을 팔던 게임에 철퇴를 내렸다.
이는 한국 정부에도 영향을 미쳤다. 서양에서 규제 움직임이 있는 만큼 한국 정부에서도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요구가 강해진 것이다. 게임위 이재홍 위원장은 올해 국정감사에서 “과도한 과금 유도성 확률형 아이템으로부터 이용자 보호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라며 청소년을 보호할 방법을 게임위 차원에서 연구하고 있다고 답한 바 있다.
게이머를 중심으로 한 여론은 더욱더 호의적이지 않다. 올해 게임대상 후보작 11개 중 모바일만 10개에 달할 정도로 국내 시장은 모바일게임에 치우쳐 있다. 그런데 모바일게임 대부분이 ‘확률형 아이템’을 팔고 있고, 게이머는 0.00…으로 시작하는 극악한 확률에 지쳐 있다. 셧다운제나 예전에 나온 게임중독법과 같은 규제를 극도로 반대하던 게이머들이 유일하게 찬성하는 규제가 ‘확률형 아이템 규제’라는 것이 여론을 여실히 보여준다.
김택진 대표 입장에서는 정부도, 여론도 자기편이 아니다. 모두가 ‘확률형 아이템’을 규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자리에 게임업계를 대표해 나가는 것이다. 밖에 나오는 경우가 거의 없어 ‘은둔의 경영자’라고 불리던 것과 사뭇 다른 태도다. 국정감사 현장이 험난하리라는 것은 김 대표 본인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국회의원의 질의는 물론 이를 지켜보는 대중들의 비난도 업계를 대표해서 스스로 감수해야 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김 대표 입장에서 국정감사를 피하고자 했다면 얼마든지 가능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호통만으로 끝날 수 있는 국정감사에 대한 부담을 짊어지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엔씨소프트 창업주로서 어려운 자리에 나가겠다고 결정한 결단력은 인정해줘야 할 부분이다. 3N이라 불리는 국내 대표 게임사 중 창업주가 ‘대표’로 있는 곳은 엔씨소프트가 유일하다. 넥슨을 창업한 김정주 회장은 넥슨 지주회사 NXC 회장을 맡고 있으며, 넥슨코리아는 이정헌 대표가 자리하고 있다. 넷마블 역시 방준혁 의장이 아닌 권영식, 박성훈 대표가 업무를 맡고 있다.
이와 달리 김택진 대표는 아직도 엔씨소프트 대표로 활동 중이다. 본인이 차린 회사를 책임지고 있다는 것이다. 예전부터 업계에서는 ‘셧다운제’를 비롯한 규제 이슈가 일어날 때마다 1세대 게임인이 나서주길 바랐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정치권의 압박에 게임업계가 힘들 때마다 대표들이 나서서 목소리를 내는 경우는 없었다. ‘은둔의 경영자’라는 말이 돌 정도로 침묵을 지키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이는 김택진 대표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난항이 예상되는 올해 국정감사에서 김택진 대표는 기존과 다른 움직임을 보였다. 업계를 대표해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의견을 개진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1세대 게임인의 움직임은 업계 입장에서 매우 크게 느껴진다. 이번에는 숨지 않고 정면승부 해보겠다는 의지가 엿보이기 때문이다. 이번 국정감사에서 나오는 김택진 대표의 말 한마디는 매우 중요하다. 그의 말 자체가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게임업계 대표 입장으로 널리 알려지기 때문이다. 20년 넘게 본인이 창업한 회사를 이끌어온 경험을 살려 의원의 정곡을 찌르는 답변이 나오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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