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들이 ‘돈쭐내자’고 벼르는 국산 인디게임이 있다?
2021.04.21 17:38게임메카 서형걸 기자
패키지게임 유료 DLC는 부분유료화 게임 확률형 아이템에 준하는 과금 스트레스를 게이머에게 선사한다. 본편은 즐길만한 콘텐츠가 부족한 미완성 상태로 내면서, 이를 보완하기 위한 유료 DLC를 남발하는 게임들 때문이다. 그런데 간혹 유저들이 먼저 적극적으로 유료 DLC 출시를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 ‘돈쭐내자(유료 결제를 해서 혼쭐을 내자)’ 같은 무서운(?) 이야기를 하면서 말이다.
‘국산 엑스컴’이라는 별명으로 잘 알려져 있는 인디게임 ‘트러블슈터: 버려진 아이들’은 유저들로부터 “제발 DLC 유료로 팔아라”라는 협박 아닌 협박을 듣는 게임이다. 게임 엔딩을 보기까지의 플레이타임은 80시간 정도로 AAA급 대작에서도 보기 어려운 두툼한 볼륨을 자랑하는데, 정식 출시 이후 첫 선을 보인 추가 스토리까지 무료로 배포했다. 스팀 유저 평가에서는 게임에 대한 호평과 함께 개발사 재정 및 개발자들의 건강을 걱정하는 글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게임메카는 이처럼 팬들의 응원과 걱정을 동시에 받고 있는 트러블슈터 개발사 댄디라이언 김태형 대표와 이야기를 나눠봤다.
‘가성비 끝판왕’의 원인은 분량조절 실패?
총 6명으로 구성된 인디게임사 댄디라이언은 지난 2014년 2월에 설립됐다. 공동 창립자이자 개발 총괄인 김태형 대표는 기획을 담당하고 있지만, 게임 개발 과정 전반을 모든 팀원이 함께하는 소규모 팀인 만큼 다양한 의견에 대한 정리, 서류 작업, 그리고 대외 인터뷰를 담당하고 있다.
트러블슈터는 댄디라이언의 첫 게임으로 2017년 말 앞서 해보기를 시작했으며, 정식 버전 출시는 2020년 4월이었다. 2년 반이라는 앞서 해보기 기간은 짧지 않은데, 김 대표는 “처음부터 이렇게 오래 걸릴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았다”며, “앞서 해보기 당시 유저들이 남긴 리뷰, 피드백을 보고 ‘지금 이대로 출시하면 많은 실망을 안기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게임 개선에 최선을 다하다 보니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고 말했다. 게임 완성까지 시간은 더 소요됐지만 성실함과 소통 노력이 유저들로부터 인정을 받아 긍정적 평가 80% 초반이었던 스팀 유저 평가는 현재 94%까지 치솟았다.
2년 반 만에 부제 ‘버려진 아이들’을 더해 정식 출시된 트러블슈터는 엔딩까지 80시간 이상 플레이해야 하는 방대한 볼륨을 자랑한다. 2만 6,000원이라는 정가를 고려하면 ‘가성비 끝판왕’ 게임이라 할 수 있는데, 김 대표는 “분량 조절에 실패한 결과”라 말하며 겸연쩍어했다. 게임 하나를 처음부터 끝까지 완성해본 경험이 없었던 데다가 캐릭터 하나하나의 이야기를 심도 있게 다루다 보니 분량이 길어졌다는 것이다. 특히 단점으로 언급되는 초반 진행의 지루함에 대해서는 꼭 해소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엔딩을 본 이후로도 즐길거리가 넘치는 트러블슈터
어쨌든 트러블슈터는 초반 지지부진한 진행이라는 고비를 넘어서면 100시간 이상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길 수 있는 게임이다. 메인스토리 외에도 다양한 콘텐츠를 갖추고 있기 때문인데, 가장 먼저 ‘트켓몬’이라 불리는 야수 포획과 드론 제작을 들 수 있다.
