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서브컬처와 게임계에서 강력한 화두로 떠오른 TS 캐릭터는 독창적인 매력과 신선한 충격을 선사하며 마니아들을 열광시켰다. 밸브의 명작 FPS 팀 포트리스 2부터 라쳇 앤 클랭크와 마계전기 디스가이아까지 다양한 작품에서 성별을 전환한 독보적인 캐릭터들이 큰 사랑을 받았다. 익숙한 원작의 관계와 설정을 완전히 비튼 TS 게임 캐릭터들은 게이머들에게 색다른 재미와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 [순정남]은 매주 이색적인 테마를 선정하고, 이에 맞는 게임이나 캐릭터를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최근 글로벌 서브컬처를 뒤흔든 최대의 화두를 꼽자면 단연 'TS 말포이'다. 해리 포터를 지겹도록 괴롭히던 백금발의 밉상 도련님이 가련하고 새침한 미소녀로 탈바꿈하자, 전 세계 네티즌들이 집단 최면에 걸린 듯 열광하기 시작했다. 원작의 앙숙 관계는 순식간에 아련한 츤데레 로맨스로 둔갑했고, 이번 핼러윈 데이에는 호그와트 망토를 두른 금발 미소녀 코스튬이 거리를 점령할 것이라는 예언까지 돌고 있다. 남정네 둘이 욕실에서 지팡이 맞대며 싸우는 것보다, 성별 하나 살짝 비틀어주는 게 역시 낫다.
사실 TS(성별 전환, Trans-Sexual)는 게이머와 마니아 사이에선 오랜 역사를 지닌 전통 있는 기법(?)이다. 멀쩡하던 마초 남캐가 가련한 미소녀가 되거나, 청순가련 히로인이 듬직한 상남자로 바뀐다. 그 순간 익숙했던 주변 관계가 기묘하게 변화하며 도파민을 뿜는다. 게임계 역시 수많은 TS 사례가 있었다. 팬아트 한 장으로 전 세계 서버를 마비시킨 동인의 반란부터, 제작사가 약을 거나하게 빨고 내놓은 공식 성전환, 평행세계의 또 다른 나 자신까지. 오늘은 게이머들의 뇌리에 영원히 남을 TS 게임 캐릭터들을 모아봤다.
▲ 구글에 'TS 말포이'를 검색하면 수많은 사례들이 나온다 (사진출처: 구글)
TOP 5. 팀 포트리스 2 - 여성 스파이(FemSpy)
밸브의 명작 하이퍼 FPS '팀 포트리스 2'의 스파이는 본래 칼 같은 정장 핏과 중후한 프랑스 억양을 자랑하는 마성의 중년 신사다. 땀내 나는 마초들이 로켓과 미니건을 난사하는 난장판 속에서, 홀로 담배를 꼬나물고 적진의 등짝에 칼침을 놓는 클래식 첩보원의 로망 그 자체였다. 그런데 이 칙칙하고 텁텁한 전장에 한 줄기 빛이 내렸으니, 바로 3D 캐릭터 아티스트 ChemicalAlia의 손에서 탄생한 '여성 스파이(FemSpy)' 모드다.
여성 스파이는 단순히 가슴팍만 늘려놓은 조악한 스킨 수준이 아니었다. 원작의 날렵한 첩보원 실루엣을 완벽하게 살려낸 전용 모델링에, 전문 성우까지 섭외해 도도하고 차가운 이미지를 풀 세트로 구축했다. 그 완성도에 감복한 밸브가 공식 블로그에서 직접 소개글을 띄웠을 정도다. 비록 정식 게임에 반영되지는 못했지만, 게리모드와 SFM(소스 필름메이커) 영상계를 수 년 동안 주름잡으며 '등짝을 털려도 기분 좋은 유일한 스파이'라는 절대적인 지지를 얻었다.
▲ 밸브마저 반하게 만든 여성 스파이의 자태 (사진출처: 팀 포트리스 2 공식 블로그)
TOP 4. 라쳇 & 클랭크: 리프트 어파트 - 리벳
우주를 누비는 롬백스족 최고의 정비공 라쳇의 오랜 모험에 지난 2021년, 역대급 평행세계 도플갱어가 난입했다. 바로 다른 차원의 여성 롬백스 '리벳'이다. 사실 개발 초기에는 성별만 바꾼 짝퉁 소리를 들을까 봐 '라쳇트(Ratchette)' 같은 안이한 이름들을 과감히 버리고, 차별화된 서사와 디자인을 뼈를 깎아가며 구축했다는데 그 선택은 그야말로 신의 한 수였다.
