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기행] 몬스터 헌터, 알고 보니 포스트 아포칼립스였다
2018.01.04 17:50 게임메카 이새벽 기자
▲ 발매를 앞두고 있는 '몬스터 헌터 월드' 공식 홍보 이미지 (사진출처: '몬스터 헌터 월드' 공식 홈페이지)
'몬스터 헌터'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단연 '사냥'의 재미다. 광활한 야생을 탐험, 괴수를 상대로 벌이는 사실적이고도 치열한 전투, 각종 재료를 수집해 직접 아이템을 만드는 수집까지. 이만큼 야생의 땅에서 벌어지는 '사냥'의 묘미를 잘 잡아낸 게임은 드물었다.
하지만 '몬스터 헌터'의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을 돌아다니며 사냥하다 보면 한 가지 궁금해지는 것이 있다. 이처럼 세상이 야생 상태에 온통 괴물로 가득 차 있는데, 대체 인간은 어디서 어떻게 살아왔을까 하는 의문이다.
그런데 알고 보면 '몬스터 헌터' 세계관에는 숨은 비밀이 하나 있다. 사실 이 세계관, 알고 보면 기존 문명이 멸망한 후 다시 마을과 도시들이 세워지고 있는 중인 포스트 아포칼립스라는 것이다. 이미 최소 두 번 이상 괴물에게 문명이 송두리째 파괴된 적 있고, 사람들은 과거 문명을 파괴한 괴물을 무서워하며 살아간다. 게임 중 탐험과 사냥에만 집중했던 플레이어라면 도저히 상상하기 힘든 처절하고 어두운 설정이다.
이번 주에는 탐험과 사냥의 낭만을 그린 게임 '몬스터 헌터', 그 이면에 숨은 포스트 아포칼립스 설정에 대해 알아보자.
이미 여러 문명이 당했다, 괴물에게 파괴된 고대문명의 흔적들
▲ '몬스터 헌터 프론티어'에 등장한 고대문명 유적 '천랑'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익히 알다시피 '몬스터 헌터'는 본디 설정과 줄거리를 중시하는 게임은 아니다. '몬스터 헌터'가 초점을 맞춘 부분은 거대한 괴물을 사냥하는 '전투의 재미'였고, 자세한 설정이나 세계관은 그저 지나가듯 언급되는 수준의 부차적 요소였다.
그러나 시리즈가 계속되며 '몬스터 헌터'도 게임에 등장하는 요소들을 짜임새 있게 설명할 만한 설정의 필요를 느끼게 됐다. 그렇게 발매된 것이 바로 '헌터대전'이라고 불리는 공식 설정집이다. 총 다섯 권이 발매된 '헌터대전'은 게임 내 인물 시점에서 인물, 괴물, 지역, 문화 등 여러 요소에 대한 설정을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헌터대전' 1권을 보다 보면 상당히 독특한 설정이 하나 눈에 띈다. 사실 이 세계에는 지금 문명과 단절된, 고도로 발달한 고대문명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이 고대문명에 대한 설명은 게임에서는 물론 '헌터대전'에서도 정확하게 언급되지는 않는다. 다만 '헌터대전' 1권에는 게임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유적이 실은 고대문명의 흔적이며, 이곳을 발굴한 끝에 지금 기술로는 흉내내기 힘든 수준의 어마어마한 기계장치가 발굴됐다는 이야기가 수록됐다. 또한 고대문명은 대륙 전체에 걸친 광대한 국가를 건설하기도 했으며, 심지어 괴물을 길들이거나 품종개량까지 했으리라는 이야기도 있다.
▲ '헌터대전'에 실린 '이퀄 드래곤 웨폰' 일러스트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그러한 고대문명의 기술을 짐작하게 하는 것이 '헌터대전' 1권과 '헌터대전 G'에서 짤막하게 언급되는 '이퀄 드래곤 웨폰'이다. 가끔 '용기병'으로도 불리는 '이퀄 드래곤 웨폰'은 고대문명 유적에서 발굴된 반은 드래곤이고 반은 기계인 존재다. 서적 일러스트와 묘사에 따르면 이 괴물은 거구인 전신이 금속 갑주와 기계장치로 강화되어 있으나, 내부에는 드래곤 장기 및 골격이 차 있다. 이를 바탕으로 세계관 내 일부 인물은 고대문명이 사이보그 드래곤을 만들었던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이후 발매된 외전 작품 시리즈 '몬스터 헌터 프론티어'에서는 보다 상세한 고대문명 설정이 등장한다. '천랑'이라는 고대문명 유적이 던전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천랑'은 '몬스터 헌터'에 등장하는 그 어떤 건물보다도 규모가 크고 드높으며 건축양식 또한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게다가 내부에는 각종 기계장치로 제작된 덫이 설치되어있고, 사이버네틱 분위기를 풍기는 첨단장비가 존재한다. 여러 면에서 기존 지역과는 확실히 다른 분위기다.
