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NPC 없는 폴아웃76, 외롭고 지루한 폐품수집 게임
2018.11.06 10:05 게임메카 이새벽
▲ 시리즈 최초의 온라인게임, ‘폴아웃 76’ (사진출처: 베데스다 공식 홈페이지)
핵전쟁으로 파괴된 세상에서 생존과 모험을 다룬 ‘폴아웃’ 시리즈 최신작 ‘폴아웃 76’이 11월 14일 발매를 앞두고 테스트에 돌입했다. ‘폴아웃 76’은 시리즈 최초로 온라인 플레이를 지원하는 것이 특징으로, 이 게임에서 플레이어들은 전작 ‘폴아웃 4’ 네 배에 달하는 광활한 오픈 월드를 자유롭게 탐험하며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게 된다.
하지만 테스트를 맞아 직접 해본 ‘폴아웃 76’은 다소 실망스럽게 느껴졌다. 사실 이 실망은 테스트 전부터 어느 정도 예상된 것이었다. 개발업체 베데스다는 ‘폴아웃 76’를 처음 공개했을 때부터 플레이어 사이 상호작용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 인간 NPC를 일절 등장시키지 않겠다고 언급했다. 그 탓에 게이머들 사이에는 ‘폴아웃 76’이 부실한 스토리에 단순 반복적인 콘텐츠만 있는 게임이 되지 않겠냐는 불안이 감돌고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그 예상은 상당 부분 들어맞고 말았다.
결론적으로 ‘폴아웃 76’은 다소 안이한 작품이라는 느낌을 지우기 힘들다. ‘폴아웃 4’를 기본 바탕으로, 기존에 ‘아크’나 ‘코난: 디 익자일’이 이미 보여준 온라인 생존 게임의 요소를 일부 덧씌운 것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과거 ‘폴아웃‘은 방사능으로 오염된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를 절묘한 서사로 묘사해 뭇 게이머를 매혹시킨 바 있지만, 이번 ‘폴아웃 76’에는 전작들처럼 게이머를 끌어당기는 서사의 힘이 느껴지지 않아 아쉬움이 남는다.
사실상 스토리 없다, 메인 콘텐츠는 마을 건설과 폐품 수집
▲ 캐릭터 제작을 포함한 기본 인터페이스는 ‘폴아웃 4’와 똑같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폴아웃 76’은 기본적으로 ‘폴아웃 4’에서 스토리가 빠지고 마을 건설 콘텐츠가 중심에 섰다고 보면 된다. 간단히 말해 총 쏘고, 폐품 줍고, 마을 짓는 게임이다. 전작 ‘폴아웃 4’에서도 수집한 폐품을 재활용해 자신만의 마을을 가꾸는 콘텐츠가 있었는데, 이번 ‘폴아웃 76’은 아예 이 마을 건설을 핵심 콘텐츠 삼아 재구성했다는 느낌이다.
설정상 ‘폴아웃 76’은 시리즈 중 가장 이른 시간대에 벌어지는 일을 담고 있다. 미국과 중국간에 핵 전쟁이 발발하고 25년 후 버지니아에 위치한 핵 방공호 ‘볼트 76’이 개방되어, 지하에 생존해 있던 사람들이 다시 지상으로 올라와 개척에 나선다는 것이 이 게임의 주된 내용이다. ‘볼트 76’은 가장 초기에 개방된 방공호이기에 플레이어보다 먼저 지상에 정착한 인간 NPC는 없는 설정이다.
▲ 등장하는 거의 모든 인간은 ‘볼트 76’ 출신이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게임을 시작하면 플레이어가 핵 방공호 ‘볼트 76’을 떠나 버지니아 개척에 나서는 과정을 그리는 튜토리얼이 기다리고 있다. 플레이어는 선발대로 떠난 이들이 남긴 음성 메시지를 따라 움직이며 보급품 상자를 받아야 한다. 이렇게 메시지를 따라 목표 지점으로 이동하고 보상 받는 과정을 몇 번 반복하다 보면 튜토리얼이 끝나고, 비로소 개척을 위한 자유로운 모험이 시작된다.
게임 내에는 위 내용 외 이렇다 할 스토리가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에 폐허를 탐사하고 폐품을 모아 자신만의 마을을 가꾸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마을은 두 가지 방식으로 건설 가능하다. 하나는 튜토리얼을 통해 모든 캐릭터에게 지급되는 휴대용 정착지 건설장비 C.A.M.P.를 설치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폴아웃 4’처럼 지역 작업대를 사용하는 것이다.