클랭크라는 든든한 파트너와 함께 은하계 영웅으로 성장한 라쳇과 달리, 리벳은 독재자 네파리우스에게 한쪽 팔을 잃고 홀로 싸워온 거친 레지스탕스다. 투박한 기계 의수를 차고도 씩씩하게 해머를 휘두르지만, 내면에는 오랜 고독과 불신을 품고 있는 입체적인 매력에 전 세계 게이머가 함락됐다. 성우 제니퍼 헤일의 신들린 열연 덕에 영국 BAFTA 주연상 후보까지 올랐으니, 원본 주인공 라쳇 입장에서는 밥그릇을 진지하게 걱정해야 할 판이다.
▲ 주인공 자리까지 넘보는 리벳 (사진출처: 라쳇 & 클랭크 위키)
TOP 3. 더 킹 오브 파이터즈 올스타 - 프리티 장거한
신장 227cm, 체중 306kg, 덥수룩한 거구에 거대한 쇠사슬 철구를 휘두르는 흉악범. SNK 역사상 가장 마초스러운 캐릭터로 손꼽히는 인간 흉기 장거한이 가련한 미소녀로 환생했다. 지난 2019년 '더 킹 오브 파이터즈 올스타' 1주년 기념으로 출시된 '프리티 장거한'은 그야말로 게임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비주얼 쇼크였다. 시커먼 거구가 하루아침에 자기 몸집만 한 철구를 질질 끄는 소녀가 되었으니 말이다.
더 충격적인 건 공식 설정상 겉모습만 바뀌었을 뿐, 사고방식과 흉악한 뇌 구조는 예전 죄수 아저씨 그대로라는 점이다. 징징대거나 뻔뻔하게 배를 내미는 승리 모션 하나하나가 '알고 보면 300kg 거구 탈옥범'이라는 사실을 상기시켜 묘한 뇌정지를 유발한다. 김갑환 사범도 이 모습을 봤다면 몽둥이를 내려놓고 감격의 눈물을 흘리지 않았을까?
▲ 귀여운 소녀가 되었지만 속은 그대로인 프리티 장거한 (사진출처: 킹오파 올스타 라이브 방송 갈무리)
TOP 2. 마계전기 디스가이아 D2 - 라하르짱
니폰이치 소프트웨어의 영원한 간판스타이자 자칭 최강의 마왕 라하르. 오만방자하고 제멋대로인 성격에 매력 포인트라곤 삐죽 솟은 더듬이 머리와 빨간 목도리뿐이던 그 꼬맹이가 어느 날 아침, 나이스 바디의 글래머 미소녀로 깨어났다. 지난 2013년작 '디스가이아 D2' 메인 스토리에서 터진 이 날벼락 같은 사건은, 단순한 개그성 일회성 이벤트를 넘어 시리즈의 역사를 새로 썼다.
원래 라하르는 '글래머러스한 여성의 신체'에 극심한 거부감을 느끼는 알레르기 체질이었다. 그런데 본인이 그토록 경멸하던 풍만한 몸매의 마왕님이 되어버렸으니, 자가당착에서 터져 나오는 비명과 상황극이 그야말로 일품이었다. 성우도 말투도 뻔뻔한 마왕 그대로인데 껍데기 하나 바뀌었다고 팬덤의 민심은 폭발했다. 후속작에선 당당히 300엔짜리 단독 유료 DLC로 팔려나갔고, 인기투표에선 시리즈 전통의 여왕 에트나마저 꺾고 7위를 차지했으니 공식 TS의 완전한 승리다.
▲ 자기가 세상에서 제일 혐오하던 몸매가 되어버린 마왕님 (사진출처: 디스가이아 위키)
TOP 1. 슈퍼 마리오 - 쿠파 공주
2018년 9월, 전 세계 인터넷 망을 마비시키고 2차 창작 동인지 시장의 역사를 단숨에 갈아치운 사건이 있었다. 닌텐도의 '슈퍼크라운' 아이템 공개에서 출발한 '쿠파 공주(Bowsette)' 신드롬이다. 피치 공주에게 동시에 차인 마리오와 쿠파가 서로를 위로하다가, 쿠파가 왕관을 쓰고 금발 벽안의 뿔 달린 뇌쇄적인 공주님으로 변신하는 4컷 팬 만화 한 편이 전 세계 서브컬처 바닥을 통째로 집어삼켰다.
날카로운 송곳니와 가시 등껍질, 거만하고 위풍당당한 마왕의 기백에 피치 공주의 드레스가 합쳐진 이 디자인은 가히 천재적이었다. 데비앙아트와 픽시브에는 수만 점의 팬아트가 쏟아졌고, 전용 온리전이 열리는가 하면 공식 캐릭터화를 요구하는 글로벌 서명 운동에 1만 명이 넘게 몰렸다. 닌텐도는 끝내 묵묵부답으로 일관했지만, 수십 년간 납치극만 반복하던 마리오와 쿠파의 지겨운 관계 속에서 게이머들이 진정으로 갈망하던 '참된 히로인'이 누구였는지는 똑똑히 증명했다.
▲ 전설의 시작이 된 4컷 만화 (사진출처: haniwa @ayyk92 공식 X 계정 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