▲ 하늘 높이 솟아 있는 '천랑' 외부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그 외에도 파괴된 고대문명의 유적은 다양한 작품에서 찾을 수 있다. '몬스터 헌터 4'의 '유적평원', '미지의 삼림', '몬스터 헌터 크로스'의 '유군령' 맵에는 자연에 묻힌 옛 시대의 건물이 등장하는데, 이는 지금 야생의 땅이 된 장소에도 고대에는 도시가 존재했음을 짐작하게 해주는 단서다.
그렇다면 번성했던 고대문명이 파괴된 이유는 무엇일까? 주요한 원인은 바로 괴물과의 싸움으로 추측된다. '헌터대전'에서 언급되는 또 다른 설정인 '드래곤 대전'은 드래곤들이 무리를 지어 고대문명을 파괴했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고대문명이 드래곤을 노예와 생체실험용 재료로 삼자, 수많은 드래곤이 무리를 지어서 저항했고, 결국 문명이 송두리째 파괴되었다는 것이다. 다만, 이 설정은 '헌터대전' 1권 이후로는 외전인 '몬스터 헌터 프론티어'에서만 사용되고 있다.
▲ 멸망한 '슈레이드 왕국'의 왕성 유적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괴물이 인간 문명을 쇠락시킬 수 있음을 보여주는 예시는 또 하나 있다. '몬스터 헌터 G'에 등장하는 '슈레이드 왕국'이다. 이 국가는 게임 무대가 되는 '슈레이드 지방'을 천 년 전에 다스리던 왕국이었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재앙으로 수도가 파괴되고 왕국이 멸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생존자들은 왕국의 서쪽 끝과 동쪽 끝으로 피신해 '서 슈레이드'와 '동 슈레이드'라는 독립된 문화권을 구축하나, 다시는 단일한 왕국을 세울 수 없었다.
그런데 게임에서 언급되는 바에 따르면 '슈레이드 왕국'을 파멸시킨 재앙은 바로 거대한 드래곤인 '밀라보레아스'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헌터대전'에도 왕국을 파괴한 드래곤 '밀라보레아스'에 대한 언급이 존재하거니와, 실제 게임에서도 '밀라보레아스' 토벌 의뢰를 하는 '서 슈레이드'의 '인망이 두터운 국왕'이 드래곤을 막지 못하면 왕국 존망이 위태로워진다고 언급하는 등, 게임 속 인물들은 '밀라보레아스'의 '슈레이드 왕국' 파괴를 기정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러한 이야기를 볼 때 일부 괴물은 단신으로도 왕국을 파괴할 수준의 힘을 지닌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설정은 이미 둘 이상의 문명이 괴물에 의해 파괴되었으며, 게임 플레이 시점에 등장하는 문명은 고대문명들이 파괴된 후 생존자들에 의해 다시 세워진 것임을 보여준다. 그렇기에 '몬스터 헌터' 세계관 기술은 불균형하게 묘사된다. 전반적인 문명 수준은 중세 정도로 보이지만, 부분적으로는 스팀펑크를 방불케 하는 비행선이나 개인 화기도 존재한다. 비록 소실되고 단절된 부분은 있어도 일부 발달된 기술이 여전히 대를 이어 전수되고 있기 때문이다.
