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정남] 날강두 뺨 치는, 게임계 '노쇼' TOP5
2019.08.01 10:10게임메카 류종화 기자
※ [순정남]은 매주 이색적인 테마를 선정하고, 이에 맞는 게임을 골라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지난 주, 한국 축구팬들은 팀 K리그와 이탈리아 세리에A 명문 구단 유벤투스와의 친선 경기를 보기 위해 상암구장에 집결했다. 일부는 유벤투스 구단 자체에 대한 무한 애정을 가지고 찾아왔겠지만, 이 날 경기장에 온 국내 축구팬 대다수는 세계적인 축구선수 호날두를 보기 위한 사람들이었다. 사실상 이들에게 유벤투스는 호날두였고, 계약서에도 호날두의 최소 45분 출전이 명시돼 있었다. 그렇기에 이 날 벌어진 호날두 ‘노쇼’는 큰 충격이자 배신으로 다가왔고, 호날두는 ‘호우형’ 대신 ‘호날강두’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얻었다.
게임업계에도 게임 자체보다 캐릭터가 더 유명한 사례가 있다. 이 경우 신작 게임의 게임적 요소가 아무리 잘 구성돼 있더라도, 시리즈의 아이덴티티인 캐릭터가 불참할 경우 평가가 확 낮아지거나 팬들의 외면을 받기 십상이다. 류 없는 스트리트 파이터, 링크 없는 젤다의 전설이 상상조차 하기 싫은 것처럼,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나왔어야 했던 캐릭터의 불참으로 화제를 모은 게임계 노쇼 TOP5를 뽑아 봤다.
Top 5. 마스터 치프 노쇼 ‘헤일로 외전 2종’
Xbox 진영을 대표하는 게임을 하나만 뽑자면, 아마 과반수는 ‘헤일로’를 선택할 것이다. 그리고 그 중 대부분이 ‘헤일로=마스터 치프’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헤일로가 유벤투스라면 마스터 치프는 호날두에 과거 미셸 플라티니나 지네딘 지단, 파벨 네드베드 등 모든 레전드를 합하고, 여기에 초대 구단주까지 겸하는 신적 존재다. 참고로 헤일로 팬들에게 “맨얼굴도 공개되지 않은 중년 아저씨가 뭐가 그리 좋으냐”고 물었다간 인생 로그아웃 당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치프에 대한 사랑은 거의 종교 수준이니까.
그런데 번지에선 무슨 영문인지 치프가 빠진 헤일로를 선보인 적이 있다. 그것도 무려 두 차례나. 2009년 ‘헤일로 3: ODST’와 2010년 ‘헤일로: 리치’가 그 주인공이다. 둘 다 번지 헤일로 삼부작 완결 후 덤으로 보는 외전 타이틀이었기에 본편에서 못 다룬 또 다른 이야기를 다루는 것이 이상하진 않았지만, 치프 없는 헤일로라는 딱지는 역시나 떼기 어려웠다. 심지어 ‘헤일로: 리치’ 최후반부에 팬서비스 삼아 끼워 넣은 동면 중인 치프의 모습은 괜히 설정충돌 논란만 불러일으켰다. 그래서일까, 번지 손을 떠난 첫 넘버링 작품 ‘헤일로 4’는 첫 공개부터 치프라는 치트키를 전면에 내세워 환호를 받기도 했다. 그나마 위 두 ‘치프 노쇼’ 작품은 헤일로의 이름에 어울리는 게임성으로 명작 평가를 받았으니, 5위에 살포시 놓겠다.
Top 4. 아돌 크리스틴 노쇼 ‘이스 오리진’
몬스터와 마왕들에게 수없는 몸통박치기를 해 가며 세계를 몇 번이고 구한 용사의 대표격 캐릭터 아돌 크리스틴은 그야말로 이스 시리즈를 상징하는 대표 인물이다. 매 시리즈마다 여성들을 홀리고 다닌다는 오해로 유명하기도 한데, 사실은 평생 한 명의 여성만 바라보고 산 순정파이기도 하다. 붉은 머리와 경갑옷, 한 손 혹은 양 손으로 든 브레이브 소드 등 그의 특징은 JRPG쪽에서 전형적인 용사 외모 클리셰로 거듭나기로 했다.
그런 아돌이 유일하게 불참한 이스 시리즈가 있었으니, 바로 2006년 출시된 ‘이스 오리진’이다. 세계관 설정 상 본편에서 700년 전 이야기를 다루기 때문에, 평범한 인간인 아돌은 정식 출연할 방법이 없었다. 사실 이 게임 역시 헤일로처럼 시리즈 최고 명작 중 하나로 손꼽히는 게임성을 자랑했지만, 역시 아돌 노쇼로 인한 팬들의 아쉬움이 계속해서 제기 됐기에 팔콤에서는 일종의 DLC 개념인 기능 추가 프로그램을 통해 보스 러시/아레나 모드에서 사용 가능한 아돌 크리스틴 아이템을 선보였다. 아돌 추가로 인해 개비스콘 광고 속 아저씨처럼 속이 편해진 시리즈 팬들의 모습은 덤.
