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리스토 프로토콜의 능숙한 호러 연출, 세밀하게 뜯어보자
2022.12.08 17:41게임메카 김미희 기자
크래프톤은 국내 게임사 중 PC∙콘솔 관련해서 조기에 성과를 낸 케이스다. 대표적인 것이 ARMA 3 모드 개발자 출신인 브랜든 그린을 제작진으로 영입해 2017년 스팀에 출시한 배틀그라운드다. 이 게임을 토대로 글로벌적인 흥행을 경험한 크래프톤은 이후에도 적극적으로 해외 제작진 영입에 힘을 쏟았고, 이를 토대로 탄생한 타이틀이 지난 2일 출시된 칼리스토 프로토콜이다.
칼리스토 프로토콜은 2020년 더 게임 어워드에서 첫 공개됐고, 당시 데드 스페이스 1편 프로듀서를 역임한 글렌 스코필드가 총괄하는 공포게임 신작으로 소개되며 단번에 기대작으로 급부상한 바 있다. 그는 발매 전 인터뷰에서 잔혹한 공포를 전달하는데 집중하겠다고 강조한 바 있고, 이러한 기조는 완성된 게임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어두침침하고 폐쇄된 미래 감옥, 정체 모를 무언가에 감염된 사람들, 곳곳에서 등장하는 적과 사방에서 들려오는 비명 등이 맞물리며 한치도 방심하기 어려운 긴장감을 전달해준다.
고어한 공포게임 기본틀에 충실하다
칼리스토 프로토콜 개발사인 스트라이밍 디스턴스 스튜디오를 이끌고 있는 글랜 스코필드 대표는 발매 전 진행한 인터뷰에서 ‘호러 엔지니어링’이라는 작법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이에 대해 그는 “별도 시스템이라기보다 호러를 이야기하는 저희만의 방식이라 이해하시면 된다. 긴장감, 절망감, 분위기, 휴머니즘 등 공포를 구성하는 요소와 제작진이 제작한 모든 순간이 어우러지며 공포감을 전달한다”라고 밝힌 바 있다.
게임을 실제로 플레이해보면 이러한 호러 엔지니어링의 결과물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우선 각종 사건이 벌어지는 배경 구성과 묘사다. 이 게임은 2320년 목성의 위성인 칼리스토에 건설된 블랙 아이언 교도소를 무대로 한다. 교도소 내부는 거의 빛이 들지 않아 어두침침하며, 외부와 완전히 단절되어 있고, 마치 미로처럼 여러 갈래로 갈라져 있다. 아울러 허리 넘는 높이로 오물이 차 있는 통로를 지나가야 하거나, 종양이 가득한 벽, 많은 사람들이 거꾸로 매달려 있는 방 등으로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더욱 더 배가시킨다.
가장 인상깊었던 장소는 플레이 중 좁은 틈을 비집고 들어가거나 환풍구를 기어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구간이었다. 이 구역에서는 사람이 감염체에 끌려가거나 적이 획 지나가는 장면이 비춰진다. 이는 정보적인 측면에서 적과의 조우가 머지 않았음을 전달함과 동시에, 싸울 준비가 충분치 않은 상황에서 감염체와의 대면이 곧 다가온다는 긴장감과 공포심을 심어준다. 아울러 전체적인 필드 구성과 비주얼이 ‘미래의 가장 악명 높은 교도소’라는 테마를 설득력 있게 전달하기에 세계관에 대한 몰입도도 흐트러지지 않는다.
데드 스페이스 당시에도 호평 받았던 깔끔한 UI는 칼리스토 프로토콜에도 이어진다. 주인공 등 뒤에 무기와 체력을 배치해 튀지 않으면서도 자연스럽게 플레이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아울러 필드 측면에서도 길을 찾는 내비게이션 시스템이 없어도, 바닥의 핏자국을 따라가거나 벽에 있는 낙서, 화살표, 표지판 등을 토대로 경로를 파악할 수 있도록 한다. 제작진이 게임을 통해 전달하고 싶었던 경험 중 하나가 홀로 맞서야 한다는 고독함인데, 앞서 이야기한 UI 구성은 몰입도를 높이면서도, 외부 도움 없이 외따로 감옥에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전달해준다.
이와 함께 주목할만한 부분이 사운드다. 게임의 전체적인 전개는 명확하지 않은 이유로 교도소에 수감된 우주선 조종사인 제이콥 리가 정체 모를 감염사건에 휘말린 후, 그 진실을 파헤쳐가는 흐름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전투와 함께 여러 갈래로 갈라지는 교도소 등을 탐색하며 이동하는 구간이 제법 긴 편이다. 다소 긴장감이 늘어질 수도 있는 구간이지만, 사운드가 쉬지 않고 텐션을 이어간다. 울음소리와 습격된 사람들이 비명이 플레이에 방해되지 않을 정도의 빈도로 울려 퍼지며 위험이 도사리는 감옥에 있다는 점을 반복적으로 상기시킨다.
