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장애 질병화 찬성 의료계 "우리는 독립투사다"
2019.06.21 22:35게임메카 이재오 기자
WHO 게임 장애 질병코드 등록에서 가장 큰 쟁점은 정확한 기준과 심도 깊은 연구 없이 게임 중독을 질병코드에 등재했다는 것이다. 게임이 중독을 유발하는지조차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제대로 된 정의나 연구, 진단 기준 없이 '게임 장애'라는 항목이 먼저 개설됐기 때문에 게임업계는 물론 의학계에서도 우려와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러나 게임 질병코드 국내 도입을 찬성하는 국내 정신의학계 관계자들은 다르다. 게임 장애 질병코드 등록 결정은 충분한 연구와 학술적 근거를 통해 진행된 것이며, 오히려 ICD-11에 적힌 기준이 중독학회에서 제시한 DSM-5에 비해 매우 보수적이고 엄격한 기준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더불어 WHO 결정은 돌이킬 수 없기 때문에 의학계와 게임 업계와 함께 고민해 건강한 놀이 문화를 만들자고 제안하고 있다.
21일,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 대한신경정신의학회, 대한예방의학회,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 한국역학회 등 5개 의학회와 소비자시민단체, 정신보건다학제학협회는 서울시 서초구 가톨릭대학교 성의교정에서 '건강한 게임/디지털미디어 이용 환경을 위한 긴급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전반적으로 게임 장애 질병화를 찬정하는 측이다. 본 행사에서 나온 발언은 다음과 같다.
"인터넷 환경에 아이를 놔두는 것은 고속도로에 놔두는 것과 같다"
이상규 한림대학교 의과대학교수는 프랑스 교육부 장관의 말을 인용하며 행사를 시작했다. 아이들을 고속 인터넷 환경에 놔두는 것은 고속도로에 아이를 혼자 놔두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그는 덧붙여서 "문화 산업계에서 활약해야 할 게임이 중독을 야기한다는 것이 아쉽다"며 "정부부처가 이에 대해 이렇게 늦게 대처하는 현실이 참 안타깝다"고 게임을 이미 중독 물질로 규정하며 이야기를 진행했다. 참고로 정부 기관 중 보건복지부, 교육부, 여성가족부는 ICD-11 결정을 적극 수용하겠다는 측이며, 문화체육관광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이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ICD-11 등록 이후로도 연구를 통해 게임 장애에 대한 정의를 내려야 한다"
WHO 질병 코드 분류 연구에 참여한 바 있는 김석일 교수는 이번 ICD-11 개정에 중국이나 한국이 압력을 가했다는 이야기에 대해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며 일축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ICD를 분류하는 곳은 WHO 산하 여러 부서 중 한 곳이며, 가입국에 속한 여러 국가의 연구원의 모든 동의를 구해야 등재가 가능하다. 그는 "ICD-11 개정이 사실상 확정되었던 순간은 올 5월 총회가 아니라 작년 6월 있었던 개정안 발표 때였다"고 말했다.
더불어 그는 알콜 의존이 ICD-10에 편입될 때와 현 상황을 비교했다. "알콜 의존이 ICD에 들어갈때 주류 업계에서 아무 반발도 없지 않았나? 게임업계 또한 그 부분을 고려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석일 교수는 게임 장애 질병코드 등록은 게임 중독에 걸린 사람이 생겼을 경우 범 국가적으로 그걸 치료할 수 있는 최소한의 근거를 확보하기 위함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는 "앞으로도 더 활발한 연구를 통해 '게임 장애'에 대한 정의와 진단 기준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는데, 이는 내부적으로도 게임 장애에 대한 확실한 정의를 내리지 못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전체 학생 대비 1.9%가 게임 중독 증세 보일 정도로 심각하다"
2013년 미국정신의학협회에서 낸 DSM-5에 인터넷 게임 장애 기준(IGD)이 생겼다. 이는 인터넷 게임을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사용해 임상적으로 심각한 손상 또는 기능 손상을 보이는 것을 말한다. 다만, 기준 정립 이후 추적 연구를 시행한 경우는 고작 1건에 불과하며, 나머지는 별개 진단도구를 이용해 결과를 얻고 있다. 국내에서 게임 중독과 관련된 장기 추적 연구는 이해국 교수와 최정섭 교수와 교육부에서 한 조사를 포함해 총 3건이다. 게임 장애의 장기 추적 연구가 힘든 이유는 이탈자가 많이 생기기 때문이다. 발표를 맡았던 가톨릭대학교 예방의학 임현우 교수에 따르면 이탈자 대부분 중독이 된 상황이지만, 직접 물어보거나 설문조사를 하면 스스로 정상이라고 대답하기 때문에 제대로 된 연구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임현우 교수가 직접 진행한 조사는 총 21개 학교 2,120여 명 학생을 대상으로 했다. 참고로 임 교수는 약 2,400여 명이 참여했다고 덧붙였다. 진단 기준은 DSM-5의 '인터넷 게임의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사용으로 인해 임상적으로 심각한 손상이나 기능 손상'을 기준으로 삼았다. 학생의 경우 게임을 하기 위해 학교에 출석하지 않는 등의 경우다. 1 대 1 상담을 통한 조사 결과 임 교수는 추적률을 92%까지 올렸으며, 그 중 초창기부터 게임 중독 증세를 보인 학생은 전체 학생 대비 1.9%에 달하는 42명이었다. 그 중 14명이 해당 증세를 계속 보이고 있다. 참고로 ICD-11 기준에 따르면 게임 장애에 해당되는 학생은 7명이다.
