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정남] 원작 게임 설정을 너무 많이 무시한 만화 TOP 5
2022.08.04 15:27게임메카 류종화 기자
※ [순정남]은 매주 이색적인 테마를 정하고, 이에 맞는 게임이나 캐릭터, 사건 등을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얼마 전, [순정남]에서 원작 게임을 훼손한 영화 TOP 5를 소개한 바 있다. 실사·간략화하는 과정에서 원작 설정을 무시하거나, 이상한 메시지나 사업적 의도를 담으려다 영화 전체가 꼬여 버린 경우였다. 일부는 원작 이해도가 부족한 것이 아니냐는 비아냥까지 들었는데, 아무래도 영화라는 미디어 특성 상 게임 설정을 다 담을 수 없다 보니 벌어지는 일이다.
그런 면에서 애니메이션이나 만화는 비교적 안전하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특히 만화의 경우 작가 한 명의 성향이나 역량에 따라 원작 훼손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장르이기도 하다. 일부는 유쾌한 재해석이라 받아들일 수 있지만, 원작 팬들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작품도 꽤 있다. 오늘은 원작 게임 설정을 무시해도 너무 심하게 무시한 만화들을 소개해 본다.
TOP 5. 격투천왕, 우주와 시공간까지 파괴하는 KOF 전사들
격투천왕은 국내에도 정식 발매되어 한때 더 킹 오브 파이터즈 공식 만화처럼 여겨졌던 작품이다. 더 킹 오브 파이터즈 캐릭터들이 그대로 등장하고, 어느 정도 캐릭터 관계도도 일치한다. 문제는 스케일이 엄청나게 커졌다는 점인데, 초인적인 힘을 의미하는 '절대영역', 이를 뛰어넘은 '암흑역량'과 '구극역량', 이를 한 단계 더 뛰어넘은 '대우주역량' 등 보도듣도 못 한 힘이 계속 튀어나온다. 참고로 구극역량만 해도 핵무기 이상 파괴력으로 세상의 파멸을 초래할 수 있으며, 대우주역량으로 가면 우주를 넘어 시공간까지 불태운다. 여기에 나중엔 대우주역량을 초월하는 존재까지도 나오니...
어쨌든, 이 만화에 나오는 캐릭터 설정을 보면 원작 팬들의 정신이 아득해진다. 루갈의 숏컷 미녀 비서인 바이스는 블랑카나 챰챰 같은 원시소녀가 되었고, 클라크는 선글라스를 벗으면 폭주하고, 야부키 신고는 오로치의 부활을 막기 위해 시간 여행까지 해 루갈까지 쓰러뜨린다. 게다가 추가로 국내에서는 캐릭터 이름을 중국어 독음으로 번역하는 탓에, 쿠사나기 쿄는 초치경, 야가미 이오리는 팔신암, 료 사카자키는 판기량 등으로 표기돼 혼란을 초래하기도 했다. 심지어 한국인인 김갑환과 최번개, 장거한도 각각 김가법, 구풍개, 진가한 등으로 바뀌었는데, 번역 문제이긴 하지만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캐릭터들을 보자면 입맛이 씁쓸해진다.
TOP 4. 핵전쟁 이후 세계 배경, 스트리트파이터 가두패왕
홍콩 만화인 '스트리트파이터 가두패왕'은 스트리트 파이터 팬들이 보면 정신이 아득해지는 설정으로 가득하다. 현대 배경이었던 세계관은 북두의 권을 연상시키는 핵전쟁 후 포스트 아포칼립스로 바뀌었고, 베가(장군)는 방사능 파워를 쓴다. 당시 홍콩 만화 특성 상 위에서 소개한 격투천왕처럼 스케일을 엄청나게 키운 무협 만화에 캐릭터 스킨만 스트리트 파이터를 씌운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무리수 설정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은근히 국내에서 인지도가 높은 작품이다. 특유의 극화풍 그림체는 마치 공식 일러스트인 것처럼 트레이딩 카드 등에 활용되었고, 이를 기반으로 국내에선 B급영화계의 명작이라 불리는 실사 영화 '스트리트파이터 가두쟁패전'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참고로 여기서 언급된 설정이나 이름 등은 한동안 공식처럼 돌아다니기도 했으니, 이쪽 업계의 최고 승리자라고 볼 수 있을지도?
TOP 3. 카즈야와 폴과 백두산이 친구, 파이트볼 철권
1990년대만 해도, 국내 만화계에서는 라이선스나 표절에 대한 인식이 매우 옅었다. 그나마 그림이나 스토리를 그대로 베끼는 표절의 경우 부끄러운 일이라는 점은 알았기에 최소한 숨기기라도 했지만, 해외 IP 캐릭터나 세계관을 무단으로 사용하는 라이선스 문제는 창작의 자유 내에서 허용되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었다. 지금으로 따지면 2차 창작과 같은 개념이, 메인 만화계에도 널리 퍼져서 수많은 비라이선스 만화들이 만들어졌다.
