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브레이커, 미니어처 보다는 하스스톤 같은 CCG에 가깝다
2022.09.25 21:53게임메카 이새벽
최근에 데드 스페이스 개발자로 유명한 글렌 스코필드를 필두로 다수의 유명 해외 개발자를 포섭 중인 크래프톤이, 또 다른 해외 개발진과 함께 독특한 신작을 선보였다. 해양 생존게임인 서브노티카로 유명한 언노운 월즈 엔터테인먼트가 만드는 디지털 미니어처 게임, 문브레이커다.
문브레이커는 당초부터 디지털 플랫폼으로 테이블탑 미니어처 게임의 체험을 제공한다는 야심 찬 포부를 드러낸 바 있다. 미니어처 게임은 실제 테이블 위에서 직접 조립하고 도색한 미니어처 모델을 사용해 진행하는 보드게임의 종류로, 유명 IP 워해머 시리즈도 근본은 이러한 미니어처 게임이다.
필자도 미니어처 게임을 즐기는 플레이어로서 일찍이 문브레이커에 관심이 있었다. 그러던 중 마침 지난 9월 9~11일과 16~18일, 두 차례에 걸쳐 문브레이커 테스트가 진행된다는 소식을 듣고 들뜬 마음에 바로 게임을 플레이 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현재의 문브레이커는 서브노티카 제작진이 만든 수작 미니어처 게임을 기대하던 입장에서는 조금 아쉬운 물건이었다. 썩 나쁘진 않지만 생각보다 새로운 점은 적고, 9월 30일 앞서 해보기 출시를 앞둔 게임 치고는 완성도가 그리 높지 않았다. 요약하면 미완의 범작이라는 느낌이다.
짙게 느껴지는 하스스톤과 듀얼리스트의 느낌
당초 문브레이커는 ‘테이블탑 미니어처 게임’을 지향한다는 점을 분명히 언급했다. 하지만 단적으로 얘기해 전통적 미니어처 게임보다는 디지털 CCG 하스스톤을, 보다 정확히는 하스스톤에 영향을 받은 턴 기반 전술 게임 ‘듀얼리스트(DUELYST)’를 닮았다. 그렇게 느껴지는 가장 큰 이유는 아마 진행방식이 아닐까 싶다. 문브레이커는 큰 궤에서의 진행방식에 있어 위 두 게임 체계를 거의 그대로 이어받은 모양새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많은 미니어처 게임은 모델별로 정해진 점수를 지불하고 모델을 부대에 편성해 군대를 꾸린다. 그리고 이 군대를 한 번, 혹은 몇 번에 나눠 전장에 배치한다. 물론 게임 시작 후 배치되는 모델도 있지만, 대개 이러한 모델은 낙하산으로 적진에 투입되는 등 특수한 배치규칙을 가진 경우다. 현행 판본의 워해머 40K나 인피니티 같은 미니어처 게임들도 이처럼 한 번에 부대를 배치하고 수싸움을 하는 구성을 취하고 있다.
반면 문브레이커의 배치방식은 기존 미니어처 게임들과는 다르다. 시작하면 플레이어는 단 하나의 지휘관 캐릭터만 지니고 있다. 플레이어는 ‘신더’라는 자원 풀을 지니고 있는데, 이 신더는 하스스톤으로 따지면 마나다. 매 라운드 총량이 1점씩 오르고, 다 써도 다음 턴이 되면 완전히 회복된다. 마나와 다른 점은 전 턴에 안 쓴 신더를 최대 3점까지는 아껴 뒀다 다음 턴에 쓸 수 있다는 정도다. 플레이어는 플레이 도중 신더를 소모해 모델을 지휘관 근처에 소환해야 한다.
그러나 신더가 충분량 있다고 아무 모델이나 배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플레이어는 게임 시작에 앞서 부대를 편성해야 한다. 이 부대는 하스스톤으로 따지면 덱이다. 일반적 미니어처 게임과 달리 문브레이커 부대는 정해진 편성 점수 상한이 없다. 원하는 모델은 아무 거나 넣을 수 있다. 다만 소환 비용이 너무 높은 모델만 넣으면 초반에 내기 힘들고, 낮은 모델만 넣으면 후반에 강한 적에 맞서기 힘들 뿐이다. 이는 매직: 더 개더링이나 하스스톤의 소위 ‘마나 커브’ 개념이다.
그럼 부대는 적절하게 구성했다고 치고, 편성한 모델을 비용만 내면 바로 배치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문브레이커에는 함교라고 하는 일종의 ‘핸드’가 있다. 게임이 시작될 때 내 부대에서 무작위로 뽑힌 세 개의 모델이 함교에 들어가고, 플레이어는 이 함교에 있는 모델만 신더를 써 배치할 수 있다. 만약 현재 함교에 없는 모델을 내고 싶다면 신더 3점을 내고 무작위 모델 하나를 뽑아 함교에 보충해야 한다. 사실상 CCG의 핸드와 드로우 개념이다.