김 대표는 “캐릭터마다 고유한 특징을 최대한 살려 보고 싶었다”며, “이러한 생각이 바탕이 되어 사냥꾼 직업을 지닌 동료가 합류하게 됐을 때 포켓몬스터,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파이널 판타지 택틱스 등을 참고해 ‘테이밍(길들이기)’ 시스템을 추가했다. 기술자 직업 동료의 드론 제작 역시 비슷한 고민 과정을 거쳤다”고 말했다. 여기에 또 하나의 원칙이 있으니 트러블슈터 세계관 적합 유무다. 유저 중에는 ‘군용 드론’ 제작에 대한 궁금증을 품은 사람도 있는데, 김 대표는 “군용 드론은 발할라(트러블슈터의 배경이 되는 도시국가)에서 불법이다. 이 곳이 무법지대가 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할 것 같다”고 답했다
댄디라이언은 앞으로도 신규 캐릭터 등장에 따라 그에 어울리는 부가 콘텐츠를 업데이트할 예정이다. 가까운 시일 내에 예정되어 있는 것은 무료 DLC에서 합류한 동료 ‘비앙카 르블랑’이 지닌 ‘형상변환’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콘텐츠다. 구체적인 내용은 밝히지 않았지만, 윤곽이 잡히는 대로 업데이트할 것이라 설명했다.
캐릭터마다 다른 직업, 그리고 수백 가지 특성과 이를 조합한 추가 특성에 기반한 다채로운 육성도 트러블슈터의 즐거움이다. 하나의 캐릭터를 내구력은 약하지만 극한의 마법 공격력을 지닌 ‘마공 유리대포’로 키우거나, 공격력은 다소 낮아지지만 단단한 맷집을 지닌 만능형 탱커로도 육성할 수 있다. 캐릭터 직업 및 특성 조정 작업에 열중하다 보면 2~3시간은 훌쩍 지나갈 정도며, 유저들끼리는 스스로 연구한 ‘특성판’을 공유하기도 한다.
단 특성 획득을 위해서는 반복적인 플레이가 필요한데, 이 부분이 조금 지나친 감이 없지 않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아울러 일부 특성이나 직업의 효용성이 크게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우선 밸런스 문제에 대해 김 대표는 “다수의 캐릭터, 특성을 유기적으로 연동하는데 집중하다 보니 개별 특성 및 직업 효율이 낮아지는 부분까지 챙기지 못했다”며, “이는 유저들의 피드백을 받아 꾸준히 수정 중”이라고 말했다. 새로운 적, 동료도 밸런스 조정에 한 축을 담당하는데, 이미 존재하는 특성들이 이들로부터 얻게 되는 신규 특성과 결합해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지나친 반복 플레이 강요에 대한 해법으로는 특성 획득 방법 다양화를 제시했다. 구체적으로는 지속적인 콘텐츠 업데이트로 특성을 획득할 수 있는 미션의 가짓수를 늘리고, 게임 내 아이템 및 재화를 통해 원하는 특성을 습득하거나 발견할 수 있는 보조적인 시스템도 고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댄디라이언, 팀 해체 위기를 딛고 일어서다
앞서 살펴봤듯 댄디라이언은 여전히 트러블슈터 콘텐츠 개발에 전력투구를 하고 있다. 그 대표 사례가 현재 꾸준히 업데이트되고 있는 첫 추가 단편 ‘백기사와 검은 마녀’로 이를 통해 유저들은 알리사와 비앙카 두 명의 인물을 동료로 영입할 수 있게 됐음은 물론, 새로운 적 ‘유랑광대단’과 마주하게 됐다.
백기사와 검은 마녀는 무료로 배포됐는데, 이에 대해 유저들은 “제발 돈 받고 팔아라”라며 역정(?)을 내고 있다. 이처럼 유저들의 바람과는 반대되는 행동을 한 이유에 대해 김 대표는 “정식 출시 즈음해서 재정적인 이유로 팀 해체를 고민했었다”며, “하지만 게임을 구입한 유저들 덕분에 다시 한번 기회를 얻게 됐고, 이에 보답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캐릭터 의상 같은 것을 다양하게 제작해 제공하는 것도 생각했으나 그럴 여유는 없다고 판단, 많은 유저들이 동료로 합류하길 원했던 캐릭터의 이야기를 최대한 빨리 전하고자 백기사와 검은 마녀 개발을 서둘렀던 것이다. 김 대표는 “당초 4월 중 완결이었는데, 8월까지 업데이트가 이어질 것 같다”며, “개발 능력이 부족한 탓이다. 조금 더 공부하고 성실해지도록 노력하겠다”고 사과 메시지를 전했다.