▲ 모든 플레이어가 갖고 시작하는 휴대용 정착지 건설장비 C.A.M.P. (사진: 게임메카 촬영)
C.A.M.P.는 ‘폴아웃 76’에서 새로 추가된 시스템이다. C.A.M.P. 설치는 핍보이 메뉴를 통해 가능하다. 설치 키를 누르면 화면에 C.A.M.P.가 노출되는데, 이를 원하는 장소에 놓기만 하면 된다. 단 설치 가능 장소는 마을이나 대로에서 다소 벗어난 야생 인근에 한정된다는 점, 그리고 설치에 게임 내 재화인 ‘캡’이 일정량 소모된다는 점은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일단 C.A.M.P.가 설치되면 녹색 테두리로 표시되는 영역 내에 자유롭게 건설이 가능하다. 건설은 기본적으로 ‘폴아웃 4’와 같다. 인터페이스가 약간 다르기는 해도 전작을 해본 사람이라면 금새 익숙해질 수 있다. 건설 탭에서 원하는 종류의 건설물을 골라, 지정한 위치에 놓으면 곧바로 건설되는 식이다. 물론 건설에 필요한 재료는 미리 폐품 수집을 통해 확보 해놓아야 한다.
▲ C.A.M.P. 인근에 발전기를 건설 중인 모습 (사진: 게임메카 촬영)
두 번째 방법은 C.A.M.P. 설치에 비해 큰 마을을 짓기에 좋다. ‘폴아웃 76’ 지도상에는 여러 거점이 존재한다. 이러한 장소는 C.A.M.P. 설치 장소에 비해 공간도 넓고 일부 시설이 이미 존재해 마을 건설이 용이하다. 또한 거점에는 이미 작업대가 존재해, 별도로 C.A.M.P.를 설치하지 않아도 바로 건물을 짓는 것이 가능하다. 준비된 마을 터인 셈이다.
다만 마을 터를 확보하고 지키는 데는 위험이 따른다. 우선 마을 터에 있는 괴물을 모두 제거하고 작업대를 자기 소유로 확보해야 한다. 즉 어느 정도 전투 기술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마을 터를 확보하는 것조차 힘들다. 여기에 다른 플레이어가 언제든 마을 터와 작업대 소유권을 두고 도전해올 수 있어서, 계속되는 싸움을 통해 마을을 지켜야 할 필요도 있다.
▲ 마을에 나타난 야생 개떼를 막아야 하는 방어 이벤트 (사진: 게임메카 촬영)
마을 터에 건물을 지은 상태에서는 주기적으로 침략 이벤트가 발생한다. 인근에 괴물들이 계속 나타나 마을을 침략하는 것이다. 자동화 방어 설비나 덫을 잘 설치했다면 침략을 물리치는 보상으로 아이템이 주어지지만, 방어가 미비할 시에는 잠깐 나갔다 돌아온 사이 처참하게 약탈 당한 마을을 보게 될 수도 있다.
이렇듯 ‘폴아웃 76’은 ‘폴아웃 4’에서 각광받은 요소인 마을 건설을 크게 보강했다. 특히 주기적인 마을 침략 이벤트는 몇몇 ‘폴아웃 4’ 인기 모드에서 영감을 얻은 것처럼 보인다. 만약 자신만의 마을을 가꾸고, 재산을 축적하고, 외부의 침략으로부터 이를 보호하는 행위 자체에서 큰 재미를 찾을 수 있다면 ‘폴아웃 76’은 나름대로 괜찮은 작품으로 다가올 것이다.
▲ 인간 NPC가 없기에 마을을 지어 놓고도 조금 덧없이 느껴진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다만 NPC가 등장하지 않아 기껏 지어놓은 마을이 텅 비어있는 모습은 보기 조금 안타깝다. 마을 짓는 방법은 다양해진 반면, 스토리와 NPC가 부재한 탓에 마을을 지어야 할 동기는 잘 부여되지 않는 느낌이다. 기껏 크고 근사한 마을을 지어놓고 혼자 외롭게 폐품이나 쌓아놓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조금 허탈한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전투는 ‘폴아웃 4’ 그대로, 늘어난 것은 수집 요소 뿐
▲ 쓸 만한 폐품을 얻기 위해서는 시체로 산을 쌓아야 한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폴아웃 76’ 두 축 중 하나가 마을 건설이라면 다른 한 축은 전투와 수집이다. 핵전쟁으로 파괴된 폐허에 도사린 괴물을 물리치고 쓸 만한 폐품을 모아야, 이를 분해해서 얻은 재료로 마을을 지을 수 있기 때문이다. 즉 괴물 소탕, 폐품 수집, 마을 건설이 반복 순환되는 것이 ‘폴아웃 76’의 기본 게임 구조다. 여느 생존 게임과 크게 다르지 않은 부분이다.
