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기행] TCG 원조 '매직 더 개더링' 건강 비결은 세계관
2017.05.04 20:30 게임메카 이새벽 기자
▲ 화려하고도 다양한 카드로 유명한 '매직 더 개더링' (사진출처: 공식 홈페이지)
아직 국내에서 트레이딩 카드 게임(Trading Card Game; 이하 TCG)이라고 하면 모바일로 즐기는 가벼운 게임 정도로 생각하는 일이 많다. 그렇기에 TCG 세계관도 흔히 별볼일 없는 내용에 실제 게임과도 동떨어진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면 TCG에서 세계관과 스토리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일까? 아니다. TCG에서도 세계관은 중요하다. 가장 오래된 ‘원조 TCG’인 ‘매직 더 개더링(Magic: The Gathering; 이하 매직)’은 왜 TCG에서도 매력적인 설정과 스토리가 중요한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매직(MTG)’은 여러 차원을 넘나들며 소환수와 마법 주문을 모은다는 내용의 방대한 세계관을 바탕으로, 계속 다채로운 카드와 게임 메커니즘을 만들어가고 있다. 즉 흥미로운 세계관에서 오는 특징으로 독창적이고 개성 있는 게임환경을 조성해준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TCG인 ‘매직(MTG)’이 아직까지도 가장 큰 인기를 누리는 TCG로 남아있는 것은, 이처럼 독특한 세계관이 뒷받침해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과연 ‘매직(MTG)’은 어떻게 세계관을 TCG에 반영했을까?
TCG에도 흥미를 자극할 ‘상상’과 ‘이야기’는 필요하다
‘매직(MTG)’은 1993년에 수학자인 리처드 가필드에 의해 고안됐다. ‘매직(MTG)’의 게임 규칙은 무척 단순하다. 자원을 모아 공격과 방어 수치를 지닌 유닛을 배치하고, 이들을 지원하는 마법을 사용하며, 적의 본체를 공격해 일정 수치의 생명점을 모두 깎으면 게임에서 승리한다. 자원, 유닛, 마법은 카드로 나타내며, 플레이어는 자신이 사용할 카드 덱을 스스로 구성할 수 있다. 이러한 ‘매직(MTG)’의 기본 구조는 오늘날의 ‘하스스톤’이나 ‘판타지 마스터즈’ 등과 크게 다르지 않다.
▲ 초기 시절의 테스트 카드, 사고 싶은 마음이 안 든다 (사진출처: 공식 홈페이지)
그런데 생각해보자. ‘하스스톤’에서 카드 일러스트와 대사가 사라지면 어떨까? 그래도 게임을 할 수는 있겠지만 무척 허전한 느낌이 들 것이다. ‘매직(MTG)’도 마찬가지였다. 카드를 캐릭터로 느껴지게 해주는 요소가 없다면 남는 것은 수학적 원리에 따른 게임 규칙뿐인데, 이것만 가지고는 단번에 사람들을 잡아 끌 요소가 부족했다. 특히나 역동적인 디지털 이미지와 음향효과 없이 오직 실제 카드로만 해야 했던 당시 오프라인 TCG에서는 더욱 그러했다.
▲ 위 사진에도 있는 Holy Strength의 지금 일러스트, 완전히 다르게 느껴진다
(사진출처: 공식 홈페이지)
그렇기에 가필드는 자신이 만든 게임이 플레이어의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는 요소를 갖길 원했다. 이에 본래 ‘던전 앤 드래곤’ TRPG를 즐기던 그는 ‘매직(MTG)’에 환상적인 색채를 덧씌우기로 했다. 그 결과 ‘매직(MTG)’ 카드에는 괴물과 마법이 부딪치며 싸운다는 설정이 가미됐고, 자원은 ‘마나’로, 유닛은 ‘생물 소환’으로, 특수 카드는 마법으로 표상화했다. 즉 자칫 딱딱하게 보일 수 있는 보드게임에 판타지 이미지를 추가해 흥미를 유도한 것이다.
