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트아크의 새 숙제는 ‘사이버 유격’
2021.10.21 18:22게임메카 김경민 기자
‘유격훈련’. 대한민국 남성이라면 한번쯤 겪어봤을 고난의 장이다. 원래는 적을 기습하는 방법을 익히는 훈련이지만, 보통은 PT체조를 떠올리곤 한다. 특히 8번 동작 ‘온몸 비틀기’는 훈련병들의 혼을 쏙 빼놓기로 악명 높다. 여기에 누군가 마지막 구호를 외친다면 모든 인원이 처음부터 다시 진행해야 하는 지옥도가 펼쳐진다. 이로 인해 유격훈련이란 단어는 연대책임이 뒤따르는 빡빡한 훈련을 가리키는 용어로 쓰이기도 한다.
이렇듯, 연대책임을 묻는 유격이 게임에서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넷상 용어로 ‘사이버 유격’이라 불리는 이 현상은 레이드 시스템이 활성화된 MMORPG에서 주로 발생한다. 실수를 한 1명 때문에 레이드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상황을 유격훈련에 빗댄 것이다. 최근에는 로스트아크(이하 로아)에서 이에 대한 논란이 적잖이 일어났다. 국내 인기 MMORPG 로아가 자랑하는 콘텐츠 ‘군단장 레이드’와 사이버 유격,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로아 사이버 유격의 시작은 군단장 레이드
군단장 레이드는 로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콘텐츠다. 메인 스토리와도 깊은 관련이 있고, 각 대륙별 이야기를 통해 특징과 무찔러야만 하는 당위성까지 확실히 부여된 명실상부 로아의 핵심 콘텐츠다. 확실히 각 군단장 레이드의 콘셉트와 특색은 유저들의 도전 욕구를 확실하게 자극했다는 평이 있었고, 실제로 레이드가 하나씩 공개될 때마다 높은 관심이 쏠렸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앞서 말한 ‘사이버 유격’에 대한 불만이 쌓여갔다. 특정 군단장 레이드의 협동 및 일부 기믹이 유격훈련을 연상시키듯 고도화된 협동을 요구한다는 것이 그 이유다. 금강선 디렉터가 작년 '로아온' 간담회에서 언급했듯, 군단장들은 저마다 각자의 필살기를 숨겨놓고 있다. 이 필살기를 파훼하기 위해서는 공격대가 각자 맡은 바 임무를 실수 없이 처리해야만 하기에, ‘사이버 유격’ 역시 세를 더해 갔다.
이는 올해 2월 등장한 ‘욕망군단장 비아키스’부터 조금씩 대두되기 시작해 6개 관문이 존재하는 ‘몽환군단장 아브렐슈드’의 하드모드에서 정점을 찍었다. 전체적인 공략 시간도 늘어났지만 레이드의 난이도를 점차 높이는 과정에서 사소한 실수 하나가 공격대원의 전멸을 가져오는 경우가 늘었기 때문이다. ‘내가 잘해도 다른 파티원 중 한 명이 실수하면 처음부터’라는 부담감이 점차 심해져, 20일 패치 전까지는 본격적인 연대가 시작되는 아브렐슈드 하드 난이도 3관문부터 도전을 포기하는 상위권 유저들이 다수 보였다. 물론 이는 다른 군단장 레이드에도 포함되는 내용이다.
이런 하드코어한 분위기는 의도한 방향이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운영진은 지속적으로 군단장 레이드의 난이도를 완화시켜왔다. 비아키스 1, 2관문에서는 파티원 중 일부가 기믹 수행에 실패해도 넘어갈 수 있도록 바뀌었으며, 지옥의 3마로 악명 높은 ‘광기군단장 쿠크세이튼’ 역시 전체적인 패턴 난이도를 낮췄다. 그리고 지난 20일, 아브렐슈드 역시 6개 관문 전부 협동을 요구하는 기믹을 재조정했다. 이렇듯, 군단장 레이드 자체의 난이도는 완화됐고 추가 조정도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백어택과 사멸 세트
군단장 레이드 난이도는 완화됐지만, 이와는 달리 구조적인 문제를 지적하는 유저도 많다. 대표적으로 꼽히는 부분이 3티어 유물 세트, 그 중에서도 ‘사멸’ 세트가 가진 효과다. 백어택 및 헤드어택 대미지 증가에 초점이 맞춰진 해당 세트는 적의 앞과 뒤를 때리면 추가 대미지가 들어가고, 이 유효타 비율을 높여 대미지 고점을 끌어올리는 것을 목적으로 설계된 장비다.
