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정남]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게임 속 이산가족 TOP5
2015.10.29 10:48게임메카 김영훈 기자
※ [순정남]은 매주 이색적인 테마를 선정하고, 이에 맞는 게임을 골라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지난 20일부터 26일까지, 금강산 면회소에서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졌습니다. 1950년 전쟁 이래 반세기 이상 떨어져 생사조차 알지 못했던 아버지, 어머니, 아들, 딸들이 상봉하는 뜻 깊은 자리였습니다. 이러한 기회가 닿은 것은 너무나 기쁜 일이지만, 한편으론 수십 년 이별을 보상하기에 12시간은 너무나 짧지 않았나 합니다.
짧디 짧은 만남의 끝을 알리는 기막힌 ‘작별상봉’의 장은 그렇게 눈물바다가 됐습니다. ‘작별’과 ‘상봉’이라는, 상반된 두 단어의 조합은 분단 시대의 아픔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한국 전쟁 당시 가족과 이별한 이들은 현재 여든에서 최대 100세에 이릅니다. 2000년 당시 13만여 명이던 남한 내 이산가족은 오늘날 절반 가량인 6만 6,000여명만이 남았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한번 만나면 또 언제 볼 수 있을지 모르는 ‘상봉’이자 ‘작별’인 겁니다.
가족과 이별해본 적 없는 자가 이산가족의 아픔을 차마 다 헤아리긴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게임을 통해 조금이나마 그 상처를 더듬어볼 수는 없을까요? ‘게임은 현실의 투영’이라는 말처럼, 게임을 하다 보면 수많은 가족의 이별이 접하게 됩니다. 하여 오늘은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게임 속 가족의 이별을 살펴보겠습니다.
5위. 디아블로, 해골왕 ‘레오릭’과 두 왕자 ‘알브레히트’, ‘아이단’의 이별
▲ 악마의 저주로 아내와 두 아들을 모두 잃은 해골왕 '레오릭' (사진출처: 위키)
5위는 액션 RPG계 전설 ‘디아블로’입니다. 지상에 강림한 대악마와 이에 맞선 영웅들, 그리고 이들을 지원하는 천사에 이르는 장대한 대서사시죠. 재미있는 점은 3편에 걸친 이 거대한 이야기가 한 가정의 불화에서 출발했다는 겁니다. 바로 훗날 해골왕이라 불리는 ‘레오릭’ 일가의 비극이죠.
‘자카룸’ 교단의 신실한 신도이자 위대한 왕이었던 ‘레오릭’은 타락한 주교 ‘라자루스’를 가까이하며 점차 타락합니다. 악마의 사주를 받은 ‘라자루스’는 ‘레오릭’을 지옥의 군주 ‘디아블로’가 부활하기 위한 재물로 삼으려 했죠. 그러나 자신의 왕비를 참수할 정도로 광기의 극에 달한 ‘레오릭’은 끝내 기사단장 ‘라크다난’에게 살해당하고 맙니다.
‘라자루스’는 하는 수 없이 유약한 둘째 왕자 ‘알브레히트’를 그릇으로 ‘디아블로’를 강림시킵니다. 또한, 죽은 ‘레오릭’은 해골왕으로 만들어 영원히 망자들을 다스리게 했죠. 한참이 지나서야 북부 원정에서 돌아온 첫째 왕자 아이단은 이러한 참상에 큰 충격을 받습니다. 그는 자신의 손으로 아버지의 망령은 물론, 악마가 되어버린 동생까지 처단해야 할 저주받은 운명의 소유자였죠.
4위. 프린세스 메이커 4, 마왕과 용사 그리고 딸 ‘패트리샤’의 이별
▲ 용사가 마왕이랑 눈이 맞는 바람에 '패트리샤'가 태어났다 (사진출처: 위키)
4위는 전국민 아빠 만들기 프로젝트 ‘프린세스 메이커’입니다. 이 시리즈는 매 편 갖은 이유로 양녀를 떠안아, 열과 성을 다해 키워내는 과정을 그립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육아의 궁극적 목표는 공주님 만들기지만, 경우에 따라 직접 딸과 결혼할 수도 있는 상당히 개방적인(?) 게임이죠.
‘프린세스 메이커’하면 둘도 없는 가정적인 게임인데, 이산가족 특집 4위라니 의아하실 겁니다. 여기서 기억해야 할 점은 게임 속 딸이 어디까지나 양녀라는 사실이죠. 즉, 이미 딸은 자신의 친부모와 이별을 경험한 상태입니다. 이러한 정황은 4편에서 크게 두드러지는데, 딸 ‘패트리샤’는 사실 양부의 최대 적수인 마왕 ‘다이쿤’의 친자식이기 때문입니다.
사정은 이러합니다. 10년 전, 마왕과 단신으로 승부를 겨루던 용사 ‘이자벨’은 치명상을 입고 죽을 지경에 이릅니다. 헌데 마왕은 사실 따뜻한 성품이었고, 자신의 힘을 나눠주어 ‘이자벨’을 치료해주죠. 이때의 영향으로 마계를 벗어날 수 없게 된 ‘이자벨’은 마왕과 결혼해 낳은 딸 ‘패트리샤’만은 인간 세상에서 성장하길 원했습니다. 이리하여 과거의 동료였던 플레이어에게 어린 딸을 입양 보내게 된 것이죠. 이것 참, 슬프기보단 당황스러운 이산가족입니다.