기존 시리즈의 경우 스토리를 통해 플레이어가 싸우거나 아이템을 수집해야 할 분명한 상황 맥락과 동기가 부여됐다. 그러나 ‘폴아웃 76’에서는 스토리도 음성 메시지가 남긴 단서를 따라가는 정도로 미약하고 인간 NPC도 등장하지 않기에, 전투와 아이템 수집 자체만 콘텐츠로 남았다. 따라서 ‘폴아웃 4’의 전투가 밋밋하게 느껴진 플레이어라면 ‘폴아웃 76’은 더 아쉽게 느껴질 것이다.
▲ 급박한 상황에서 어설프게 V.A.T.S. 쓰다가는 역으로 당할 수도 있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폴아웃 76’ 전투는 전작 ‘폴아웃 4’와 마찬가지로 FPS 방식이다. 다만 전작의 고유한 특징이었던 V.A.T.S.는 온라인 게임에 맞게 다소 바뀌었다. 본래 V.A.T.S.는 활성화되면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상태에서 지정한 적을 확률에 따라 자동으로 명중시키는 시스템이었다. 그러나 여러 플레이어가 동시에 즐기는 온라인 게임의 특성 상 기존 방식의 V.A.T.S.는 ‘폴아웃 76’에 적용되지 못했다.
대신 ‘폴아웃 76’ V.A.T.S.는 실시간 진행 중 순간적으로 적을 조준해주는 방식으로 쓰인다. 기본 기능 자체는 똑같이 수동 조준 필요 없이 적을 일정 확률로 자동 명중시켜주는 것이지만, 차이는 V.A.T.S. 조준 중에도 감속 없이 적이 행동한다는 데 있다. 이제 조준 중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지 않기에 급박한 상황에서 여유롭게 사용하기는 다소 힘들게 됐다.
▲ 자물쇠를 따고 연 금고에서 도면이 나왔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전투는 V.A.T.S.를 제외하면 ‘폴아웃 4’ 그대로인 반면, 수집 요소는 전보다 꽤 다양해진 모습이다. 우선 가장 큰 차이는 도면이 있어야 아이템 제작 및 개조가 가능해진 것이다. ‘폴아웃 4’는 재료만 있으면 얼마든 아이템을 만들거나 개조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도면을 미리 확보해두어야 제작 및 개조 선택지가 생긴다. 도면도 수집의 대상이 된 것이다.
도면은 보통 쉽게 얻을 수는 없다. 획득하기 위해서는 퀘스트나 이벤트에 참가해 보상을 받거나, 자물쇠 따기 스킬로 금고를 열어야 한다. 그렇게 해도 워낙 도면의 종류가 다양하다 보니 개인이 모든 도면을 갖고 있기는 힘들고, 이로 인해 플레이어들 사이에 거래의 필요성이 생긴다. 아이템 수집 요소로 통해 플레이어간 상호작용을 유도한 셈이다.
▲ 일종의 스킬 카드로 바뀐 퍽 (사진: 게임메카 촬영)
여기에 퍽(Perk) 카드도 수집 요소로 추가됐다. 퍽은 캐릭터가 지닌 특수한 재능으로, 전작에서는 레벨이 오를 때마다 얻는 패시브 스킬로 등장했었다. 그러나 ‘폴아웃 76’에서 퍽은 일종의 스킬 카드로 주어진다. 레벨이 오르면 퍽 카드를 무작위로 몇 장 얻고, 그 중 일부를 장착해서 효능을 누리는 식이다. 일종의 스킬 강화 아이템이 됐다고 볼 수 있다.
기본적으로 퍽 카드는 레벨이 오를 때마다 무작위로 네 장이 들어있는 팩이 지급된다. 여기에서 나온 카드는 같은 종류를 모아 보다 높은 랭크로 조합할 수도 있는데, 가진 모든 카드를 동시에 장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각 카드마다 정해진 능력치 점수가 있어서, 해당 카드에 상응하는 능력치 점수만큼만 카드를 장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힘이 5점인 캐릭터라면, 힘 계열 퍽 카드는 최대 비용 5어치까지만 장착할 수 있다. 대신 남는 카드는 거래가 가능하다.
