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투스가 이렇게 MMORPG를 잘 만드는 회사였나?
2022.08.19 18:45게임메카 이재오 기자
서머너즈 워: 크로니클(이하 크로니클)은 여러모로 컴투스의 도전과 모험이 담긴 게임이다. 서머너즈 워 IP를 활용해 만든 첫 MMORPG이자, 컴투스가 2006년 아이모 이후로 무려 16년 만에 내놓은 MMORPG이기도 하다. 이렇다 보니 게임의 완성도와 재미 면에서 제대로 된 결과물이 나올지 걱정하는 팬들도 적지 않았다.
다행히도 이런 우려는 그저 기우에 불과했다. 크로니클을 플레이하는 내내 게임 자체가 '고심해서 잘 만들었구나'라는 인상을 줬으며, 전투와 던전 구성 등도 충분히 재밌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놀라웠던 점은 MMORPG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도 재밌게 즐길 수 있는 전략적 요소가 충만했다는 점과, 서머너즈 워: 천공의 아레나에서 사용됐던 여러 전투 문법을 이 장르에 자연스럽게 녹여냈다는 부분이었다.
눈과 귀에 쏙쏙 박히는 스토리텔링
크로니클은 서머너즈 워 연표상으로 전작인 백년전쟁과 천공의 아레나보다 훨씬 앞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프리퀄 작품이다. 대략적으로 배경을 설명하자면 2차 이계의 틈에 빨려 들어가면서 사라진 줄 알았던 만악의 근원이자 갈라곤 종족의 왕 테포가 다시 돌아왔다는 소문이 퍼지고, 실제로 그를 주축으로 한 네오갈라곤들이 나타나 고대 유물 아라가스의 눈을 훔치려 한다. 이에 플레이어는 주요 인물들과 힘을 합쳐 그들을 저지하고 세계의 평화를 수호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게 된다.
크로니클은 사실상 서머너즈 워 IP 활용 게임 중에선 거의 최초로 스토리를 제대로 다루고 있는 게임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조금은 어색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게임은 사뭇 괜찮은 스토리텔링을 보여준다. 튜토리얼 단계에선 1인칭 화면을 사용한 흥미로운 연출과 화려한 인게임 컷신으로 몰입감을 높였으며, 스토리 측면에서 반드시 알아야 할 내용이 있어야 하는 각 장과 막 사이에선 2D 애니메이션을 삽입해 전달력을 잡았다.
스토리 상에서 플레이어의 입지는 상당히 독특한 편이다. 이야기의 곁다리에 있지도, 그렇다고 중심에서 이리저리 휘둘리지도 않는다. 적진의 에리나 아군 진영의 조슈아처럼 굉장히 입체적인 인물들 사이에서 이야기를 전개하면서도 그걸 적당한 거리에서 지켜보고 조율하는 역할을 맡았다. 플레이어 입장에선 이야기를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으면서도 일정 수준의 몰입감을 지니게 되는 셈이다. 개인적으로는 꽤나 잘 쓴 동화의 1인칭 화자가 된 느낌이 들었다.
오픈 시점 준비된 이야기의 볼륨을 따져보면 현재 게임 내에선 5막까지 준비돼 있으며, 각 막을 클리어 하는데 천천히 이런저런 숙제를 해가면서 즐긴다면 꼬박 하루가 걸린다. 각 막마다 그 지역과 종족의 이야기를 잘 다루고 있으면서도 이야기가 너무 바깥으로 빠지지 않는다. 사실 가장 놀라웠던 부분은 어느 정도 이야기를 건너뛰면서 컷신 등을 보더라도 각 장의 주요 장면들이나 전개가 기억에 남았다는 점이다. 덕분에 다시 뒤로 돌아가서 이야기를 보게 되는 등 여러모로 스토리텔링이 매력적이다.
서머너즈 워의 문법을 잘 가져온 영리한 전투
스토리도 스토리지만, 결국 이 게임은 소환수를 모으고 그 소환수를 활용해 전투를 펼치면서 진행하게 된다. 다시 말해 이 전투와 던전이 재밌어야 하는데, 다행히도 크로니클의 전투는 이를 만족하면서도 상당히 새롭게 다가온다.
일단 캐릭터의 스킬 활용법부터 일반적이지 않다. 크로니클에서 플레이어블 캐릭터인 소환사의 스킬은 처음부터 3가지로 고정돼 있다. 각각의 스킬이 연계가 되도록 세팅되어 있으며, 무기의 속성이 바뀌면 그 효과도 달라지는 식이다. 가령, 탱커인 클리프가 물 속성의 무기를 들고 있으면 적에게 방패를 들고 돌진하지만, 불 속성 무기를 들고 있으면, 철퇴를 들고 점프를 하며 적 여러 명에게 연계 공격을 날리는 식이다. 다양한 속성의 무기를 상황에 맞게 자유롭게 바꿔가면서 쓸 수 있도록 잘 구성했는데, 덕분에 플레이어 캐릭터 조작 자체도 크게 지루하지 않다.
