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고편으로는 모르는, 영화 ‘워크래프트’ 영웅들의 속사정
2016.05.03 11:38 게임메카 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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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 게이머와 영화 팬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워크래프트’ 개봉이 불과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시기상, 최근 극장가를 뜨겁게 달군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가 뒤로 빠질 즈음 자연스레 바통을 이어받을 것으로 보인다. ‘반지의 제왕’ 3부작 이후 근 10년 만에 대규모 판타지 전쟁물인 만큼 원작 유저뿐 아니라 판타지 마니아들도 벌써부터 흥분한 기색이 역력하다.
물론 영화에 걸린 기대만큼이나 우려의 시선도 적잖다. 게임 원작 영화가 흥행에 참패하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게임이 추구하는 연출과 이에 최적화된 시나리오는 2시간 내외로 기승전결을 담아내는 영화 문법과 종종 거부반응을 일으켰다. ‘슈퍼 마리오’, ‘스트리트 파이터’, ‘맥스 페인’, ‘히트맨’까지 온갖 쟁쟁한 IP가 스크린의 장벽을 넘지 못하고 고배를 마셔야 했다.
▲ 오랜만에 등장하는 대규모 판타지 전쟁물 '워크래프트'
이러한 잔혹사를 블리자드가 모를 리 없다. 이에 블리자드는 레전더리 픽처스에 전권을 위임하는 대신 게임사로는 드물게 영화 제작에 깊이 관여하며 결과물에 공을 들였다. 팬들이 만족하는 이야기가 될 수 있도록 크리스 멧젠을 비롯한 원작 작가진이 직접 각본 작업에 참여했으며, 열혈 게이머로 알려진 던칸 존스 감독에게 메가폰을 넘겼다.
즉 ‘워크래프트’는 게임 원작 영화 사상 가장 원작에 충실한 작품이 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러한 방향성이 되려 원작을 모르는 관객에게는 진입장벽으로 작용할지도 모른다. 따라서 영화 개봉에 앞서 주요 등장인물들의 설정을 잠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골수 ‘와우저’라면 너무나 익숙한 얘기겠지만, 게임을 해보지 않은 이에게는 도움이 될 것이다. 또는 최근 출간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연대기’ 일독을 권하는 바이다.
▲ 마침 국내 출간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연대기' 일독을 권한다
두 종족이 같은 하늘 아래에 서다, 오크와 인간
1994년작 ‘워크래프트 1: 오크와 인간’은 제목 그대로 두 종족의 첫 만남을 그리고 있다. 어느 날 사악한 마법사 ‘메디브’가 어둠의 문을 열어 포악한 오크 군단을 불러내자, ‘스톰윈드’ 왕국의 용맹한 기사들이 이에 맞서 싸우게 된다. 이제와 돌아보면 너무나 전형적이고 단순한 플롯이지만, 여기서 ‘워크래프트’의 모든 이야기가 시작됐다. 영화의 토대가 된 작품 역시 바로 이 ‘오크와 인간’이다.
▲ 원작(좌)와 영화(우), 구도의 차이가 인상적이다
이후 다양한 설정이 덧대어지며 ‘메디브’는 거대한 악에 잠식되어 억지로 협조한 것이며 오크는 본디 명예로운 종족이었으나 타락한 존재로 탈바꿈했다. 또한 ‘스톰윈드’ 왕국보다 훨씬 거대한 세계 ‘아제로스’가 구체화되고, 엘프와 드워프, 노움, 트롤 등 여러 종족이 추가되기도 했다. 따라서 영화 속 세계관은 각종 설정 변경에 따른 각색이 불가피했을 것이다.
최신 설정을 받아들이면서 오크 군단에 큰 변화가 찾아왔다. 원작의 오크는 무자비한 침략자에 불과했으나 영화에서는 황폐화된 고향을 등지고 생존을 위해 ‘아제로스’에 온 것으로 바뀌었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서 정립된, 본래 성품을 유지한 오크와 악마의 피로 타락한 오크의 피부색 구분도 제대로 구현됐다. 이에 따라 인간과 평화롭게 공존하고자 하는 온건파 오크들이 새롭게 대두될 것으로 보인다.
▲ 온건파 오크 '듀로탄', 원작과 차이가 가장 크게 두드러진 부분
용맹한 아제로스의 사자, 인간측 주인공 ‘안두인 로서’
‘워크래프트’는 인간측 영웅 ‘안두인 로서(트레비스 핌멜)’와 오크 부족장 ‘듀로탄(토비 케벨)’을 양대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어느 한 종족에게 편중된 시각이 아닌, 저마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전장에 나섰다는 개연성을 충분히 담아내기 위해서다. 여기에 ‘안두인 로서’는 군역을 수행하느라 아들을 돌보지 못하는 것에 괴로워하고, ‘듀로탄’은 곧 태어난 아기 때문에 인간과 협력을 결심하는 등 ‘가족애’가 크게 부각됐다. 물론 이러한 속사정은 원작에선 전혀 다루어지지 않은 것이다.
게임 속 ‘안두인 로서’는 오크 침략자들에 맞서 결사 항전을 외친 ‘스톰윈드’ 최고의 기사다. 국왕 ‘아다만트 린 3세’가 급사하고 스무 살의 젊은 왕자 ‘레인 린’이 즉위하자 그를 보위했으며, 모든 사건의 발단이자 옛 친우 ‘메디브’를 직접 처단하기도 했다. 이후 각지를 전전하다 ‘워크래프트 2’에 해당하는 2차 대전쟁 말기에 ‘오그림 둠해머’에게 패해 끝내 전장에 뼈를 묻고야 말았다. 그야말로 오크와 싸우며 일생을 보낸 ‘워크래프트’ 1, 2편의 진주인공인 셈이다.