여기서 유독 구설수에 오르는 부분이 백어택이다. 로아에는 블레이드와 리퍼, 스트라이커 등 백어택에 특화된 클래스가 존재한다. 해당 직업들은 레이드에서 쉴 새 없이 보스의 꽁무니를 쫓아다니며 대미지를 넣어야 하고, 다른 부분을 치면 딜이 반감되는, 혹은 더 줄어드는 페널티를 안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백어택에는 피해량 증가 5%와 치명타 적중률 10%가 기본으로 붙어 있고, 사멸 유저들은 백어택 추가 스텟까지 고려해 장비를 세팅하며 최고 효율을 노리는 경우가 많다.
사멸 유저들의 가장 큰 고민은 백어택 특화 클래스에게 특히 불합리해 보이는 상황이 여럿 발생한다는 점이다. 아브렐슈드를 예로 들면, 2관문 내부보스 프로켈의 경우 크기가 작은 인간형 보스고 쉴 새 없이 움직이기 때문에 백어택 피해를 지속적으로 입히는 것이 힘들고, 이는 곧 클리어 시간 증가로 이어진다. 그리고 동일 레이드 6관문은 지형이 파괴되어 낙사 구간으로 변모하기에, 보스가 절벽 끝에 서 있다면 ‘대미지를 입히다 자신이 죽고 재시작해야 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도 더해진다. ‘위험을 감수할 정도의 대미지를 입힐 수 있느냐’라 묻는다면, 대미지를 떠나 현 로아 레이드는 생존이 최우선이기에 바로 기각이다.
개발진 역시 이러한 문제를 인지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지난 8월, 사멸 세트 대미지 증가 패치가 한차례 진행된 바 있다. 위험부담은 유지한 채 대미지를 끌어올리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방향의 업데이트다.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유저도 있었지만 능력 변경이나 헤드&백어택 부여 방식의 변화 등 편의성과 생존력을 올려주길 바라는 소견도 많았다. 로아가 최근 레이드를 대대적으로 손본 만큼 조만간 사멸 세트에 대한 해결책도 등장하리라 본다.
사이버 유격 해결을 둘러싼 뫼비우스의 띠
위에서는 해결 방안으로 군단장 레이드 난이도 완화와 사멸 세트 개선만을 언급했지만, 사실 사이버 유격은 단순하게 풀어낼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한 문제를 해결하면 다른 문제가 튀어나오고, 이를 어떻게든 막으면 또 다른 문제가 유발된다. 그렇게 문제를 계속해서 해결하다 보면 어느새 눈앞에는 다시 사이버 유격 문제가 나온다.
로아의 경우 간단히 생각하면 사이버 유격 현상을 완화하기 위해 '기믹 파훼는 어렵지만 소수 인원으로도 클리어할 수 있는 레이드'를 만들어 문제를 일단락 시킬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레이드는 인게임 재화를 받고 레이드를 깨주는 ‘버스’ 성행을 불러온다. 실제로 ‘마수군단장 발탄’이 그렇다. 처음 등장한 군단장 레이드인 만큼 화려하게 포문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은 발탄은 이제 1인 클리어가 가능할 정도로 위상이 낮아졌고, 버스가 성행하는 레이드가 됐다.
사실 유저들이 버스 문제를 무조건 부정적으로만 바라보는 것은 아니다. 바로 ‘배럭’ 존재 때문이다. 배럭이란 부족한 재료나 골드를 충당하는 역할을 가진 부캐릭터들을 의미한다. 레벨이 높아질수록 필요한 재화가 늘어나기에, 많은 유저들이 본캐릭터 육성을 위한 보급소 역할의 부캐릭터를 키우고 있다. 이것이 보급창 같다고 해서 '배럭'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이러한 '배럭'은 일정 자본을 투자하면 매주 고정적으로 재화를 벌어다주기에, 과도한 투자 없이도 버스를 타면 필요한 재료를 손쉽게 수급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유저들이 이를 딱히 문제 삼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버스가 활성화되면서 골드 수급량이 급등했다. 의도대로라면 부캐릭터 스펙업에 소모돼야 했던 재화들이 다른 곳으로 빠지면서 시세 변동이 이루어졌고, 골드 가치는 하락했다. 사실 버스를 차단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는 아이러니하게도 고난이도 레이드를 만드는 것이며, 이는 자연스레 연대책임 패턴을 포함하기에 다시 '사이버 유격' 문제를 초래한다.
사이버 유격은 쉽게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이렇듯 사이버 유격은 빠른 시일 내 해결할 수 있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스마일게이트 관계자 역시 “해당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다”고 알렸다.
문제가 없는 게임은 없다. 하지만 이러한 단점을 덮을 만큼 매력적인 게임은 분명 존재한다. 로아는 작년 '로아온' 이후, 지금까지 금강선 디렉터의 소통을 토대로 유저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렴하고 수많은 업데이트를 시행하는 등 바쁘게 달려왔다. 로아가 아브렐슈드 하드 난이도 업데이트 후 장기적인 내실 다지기에 들어간다고 밝혔던 만큼, 해당 기간 동안 어떤 방안을 내놓을 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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