이렇듯 시간이 지남에 따라 커지는 신더와, 함교에 무작위로 들어오는 모델을 고려해 상황에 따라 모델을 배치해야 한다. 이렇게 배치한 모델들로 적 지휘관을 공격해 쓰러뜨리면, 남아있는 나머지 적 모델과 무관하게 게임에서 이기게 된다. 그 외에는 게임 시작 시 무작위로 제시된 전략 기술 중 두 개를 골라 궤도 포격 지원을 받거나, 다친 아군 모델을 치유하거나, 적을 약화시키는 등의 변칙적인 전술개입 요소가 있다.
문브레이커가 기존의 미니어처 게임보다는 CCG에 가까운 게 단지 느낌 탓일까? 그건 아닌 것 같다. 퍼블리싱을 맡고 있는 크래프톤의 사내 인터뷰에 따르면, 문브레이커의 디자인 디렉터 찰리 클리브랜드는 실제로 미니어처 게임보다 CCG에 더 큰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의 회고에 따르면 그는 미니어처 게임을 직접 플레이 하기보다는 모델 도색을 자주 했으며, 테이블탑 게임은 CCG를 더 좋아했다 한다. 또한 하스스톤이 문브레이커 제작에 큰 도움을 주었다고도 밝힌 바 있다.
물론 그렇다고 문브레이커’가 미니어처 게임적인 요소가 없다거나 하스스톤의 아류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문브레이커에는 CCG에 없는 중요한 차별점이 하나 있다. 바로 물리적 면적이 있는 전술적 전장이다. 개념적으로만 나뉘는 CCG의 전장과 달리 문브레이커의 전장은 수치로 계량되는 면적이 있고, 모델들은 이 전장 위에서 이동과 사정거리, 지형지물 요소를 고려하면서 싸우게 된다. 이 특징만으로도 문브레이커는 CCG의 시스템을 차용했을 지언정, 분명한 장르적 차별점을 갖는다.
다만, 그렇다고 하스스톤 시스템을 턴 기반 전술게임에 도입한 게 문브레이커만의 특징인 것은 아니다. 이미 듀얼리스트나 ‘샤드바운드(Shardbound)’ 등이 거의 같은 시스템으로 게임 모델을 잡아 놓은 바 있기 때문이다. 문브레이커는 사실 후발주자에 가깝다.
그렇다면 후발주자인 문브레이커는 같은 장르의 기존 게임들에 비해서 한 발 더 나아간 독창적인 시스템이나, 더욱 정교해진 완성도 둘 중 하나는 보여주어야 할 터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번 테스트 기간 동안엔 적어도 후자에 있어서는 실망스러운 모습이 많이 보였다.
미완의 U.I.와 있어 마땅한데 없는 편의기능
그래도 문브레이커의 게임성은 근본적으로 결코 나쁜 편이 아니다. 뿌리가 된 하스스톤과, 이를 턴 기반 전술게임에 접목한 듀얼리스트가 둘 다 게임성으로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은 바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 잘된 게임들의 방식을 이어받은 문브레이커도 나쁠 리가 없고, 실제로도 플레이 하며 나름의 재미도 느꼈다. 하지만 이번 테스트 기간 보여준 전체적인 완성도는 다소 아쉬운 편이었다. 그 중에도 가장 큰 문제는 단연 UI와 편의기능에 있었다.
직관적이고 일관된 UI는 진입장벽을 줄이고 더 나은 게임 체험을 제공하는 데 필수적이다. 그러나 문브레이커은 영문을 모르겠을 정도로 일관성 없는 UI가 많았다. 단적 예로 모델을 선택했을 때 뜨는 바 이미지를 보도록 하자.
모델 ‘크랭크베이트’를 선택하면 뜨는 UI바에는 ‘근접’과 ‘사슬 갈고리’ 앞에 같은 사이즈 아이콘이 있고, 그 안에는 숫자가 써 있다. 형식이 같으므로 비슷한 종류의 정보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그러나 사실 이 둘은 전혀 다른 종류의 정보다. 근접 앞에 있는 노란색 1은 피해량 1이라는 뜻이고, 사슬 갈고리 앞의 주황색 1은 기술 사용에 필요한 신더 비용이 1이라는 뜻이다. 같은 공간에 능력치와 자원소모량이라는 완전히 다른 정보를 비슷한 아이콘 디자인으로 혼재해 둔 것이다.
이렇듯 UI 구성 자체도 혼란스러운 방식이지만, 정보 제공도 부족했다. 예를 들어 사슬 갈고리는 유닛을 사용자의 앞으로 끌어당기는 스킬인데, 끌고 오는 경로나 예상 도착지점을 제대로 보여주지 않는다. 그 탓에 중간에 미세한 장애물이 있으면 끌려오다 걸려 멈추게 된다. 한 번의 행동이 갖는 가치가 큰 턴 기반 전술게임임에도 이런 이유로 턴을 낭비하게 되는 일이 잦았고, 이는 부정적인 기억으로 남았다.
