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의 포켓몬 게임 소드/실드, 다시 보니 선녀 같다
2019.11.26 18:39게임메카 안민균 기자
출시 전까지만 해도, ‘포켓몬스터 소드/실드(이하 소드/실드)’의 첫인상은 최악이었다. ‘이전 세대 포켓몬이 반 이상 등장하지 않는다’, ‘그래픽과 애니메이션을 재활용했다’ 등 악평이 나돌았고, 이에 디렉터가 ‘인력이 부족해서’, ‘밸런스를 위한 선택’, ‘언젠가는 했어야 할 일’ 등 납득이 가지 않는 답변을 내놓으며 사태가 더욱 커졌다.
11월 초까지 분위기만 종합해 보면, 소드/실드는 시리즈 최고 ‘망겜’을 면치 못할 전망이었다. 그런데 의외로, 이 게임은 출시 3일 만에 600만 장이 판매되는 높은 성과를 올렸다. 포켓몬이라는 이름값도 있겠지만, 의외로 게임에 대한 호평도 꽤나 많았다. 실제 플레이 해보니 ‘발전 없는 재활용 망겜’으로 치부하기엔 의외로 새롭고 재미있는 부분이 많이 느껴지는, 그야말로 이제 와서 다시 보니 선녀 같은 게임이었다.
새로운 접근 방식, 이번 타이틀 주제는 ‘스포츠’
기존 포켓몬스터 시리즈는 ‘주인공이 포켓몬마스터가 되기 위한 모험을 떠난다’, ‘순서대로 체육관을 클리어한다’, ‘모험을 막아서는 악의 조직이 등장한다’ 등 고정된 스토리라인을 따른다. 초기에야 통했지만, 세대를 거듭할수록 스토리가 진부하다는 느낌을 감출 수 없었다.
소드/실드는 그런 고정된 스토리에 한 가지 변화를 불어넣었다. 포켓몬 리그를 단순한 자격 시험이 아닌 하나의 스포츠로 묘사한 것이다. 기존에는 플레이어와 체육관 관장이 1 대 1로 조용히 맞붙고 승리하면 자격을 부여하는 식으로 끝나는 무미건조한 진행 방식이었다면, 소드/실드에서는 거대한 경기장에 입장해 수 많은 관객 앞에서 배틀 경기를 펼치게 된다.
배틀 과정도 특별하다. 마치 현실 축구 선수처럼 등뒤에 특정 번호를 새긴 유니폼을 입고 싸우며, 플레이어가 취한 행동에 따라 중계까지 펼쳐지는 등 스포츠 느낌을 잘 살렸다. 특히 체육관 관장은 항상 마지막 포켓몬을 거다이맥스시켜 싸우는데, 그때 응원가를 연상시키는 흥겨운 BGM이 흘러나오며 클라이맥스를 장식한다. 이때 플레이어도 거다이맥스를 사용하면 두 거대 포켓몬이 마주보는 장관을 연출할 수 있다.
스토리 몰입을 도와주는 ‘주인공 대접’도 확실하다. 초반에는 NPC들이 플레이어를 알아보지 못하고 각자 사생활에 대한 내용을 중얼거리지만, 후반부 플레이어가 업적을 쌓으면 쌓을수록 NPC들의 대사가 눈에 띄게 달라진다. 플레이어의 업적을 칭송하기도 하고, 플레이어의 팬을 자처하며 응원을 해주기도 한다. 기존 시리즈에서 악의 조직을 무너뜨리고 세계를 구했는데도 알아봐주는 사람이 없다시피 했던 것을 생각하면 모험할 맛이 나는 부분이다.
다만 특유의 애매한 권선징악 스토리는 여전해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언젠가부터 포켓몬스터 시리즈는 굉장히 유치한 신념을 가지고 움직이는 악의 조직으로 인해 세계가 위기에 직면하고, 그를 플레이어가 구해낸다는 전형적인 권선징악 스토리로 굳어졌다. 이번에도 흑막은 굉장히 유치한 이유로 사건을 벌인다. 아무리 전연령 게임이라지만, 전개 과정을 보고 있자면 앞서 언급한 체육관 배틀과 포켓몬 리그로 한껏 고조된 흥이 차갑게 식을 정도. 자세한 내용은 스포일러가 되니 언급하지 않겠지만, 게임프리크는 더 늦기 전에 제대로 된 스토리 작가 한 명만 영입하길 바란다.
초반부터 공중날기가, 편의성 대폭 개선
소드/실드를 플레이하면서 가장 긍정적으로 와 닿았던 부분은 편의성 개선이다. 우선 스토리 진행이 물 흐르듯 매끄럽다. 공중날기와 자전거를 초반부터 제공하기 때문에 이동 부담이 없고, 소유 포켓몬 모두에게 경험치를 나눠주는 ‘학습장치’ 효과가 기본 적용돼 선두 포켓몬만 키워도 모두 함께 레벨이 오른다. 또 중요 구간마다 치료를 해주는 NPC가 있고, 포켓몬박스는 그냥 메뉴에서 접속할 수 있게 돼서 매번 포켓몬센터를 방문해야 하는 번거로움도 덜하다.
실전 포켓몬 육성 면에서도 많은 개선이 이뤄졌다. ‘포켓몬 잡’이라는 모바일게임에서 볼법한 파견 임무 시스템이 추가됐는데, 이곳에 포켓몬을 보내면 정해진 시간 이후 경험치나 노력치가 대폭 쌓여서 돌아온다. 여기에 도핑만으로 최대 노력치인 252까지 올릴 수 있도록 바뀌었기 때문에 돈만 충분하다면 육성 시간을 큰 폭으로 줄일 수 있게 됐다.