3위. 메탈기어 솔리드, 빅보스 ‘네이키드’와 복제인간 ‘솔리드’의 이별
▲ 모든 싸움이 끝나고 재회한 '네이키드'와 '솔리드' (사진출처: 위키)
3위는 얼마 전 5편 ‘팬텀 페인’을 선보인 ‘메탈기어 솔리드’입니다. 천재 개발자 코지마 히데오 집도 아래 잠입게임의 길을 제시했을 뿐 아니라, SF와 밀리터리, 오컬트가 절묘하게 배합된 이야기로 수많은 팬을 양산했죠. 이 작품은 워낙 다양한 주제를 내포하고 있지만, 여기서도 가장 중요한 함의는 바로 ‘가족’입니다.
87년 첫 선을 보인 ‘메탈기어’ 시리즈는 그 자체로 스네이크 일가의 비극적인 연대기라 할 수 있습니다. 최초로 코드명 스네이크를 부여받은 ‘네이키드’는 60년대 쿠바 미사일 위기 직후, 조국을 위해 스스로 배신자의 오명을 쓴 스승 ‘더 보스’를 제거하고 큰 자괴감에 빠집니다. 어머니와 같았던 스승을 잃은 그는 이 일을 계기로 국가를 버리고 사설 군사집단 ‘아우터 헤븐’을 창설하기에 이르죠.
이 와중에 ‘네이키드’를 막으러 온 특수요원은 놀랍게도 그를 복제한 ‘솔리드’였습니다. ‘네이키드’는 70년대 작전 도중 혼수상태에 빠진 적이 있는데, 이때 그가 죽을 경우를 대비한 복제가 이루어졌던 것이죠. ‘네이키드’는 젊은 시절 자신을 꼭 닮은 ‘솔리드’에게서 단순한 복제품이 아닌 아들의 모습을 보지만, 불행히도 서로 길이 너무나 달랐습니다. 이들은 먼 훗날 재회하기까지 수십 년에 걸친 긴 이별을 할 수 밖에 없었죠.
2위. 피어, 어머니 ‘알마’와 ‘포인트맨’, ‘팩스턴 페텔’ 형제의 이별
▲ 자식 사랑이 좀 과하신 어머니 '알마'와 두 아들 (사진출처: 위키)
2위는 호러 FPS의 진수 ‘피어’입니다. 초능력 병사 양성을 둘러싼 대기업의 암약과 이어지는 파경, 그 가운데 희생된 한 소녀의 복수가 오금이 저리도록 무섭게 묘사되죠. 얼핏 매우 끔찍하고 소름 돋는 괴담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아들들을 죽이도록(?) 사랑한 어머니의 슬픈 이야기랍니다.
모든 비극은 초거대 군산복합체 아마캠에서 시작됩니다. 아마캠은 무한정 공급할 수 있으며 배신할 염려도 없는 복제 군인과 이들을 통제할 초능력 지휘관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이 프로젝트에 실험체가 바로 불과 8살 난 초능력 소녀 ‘알마’였죠. 그녀는 온갖 반인륜적 실험을 당하는데, 심지어 ‘알마’ 본인의 복제품을 다시 잉태해 출산해야만 했습니다.
이렇게 탄생한 두 아들 ‘포인트맨’과 ‘팩스턴 패탤’은 태어나자 마자 아마캠에 의해 다른 곳으로 옮겨졌습니다. 알마는 끔찍한 시술에도 불구하고 빼앗긴 아기들만을 부르짖으며 강한 모성애를 드러내죠. 결국 그녀는 아마캠에 의해 살해되지만, 초능력 덕분에 유령이 되어 아들들 주위를 떠돕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들들은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라나, 끝내 적으로 만나게 되니 참으로 비극적인 이산가족입니다.
1위. 더 라스트 오브 어스, 아버지 ‘조엘’과 딸 ‘사라’의 이별
▲ 여행을 통해 가족 잃은 상처를 보듬어가는 '조엘'과 '엘리' (사진출처: 위키)
대망의 1위는 2013년 최고의 게임으로 꼽힌 ‘더 라스트 오브 어스’입니다. 정체불명의 곰팡이가 퍼져 인류 대부분이 죽거나 감염된 암울한 미래상을 그린 포스트 아포칼립스물이죠. 이 작품은 장인 개발사 너티독의 손을 탄 완성도 높은 게임성 외에도 ‘가족’을 테마로 한 절절한 이야기와 이를 완벽히 살린 성우진의 뛰어난 연기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주인공 ‘조엘’은 치안이 마비된 격리구역에서 살아가는 중년 남성으로, 거칠고 무뚝뚝하며 삶의 목적을 잃어버린 회의적인 인물입니다. 그런 그가 친구의 부탁으로 갑작스레 14살 소녀 ‘엘리’를 보호하며 여행을 떠나게 되죠. ‘조엘’은 처음에는 ‘엘리’를 탐탁잖아 하지만, 점차 그녀를 진심으로 아끼게 됩니다. 어린 ‘엘리’의 모습에서 자신의 딸이 겹쳐 보였기 때문이죠.
‘조엘’의 비극적인 가족사는 재앙이 닥치기 직전을 다룬 프롤로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20년 전, 예기치 못한 살인 곰팡이가 창궐해 감염자들이 폭동을 일으키자, 아직 평범한 가장이었던 ‘조엘’은 딸 ‘사라’를 데리고 몸을 피합니다. 그러나 민간인을 보호해야 할 군인들은 ‘조엘’을 폭도로 오인해 발포했고, 이 와중에 ‘사라’가 희생되고 맙니다. 숨이 멎어가는 ‘사라’를 껴안고 오열하는 ‘조엘’에게서 딸을 잃은 아버지의 슬픔이 절절히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