▲ 무기를 보면 은근히 괴리감 드는 기술이 많다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문명을 침략하고 파괴하는 재앙적 괴물들
그렇다면 '몬스터 헌터' 세계관의 괴물들은 얼마나 강하고 악랄하기에 인류 문명 존속을 위태롭게 만드는 것일까? 물론, 사실 모든 괴물이 그렇게 위험한 것은 아니다. 온순한 성품에 초식성인 종도 있고, 인간에게 해를 끼치긴 해도 그리 힘들지 않게 쫓아낼 수 있는 종도 있다. 예를 들어 라마를 닮은 '무파'라는 괴물은 아예 가축으로 쓰이며, '람포스'는 가축과 사람을 해칠 수는 있어도 마을 전체를 멸절시킬 힘은 없는 작은 육식종이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 일부 괴물은 단일개체만으로도 충분히 일개 도시를 파괴할 수 있는 정도의 힘을 지니고 있다. 그 중에는 능동적으로 인간을 해치기 위해 나서는 종도 있으며, 이러한 생물의 등장은 곧 일대에 큰 위기로 작용한다. 역대 '몬스터 헌터' 시리즈 최종 보스는 대체로 생태계와 문명세계 양쪽에 위험을 몰고 온 흉악한 괴물로 상정된다.
▲ '아트랄 카' 본체의 모습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우선,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괴물 중 가장 대표적인 예시는 '몬스터 헌터 더블 크로스'에 보스로 등장한 '아트랄 카'다. 사마귀를 닮은 모습에 끈적이는 거미줄을 내뿜는 벌레 괴물 '아트랄 카'는 성체가 되기 전에 자신만의 둥지를 짓는 독특한 습성이 있다. 여기서 문제는 괴물이 재료를 얻는 주된 수급처가 바로 인간의 마을이라는 점이다.
원시에 '아트랄 카'는 나무가지와 바위 따위를 모아 거미줄로 접착해 둥지를 만드는 생물이었다. 그러나 인간의 문명이 발전하고 건물을 쌓아 올리는 모습을 본 '아트랄 카'는 차츰 이를 모방해 크고 복잡한 둥지를 만들도록 진화해갔다. 하지만 '아트랄 카'는 재료를 수집해 둥지를 지을 수는 있어도 재료 자체를 제작할 정도의 지성은 없었다. 그렇기에 이 시대의 '아트랄 카'들은 둥지를 지을 때마다 인간 마을을 침략해 파괴하고, 그곳에서 수집한 잔해로 둥지를 짓는다.
그런가 하면 아예 등장만으로 자연재해를 일으키는 괴물도 있다. '몬스터 헌터 포터블'에 등장하는 '아캄토름'은 이름 자체가 세계관 내 언어로 '재앙'이라는 뜻이다. 이유는 거대한 몸집에 흉포한 성질 때문에 나타나는 즉시 일대에 학살을 자행하기 때문이다. 또한 '몬스터 헌터 포터블 세컨드 G'에 등장한 '우캄루바스'는 단단한 암석질 몸으로 주변을 들이받아 산사태를 일으키는 주범으로,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인근 지역에 재해가 된다.
▲ 거대한 몸집으로 산사태를 일으키는 '우캄루바스' (사진출처: 게임 내 영상 갈무리)
위험성의 정점을 찍는 종은 따로 있다. 소위 '고룡종'으로 불리는 고대 괴물들이다. 이들은 존재 자체가 규명되지 않은 생물들이며, 사실 서로간에 이렇다 할 만한 공통점도 없다. 예를 들어 '고룡종'에 속하는 '밀라보레아스'는 거대한 도마뱀에 박쥐 날개가 달린 드래곤 모습이다. 그러나 다른 '고룡종'인 '나발데우스'는 원시고래 같은 모습이며, '오스트가로아'는 거대한 두족류에 가깝다. '고룡종'이라는 정의는 모습과 생태와는 무관하게 부여되는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하나의 목으로 묶을 수 있는 이유는 피에 함유된 성분 때문이다. 모든 '고룡종'은 다른 생물들에게는 없는 이질적 성분의 피를 지니고 있다. 그 탓에 게임 내에서 일부 사람들은 '고룡종'이 고대문명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생체무기가 아닐까 추측하기까지 한다. 이에 대한 설정은 '헌터대전' 1권 이후로는 외전 '몬스터 헌터 프론티어' 시리즈에서만 언급되지만, 어쨌거나 '고룡종'이 여타 자연계 생물들과는 차원이 다른 힘을 보여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 몸 길이만 400m가 넘는다는 '다라 아마듈라' (사진출처: 캡콤 공식 블로그)
'고룡종'이 지닌 힘의 수준은 '몬스터 헌터 4'에 등장한 '다라 아마듈라'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몬스터 헌터' 10주년 영상에서 전해진 공식 설정에 따르면 '다라 아마듈라'는 몸 길이만 해도 400m가 넘으며, 전투 무대가 되는 산맥은 이 괴물이 움직인 여파로 표면이 소용돌이처럼 변해 있다. 또한 전투 시에는 하늘에서 유성을 낙하시키는 초자연적 힘을 행사하기까지 한다. 공룡이나 맹수에 가깝게 묘사되는 일반 괴물들과는 크게 대조되는 모습이다.
