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집있는 만화가 '양경일' 이제 액션게임에 영혼 담는다
2013.11.14 21:15지스타 특별취재팀
만화가 좋아서 바친 20년. 적고 나니 거창하지만, 그냥 별거 없다. 대충 살았다. 그림 그리는 게 즐거워 그때그때 만화를 그렸고, 요리하는 게 좋아 어시스트들에게 직접 밥상을 차려주기도 했다. 만화 그리다 농담을 주고받기도 하고, 춤을 추기도 하고, 요즘에 더해진 게 있다면 심심할 때 '리그오브레전드' 한판, '퍼즐앤드래곤' 한판 한다는 것.
누구냐고? 남들이 만화 외길인생, 출판 만화의 독보적인 존재라고 말하는 만화가 '양경일'이다.
양경일 작가는 순수하다. 칭찬하면 정말 궁금한 듯 자신이 유명하냐고 묻는 만화가. 다시 태어나면 만화가보다 차라리 여행하면서 어부가 되고 싶다는 남자다. 사실 그의 팬이라면 알법한 사건이 여럿 있다. 중간에 맥이 끊겨버린 '소마신화전기'나 '아일랜드', '신춘향전' 등 쉽게도 시리즈의 종지부를 찍기에 쓴소리도 많이 들었다. 누군가는 한평생 한 편의 만화만 그리기도 한다던데, 얼마나 많은 만화를 그리고 싶었으면 그랬을까도 싶다.
그러던 양경일 작가가 최근 독특한 외도(?)를 꿈꾸고 있다. 새로운 작품은 맞다는데 만화는 확실히 아니다. 그는 '플렉시마인드'라는 스타트업 개발사의 아트 총괄로 '게임개발'에 도전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가 참여한 게임은 이미 이번 지스타 2013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내기에 이르렀다. 대체 어떤 스토리가 있었던 걸까? 양경일 작가와 신재섭 대표를 미리 만나봤다.
▲ 양경일 작가를 만났다
주눅들지 마, 자신의 그림에 대한 '아집'을 가져
▲ 출판 원고를 손수 꺼내 보여 준 양경일 작가
양경일 작가가 게임과 결부되는 것은 이번이 공식적으로 처음은 아니다. 이전에 '소마신화전기'나 '아일랜드', '신 암행어사' 등이 국내 중소 개발사에 의해 개발된 전례도 있었다. 지금은 다 접할 수 없는 작품들이고, 누군가 새로 개발하고 싶어도 하기 어려운 작품이 됐다.
"예나 지금이나 문서를 잘 몰라요. 계약을 모르고, 계약할 때 돈을 언제 받고 얼마를 받고, 어떤 권리를 넘기는 것인지 잘 몰랐지요. 그래도 지금은 내가 피해를 보면 나만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 화실 식구들 전부가 힘들어질 수 있기에 챙기는 법을 배웠지만."
어리숙했던지라 톡톡히 수업료를 치른 셈이다. 결국 지금은 자신이 그렸음에도, 판권이 사라지고 말았으니 말이다. 어려움은 컸지만 극복하는 과정은 힘들지 않았다. 양경일 작가는 "바쁘면 잊혀진다"고 회상했다. 마감이 너무 바쁘니까, 어느 순간 창문을 보면 나무가 노래져 있고 눈이 온다. 남들은 도 닦느냐고 물었지만, 사실은 그림 말고는 다른 생각할 시간이 없었던 것이 가깝다.
그만큼 양경일 작가는 '그림'에 대한 욕심만큼은 확실했다. 양경일 작가의 꿈은 원래부터 한길, 일본 소년지 연재에 있었다. 사실 그는 국내 만화가 중 가장 먼저 일본 시장의 물꼬를 튼 사람이다. 국내에서 최정상에 서 있던 그가 일본에서 바닥부터 다시 시작했다. 지금은 한국 에이전시가 생길 정도로 일본에 만화를 출간하는 작가들이 있지만, 당시에는 외국의 특색있는 작가가 특별 기고 하는 방식뿐이 접근할 수 없었다.
일본에서 몸으로 부딪히면서 그가 느낀 것은 상상력의 힘이다. 누군가는 그가 '선에 영혼을 담는' 작가라고 하지만, 그런 양경일 작가도 일본 연재를 하면서 표현력에 대해서 절망을 한 적이 참 많았다고. 일본 작가와 자신은 상상하는 방법 자체가 달랐다는 것. 양경일 작가는 "이런 상황에서는 이렇게 그림을 그리고, 저런 상황에서는 저렇게 그려야지 하는 법칙이나 제약이 있었다면, 일본 작가들은 제한이 없었다"며 "마치 손에 있는 무언가를 끄집어내어 그림을 그리는 것 같았다"고 표현했다.