어쨌든 팀 해체 위기까지 몰렸던 댄디라이언을 구원한 것은 게이머들이었다. 트러블슈터는 현재까지 약 8만 5,000장 정도가 팔렸다. 김 대표는 “약간 허리를 졸라 메고 있지만, 정식 출시 전처럼 팀 해체까지 고민하지는 않을 정도다”며, “다만, ‘트러블슈터: 추방된 아이들’이라 명명한 시즌 2 제작에 필요한 개발력은 부족한 상황이다. 지금의 트러블슈터: 버려진 아이들을 더 많이 판매해 차기 시즌 제작의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당면 과제”라 밝혔다.
백기사와 검은마녀 추가 단편 이후 계획하고 있는 유료 DLC에 대해서는 아직 확정된 사안은 없지만, 유저들이 갈망하는 추가 코스튬 같은 콘텐츠를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아울러 유·무료 여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새로운 플레이어블 캐릭터에 대해서도 예고했다. 시즌 2에 돌입하기 전에 1명 이상의 플레이어블 캐릭터를 DLC 형태로 배포할 계획인데, 현재 확정된 것은 커뮤니티 상에서도 언급되고 있는 ‘미스티 예거’라는 인물이다. 주요 인물인 시온 블러드워커의 친형 리온 블러드워커와 함께 일하는 트러블슈터로, 단검을 주무기로 사용하며 ‘도적’이 1차 클래스가 될 예정이다.
이 외에 온라인 멀티플레이 콘텐츠 추가도 언급했다. 현재 트러블슈터는 대화 선택지에서 유저들의 선택비율을 보여주는 방식이나 ‘사수거리’라는 온라인 로비를 통해 부분적으로 온라인 멀티플레이를 도입하고 있는데, 이를 확대해 PvP와 협업 모드도 추가한다는 계획이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먼저 싱글플레이의 완성도를 최상으로 끌어올림과 동시에 적절한 밸런스, 풍부한 유저풀, 그리고 턴제 기반 전투 특성상 상대방 턴을 기다리는 지루함을 최소화하는 부분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스팀에 이어 스토브 입점한 트러블슈터, 콘솔 진출 계획은?
최근 트러블슈터는 스마일게이트 스토브 인디게임 상점(이하 스토브)에서 판매를 시작했다. 스토브에 입점하게 된 계기에 대해 김 대표는 “스토브 플랫폼 광고를 보고 찾아가 입점시켜 달라고 했다”며, “국내 유저들에게 저희 게임을 더 알리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트러블슈터 스팀 버전은 영어권 유저가 50%, 중국어권 유저가 30%, 국내 유저가 10%로 해외 유저 비중이 크다. 때문에 새로운 국내 유저를 만날 수 있는 스토브는 매우 매력적이었고 실제로도 만족스럽다는 것이다.
트러블슈터 스토브 버전은 스팀 버전에 비해 가격도 소폭 저렴한데, 이는 스팀보다 플랫폼 수수료가 저렴하고, 환율 전환 수수료도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김 대표는 “개발사마다 각자의 선택이 있겠지만, 저희는 수수료가 줄어든 만큼 유저들이 보다 쉽게 트러블슈터를 접할 수 있도록 가격을 책정했다”고 말했다. 아울러 “스팀에서 게임을 구매한 유저들이 역차별로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한다. 어느 플랫폼이건 가격이 아쉽지 않을 정도의 즐거움을 선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최근 활발한 국산 인디게임의 콘솔 진출에 합류할 계획은 없는지도 물어봤다. 김 대표는 “정말 하고 싶다. 다만, 트러블슈터가 유니티 또는 언리얼 엔진으로 만든 게임이 아니라 콘솔 포팅 과정이 쉽지 않다. 팀의 역량을 키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된다면 꼭 출시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트러블슈터를 응원하는 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물었다. 김 대표는 “예고된 업데이트 일정은 매번 연기되고, 각종 버그에 밸런스, 컨텐츠도 완벽하게 다듬지 못해 추가 업데이트를 남발하며, 개선하겠다고 말한 내역이 쌓인 것을 보면 유저들에게 미안한 마음뿐이다”며, “못난 개발팀에게 꾸준한 응원을 보내는 유저들 덕분에 게임 개발을 이어가고 있으며, 행복하다. 유저 여러분이 개발자 6명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셨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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