장치를 활용하는 순간판단력이 요구되는 근접전
칼리스토 프토로콜은 사일런트 힐, 에일리언: 아이솔레이션, 아웃라스트처럼 대항할 수 없는 적을 상대하며 심리적인 압박감을 전달하는 유형은 아니다. 그보다는 바이오하자드, 데드 스페이스처럼 액션에 좀 더 무게를 실었다. 특히 제작진 전작이라 할 수 있는 데드 스페이스와 비교하면 데드신으로 대표되는 잔혹한 액션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동일하지만, 전자가 원거리에서 사지절단으로 적을 제압하는 방식이었다면 칼리스토 프로토콜은 근접전에 좀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콤보는 회피, 때리기, 쏘기로 압축된다. 적이 공격하려고 손을 드는 타이밍에 맞춰 공격을 피하고, 근접무기인 전기충격봉인 스턴 배턴으로 때린 이후에, 조준창이 뜨면 총을 발사하는 방식이다. 적들의 패턴이 다양하지는 않기에, 세 가지를 잘 활용하면 최종보스 공략도 가능하다. 플레이 중 입수한 재화로 장비 업그레이드도 할 수 있다.
다만, 앞서 이야기한 부분은 어디까지나 1 대 1 대결에 국한된다. 전투에 돌입하면 캐릭터 전방만 보일 정도로 카메라 시점이 확 당겨지는데, 주변에 있는 적들이 소리를 듣고 달려오는 등 플레이어가 예상할 수 없는 1 대 다 전투가 벌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때, 주변을 둘러보면 모든 적을 직접 때려잡는 전투가 능사가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벽에 설치된 뾰족한 설치물, 빨갛게 빛나는 폭탄, 바닥을 굴러다니는 가스통 등을 발견할 수 있고, 이를 전투에 활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적을 끌어온 후 내팽개칠 수 있는 특수장비인 그립으로 적을 뾰족한 벽에 박아버리거나 난간 밖으로 던져서 낙사시키면, 공포라는 테마에 맞춰 다소 부족하게 제공되는 총알과 회복 아이템을 아깔 수 있다. 특히 첫 중간보스 등장 직전에 수많은 적이 몰려드는 구간이 있는데, 이들을 모두 직접 상대하지 않고 탑승 중인 수송플랫폼 밖으로 던져버리면 아이템을 보존한 상태에서 보스를 대면할 수 있다. 이 외에도 폭탄을 그립으로 잡아서 던지거나, 가스통을 총으로 쏴서 폭사를 유도하는 방식도 가능하며, 기믹을 쓰지 않더라도 다리를 총으로 쏜 후 밟아버리는 식으로 효율적으로 전투를 전개해나갈 수 있다.
아울러 1 대 다 전투가 벌어질법한 넓은 공간이 나온다면 주변에 쓸만한 장치가 있는지 주의 깊게 살펴보고, 이들을 최대한 활용하는 전술적 시야가 요구된다. 앞서 밝혔듯이 도중에 튀어나오는 적들이 많기에 신중하게 생각하기보다는 순간판단력이 필요하다. 다만, 기믹 활용에 대한 안내가 다소 부족해서 초중반에는 전투가 끝난 다음에 파밍 등을 위해 주변을 둘러보다가 ‘아, 여기에 이런 게 있었네’라며 깨닫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 다소 아쉽다.
어떻게 첫 술에 배부르랴
사실 칼리스토 프로토콜은 개성이 뚜렷한 만큼 단점도 명확하다. 적의 종류가 부족하고, 전투패턴이 비슷한 점, 중반 이후에 스토리가 급속도로 전개되는 점, 다소 완성도가 낮은 한국어 더빙, 불안정한 최적화 등은 여러 곳에서 지적되고 있는 단점이다.
그럼에도 칼리스토 프로토콜의 도전을 폄하할 수 없는 이유는 국내 게임업계에 피어나기 시작한 콘솔의 초기 경로를 열어줄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주요 제작진은 북미에 있으나 자본은 국내에서 비롯됐고, 인력에 투자하며 글로벌 진출 경로를 조금씩 넓혀가는 것도 방법일 수 있다. 아울러 글로벌 시장에 초점을 맞춰 PC와 콘솔로 신작을 선보이며 쌓은 노하우가 다음에는 좀 더 좋은 결과물이 탄생하는 양분이 될 수 있다.
아울러 ‘잔혹 공포’라는 개성을 전면적으로 드러낸 제작진의 기획 의도는 명확하게 전달되며, 음울하고 폐쇄적인 공포도 분명히 살아있다. ‘첫 술에 배부르랴’는 옛말처럼 강점을 드러낸 첫 타이틀을 발판으로 삼아 좀 더 콘텐츠를 보강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차기작에서는 더 발전된 게임을 선보일 수 있으리라는 미래를 전망하는 것이 과한 기대는 아니다. 추후 패치, DLC, 차기작 등으로 모처럼 발굴한 IP를 확장하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