그렇기에 양경일 작가가 후배들에게 권유하는 것도 '상상력'을 키울 수 있는 모든 것을 시도해 보라는 것이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생각을 표현할 때 막힘이 없어야 한다. 자신 스스로도 그림을 그려 나가면서 다양한 표현을 찾아 보는 것이 가장 재미있다고 말했다. 그렇기 위해서는 자신의 그림이 어설퍼 보인다고 해서 그림을 접어서는 안 되며, 단점을 무방비하게 노출하되 그 상태가 더 발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그림에는 틀이 없어요. 대신 여러 가지 가능성이 있죠. 자신을 제약할 필요가 없어요. 과감히 표현하고 주눅들지 말고, 아집을 가져야 합니다. 아집이 있으면 타인의 장점을 받아들이는 사고도 넓어질 수 있어요. 그러면 표현, 상상력의 제한이 점점 사라지게 되는 거죠."
▲ 양경일 작가가 아트 총괄을 담당하는 플렉시마인트의 처녀작 '신의 아이들'
▲ '신의 아이들' 대표 이미지 (사진제공: 플렉시마인드)
양경일과 게임 '신의 아이들'
양경일 작가와 동시대를 풍미했던 작가들은 '열혈강호', '레드 블러드', '프리스트', '라그나로크' 등의 게임으로 새로운 인생을 열었다. 가장 대표적인 케이스는 '라그나로크'의 이명진 작가로 최근에는 거의 게임 개발에 몰두하고 있는 상황. 물론, 출판 만화 시장이 쇠락한 것도 큰 영향을 주기도 했지만, 많은 작가들이 출판만화를 그만두고 게임 쪽으로 넘어가기도 했다.
양 작가 역시 게임에 관심이 없는 것은 절대 아니다. 지금은 '퍼즐앤드래곤'과 '리그오브레전드'에 빠져 있으며, 마감이 바쁘지 않으면 '철권'을 하기도 하고 '위닝일레븐', '스타크래프트', '바이오하자드', '데몬즈소울' 등을 했다. 다만 열혈 게이머였을 뿐이다.
뒤늦게 양경일 작가가 게임판에 뛰어든 이유는 한 제자와의 인연이 큰 역할을 했다. 플렉시마인드 신재섭 대표는 양경일 작가의 문하생이었다. 10년 전 빨간 츄리닝에 오천 원짜리 선글라스를 끼고 화실에 놀러 오던 '날라리'가 게임판에 들어가더니 모바일회사를 차린 것. 이에 양경일 작가는 너무나 쉽게 "그림은 내가 그려 줄게"라며 개발에 참여하게 됐다.
▲ '신의 아이들' 플레이 모습
그 시기는 올해 3월. 양경일 작가가 평소 게임이 관심이 많았기에 가능한 이야기이기도 했다. 특히 많은 자본금이 들어가는 온라인게임과 달리, 개발기간이나 개발금이 작은 모바일게임에서는 자신이 직접 개발에 참여하면서 독자들에게 서사를 전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는 SK네트웍스서비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8명의 인원으로 올 8월부터 액션게임 '신의 아이들'을 개발 중이다.
플렉시 마인드에서 양경일 작가가 맡는 역할은 할 수 없는 것을 만들고 말도 안 되는 것을 만들게 하는 역할, 즉 상상하는 사람이다. 게임의 큰 기획과 세계관 구성은 양경일 작가가 잡고 그것을 개발팀에서 구현해 낸다. 나머지 팀원들도 대부분 온라인게임에서 수년간 작업했던 경력이 있어 실력과 팀워크 면에서는 다른 어느 개발사보다 자신이 있다고.
▲ '신의 아이들' 캐릭터 소개 영상 (자료제공: 플렉시마인드)
첫 작품이 된 '신의 아이들'은 액션 RPG 장르로 이번 지스타를 통해 대중들에게 공개됐다. 신의 힘을 빌려 악을 물리치는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며, 정해진 스킬트리 없이 몬스터에게 구한 영웅이나 신의 힘을 조합하여 직접 특성 트리를 커스터마이징하는 방식이다.
신재섭 플렉시마인드 대표는 "아직 개발 중인 단계라 여러 면에서 부족할 수 있지만, 감성 스토리가 컨셉 기획부터 반영되는 새로운 시도의 RPG라는 점과 양경일 작가의 수준 높은 아트워크를 게임에서 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기대할만하다"고 생각하며, "2014년 상반기 출시까지 최선을 다하여 많은 유저분들께 기억에 남을 수 있는 좋은 작품으로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설명했다.
양경일 작가가 게임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이유도 그렇다. '작가'의 마인드가 담긴 이야기나 세계관을 독자들과 같이 공유하고 "두근두근"하게 만들고 싶다는 것. 물론 처음부터 작가주의가 살아 있는 게임을 만들기는 어렵겠지만, 점차 라인업을 쌓아가며 감성이 살아 있는 게임을 만들고 싶다고 말이다.
"플렉시마인드의 게임은 또 다른 만화라고 생각해 주었으면 좋겠어요. 만화에서 만들어 냈던 수많은 상상들을 게임 안에 표현해 즐거움을 줄 수 있다면 좋겠어요. PC 온라인 시절에는 규모가 너무 커 제가 할 수 있는 부분이 없었지만, 모바일에서는 충분히 가능할테니까요."
▲ 애완견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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