▲ 능력치에 따라 여러 개의 퍽 카드를 장착할 수도 있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여기서 ‘폴아웃 4’ 네 배에 달할 정도로 방대한 ‘폴아웃 76’ 월드는 아이템 수집을 위해 탐험해야 하는 장소도 양적으로 크게 확대시켰다. 돌아다닐 곳도, 수집할 것도 더욱 많기에 수집 요소 자체는 ‘폴아웃 4’에 비해서 확실히 크게 늘어났다. ‘폴아웃 4’에서 황무지를 탐사하고 폐품을 수집하는 것 자체에서 큰 재미를 느낀 플레이어라면, 이번 작품에서도 만족할 것이다.
다만 전투 시스템이 ‘폴아웃 4’에서 거의 진일보한 점 없는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폴아웃 4’도 전투 자체는 다소 밋밋한 감이 없지 않았는데, 그나마 전투 묘미 중 하나였던 V.A.T.S.까지 단순화 되며 싸우는 맛이 반감된 느낌이다. 여기에 전투에 맥락을 부여하던 스토리마저 크게 축약됐으니, 이제는 정말 ‘아이템을 모으기 위해 싸워야 하는’ 게임이 됐다.
▲ 아이템 수집 말고는 플레이 동인이 다소 부족하게 느껴진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이처럼 반복적인 아이템 수집 외에는 목표로 삼을 만한 콘텐츠가 없다 보니, 필요한 아이템들을 전부 모으고 나면 과연 어떤 플레이 동기가 부여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조금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물론 지금은 테스트인 만큼 조금 더 지켜보아야 하겠지만, 단순 반복적인 아이템 수집 외에도 플레이에 동기로 작용할 요소가 확충되지 않으면 다소 쉽게 질릴 수도 있을 듯하다.
생각보다 제한적인 플레이어간 상호작용, 아쉬움 남는다
▲ 의외로 한 서버 정원은 많지 않아 보인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폴아웃 76’은 온라인게임인 만큼 다른 플레이어들과의 상호작용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가 없다. 하지만 정작 다른 플레이어와의 상호작용은 생각 외로 제한되는 느낌이다. 월드를 공유하지만 서로 영향을 주는 부분은 의외로 적었다.
우선 눈에 띄는 특징은 ‘폴아웃 76’이 MMORPG가 아니라는 점이다. 베데스다는 한 서버에 접속되는 인원의 수가 정확히 몇 명인지는 공개하지 않았지만, 맵에 표시되는 인원의 수는 많아 봐야 수십 명 정도로 그리 많지 않았다. 방대한 월드에 비해 적은 수의 사람이 함께 플레이 하는 셈이다. 시작 지역을 넘어가자 이벤트 발생 지역 외에는 사람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 식품 공장을 일정시간 동안 방어하고 수리하는 지역 이벤트 (사진: 게임메카 촬영)
일단 다른 플레이어와 함께 즐길 콘텐츠가 있기는 하다. 몇몇 지역에는 간헐적으로 이벤트가 발생하고, 이를 수행하기 위해 진입한 플레이어들을 강제로 파티로 묶어 함께 임무를 처리하는 방식이었다. 예를 들어 한 지역에서는 식료품 공장을 재가동시켜 물자를 생산하는 사이에 소음을 듣고 나타난 방사능 구울 떼를 함께 막아내는 이벤트가 있었다.
이러한 이벤트 중에는 꽤 재미있는 것들도 준비됐다. 예를 들어 위 이벤트에서는 구울 무리와의 전투 외에도 다양한 사건이 발생한다. 식품 포장 시스템이 고장 나 해킹 기술로 수리하거나 직접 레버를 돌리며 고압 펌프에서 증기를 빼는 등, 파티가 역할을 나누어 빠르게 움직여야 하는 돌발 과제가 제시된다. 이렇듯 이벤트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전투 외에도 다양한 행동이 요구됐다.
▲ PvP는 5레벨 이후, 두 플레이어가 서로 공격한 시점에만 활성화된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PvP는 자못 독특한 방식으로 진행됐다. 5레벨이 된 순간부터 플레이어는 다른 플레이어를 공격해 피해를 입힐 수 있게 된다. 그러나 한 쪽만 공격하고 다른 한 쪽이 반격하지 않으면 PvP 상태가 활성화되지 않아 극히 적은 피해만 입힐 수 있다. PvP는 공격을 받은 쪽이 반격해 양쪽이 서로를 타격해야 활성화되는데, 그 전까지는 공격을 당하면서도 무시하고 지나갈 수 있는 정도다.