그 중 대표작이 바로 파이트볼이다. 이 만화는 무거운 쇠공을 사용하고 공 쟁탈을 위해 각종 반칙이 허용되는 격투축구를 소재로 하는데, 여기에 당시 인기가 높던 격투게임 철권 2 캐릭터들을 활용했다. 한국인 캐릭터인 백두산을 주인공으로, 폴, 카즈야 등이 '철권고' 학생이 되어 스트리트 파이터나 더 킹 오브 파이터 등 다른 게임의 캐릭터들과 싸운다. 그 과정에서 캐릭터성은 완전히 재해석됐는데, 주로 철권고 캐릭터는 선, 다른 게임 캐릭터들은 비열한 악당으로 묘사되어 묘한 반감을 불러일으켰다. 참고로 파이트볼은 훗날 철권 캐릭터 라이선스를 공식적으로 취득했지만, 그렇다 해도 오락가락하는 캐릭터성이 돌아온 것은 아니었다.
TOP 2. 유행에 휩쓸린 개그 동인지? 스트리트 화이터 3
위의 파이트볼과 비슷하게, 스트리트 파이터 2의 인기가 한창이던 무렵 난데없이 국내에서 '스트리트 화이터 3'라는 만화가 연재됐다. 이 만화는 스트리트 파이터 캐릭터를 내세워 오리지널 스토리를 풀어나간 작품인데, 대놓고 저연령 개그만화를 표방했기에 설정이 좀 더 막장이다. 류의 이름은 이소룡이 됐으며, 켄은 난데없이 제갈생이라는 한국 이름과 검은 단발머리 캐릭터로 대체됐다. 전체적 설정 역시 원작보다는 앞서 소개한 가두패왕 기반 실사 영화인 가두쟁패전 설정도 일부 녹아있는 등 그야말로 혼돈의 도가니다.
물론, 이 작품은 당연하겠지만 캡콤 측 라이선스는 취득하지 않았다. 지금 보면 그냥 개그 동인지 정도로 받아들일 수도 있겠지만, 주간지에 연재되고 단행본까지 나올 정도였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 여기에 게임 캐릭터를 활용한 전면 재해석 만화임에도 무려 원작 제목에 '3'이라는 넘버링까지 써가며 정식 작품 같은 느낌을 내려 했다는 것까지 감안하면 위의 파이트볼보다 원작 존중 의식이 조금 더 결여된 작품이 아닐까 싶다.
TOP 1. 의외로 예언서? 김성모 스타크래프트
'하지만 드라군이 출동하면 어떨까? 드! 라! 군!' 밈으로 더 널리 알려진 김성모 작가의 스타크래프트. 위의 두 작품과 달리, 이 만화는 저작권 인식이 널리 퍼진 2000년 제작됐기에 시작부터 블리자드의 정식 라이선스를 받고 만들어졌다. 다만, 라이선스 여부와는 별개로 너무나도 자유로운 재해석과 안드로메다 고증으로 유명해졌다. 아무래도 스타크래프트 1과 브루드 워에서 공개된 설정돠 스토리만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려니 상당수 오리지널 설정이 들어갈 수 밖에 없었겠지만, 기본 설정조차도 바꿔버린 것이 함정.
가장 큰 차이점은 배경이 2500년대가 아니라 2200년대로 확 줄면서, 테란의 본거지가 지구로 바뀌었다는 점. 테란 자치령과 UED가 짬뽕되어 버린 것이다. 뿐만 아니라 프로토스도 유순한 종족으로, 근성으로 무장한 테란에게 모성 아이어를 빼앗긴다. 오버마인드 치하의 저그는 아예 핍박받는 야생동물 수준이다. 테서더, 페닉스, 오버마인드, 멩크스, 듀갈 등 원작 등장인물들도 나오지만, 이름만 같고 성격이나 능력, 외모 등에서 아예 다른 인물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스타크래프트 세계관에 깊이 탐닉했던 당대 팬들로서는 황당한 설정이 많았는데, 하필이면 이 만화가 당시 국내 출시된 스타크래프트 관련 서적 중에는 유일하다시피 했기에 자칫 저것이 공식으로 받아들여질까 걱정하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아이러니한 점은, 이 만화에 일찍이 소개된 내용 중 일부가 훗날 스타크래프트 2에서 실제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캐리건이 인간에서 저그 칼날 여왕이 되었다가 다시 머리카락 부분만 남기고 인간으로 돌아오는 장면인데, 그로 인해 블리자드 스토리 담당자가 이 만화를 읽고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 아니냐는 신빙성 있는 추측도 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