거기에 ‘매직(MTG)’은 카드를 단순한 유닛이 아닌 캐릭터로 인지되게 만들었다. 예를 들어 ‘높은 공격과 방어 수치를 지닌 유닛’ 대신, ‘분노한 거인’이라는 표상을 사용하여 확연히 다르게 느껴지게 한 식이다. 거기에 뛰어난 일러스트와 호기심을 자극하는 ‘플레이버 텍스트(Flavour Text)’는 카드 한 장에도 설정을 뒷받침해줘 더욱 그럴 듯한 개성을 더했다. 이처럼 카드에 캐릭터성을 더한 결과 플레이어는 카드에 더욱 큰 애착과 수집욕구를 가질 수 있었다.
▲ 수많은 차원을 넘나드는 방대한 세계관 (사진출처: 공식 홈페이지)
그러나 아무 설명도 없이 여러 괴물들이 등장해 맥락도 없이 싸운다는 내용은 흥미를 끌지 못할 것이 뻔했다. 이에 가필드는 다양한 괴물과 마법이 등장하는 게임 내용을 설명하기 위해 배경을 만들었는데, 그것이 바로 ‘다중우주(Multiverse)’였다. ‘다중우주’는 여러 ‘차원(Plane)’들로 이루어진 우주다. 각각의 차원은 그 자체로 하나의 세상으로 저마다 다른 물리법칙, 지리, 생물을 지니고 있다. ‘매직(MTG)’에 등장하는 생물과 마법은 이처럼 여러 차원에서 모였다는 설정이다.
▲ 주요 '플레인즈워커'들의 모습 (사진출처: 공식 홈페이지)
여기에 플레이어는 여러 차원을 여행하는 마법사인 ‘플레인즈워커(Planeswalker)’의 역할을 부여 받았다. 이를 통해 ‘매직(MTG)’은 다양한 세계를 떠돌며 소환수와 주문을 모아 힘을 키운다는 맥락을 얻었다. 카드를 모으고 다른 플레이어와 대전하는 과정 자체에 의미가 생긴 셈이다.
이처럼 ‘매직(MTG)’은 상상을 자극하는 다양한 설정과 표상이 존재해 더 큰 인기를 끌 수 있었다. 물론 오늘날에는 ‘매직(MTG)’의 뒤를 이어서 등장한 거의 모든 TCG가 카드의 캐릭터성을 부각시키고 있다. 그러나 ‘매직(MTG)’은 여전히 가장 독특한 캐릭터성의 카드를 만들어내는 TCG 중 하나다. ‘매직(MTG)’은 여러 유명 화가와 스토리 전담 팀을 동원하여 개성 넘치는 다양한 카드를 만들어내고 있다. 전세계의 수많은 팬과 수집가가 24년의 세월 동안 계속 ‘매직(MTG)’에 열광하는 이유는 바로 거기 있다.
세계관을 녹여낸 게임 규칙 디자인, 자연스럽게 배경 분위기 전달해
아무리 흥미로운 세계관이라 한들 실제 게임과 섞이지 못한 동떨어진 내용이라면 그리 오래 관심 받기는 힘든 법이다. 그러나 ‘매직(MTG)’ 세계관은 실제 게임과도 자연스럽게 맞물리면서 배경 주제와 소재의 분위기를 느끼게 해준다.
‘매직(MTG)’은 다양한 세계관을 반영한 다양하고 독특한 게임 규칙을 지닌다. ‘매직(MTG)’은 주로 한 차원에서 벌어지는 스토리를 하나의 카드 세트로 내놓는데, 동일 세트에 속한 카드들은 배경 차원 설정에 따른 통일된 분위기의 일러스트와 효과를 지닌다. 확실한 콘셉트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분명한 개성의 카드와 게임 환경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렇기에 ‘매직(MTG)’은 TCG임에도 불구하고 게임만 해도 배경 차원의 분위기를 스토리텔링 받을 수 있다.
