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루프, 반복되는 루프물인데 지겹지가 않다
2021.09.24 10:12게임메카 김미희 기자
타임루프는 매력적인 소재지만, 게임에서는 은근히 재미있게 풀어내기 어렵다. 가장 큰 요인은 같은 구간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했던 게임을 또 하는 지루함이다. 실제로 지난 8월 20일 출시된 타임루프 게임 '12분' 역시 이러한 반복적 플레이로 인해 일부 유저들로부터 혹평을 듣기도 했다.
그런 와중, 색다른 방식으로 진부함을 털어낸 타임루프 게임이 등장했다. 지난 14일에 PC와 PS5로 발매된 ‘데스루프’다. 디스아너드, 프레이 등으로 유명한 아케인 스튜디오 신작으로, 하루가 반복되는 루프에 갇힌 주인공 ‘콜트’가 되어 24시간 안에 선구자라 불리는 보스 8명을 모두 물리치는 게임이다.
제작진이 내세운 부분은 캐주얼한 FPS 전투에 타임루프를 붙여 색다른 재미를 더했다는 점이었다. 국내외적으로 FPS와 타임루프를 결합한 게임은 많지 않다. 타임루프물 다수는 비주얼노벨이나 액션, 어드벤처 장르인 경우가 많기에, 이번의 생소한 조합을 어떻게 녹여냈는가가 관건으로 떠올랐다. 그리고 정식 출시된 게임을 직접 플레이해본 결과, FPS와 타임루프는 의외로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었다.
둘을 강하게 이어주는 연결고리에는 제작진이 디스아너드부터 꾸준히 보여준 ‘이머시브 심’이 있다. 이머시브 심은 정답이 없는 자유도 높은 플레이를 특징으로 앞세운 하위 장르로, 개발진도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기발한 공략법을 찾아내는 등 높은 몰입감을 선사한다. 데스루프 역시 이머시브 심의 이러한 장점을 살려 타임루프의 단점인 반복 플레이에서 오는 지루함을 덜어냈다.
같은 목표라도 다른 루트를 발굴해내는 재미가 있다
데스루프 주 무대는 4개 구역으로 구성된 거대한 섬 ‘블랙리프’다. 게임 속 시간대는 아침, 정오, 오후, 저녁으로 구성되고, 루프 한 번에 각 시간대를 한 번씩만 플레이할 수 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를 보내고, 루프하여 다시 아침이 반복되는 패턴이다. 특정 시간대에 방문할 수 있는 장소는 단 한 곳이다. 아침에 하나, 정오에 하나, 오후에 하나, 그리고 저녁에 하나 같은 식이다. 게다가 같은 시간대에 각기 다른 장소에 보스들이 흩어져 있기도 하다. 따라서 시작부터 보스 8인을 모두 처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즉 게임의 핵심은 8명의 보스를 하루 안에 처치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전반적인 진행은 타임루프에 갇혀 동일한 지역을 반복 탐색하는 것이 주를 이룬다. 시간이 되돌아가는 구조이기에 출현하는 적도 동일하고, 적의 공격 패턴이나 종류도 같다. 로그라이크 게임이 아니기 때문에 맵 구조 등이 달라지지도 않는다. 얼핏 다회차 플레이의 지루함이 느껴질 수도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데스루프에서는 같은 장소라도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공략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에 매 플레이가 각기 다른 경험을 제공한다. 각 맵에는 모습을 숨기며 침투할 수 있는 샛길과 비밀통로가 가득하고, 지붕 사이를 넘나들며 적을 암살하는 고공 플레이도 가능하게 설계돼 있다. 눈앞에 보이는 건물, 옥상, 깎아지르는 벼랑까지 주인공 ‘콜트’가 갈 수 없는 지역은 거의 없기 때문에 적들이 상상하지도 못할법한 ‘루트’를 발굴해내는 것이 가능하다.