"게임이 ADHD를 유발할 수도 있다"
정영철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는 "게임이 ADHD를 유발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정확히는 "ADHD 증상이 있는 아이가 게임에 쉽게 중독될 수 있지만, 그 역도 가능하다고 본다"는 의견이다. 그는 게임에는 우연적인 요인들이 정교하게 설계돼 있는데, 게임을 1시간 이상 즐기다 보면 뇌의 도파민 보상회로가 변해 점차 우연에 기대게 된다는 것이다. 정영철 교수는 이 부분을 설명하기 위해 자신의 '스타크래프트' 경험을 이야기했다. "처음 사이오닉 스톰을 이용해 적 드론을 공격할 때는 우연에 기대게 되지 않지만, 사람의 집중력엔 한계가 있기 때문에 나중에는 정교한 계산보다는 운을 바라게 된다"고 말했다. 다만, 정 교수는 ADHD와 게임 중독 간의 정확한 인과 관계에 대해서는 명확히 설명하지 않았다.
"임상 상담을 하다보면 생각보다 훨씬 심각한 환자를 많이 만난다"
방수영 을지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는 본인의 임상 상담 사례를 설명하면서 발표를 진행했다. 방송에서 보는 일부 사건보다도 더욱 끔찍한 경우를 자주 목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DSM-5에 비해서 ICD-11이 훨씬 진단 기준이 좁다"며 "WHO 기준에 해당하는 사람은 기존보다 더욱 심각한 증세를 보일 것이다"고 말했다. 100분 토론에 출연했던 위정현 게임학회장은 4년 전부터 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 50개소를 전국에서 운영했으나 전체 등록자는 200명에 불과, 4년 동안 1명의 게임 중독자도 등록되지 않은 곳이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우리는 독립투사다"
좌담을 맡았던 윤명숙 중독포럼 공동대표는 지정 토론에 앞서서 이번 심포지움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 그는 "사람들이 쉽게 인정하지 않는 게임 중독을 치료하기 위해 위해 앞서는 독립 투사 같은 분들을 모셔놨다"고 말하며 "'김원봉' 처럼 후에는 재평가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약산 김원봉 의사는 일제강점기에 의열단장, 대한민국 임시정부 군무부장 등으로 활동하며 항일 무장투쟁을 주도한 인물이다.
중독포럼은 알코올, 도박, 마약 등 중독물질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책, 보건, 치료, 정신의학, 뇌과학, 예방, 심리, 사회복지, 상담, 교육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소통하고 교류하는 연구 네트워크 단체로, 최근 WHO 게임사용장애 ICD-11 승인에 대해 지지를 보낸 바 있다. 또한 게임업계 등에서 이번 결정을 게임 전반에 대한 규제로 동일시하여 사실 관계를 왜곡하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고 주장했다.
"청소년도 우리 편이 아니다"
강정훈 경기교육청 장학사는 업계의 무관심을 논했다. 그는 "게임업체 수익률을 걱정하기 보다는 아동과 청소년의 건강이 우선시 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셧다운제를 예로 들며 게임 규제가 게임업계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은 것처럼 게임 장애도 그럴 것이라고 말했다.
더불어 교육계와 청소년들의 무관심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중독된 아이들을 어떻게 치료해야 하는지에 대한 가이드가 없다"며 "선생들이 제대로 된 검사조차 못 하게 막고 있다"고 말했다. 게임 장애와 관련된 설문조사를 하면 선생님들이 나서서 중독이 아닌 것처럼 꾸민다는 것이다. 그는 "청소년도 우리 편이 아니다"라며 "청소년이 게임 중독에 대해 스스로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단체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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