Top 3. 스콜피온 노쇼 ‘모탈 컴뱃 3’
잔혹한 대전액션 게임 ‘모탈 컴뱃’은 태초부터 흔히 말하는 서양인들이 가지고 있는 동양 뽕(;;)이 한껏 들어간 게임으로 제작됐다. 중국, 동남아, 일본 등 다양한 동양 무술이 왜곡된 형태로 나오는데, 특히나 닌자 캐릭터가 인기를 모아 한때는 닌자만 10명 단위였던 때도 있었다. 그 중 가장 인기를 끌며 시리즈를 하드캐리한 캐릭터가 바로 스콜피온과 서브제로다. 특히나 “Get over here!”라는 상징적 대사 등으로 컬트적인 인기를 끈 스콜피온은 스토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적지만 모탈 컴뱃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캐릭터로서 존재감을 키웠다.
그런데, 이런 인기 캐릭터를 ‘모탈 컴뱃 3’에서는 만날 수 없었다. 다름아닌 ‘닌자 캐릭터가 너무 많으니 줄이자’ 라는 제작진의 정책 때문이었는데, 라이벌인 서브제로는 복면을 벗고라도 출전했으나 스콜피온은 아예 빠져버렸다. 이 같은 정책은 모털리언들의 큰 반발을 샀다. 게임성이라도 괜찮았다면 그나마 봐줄 만 했겠지만, 아쉽게도 게임성을 다소 크게 바꾸면서 기존 유저들에게 어필하지 못했다. 이후 모탈 컴뱃은 부랴부랴 스콜피온을 복귀시켰으나 이번에는 3D로 어설프게 이식되면서 끝없는 내리막을 겪게 된다. 그 때부터 시작된 ‘스콜피온의 저주’는 2011년 시리즈를 리부트하고 나서야 겨우 풀렸다. 누구든 스콜피온을 열받게 하면 X되는 거에요.
Top 2. 좀비 노쇼 ‘콜 오브 듀티: 블랙 옵스 디클래시파이드’
‘콜 오브 듀티’ 시리즈는 ‘배틀필드’와 함께 서양권에서 가장 인기 많은 FPS다. 이 시리즈를 만든 개발사는 인피니티 워드로 아직도 초기 인피니티 워드 제작 게임이 최고 명작으로 칭송받고 있긴 하지만, 정작 게임의 가장 핵심 재미는 트레이아크가 2008년 ‘월드 앳 워’에 도입한 좀비 모드다. 끝없이 밀려오는 좀비들을 막아내는 이 모드는 어느샌가 ‘콜 오브 듀티’ 핵심 콘텐츠가 되어버렸다. 개발사가 돌아가며 바뀌고, 주인공과 시대 배경 등이 끊임없이 교체되는 와중에도 이 좀비 모드만은 꿋꿋이 남아 시리즈의 중심을 세우고 있다.
그런 좀비 모드가 빠진 콜 오브 듀티는 그야말로 팥 없는 찐빵, 아니. 밀가루까지 없는 찐빵일 수밖에 없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음식이 바로 2012년 PS비타로 출시된 ‘콜 오브 듀티: 블랙 옵스 디클래시파이드’다. 공개 당시만 해도 듀얼 아날로그 스틱을 통해 휴대용 기기에서도 게임을 즐길 수 있다는 기대감이 높았지만, 게임의 핵심으로 여겨지는 좀비 모드가 빠져 있다는 소식에 발매도 전부터 외면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음과 신뢰로 게임을 구매한 유저들은 빈약한 캠페인과 형편없이 초라한 멀티플레이 등으로 더 큰 고통을 받았다. 좀비 노쇼에 1히트, 시리즈 최악의 게임성에 2히트를 얻어맞은 이 게임은 당연히 망했고, 개발사인 니힐리스틱은 이후 도산했다.
Top 1. 포켓몬 집단 노쇼 ‘포켓몬스터 소드&실드’
‘포켓몬스터’ 유저들에게 이 게임은 인생의 동반자에 가깝다. 3~4세대 때 잡은 포켓몬을 이후 세대로 계속 옮겨오며 데리고 다녔으니, 많게는 거의 15년 넘게 함께 해 온 파트너다. 일부 유저들은 애니메이션 속 지우-피카츄의 관계 따윈 우스울 정도로 자신의 포켓몬과 깊은 유대관계를 쌓아 왔다. 이쯤 되면 사실상 가족이 아닐까 싶다.
그런 와중, 신작 ‘포켓몬스터 소드&실드’가 그런 가족들을 집단 불참시키는 것으로 알려지자 포켓몬 팬들은 들고 일어났다. 10년 넘게 키워 온 가족 같은 포켓몬을 새로운 시리즈에 옮길 수 없다니! 사실상 사형 선고다. 6월 E3에서 이 소식이 전해진 후 약 두 달 간, 현재 전세계 포켓몬스터 팬덤의 분노는 국내 호날두 사태에 비할 바가 아니다. 제작진은 배틀 밸런스나 포켓몬 수 조절 등 다양한 이유를 들었으나 씨도 안 먹히고 있는 상황. 한두 마리 포켓몬도 아니고 수백 마리에 달하는 포켓몬 노쇼에는 아무런 변명도 먹히지 않는다. 각성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