특히 감동한 것은 ‘하트비늘’ 없이 자유롭게 기술을 떠올릴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모든 포켓몬센터 내부 좌측에는 기술 습득을 대가 없이 베풀어주는 NPC가 존재하기 때문에 플레이어는 진화 타이밍, 기술설계 부담 없이 포켓몬을 육성할 수 있다.
오픈월드 시스템 추가, RPG 느낌 나네
소드/실드는 전체적으로 RPG 느낌을 강하게 준다. 기존 시리즈와 달리 이례적으로 오픈월드 시스템을 도입했기 때문이다. 지도 중앙에는 여러 마을과 연결돼 있는 ‘와일드 에어리어’라는 굉장히 넓은 지역이 존재하는데, 장소와 날씨에 따라 등장 포켓몬과 아이템이 달라진다.
게임에서 야생 포켓몬은 ‘레츠고 피카츄/이브이’에서 그랬듯이 풀숲 안을 지나갈 때 랜덤으로 튀어나오는 것이 아니라 맵상에 돌아다닌다. 때문에 포켓몬의 서식지를 직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고, 귀찮다면 피해갈 수도 있다.
재미있는 것은 포켓몬들이 타입마다 다른 행동을 취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대부분의 ‘악’ 타입 포켓몬은 플레이어를 보면 무작정 달려와서 배틀을 건다. 체구가 작은 포켓몬은 땀을 흘리며 플레이어를 피해 달아나기도 한다. 호기심에 물음표를 띄우며 플레이어를 졸졸 따라다니는 녀석들도 있다.
또 전작에서는 길을 지나가다가 얻은 아이템이 리젠되지 않았지만, 와일드 에어리어에서는 아이템이 리젠된다. 물가에서는 ‘물가 허브팩’이, 나무 밑에는 ‘버섯’이, 유적 근처에는 ‘진화의 돌’이 놓여 있는 등 지역별로 찾을 수 있는 아이템도 달라 파밍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여기에 소드/실드만의 특별한 시스템이 하나 추가됐다면, 바로 ‘포켓몬 레이드’다. 지역마다 ‘포켓몬 굴’이라는 구멍이 존재하는데, 이곳에서는 일정 확률로 거다이맥스 포켓몬이 출현한다. 거다이맥스 포켓몬은 온라인 플레이를 통해 최대 4명이 파티를 결성해 함께 잡을 수 있으며, 보통 포켓몬보다 체력이 월등하게 많고, 공격 흡수 배리어, 버프 해제 등 특수한 기술을 사용한다. 퇴치에 성공하면 경험치 사탕과 기술레코드를 보상으로 받을 수 있고, 포획 시 거다이맥스 레벨이 높은 포켓몬을 얻을 수 있다.
차세대에 걸맞지 않은 게임, 하지만 ‘망겜’은 아니다
사실 게임이 전체적으로 기대 미만이었던 것은 맞다. 기존 작품에 등장했던 포켓몬을 모두 담지 못했다는 것은 단순한 역량 부족으로 넘어갈 수 있다고 해도, 엔드콘텐츠이자 포켓몬의 다양성을 느낄 수 있는 교환의 장, ‘GTS’를 지원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개발사가 아직도 게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또 차세대 콘솔로 넘어왔음에도 눈에 띄게 저품질인 필드 텍스처, 여전히 최대 30프레임 밖에 지원하지 못하는 저사양 설계를 보여주는 등 기본적으로 차기작을 기대하는 게이머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다.
하지만 그런 불쾌함을 참고 20여 시간 끝에 엔딩을 봤을 때, 게임을 보는 시선이 조금은 달라졌다. 소드/실드가 ‘차세대’라고 부르기엔 여러모로 부족한 게임임은 확실하지만, 기존 포켓몬스터 시리즈를 좋아하던 팬이라면 충분히 새로운 마음으로 즐길 수 있는 ‘신작’이라는 점을 부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가장 큰 장점은 오픈월드 시스템 도입으로 모험하는 재미가 늘었다는 것이다. 기존 타이틀은 한번 지나온 지역은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굳이 다시 찾아갈 일이 없었는데, 와일드 에어리어는 날씨에 따라 등장 포켓몬이 달라지고, 아이템이 리젠된다. 또 거다이맥스 레이드가 등장해 꾸준히 둘러보게 된다.
새로 추가된 포켓몬과 애니메이션도 생각보다 새롭고 다양하다. 다이빙을 사용한 후 수면 위로 올라온 윽우지의 입에 뜬금없이 피카츄가 물려 있는 웃긴 장면을 볼 수 있었고, 상대방 머리에 사과를 떨어뜨려 대미지를 주는 ‘애프룡’ 전용기 ‘G의 힘’의 표현에는 감탄밖에 나오지 않았다. 이들 모두가 ‘기존 포켓몬을 없애고 대신 생긴 것들’이라는 불명예만 없었더라도 순수하게 포켓몬스터의 무한한 가능성에 대해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요컨대 개발사의 행보가 아쉬울 뿐 ‘망겜’은 아니라는 평가다. ‘다시 보니 선녀 같다’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오히려 출시 전 쏟아졌던 악평 덕에 장점 하나하나가 크게 강조되는 느낌이다. 만약 포켓몬스터 시리즈를 꾸준히 즐겨왔던 팬이라면, 악평에 구매를 망설이고 있는 게이머라면, 부담 없이 게임을 즐겨보길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