▲ 원작(좌)과 영화(우) 속 '안두인 로서', 아.. 음.. 머리가..
이후 출시된 신작들에도 ‘안두인 로서’의 영향력은 고스란히 남아있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속 ‘스톰윈드’에는 여전히 하늘 높이 검을 치켜든 그의 석상이 서있으며, 명예의 요새에는 ‘로서의 후예’를 자처하는 군대가 주둔 중이다. 또한, 과거 전사의 로망으로 불리었던 영웅 등급 양손검 ‘아쉬칸디’가 설정상 ‘안두인 로서’가 생전에 애용하던 무기이기도 하다.
다만 2차 대전쟁 시기에 흰머리를 휘날리는 노익장이었음에도 ‘안두인 로서’의 후손은 등장한 바가 없다. 카드게임 ‘하스스톤’의 사제 ‘안두인 린’이 등장하긴 하지만, 둘은 아무런 혈연관계가 없다. ‘안두인 린’은 ‘안두인 로서’가 모시던 ‘레인 린’의 손자로, 노기사에 대한 존경을 담아 이름을 물려받은 것뿐이다. 반면에 영화에서는 ‘안두인 로서’의 가족이 언급되는데, 어쩌면 비극적인 결말을 암시하는 단서일지도 모른다.
▲ '안두인 린' 왕자가 바로 '안두인 로서'의 이름을 따온 것이다
현명한 서리늑대 부족장, 오크측 주인공 ‘듀로탄’
‘안두인 로서’가 그저 용맹하고 강직한 기사에서 아들을 걱정하는 아버지라는 속성을 부여 받았다면, 또 다른 주인공 ‘듀로탄’은 한층 더 극적인 변화를 겪었다. 본래 원작 ‘오크와 인간’에서 오크측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인물은 ‘듀로탄’이 아닌 ‘오그림 둠해머’였다. ‘오그림’의 정체는 바로 ‘워크래프트 1’을 플레이하는 유저 자신으로, ‘메디브’와 결탁한 흑마법사 ‘굴단’을 처단하고 대족장 자리에 올라 인간들과 대전쟁을 벌였다. 앞서 소개했듯 ‘안두인 로서’와 대결을 벌여 숨통을 끓어놓은 것도 ‘듀로탄’ 아닌 ‘오그림’이다.
사실 ‘듀로탄’은 ‘오그림’의 조언자 역할에 불과하며 그나마도 글줄로만 잠시 언급되다 곧 퇴장하는 캐릭터다. 그가 ‘굴단’의 만행을 알리려다 살해당하는 사건이 ‘오그림’이 쿠데타를 벌이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즉 ‘오크와 인간’을 영화화한다면 ‘듀로탄’보다는 ‘오그림’이 주연을 맡는 것이 훨씬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그럼에도 둘의 비중이 역전된 배경에는 훗날 오크를 악마의 저주에서 건져내어 호드의 깃발 아래 모이게 한 ‘스랄’이 있다.
▲ 원작과 달리 주인공이 되지 못한 영화 속 '오그림 둠해머'
‘워크래프트 3’ 주인공 ‘스랄’은 노예로 전락한 오크들을 이끌고 신대륙을 발견했으며, 온갖 우여곡절 끝에 종족간 연합을 이끌어내 대악마 ‘아키몬드’의 침략을 막아낸 영웅이다. 블리자드가 오크의 이미지 쇄신을 위해 작정하고 내놓은 ‘메시아’로, 오늘날 ‘명예를 중시하고 토속적인’ 오크를 만든 장본이라 할 수 있다. ‘워크래프트 3’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를 통해 유입된 팬들에게도 가장 익숙한 캐릭터로 흔히 ‘녹색 예수(Green Jesus)’라고 불린다.
다시 ‘듀로탄’으로 돌아오자. 영화 2차 예고편을 보면 그가 초록 피부를 지닌 아기를 걱정스레 쳐다보는 장면이 있는데, 이 아기가 갓 태어난 ‘스랄’이다. 즉 ‘듀로탄’이야말로 영화 속 온건파 오크의 진짜 기원이자 블리자드 최고의 인기 캐릭터 ‘스랄’의 아버지인 것이다. 블리자드는 기존 주인공 ‘오그림’ 대신 ‘스랄’의 아버지를 내세우는 편이 상징적으로나 상업적으로나 적격이라 판단했으리라. 영화 속 ‘듀로탄’이 본래 설정화가 아닌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속 ‘스랄’과 훨씬 닮은 것은 단순히 부자지간이여서는 아닌 셈이다.
▲ '듀로탄'의 비중이 급증한 것은 전적으로 아들 '스랄'의 후광 덕분이다
영화가 원작을 그대로 따른다면 ‘듀로탄’은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1차 대전쟁에서 온건파 오크가 존재하는 자체가 원작과 다르므로 ‘듀로탄’의 미래는 영화관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게임에서 ‘레인 린’을 암살한 혼혈오크 ‘가로나(폴라 패튼)’가 여주인공으로 나오는가 하면 2차 대전쟁에서 첫 참전한 ‘그롬 헬스크림(테리 노터리)’이 벌써 등장하는 등, 이미 크고 작은 각색이 넘쳐난다. 과연 ‘듀로탄’이 아들보다 한 발 앞서 두 종족의 화합을 이룰 수 있을지, 6월 영화를 기대하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