'몬스터 헌터 4'의 또 다른 '고룡종' 보스 '샤가르마가라'는 한층 더한 재앙을 보여준다. 이 괴물은 날개에서 정체불명의 가루를 뿌리며 날아다니는데, 이 가루를 흡입한 생물은 '광룡 바이러스'라고 하는 기이한 증상에 시달린다. 감염된 괴물은 극도로 난폭해진 나머지 눈에 보이는 모든 생물을 공격하며, 고도로 흥분한 상태가 지속되다 수명이 단축돼 대부분 일찍 사망한다.
게다가 죽는다고 끝이 아니다. '샤가르마가라'의 가루 안에는 사실 유체인 '고어 마가라'라는 괴물의 세포가 들어있다. 일단 숙주가 죽으면 '고어 마가라'는 사체의 영양분을 흡수하여 새로운 괴물로 성장하고 더욱 넓은 범위에 가루를 흩뿌리며 날아다니게 된다. '몬스터 헌터 4' 퀘스트 중에는 이 '광룡 바이러스'로 일대가 초토화돼 원인을 조사하던 중 '샤가르마가라'와 조우하는 내용이 있다.
▲ 날개에서 유독성 가루를 뿌리는 '고어 마가라'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그 외에도 앞에서 언급했던 '슈레이드 왕국'을 파멸시킨 '밀라보레아스', 인근지역에 기상이변을 일으켜 대량살상을 일으킨 '알바트리온', 해저에서 지반을 들이받아 지진을 일으킨 '나발데우스' 등이 '고룡종'에 속하는 괴물이다.
이렇듯 '고룡종'은 존재만으로 운석이 떨어지고, 낙진지대가 생기고, 기상이변이 발생하는 등 어마어마한 재해가 일어난다. 심지어 가장 약한 '고룡종'인 '키린'마저 주위에 낙뢰를 떨어트리며 돌아다닌다니, 정말 문명을 멸절시키기에 충분한 존재들인 셈이다.
살아남기 위해 치열한 싸움을 이어가는 인류
문제는 게임이 진행되는 순간에도 '고룡종'을 비롯한 온갖 치명적인 괴물들이 버젓이 돌아다니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진행상 대부분 플레이어 '헌터'에 의해 토벌되기는 하지만, 어쨌든 살아있는 핵무기 같은 존재가 세상에 여럿 존재한다는 점에서 이 세계는 이미 안전한 곳이 아니다. '몬스터 헌터' 세계의 사람들은 언제나 위험 속에서 살아가는 셈이다.
실제로 플레이 중에도 인류 문명은 여러 번 위기에 처한다. '몬스터 헌터'에서는 '라오산룽'이라는 거대한 괴물이 대도시 '돈도르마'를 짓밟아 파괴할 뻔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런가 하면 '몬스터 헌터 트라이 G'에서는 몸에서 불과 열기를 내뿜는 거대괴물 '그란 밀라오스'가 등장하여 항구도시 '탄지아 항구'를 위기에 빠뜨린다. 앞서 말한 '샤가르마가르'의 '광룡 바이러스'나, '나발데우스'로 인한 지진 등은 말할 것도 없다.
▲ 성문을 들이받는 '라오산룽'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그렇기에 '몬스터 헌터' 세계관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언제든 싸울 준비를 하고 살아가는 듯하다. 예를 들어 '돈도르마' 사람들은 아예 괴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인근에 '앙가루프'라는 거대한 요새를 세웠다. 이 요새의 목적은 도시로 접근하는 괴물을 차단하는 것으로, 게임 상에서도 요새 곳곳에 '거룡포'나 '격룡창' 등 괴물용 무기가 배치된 것을 볼 수 있다. 심지어 '돈도르마' 시가지에는 요새를 뚫고 들어온 괴물을 쫓아내기 위해 방어준비를 갖춘 구역인 '전투거리'가 따로 있을 정도다.