그다음은 소환수를 활용한 액션과 전략이다. 전투의 핵심은 상황과 맵, 적의 속성에 맞는 소환수를 조합하고 조작하는 것이다. 가령 적이나 보스가 기절이나 각종 디버프 효과를 많이 건다면, 우리 팀에 이를 방지할 수 있는 면역 스킬을 가지고 있거나 디버프를 해제할 수 있는 기술을 지닌 소환수를 등록해야 하는 식이다. 이런 전략을 제대로 쓰기 위해선 실시간으로 소환수를 바꿔가며 스킬을 입력해야 한다. 전략의 재미와 컨트롤의 재미를 모두 잘 섞은 셈이다.
여기에 한층 더 매력을 가미해 주는 것이 바로 던전 구성이다. 크로니클에서 스토리를 진행하면서 만나게 되는 주요 던전들은 모두 수동으로 플레이해야 하며, 각 던전만의 기믹이 있다. 가령 각종 장애물을 순서대로 해체해야 하는 퍼즐이 있다거나, 적들을 순서에 맞게 처리해야 하는 등 직접 조작해야만 풀 수 있는 장치들이 계속 나온다. 게임 초반에는 다소 싱겁고 유치한 기믹들이지만, 중반부로 넘어가면서는 순발력이나 암기력 등이 필요하다. 여러 퍼즐을 풀면서 전투까지 같이 치르다 보면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 모를 지경이다.
여기에 보스들이 보여주는 패턴도 다양하고 그 공격력도 굉장히 높은 편이다. 팀 전투력이 던전 권장 전투력보다 2만이나 높더라도, 제대로 조합을 맞추지 않거나 회피 기동, 약점 공략 등을 무시하고 게임을 진행한다면 쓴맛을 보게 될 확률이 매우 높다. 특히 본인이 무 소과금 플레이어라면 모든 던전의 난이도가 상당한 편이다. 수동 전투가 아니면 절대 깰 수 없다던 개발진의 말이 과언이 아니었던 셈이다. 덕분에 플레이어는 자연스럽게 게임을 연구하고 공략법 등을 찾아가면서 게임을 플레이하게 된다.
무과금이 랭커가 될 수 있는 BM
사실 이 밖에도 크로니클의 장점은 굉장히 많다. 위에서 말한 대로 수동 전투가 평범한 퀘스트 진행 중에도 계속된다면 플레이어는 당연히 피로를 느낄 수밖에 없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필드 전투를 비롯해 반복 퀘스트는 자동 전투만으로도 진행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그 난이도도 굉장히 적절해서, 태생 등급이 높지 않거나 성장이 다 되지 않은 소환수를 쓰고 있다면 속성에 맞는 조합을 꾸려야 한다. 레벨 디자인이 전반적으로 굉장히 잘 돼 있는 편이라 할 수 있다.
더불어 비주얼도 상당히 괜찮은 편이다. 그래픽 자체는 정교하다고 보기 힘들고 텍스처 품질이나 다른 자연물과의 상호작용도 거의 없지만, 카툰렌더링 기법을 활용한 캐릭터들의 비주얼과 이를 통해서 구현된 인게임 컷신, 애니메이션의 조화는 매우 뛰어나다. 전작을 해 봤다면 2등신에서 6등신으로 새롭게 디자인된 소환수들을 보는 맛도 꽤나 쏠쏠한 편이다. 아기자기한 캐릭터 디자인을 좋아하는 사람에겐 안성맞춤인 게임이다.
BM도 무리해서 뽑기에 투자하지 않아도 되도록 구성했다. 각종 배틀 패스를 여럿 만들었으며, 몇몇 배틀 패스에서 태생 5성 등급 소환수를 얻을 수 있도록 구성했다. 리세마라 또한 5분도 안 걸리는 퀘스트를 통해 편하게 할 수 있도록 구성했기 때문에 작정한다면, 원하는 5성 등급 소환수를 여럿 손에 쥐고 게임을 시작할 수 있을 정도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뽑기보다는 오히려 소환수 성장 관련 패키지 상품에 눈이 가기는 하는데, 이것도 게임의 여러 퀘스트를 잘 둘러보면 충분히 무과금으로도 해결이 가능하다. 오죽하면 현재 기준 서버 10위권 내에 무과금 유저가 안착하고 있을 정도다.
글로벌 출시가 더욱 기다려진다
아쉬운 부분이라면 서머너즈 워 IP를 모르는 사람, 천공의 아레나를 즐겨보지 못한 사람에게는 재미가 조금 반감될 수 있다는 점이었다. 게임 내에서 캐릭터에게 적용되는 각종 부가효과와 이를 상쇄시키는 면역 효과 등을 이해하기도 쉽지 않고,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몬스터와 그 스킬들도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을 수 있다. 쉽게 말해 개발진의 여러 노력에도 불구하고 진입 장벽이 어느 정도는 있다는 뜻이다.
다행히도 이 진입장벽을 뛰어넘게 된다면 게임의 재미는 매우 크게 상승한다. 굳이 기존 서머너즈 워의 매력을 온전히 수용하지 못했더라도, 이 게임에 익숙해지기만 한다면 충분히 재미를 보장하는 게임이다. 그런 의미에서 국내보다 해외 팬이 훨씬 많은 서머너즈 워의 인기를 생각하면, 글로벌 출시 시점에서 크로니클이 얼마나 큰 파급력을 선보일지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