자유도는 이동 경로에 한정되지 않는다. 데스루프에서 주인공이 할 일은 ‘24시간 안에 목표 8인을 사살하라’ 단 하나다. 이를 위해서라면 무슨 방법을 써도 된다. 플레이 중 수집한 온갖 무기로 무장하고 적들을 일망타진하는 ‘여포 플레이’도 되고, 전투가 부담스럽거나 ‘암살자’라는 느낌을 살리고 싶다면 몰래 잠입해서 보스만 조용히 처리한 후 사라지는 것도 가능하다.
여기에 맵 곳곳에는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자동 포탑’이 있다. 콜트는 각종 기기를 능수능란하게 해킹할 수 있는데, 적들이 콜트를 잡으려고 설치해둔 ‘포탑’ 역시 예외는 아니다. 이를 적절히 활용하면 포탑으로 보스를 사살하는 플레이도 가능하다. 포탑 외에도 콜트가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장치가 맵 곳곳에 퍼즐처럼 흩어져 있기에 구석구석을 탐험하는 맛이 있다.
앞서 설명한 요소를 조합하면 동일한 지역에서 같은 목표를 노리더라도 전혀 다른 플레이를 즐길 수 있다. 예를 들어 보스 중 하나인 찰리는 하층에 부하가 우글우글한 고층 유흥시설 꼭대기에 숨어 있다. 정석적인 방법은 1층부터 차근차근 부하를 사살하며 올라가는 여포 플레이겠지만, 외벽에 있는 구조물을 타고 상층으로 바로 들어갈 수도 있다. 아울러 찰리와 직접 싸우지 않고 그를 처리하는 것도 가능하다. 참고로 기자가 찾아내지 못 한 공략법들이 더 있을 수도 있다.
이런 방식으로 게임을 즐기다 보면, 마치 슈팅 전투가 가미된 퍼즐 게임을 풀어가는 듯한 느낌이 강하게 든다. 실제로 벙커의 암호를 찾거나 선지자가 숨은 비밀장소를 찾는 등 직접적인 퍼즐 요소도 있지만, 게임 전체적으로 봐도 여기저기 흩어진 조각을 모아서 8명을 하루 안에 한 번에 처치하는 큰 그림을 완성해가는 맛이 있다. 제작진은 데스루프를 '살인 퍼즐 게임'이라 설명하고 있는데, 그 이유를 플레이를 통해 체감할 수 있었다.
지루해질 수 있는 루프물에 긴장감을 더하는 줄리아나
데스루프의 또 다른 주역은 콜트를 암살하기 위해 나선 줄리아나다. 줄리아나는 콜트와 함께 데스루프의 주역이자, 같은 구간을 반복하며 루즈해질 수 있는 전투에 긴장감을 더해주는 존재다.
우선 콜트 파트에서는 줄리아나가 무작위로 난입한다. 온라인을 끄고 솔로플레이로 해도 AI 줄리아나가 나타난다. 줄리아나가 들어오면 경고 메시지가 뜨고, 임무를 마치고 돌아갈 때 쓰는 터널 입구가 막힌다. 이를 열기 위해서는 맵에 있는 안테나를 해킹해야 되고, 그 주변에 줄리아나가 저격총을 겨누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줄리아나는 다른 적들보다 강하고, 항상 같은 장소에 머무르는 보스들과 달리 난입 후 콜트를 찾아 여기저기를 들쑤시며 다니기에 패턴을 짐작하기 어렵다.
줄리아나 입장에서 플레이하면 또 다른 재미가 있다. 플레이어는 온라인을 통해 줄리아나로 다른 콜트 유저 플레이에 난입하는 것이 가능하다. 줄리아나가 상대하는 콜트는 모두 실제 유저이기에, 솔로플레이만 하다가 처음으로 멀티에 접속하면 체감 난이도가 부쩍 상승하는 느낌도 든다. 콜트로 할 때는 줄리아나가 까다로웠는데, 막상 줄리아나로 해보니 콜트도 만만치 않은 난적이라는 느낌이다.