여기에 보다 능동적으로 괴물을 막기 위해 설립된 기구도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플레이어에게 퀘스트를 주는 '헌터 길드'다. 줄여서 '길드'로 부르는 이 조직은 각 지역마다 존재하는 괴물 종의 정보를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분류하며, 이를 토대로 개체 수를 세심히 관리한다. 또한 너무 위험하다고 판단된 개체가 나타날 시 '헌터'를 고용해 토벌하는 것도 '길드'의 역할도 맡고 있다. 게임 내에서 플레이어가 맡는 임무는 대부분 '길드'가 제거대상으로 지정한 괴물을 처치하는 것이다.
▲ '길드'는 수시로 '헌터'를 고용해 괴물의 수를 줄인다 (사진출처: '몬스터 헌터 프론티어' 공식 홈페이지)
'길드'의 또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위험한 종이라도 씨가 마르지 않도록 무차별한 사냥은 금지한다는 것이다. 이는 어느 한 종이 멸종할 시 생태계에 큰 변화가 생겨 예상치 못한 위험이 초래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심지어 '길드'는 퀘스트를 받지 않고 무차별한 사냥에 나서는 불법 '헌터'를 체포하거나 제거하기 위한 요원까지 두고 있다. '길드 나이트'로 불리는 이 요원은 인간이 불필요하게 괴물을 자극하지 않도록 막는 역할을 맡고 있다.
'길드'가 무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조직이라면, 지식을 통해 문명을 지키는 조직들도 있다. '왕립고생물학서사대'와 '고룡관측소'가 바로 그들이다. 이들은 고대문헌 해독, 비행선을 이용한 미확인 지역 탐사 등 여러 방법을 동원하여 '고룡종'의 위치와 활동주기를 감시한다. 그리고 '고룡종'을 비롯한 위험도 높은 괴물이 포착되면, 그 사실을 바로 '길드'에 알리고 조치를 취하는 것이 이들 역할이다.
이렇듯 '몬스터 헌터'의 인류는 늘 위험에 처해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이권을 놓고 대립하거나 전쟁을 벌이는 대신, 힘을 합해 대륙 전체를 어우르는 조직을 결성하고 함께 괴물에 맞선다. 물론 실제 게임 속에서는 플레이어인 '헌터' 몇 명만으로도 산 만한 크기의 괴물을 쉬이 베어 넘기지만, 설정상으로는 '고룡종' 하나를 막기 위해 여러 나라가 힘을 필사적으로 힘을 합치고 있는 셈이다.
그래도 여전히 핵심은 '사냥'이다
▲ 설정상 포스트 아포칼립스 얘기도 있다는 거지, 실제 플레이에서 중요한 건 괴물 사냥이다 (사진출처: '몬스터 헌터 월드' 공식 홈페이지)
이렇듯 '몬스터 헌터' 세계관은 알게 모르게 포스트 아포칼립스, 혹은 아포칼립스의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이 세계의 문명은 고대로부터 괴물들에 의해 몇 번이나 멸망 당했고, 인간의 기술과 문화도 여러 번 단절을 겪어야 했다. 심지어 멸망의 위기는 아직도 실시간으로 닥치고 있다.
다만, 이렇게 얘기하긴 했어도 역시 '몬스터 헌터' 시리즈의 핵심적인 재미는 야생에서 벌어지는 사냥과 탐험이다. 개발진도 이러한 점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기에 최근에는 고대문명을 비롯하여 각종 복잡한 SF 판타지 설정은 언급을 삼가고 있다. 실제 게임 속에서 중요하게 등장한다기 보다는, 이런 것도 있다는 정도로만 가끔 다루어질 뿐이다. '사냥' 본연의 재미에 충실하기 위해 불필요한 설정은 줄여나가는 선택과 집중을 한 셈이다.
특히 발매를 앞두고 있는 신작 '몬스터 헌터 월드'는 '고룡종'의 특이한 생태를 확인하기 위해서 '신대륙'으로 건너간다는 설정으로, 한층 더 날 것 그대로의 야생을 묘사하는 데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즉, 앞으로도 포스트 아포칼립스 분위기 설정에 대한 계속 언급은 줄어들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