▲ '이니스트라드' 카드들은 멀쩡하다가도 끔찍한 괴물로 변한다 (사진출처: 공식 홈페이지)
예를 하나 들어보자. 2011년에 나온 카드 세트 ‘이니스트라드(Innistrad)’는, 밤이 되면 뱀파이어가 깨어나고 주민들은 늑대인간으로 변모하는 고딕 호러 차원을 무대로 삼았다. ‘이니스트라드’ 카드 세트는 이러한 콘셉트를 반영하기 위해 ‘양면’이라는 새로운 카드 효과를 선보였다. ‘양면’ 유닛은 방어적이고 약한 인간이지만 특정조건을 충족하면 공격적이고 강한 괴물로 변한다. 뱀파이어나 늑대인간으로의 변이를 반영한 셈이다.
▲ '아몬케트' 카드들은 죽어도 미이라가 되어 돌아온다 (사진출처: 공식 홈페이지)
그런가 하면 가장 최근에 발매된 카드 세트인 ‘아몬케트(Amonkhet)’는 어감에서 유추할 수 있듯 고대 이집트를 모티프로 삼은 차원을 무대로 삼았다. 그렇기에 여기서는 사후세계에 대한 열망, 미이라 등 콘셉트를 이용한 ‘방부처리(Embalm)’ 규칙이 등장했다. ‘방부처리’ 효과를 지닌 생물은 죽어도 ‘마나’를 지불하면 미이라로 부활해 다시 한 번 싸울 수 있다. 말 그대로 사자를 미이라로 만들어 두 번째 삶을 기약하게 하는 효과다.
이처럼 ‘매직(MTG)’은 세계관과 긴밀히 연결된 규칙들을 통해 지속적으로 ‘TCG에 맞는 스토리텔링’을 해냈다. 덕분에 플레이어는 게임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세계관 분위기와 스토리를 즐길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끊임없이 ‘매직(MTG)’에 대한 관심과 흥미도 갱신할 수 있었다.
무한한 배경 담은 ‘다중우주’, 어떤 차원들이 있을까?
그렇다면 ‘매직(MTG)’에는 어떤 차원들이 있을까? 1994년에 가필드가 소개한 바에 따르면 ‘해변의 모래알처럼’ 많다. 그러나 물론 ‘매직(MTG)’ 세계관에서 특별히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차원은 몇 가지를 꼽을 수 있으며, 이 차원들은 저마다 독특한 콘셉트로 눈길을 끈다.
▲ 완전히 초토화된 '도미나리아'의 풍경 (사진출처: 공식 홈페이지)
우선 ‘도미나리아(Dominaria)’는 가장 옛날부터 등장한 차원이다. ‘매직(MTG)’의 초반 스토리는 이곳을 중심으로 진행됐고 주요한 인물도 대부분 이곳 출신이었다. 그러나 너무 많은 사건과 인물이 한 차원에만 집중됐다고 생각했기 때문인지, 2006년 발매된 세트인 ‘타임 스파이럴(Time Spiral)’부터 ‘도미나리아’는 너무 잦은 차원간섭으로 시공이 붕괴되어 초토화됐다는 설정으로 바뀌었다. 이제 이곳은 시간이 제멋대로 흐르고 물리적 쇠퇴한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다. 그렇기에 마지막으로 ‘도미나리아’를 무대로 발매됐던 카드들 또한 미리 내고 나중에 발동비용을 지불하는 ‘유예(Suspend)’ 등 시간을 주제로 한 독특한 효과를 지니고 있었다.