이러한 PvP 시스템 덕분에 높은 레벨의 플레이어가 갓 시작한 플레이어를 일방적으로 학살하고 다닐 수 있는 가능성은 원천적으로 차단됐다. 하지만 반대로 비정한 황무지에서 벌어지는 뺏고 빼앗기는 약탈을 기대한 플레이어라면 아쉬움이 남을 듯하다. 대등한 상태에만 PvP가 성립되므로, 저격이나 폭발물, 지뢰 등을 이용해 기습하는 PK는 무척 어려웠다.
▲ 게임 중에는 음성 채팅만 가능하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여기에 플레이어간 의사소통에도 다소의 제한이 있었다. 기본적으로 ‘폴아웃 4’의 틀을 그대로 따 왔다 보니 ‘폴아웃 76’은 게임 내에서 텍스트 채팅 기능을 제공하지 않는다. 따라서 게임 내 의사소통은 음성 채팅에 의존해야 하는데, 마이크를 쓰지 않거나 영어 회화에 서툰 플레이어에게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을 듯하다.
이처럼 넓은 월드 속에서 다른 플레이어와 만나기도 쉽지 않은 데다 PvP와 의사소통도 제한되니, 게임 내에서 굳이 다른 플레이어와 상호작용을 해야 할 이유가 많지 않다. 지역 이벤트가 발생할 때나 잠깐 말 없이 함께 수행한 후 곧바로 헤어지는 정도가 다른 플레이어와 함께 즐길 만한 콘텐츠다.
▲ 친구 없으면 재미있게 하기 힘든 ‘인싸게임’이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이렇다 보니 ‘폴아웃 76’은 시간을 정해놓고 같이 플레이 할 친구가 없다면 외로운 폐품수거업자플레이를 피하기가 힘들 듯했다. 물론 이번 테스트에서 체험한 콘텐츠가 ‘폴아웃 76’의 모든 것은 아니겠으나, 간헐적으로 발생하는 지역 이벤트 외에도 여러 플레이어들이 함께 즐길 만한 콘텐츠가 보다 풍부해질 필요가 있어 보였다.
‘폴아웃 76’, 왜 해야 하는 게임인가?
▲ 이 게임의 주제는 대체 무엇인가? (사진: 게임메카 촬영)
‘폴아웃 76’은 이전에 한참 유행했던 온라인 생존게임의 연장선에 있다. 즉 식량과 자원을 얻기 위해 적과 싸우고, 마을을 건설하는 게임이다. 이러한 요소는 이미 ‘아크: 서바이벌 이볼브드’나 ‘코난: 디 익자일’ 등 기존 여러 작품을 거치며 어느 정도 틀이 성립된 데다, 원작 ‘폴아웃 4’에도 어느 정도 녹아 있던 요소다. 이처럼 재미가 입증된 작품들에서 밑바탕을 갖고 온 ‘폴아웃 76’도 그에 걸맞는 최소한의 재미는 보장한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다. 기존 생존 게임은 ‘아크: 서바이벌 이볼브드’는 공룡 길들이기, ‘코난: 디 익자일’은 살벌한 PK와 약탈 등 저마다 독특한 특징을 내세웠다. 그러나 ‘폴아웃 76’은 원작인 ‘폴아웃 4’ 틀을 그대로 따왔을 뿐, 새로운 방향성과 맥락을 제시하지 않았다. 게다가 시리즈의 전통이었던, 핵 전쟁 후 황무지에서 서로 다른 포스트 아포칼립스 풍 집단이 부딪치는 매혹적인 스토리마저 거진 포기했다.
‘폴아웃 76’에 남는 건 애매모호한 맥락 속에서 그저 집을 짓기 위해 폐품 줍는 것 정도가 전부다. 왜 집을 지어야 하는지 분명한 동기도 부여되지 않고, 지어봤자 사람 한 명 안 살 삭막한 마을을 보면 그나마 있던 희미한 동기마저 금새 휘발 된다. 게다가 접속하지 않았을 때 다른 플레이어가 부수고 갈 수도 있기까지 하다. 실제로 필자는 기껏 힘들게 마을 터에 집을 지었지만, 하루 접속 안 한 동안 누군가 집을 증발시킨 것을 보고 허무감에 빠지고 말았다.
과연 ‘폴아웃 76’은 어떤 재미를 위해 해야 하는 게임인가? 이 게임은 ‘폴아웃 4’ 여러 요소를 온라인 생존 게임의 포맷에 맞게 따왔지만, 정작 어떤 재미를 찾아 플레이 해야 하는지, 즉 동기 부여 측면에서 대단히 불친절하게 느껴진다. 플레이어 스스로 이 ‘스토리 없는 인 폴아웃 4’에서 자기 나름의 재미를 찾지 못한다면, 플레이도 그저 외롭고 지루한 폐품 수거의 반복처럼 느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