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무너진 자율, 확률형 아이템 규제 변명거리도 없다
2016.04.22 17:34 게임메카 김미희 기자
▲ 2015년 5월에 열린 확률형 아이템 자율규제 가이드라인 설명회 현장
작년 이맘때 업계에서 종종 이야기되던 법적 이슈가 있었다. ‘확률형 아이템 규제’가 그 주인공이다. 핵심은 강제냐, 자율이냐는 것이었다. 새누리당 정우택 의원은 2015년 3월 ‘확률형 아이템 확률 및 구성품 정보’를 의무시하는 법안을 발의했으며, 게임업계는 부랴부랴 자율규제를 마련했다. 당시 게임 전문지 기자들이 모여 두 번이나 ‘확률형 아이템 규제’에 대해 논의할 정도로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가 관건으로 떠올랐다.
당시 기억을 되돌리면 대부분의 기자들은 ‘확률 공개는 필요하지만 업계 자율에 맡겨야 한다’는 쪽에 기울였다. 돈을 주고 사는 상품에 대한 정보를 명쾌하게 밝히는 것이 필요하지만, 이게 법이 되어버리면 게임업계는 스스로 자기 일을 해결하지 못한다는 인상을 심어줄 우려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확률 공개’를 법적으로 의무화하면 나중에 어떤 강력규제로 이어질지 모른다는 풍선효과도 걱정거리로 떠올랐다.
기자 역시 당시에는 그 의견에 동의했다. 자율규제를 잘 운영하면 국내 게임업계도 자정이 가능할 정도로 성숙했음을 보여줄 좋은 기회가 되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후 정국은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자율규제는 7월부터 시작됐으나 업계 반응은 미적지근했다. ‘큰 기업 하는 것을 좀 보고 들어가겠다’라며 몸을 사린 일부 업체. 가치를 가늠할 수 없는 수많은 아이템이 ‘등급 하나’에 묶여 알아보기 힘든 정보. 시행 후 3개월이나 밀린 모니터링 발표. ‘법이 아니라 자율로 유저와 신뢰를 회복하겠다’는 각오와 달리 ‘자율규제’는 업계에서 찬밥신세를 면치 못했다.
물론 자율규제는 법이 아니기에 강제할 수 없다. 그리고 법이 아니기에 필요한 것을 빨리 반영할 수 있다. 자율규제 참여율을 높이거나, 확실하게 정보를 공개하는 방법을 붙이며 점점 규모를 키우는 움직임이 있었다면 당장 성과는 없어도 향후를 기대해볼 만 했다. 그러나 자율규제가 시작된 지 열 달이 넘도록 제자리걸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정우택 의원이 발의한 ‘확률형 아이템 규제’가 폐기 직전에 몰리자 업계에서는 ‘자율규제’를 놓아버린 모양새다.
그러나 다가오는 20대 국회에서 2라운드가 예상된다. ‘확률형 아이템 규제’를 발의한 새누리당 정우택 의원이 충청북도 청주시상당구에서 4선에 성공한 것이다. 즉, 19대 국회를 넘지 못한 ‘확률형 아이템 규제’를 다시 발의할 가능성이 있다. 여기에 정 의원 본인 역시 법안 발의 이후에도 페이스북을 통해 이 문제를 계속 언급하며 관심을 표해왔다. 자율규제 시행 뒤에도 그는 정확한 확률 제공이 없고, 성인 게임이 제외되었으며, 처벌 조항이 없다는 3가지 이유를 들며 실효성이 의심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
다시 말해 정우택 의원 본인도 ‘자율규제’가 잘 돌아가지 않음을 알고 있다. 그가 20대 국회에서 다시 법안을 발의한다면 게임업계에서는 ‘자율규제로 문제를 해결하겠다’를 내세울 수 없다. 이미 진행 중인 자율규제를 안착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지금 상황에서는 ‘자율규제’를 방패로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가진 무기가 부족한 이 시점, 게임업계는 과연 무엇으로 법을 막을 생각인지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