▲ '로르윈'의 '비터블로섬(Bitterblossom)' 카드 일러스트 (사진출처: 공식 홈페이지)
‘로르윈(Lorwyn)’은 동화 속의 세계처럼 끝없이 낮만 지속되고 자연이 만개한 아름다운 차원이다. 이곳 거주민은 인어, 요정, 난쟁이 등 귀엽고 발랄한 종족들이다. 그러나 일정한 주기에 따라서 이 차원은 점점 어둠으로 물들며, 결국은 ‘섀도우무어(Shadowmoor)’라는 섬뜩하고 뒤틀린 세계로 변한다. 그에 따라 ‘로르윈’에 살던 종족들도 모두 악몽에나 나올 듯한 끔찍한 괴물로 변해버린다. 이처럼 ‘로르윈’과 ‘섀도우무어’는 빛과 어둠이 순환되는 옛날 이야기 같은 세상을 보여준다.
▲ '테로스'는 신들이 지배하는 세상이다 (사진출처: 공식 홈페이지)
그런가 하면 ‘테로스(Theros)’는 그리스 신화를 모티프로 삼은 차원이다. 이곳에서는 신들이 직접 세상을 다스린다. 사람들은 신이 정한 운명에 따르고, 부과하는 시험에 응하며 산다. 대신 신들은 그리스 신화에서처럼 인간의 신앙에는 직접적으로 보상을 내리고, 불손함에는 가차없는 응징을 가한다. 그렇기에 ‘테로스’를 무대로 발매된 카드는 생물에게 특정한 효과를 주는 ‘부여마법(Enchantment)’이 주를 이루었다. 신들의 축복과 저주를 반영한 셈이다.
▲ 기괴한 존재 '엘드라지(Eldrazi)'가 봉인됐던 '젠디카(Zendikar)' 차원
(사진출처: 공식 홈페이지)
그 외에도 모든 것이 금속으로 이루어진 ‘미로딘(Mirrodin)’, 동북아시아의 야만적인 자연을 무대로 한 ‘타르커(Tarkir)’, 러브크래프트 소설을 연상시키는 고대 악이 도사린 ‘젠디카(Zendikar)’ 등, 15개 가량의 차원이 지금까지 주요하게 다루어진 ‘매직(MTG)’의 무대다. 이상의 15 차원을 무대로 한 카드 세트는 최소 하나 이상씩이며, 세트는 배경 차원의 콘셉트에 맞는 고유한 효과의 카드들을 포함했다. 이처럼 ‘매직(MTG)’이 다양한 카드와 규칙을 확보할 수 있었던 데는 많은 독특한 차원을 무대로 한 ‘다중우주’라는 세계관의 기여가 결정적이었다.
고품질 세계관, 카드에 가치 더해 TCG 인기 더했다
TCG에서 가장 중요한 점을 하나 꼽으라면 바로 ‘카드의 가치’라고 할 수 있다. TCG 카드의 가치는 게임상 성능 외에도 멋진 캐릭터성, 뛰어난 일러스트, 흥미로운 배경 이야기 등에 의해 정해진다. ‘매직(MTG)’은 최초의 TCG이자 가장 성공한 TCG답게 이러한 요소의 중요성을 일찍이 깨달았다. ‘매직(MTG)’이 세계관을 중시하는 이유는, 바로 ‘가치 있는 카드’를 만들어내는 데 중요한 틀이자 축이 되어준다는 점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매직(MTG)’의 제작사인 ‘위자드 오브 더 코스트(Wizard of the Coast)’는 카드 세트를 제작하기 수년 전부터 세계관 관리 팀, 스토리 담당 팀, 아트 담당 팀이 모여서 배경이 되는 세계관을 정립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개발 팀 대부분이 모여서 우선 세계관을 치밀하게 구성한 후, 거기에 맞춰 통일성 있고 개성이 뚜렷한 카드들을 개발하는 셈이다. ‘위자드 오브 더 코스트’는 이러한 ‘매직(MTG)’ 개발 방식을 계속해서 고수하고 있으며, 세계관 또한 확장 중에 있다.
‘매직(MTG)’은 24년째 그 명성과 인기를 계속 이어가는 이유, 이처럼 탄탄한 세계관을 바탕에 있다고 봐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 '아몬케트' 이후로도 새로운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카드들이 계속 나올 예정이다
(사진출처: 공식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