줄리아나는 기본적으로 콜트보다 많은 무기와 능력을 갖고 시작하며, 플레이 결과에 따라 쌓이는 경험치를 토대로 레벨이 오르면 추가 아이템이 보상으로 주어진다. 여기에 줄리아나는 먼저 공격하지 않는 이상 콜트 외 모든 적에게 공격받지 않고, 콜트를 발견하면 주변 적들을 불러오는 호출도 가능하다. 즉, 아군과 함께 움직일 수 있어 적들이 많이 포진된 거점에서 난전을 유도해 콜트를 사살하는 작전도 가능하다. 이처럼 콜트와 줄리아나 간 밸런스가 잡혀 있기에 한 쪽에 큰 치우침 없이 팽팽한 대결 구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전체적으로는 콜트와 줄리아나가 시간을 루프하며 서로를 사냥한다는 게임 콘셉트를 스토리나 설정으로만 남겨두지 않고 플레이로 풀어낸 부분이 눈길을 끈다. 다만 게임 메인은 콜트로 진행하는 솔로 구간이며, 줄리아나로 난입하는 멀티플레이는 상대적으로 볼륨이 크지 않다. 처음에는 신기하지만 콜트를 추격해 사살하는 것이 유일한 목표라서 탐색 범위도 좁아지다보니, 플레이 패턴이 점점 고정되는 느낌이 강해진다. 미션 수행에서 얽메이는 것이 없는 콜트만큼 다양한 루트를 찾아내는 재미는 부족한 편이다. 콜트 엔딩을 본 다음에 보너스 개념으로 하기 좋지만 그 이상의 재미나 완성도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자려고 누워서도 머릿속으로 계속 ‘루프’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데스루프 스토리는 곁가지 없이 깔끔한 편이다. 결론이 명확하고, 복잡하게 꼬여 있는 부분이 없으며, 메인 스토리는 주요 분기마다 컷신 등으로 알려주기에 스토리텔링에 막힌 부분이 없다. 루프물임에도 전체적인 이야기를 쉽게 이해할 수 있고, 스토리가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차근차근 전개되고 있음을 체감할 수 있어 진행의 묘미도 있다. 여기에 맵 곳곳에 세계관 및 보스들에 대한 자세한 배경 스토리가 흩어져 있는데, 이를 읽으며 설정을 파고드는 소소한 재미도 있다.
전체적으로 데스루프는 여러 경로를 탐색하는 맛을 살려 ‘루프물’의 한계점을 극복했다. 플레이를 마치고 자려고 누워서도 ‘다음에는 이 루트로 침투해볼까, 아니면 저 방향으로 해볼까'라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탐색의 묘가 살아 있다. 또한 어렵지 않으면서도 시시하게 느껴지지 않는 레벨 밸런스로 이머시브 심 게임을 처음으로 해보는 입문자도 부담 없이 시도해볼 수 있다. 이는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캐주얼한 게임성에 초점을 맞췄다는 제작진의 개발 의도와도 맞아떨어지는 부분이다. 아울러 공식 한국어를 지원하고, 번역 완성도도 평균 이상이라 언어장벽도 없다.
다만 PC 버전에서 많이 거론되고 있는 최적화 및 버그 문제가 플레이 경험을 흐트러트린다. 기자 역시 플레이 중 이유를 알 수 없이 게임이 멈추거나 진행이 어려울 정도로 프레임이 널뛰는 경우가 있었다. 특히 데스루프는 임무에 들어가면 진행 상황을 저장할 수 있는 중간 세이브가 없어서 후반부라 할 수 있는 오후나 저녁 파트에 재실행을 해야 할 경우 그간 쌓아둔 것을 날려야 되기에 스트레스가 가중된다. 최적화 문제는 제작진에서 수정 중이기에 이후 상황을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