또한 문브레이커는 한 플레이어가 자신의 모든 모델을 다 움직이고 턴을 넘기면, 상대 플레이어가 턴을 받는 방식의 턴 순환 구조를 취하고 있다. 그런데 한 턴에 조작해야 하는 모델이 많다 보니, 익숙치 않은 경우 실수로 몇몇 모델을 움직이지 않은 채 턴을 넘기는 일이 이따금 발생한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디지털 턴 기반 게임들은 턴을 넘길 때 아직 조작하지 않은 모델이 남았다고 경고를 해주곤 한다.
문브레이커엔 이러한 편의기능이 부재하다. 그 탓에 맵 구석에 두었던 일부 모델 조작을 깜빡 잊고 턴 넘기기를 누르면 가차 없이 턴이 넘어가버린다. 이는 그 자체로 불편하기도 하지만, 동일 장르의 다른 게임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갖추고 있는 시스템이었다는 점이 더욱 아쉽게 느껴진다.
그 외에도 게임 중 행동 중인 모델에게 카메라 포커스를 맞추고 추적하는 기능이 없는 점이나, 게임 대기창에서 부대 리스트를 확인할 때 모델의 외형이나 상세 정보 없이 이름만 보여주는 점, 각 게임 모드의 특징을 충분히 명확히 설명해주지 않는 점 등 자잘한 미완의 느낌을 주는 요소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었다. 물론 빠르게 고칠 수 있는 부분이긴 하지만, 출시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진행된 테스트임을 고려하면 정식 버전에서 다 고쳐질 것이라 낙관하긴 어렵다.
이러한 문제들 탓에 테스트 기간 체험한 ‘문브레이커’는 U.I.와 편의기능에 있어 전반적으로 폴리싱이 충분히 되지 못한, 아직 고칠 게 많은 미완의 게임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남겼다.
‘앞서 해보기’에서는 나아질까? 얼마 안 남은 출시일이 불안해
앞서 언급한, 이번 테스트 버전을 플레이 한 후 느껴진 점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1. 기성 미니어처 게임보다는 ‘하스스톤’을 턴 기반 전술 게임으로 옮겨온 듯한 느낌을 주는 게임이다.
2. 다만 이미 그러한 시도를 한 게임이 적지 않으므로, 시도 자체가 참신하지는 않다. 오히려 검증된 모델의 후발주자라고 볼 수 있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층 더 나아간 신선함은 아직 크게 눈에 띄지 않으며, 아직 전반적인 UX가 썩 좋지 않아 폴리싱이 크게 덜 된 느낌이 든다.
여기서 조금 더 거시적으로 보면 또 하나의 문제가 남는다. 미니어처 게임을 즐기는 입장에서 잠깐 주관적인 감상을 이야기하자면, 미니어처 게임은 IP가 큰 영향을 주는 장르라 본다. 대표적인 미니어처 게임 워해머 시리즈도 그렇다. 특유의 설정과 캐릭터 디자인에 매료되어 게임을 시작한 사람이 아마 필자만은 아닐 것이다. 워해머 외에도 워머신, 인피니티, 말리폭스, 콘퀘스트 등 여러 게임이 매력적인 자체 IP와 모델 디자인에 힘쓰고 있으며, 기존 IP의 도입도 활발한 장르다.
그런데 문브레이커는 미니어처 게임을 지향하면서도 아직 IP의 매력을 충분히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필자는 테스트 기간 4일에 걸쳐 게임을 플레이 했지만, 여전히 이 게임의 스토리가 무엇이고 각 캐릭터의 배경과 성격과 개별 플롯이 무엇인지 모른다. 그리고 더 솔직히 말하면 세계관 콘셉트가 무엇인지도 잘 모르겠다. 키치하고 유머러스한 무언가를 지향하고 있나 보다 싶을 뿐이다.
인터뷰에서 문브레이커 개발진은 디지털 미니어처 게임으로의 체험은 물론이고, 미니어처 수집 및 도색, 세계관을 다룬 오디오 드라마로 재미를 줄 수 있을 거라고 했다. 하지만 이번 테스트 기간 중에는 이를 다 증명하지 못했다. 개중 독특한 것은 디지털 미니어처 수집과 도색이었는데, 사실 이것도 신선할 만한 요소는 아니었다. 이미 마이트 앤 매직: 쇼다운 등이 보여준 게 있으니 말이다.
문브레이커는 근본적으로 재미가 없는 게임은 아니나, 마니아 입장에서는 그다지 신선한 게임도 아니다. 그렇다고 잘 다듬어진 완성도 높은 게임도 아니다. PvP 턴 기반 전술게임이라는 틈새시장에서 새 게임에 목마른 게이머들의 눈을 잠시 돌릴 수는 있겠지만, 그 이상을 끌고 나갈 원동력은 아직 느껴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