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심하면 순식간에 아수라장, VR 요리게임 '로스트 레시피'
2023.08.19 10:00게임메카 흑임자XR
일반적으로 다른 나라의 역사 속 음식을 전통 도구를 이용하여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는 경험은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가상세계에서는 지금 당장 실현 가능한 일이죠. 고대 그리스, 중국, 마야 문명 속 부엌으로 시간여행을 떠나 그 나라의 전통 요리를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는 VR게임 '로스트 레시피(Lost Recipes)' 속에서 말입니다.
게임 제목만 보면 머나먼 고대에 존재했지만 지금은 사라진 요리들을 만들어보는 게임 같지만, 정작 만드는 음식들은 탕후루 같이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즐겨먹고 있는 레시피가 많습니다. 게임 내에서 만들 수 있는 요리들은 아래와 같습니다.
고대 그리스(기원전 400-500년) 아테나 시내 중심부에 있는 부엌
-포도, 곡물 그리고 올리브(Grapes, Grains & Olives): 지중해의 3대 식재료를 이용한 요리로, 각종 허브와 오일 속에 숙성시킨 포도와 올리브를 피타 빵에 올려먹는 요리.-피타 빵(Barley Pita Bread): 아랍지역에서 흔하게 먹는 공갈빵과 비슷하게 생긴 빵.-로코마데스(Loukoumades): 그리스식 도넛으로 시나몬이 들어간 시럽을 듬뿍 끼얹은 요리.-수블라키(Souvlaki): 그리스식 숯불에 구운 꼬치 요리.
새해를 맞이한 중국 송나라(기원후 960-1279년)의 부엌
-탕후루(Tanghulu): 과일 등을 대나무 꼬치에 꿰어 설탕과 물엿 등을 발라 차갑게 굳혀 먹는 간식.-생선찜(Steamed Whole Fish): 생강, 파, 고수들과 함께 찐 생선요리.-동파육(Dongpo Pork): 돼지고기를 튀기고 졸여 만든 중국요리.-버섯 청경채(Mushrooms and Bok Choy): 청경채를 곁들인 중국식 버섯 조림 요리.
죽은 자의 날을 위한 명절을 맞이한 멕시코 남동부 유타칸반도(기원후 1500-1600년)의 부엌
-감귤 샐러드(Xec Jicama and Citrus Salad): 마야어로 ‘엔살라다(salad)’를 뜻하는 단어에서 유래된 ‘Xec’또는 ‘Xe’ec’으로 알려져 있는 요리로, 죽은 자들의 날 동안 먹는 전통 음식.-쇼콜라틀(Xocolatl): 아즈텍족이 마셨던 카카오를 이용한 음료로, 초콜릿의 유래가 됨.-무크빌 포요(Mukbil Pollo): 반죽에 고추와 닭고기, 돼지고기를 넣어 바나나 잎에 싸서 숯불 안에 넣고 익혀 먹는 요리.-콘 토르티야(Corn Tortillas): 말린 옥수수를 석회물에 담가 익힌 후 잘게 갈아 반죽하여 구워서 다양한 요리들을 넣어 먹는 빵.
이처럼 대부분의 요리가 현재도 맛볼 수 있고 익숙한 이름들입니다. 다만, 고대 풍경이 보이는 역사 속 부엌에서 그 시대의 도구들을 이용해서 당시 레시피 대로 요리를 만드는 경험은 상당히 독특합니다. 각 부엌마다 도깨비불처럼 생긴 유령들이 존재하는데, 게임의 목적은 이 유령들이 그리워하던 음식을 맛보게 해주는 것입니다. 즉, 심사위원 같은 역할입니다. 요리가 완성되면 유령들이 맛을 보고 별점을 주는데, 최소 별 3개 이상을 받아야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참고로 유령들은 요리를 하는 내내 따라다니며 레시피에 대한 설명도 해주고, 그곳의 문화와 지리, 역사 그리고 이것들이 만들고 있는 요리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도 말해줍니다.
부엌은 각 구역으로 나뉘어 있고, 구역마다 도구들이 각각 놓여있어서 여러 장소를 왔다 갔다 하면서 요리를 해야 합니다. 구역 이동은 조이스틱 방향 키를 밀어 선택하는 방식이며, 구역 내에서 세부적인 이동은 직접 몸을 움직이면 됩니다. 때문에 너무 좁은 장소에서 게임을 플레이하게 되면 눈앞에 보이는 화덕에 구운 반죽을 넣으려다 책상에 발을 부딪히는 등의 비극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직접 요리해본 과거 속 잃어버린 레시피
로스트 레시피는 VR 게임 마니아라면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아이 익스펙트 유 투 다이(I Expect You To Di)e’ 제작사인 셸 게임즈에서 제작했는데요, 이를 모르는 상태에서 게임을 플레이하게 되면 예상 외로 섬세한 묘사에 놀라게 됩니다. 저 역시 그러했는데, 손으로 물건을 만지고 요리하는 과정에서 상호작용과 물리엔진 수준이 생각보다 훨씬 좋아서 깜짝 놀랐습니다. 이후 제작사가 셸 게임즈라는 것을 알고서야 수긍하게 되었습니다.
게임 내에서는 주변에 있는 모든 재료와 도구를 이용할 수 있으며, 뜨거운 화덕 속으로 들어가거나 하면 조이스틱에 계속 진동이 울려 위험함을 알려줍니다. 확실히 직접 손으로 물건을 잡고 조사하며 이용하는 전작 '아이 익스펙트 유 투 다이'에서 선보인 노하우가 로스트 레시피에도 적용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참고로 이 게임은 아직 한국어를 정식 지원하지 않기에, 유령이 읊어주는 역사 등의 설명을 알아듣기가 힘들었습니다. 이 유령들은 해당 나라의 성우들을 초빙하여 녹음하였기 때문에 해당 나라의 발음이 섞여 현실감은 있었으나, 더욱더 알아듣기 힘든 슬픈 현실과 직시해야 했습니다.
로스트 레시피의 물리엔진은 훌륭하지만, 이따금 바닥이 뚫리거나 약간의 충격에도 그릇이 넘어가서 내용물이 흐르는 등 아수라장이 되기 일쑤입니다. 이 아수라장은 요리를 불 위에 올려놨을 때 최고조에 달하는데, 타기 전에 음식재료들을 건지려다 보니 나중에 가서는 위생관념이 사라져서 바닥에 흘린 음식 재료를 다시 주워 담고, 끓고 있는 물 속 재료를 손으로 주워 담는 등 무시무시한(?) 상황들이 자주 발생합니다.
그러다 보면 요리가 되돌릴 수 없을 만큼 이상해지기도 합니다. 참고로 이 게임은 음식을 전단계로 되돌리는 기능이 없어, 방심하다 보면 재료를 상당수 빠뜨린 일명 '야매 음식'이 되거나, 정체불명의 퓨전 음식이 탄생하기도 합니다. 만약 실수를 했다면 어떻게든 만들던 요리를 끝까지 진행하던가 이상한 요리를 만들던가 최종적으로 평가를 거쳐서 로비로 돌아간 다음 처음부터 진행해야 합니다.
참고로 현실 속 필자는 자타공인 괴식 제조자입니다. 제 자신은 제대로 만든 것 같았지만 결과물은 참혹하기 그지없는 점을 얼핏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 게임을 하면서 무엇이 문제였는지 깨닫는 귀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가끔 운전을 하면서 내비게이션과 싸우면서 고집대로 원하는 길로 가는 사람들을 보면 답답하기 그지없었는데, 정작 필자가 요리 레시피와 싸우고 있었거든요. 마음대로 재료를 추가하고, 요리 중에 정신이 없고 귀찮을 땐 어느 것은 빼먹고 정량을 지키지 않는 등 제 스스로의 모습을 알게 되었습니다. 결국 별 3개 이상을 받기 위해 같은 요리를 몇 번 반복하면서 순서를 지키며 차근차근 요리를 만드는 법을 배웠고, 그 과정 자체가 신기하고 즐거웠습니다.
그리스와 중국, 마야 문명의 요리를 해보면서 느낀 점이라면, 우리나라의 전통 음식들과 재료는 같거나 비슷하지만 요리를 가열하는 방식, 곁들이는 소스 등에서 맛이나 결과물이 확 달라졌습니다. 심지어 도구들도 당시에 쓰던 것들이 그대로 재현돼 있어서, 전혀 처음 보는 도구를 이용하기도 하고, 그릇이나 항아리에 그려진 그 나라의 전통 문양, 그림들을 구경하기도 하고, 그 나라에서만 나는 음식 재료들을 구경하는 등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 여행이라도 다녀온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 게임의 최고 단점이라면, 열심히 만든 요리들을 실제로 먹어보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잘 아는 맛의 요리는 잘 아는 맛이기에 먹고 싶어지고, 난생 처음보는 음식들은 어떤 맛일지 궁금해서 먹고 싶어지거든요. 그래서인지 플레이 후 배가 고파져서 냉장고를 뒤져야 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여기 나온 요리들을 맛볼 수 있는 식당을 찾아갈 예정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한국 전통 음식을 만들어보고 홍보할 수 있는 VR 콘텐츠가 나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로스트 레시피는 교육용으로 제작되었지만, 직접 만지고 만드는 일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정말 좋아할 만한 콘텐츠라고 생각합니다. VR로 뭘 해야 할지 모르겠는 분들이 계시다면 오늘은 고대의 부엌으로 떠나서 과거의 레시피대로 음식을 만들어보는 귀한 경험을 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로스트 레시피는 메타 스토어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