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게임광고] 생존과 미소녀 사이, 무인도 이야기
2021.02.02 17:12 게임메카 류종화 기자
한국 게임의 성숙기였던 1990년대를 기억하십니까? 잡지에 나온 광고만 봐도 설렜던 그때 그 시절의 추억. '게임챔프'와 'PC챔프', 'PC 파워진', '넷파워' 등으로 여러분과 함께 했던 게임메카가 당시 게임광고를 재조명하는 [90년대 게임광고] 코너를 연재합니다. 타임머신을 타고 90년대 게임 광고의 세계로, 지금 함께 떠나 보시죠
지금은 생존 서바이벌 장르가 꽤 대중화 됐지만, 90년대에만 해도 그리 쉽게 만나볼 수 있는 게임은 아니었습니다. 그 와중 국내 정식 발매된 무인도 이야기 시리즈는 꽤나 수작이었죠. 무인도(알고 보면 유인도거나 아예 섬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지만)에 표류해 동료들과 힘을 합해 살아남아 탈출하는 서바이벌 플롯에, 당시 유행한 미소녀 요소를 결합해 두 장르 팬을 모두 잡았습니다. 이후 절체절명도시와 같은 본격 생존물의 장을 열었죠.
다만, 많은 게임들이 그렇듯 무인도 이야기 시리즈도 인기를 얻으면서 차츰 방향성이 흐려졌습니다. 미연시 요소에 초점을 맞춘다거나, 이전부터 있었던 선정적 요소를 극대화시킨 성인 게임이 나오기도 했죠. 그러나 결과물이 그리 좋지 않아 결국 시리즈의 명맥이 끊긴 비운의 게임이기도 합니다. 무인도 이야기 시리즈가 한창 국내 정식 발매될 당시 게임광고들을 살펴보겠습니다.
무인도 이야기는 애니메이션 업체 KSS가 1994년 제작한 게임입니다. 이후 1996년 다우기술을 통해 국내 정식 발매됐죠. 첫 작품이니만큼 꽤나 상세한 2면 광고를 넣었는데, 1면에는 미소녀 캐릭터와 석양이 지는 무인도 해변가를, 2면에는 구체적인 스크린샷과 게임 소개를 넣었습니다.
일단 게임 소개를 보면 비행기가 추락하고 무인도에 표류해 펼쳐지는 배경 이야기가 소개되며, 서바이벌 라이프와 상황판단으로 변화하는 엔딩 등이 언급됩니다. 일단 서바이벌 시뮬레이션이라는 단어가 보이는데요, 실제로 무인도 이야기 초기작들에선 미소녀와의 연애 요소는 덤이고 생존 시뮬레이션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참고로 일본판의 경우 노출도가 높은 일러스트가 다수 포함돼 있었는데요, 국내판은 심의 문제로 이런 부분을 다 잘라냈습니다. 그래서 더욱 서바이벌 게임다워졌지만, 일부 국내 유저들은 마냥 아쉬워 했던 기억이 납니다.
2편을 건너뛰고 3편 광고로 넘어갑시다. 제우미디어 PC챔프 1997년 11월호에 실린 광고인데, 어째 배경이 조금 독특해 보입니다. 분명 '무인도' 이야기인데, 이 곳은 아무리 봐도 폐허가 된 도시죠. 사실 이쯤 되면 파괴도시 이야기 같은 제목이 더 어울릴 지경이지만, 게임 타이틀이니만큼 정체성을 위해 그대로 가져간 것으로 보입니다.
참고로 게임 배경은 노스트라다무스 예언에 따른 1999년 7월 세계를 멸망시킬 만한 대지진이 일어난 도쿄입니다. 하지만 국내판은 도쿄가 아닌 서울로 현지화 됐죠. 아무튼, 위 3부작으로 무인도 이야기 시리즈 본편 이야기는 어느 정도 마무리됩니다. 그렇지만, 시리즈의 이름값을 이대로 버리긴 아까웠기에 보다 다양한 시도를 하게 됩니다.
3편에서 스토리를 완전히 완결지은 터라, 제작진은 뭔가 새로운 시도를 합니다. 그 결론은 당시 유행하던 연애 시뮬레이션. 섬에서 벌어졌던 1, 2편을 기반으로, 미소녀 연애 요소에 초점을 맞춰 새롭게 제작한 작품이 바로 무인도 스토리 R입니다. 광고만 봐도 그 이전 시리즈보다 훨씬 미소녀 일러스트 비중이 크네요. 참고로 국내 정식 출시되지는 않았지만, 아예 성인용 게임으로 제작된 무인도 이야기 X 시리즈도 비슷한 시기 동시 발매됐습니다.
연애 요소에 집중했다는 점은 게임 소개에서도 드러납니다. 생사를 건 서바이벌은 잠깐 언급되고, 나머지는 '온갖 일들을 그녀들과 함께 하면서 어느 사이엔가 싹트는 연애 드라마', '데이트 커맨드로 여자친구와 해피 데이트', '무인도 이야기 시리즈 게임성을 살린 연애 서바이벌 시뮬레이션' 같은 설명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미소녀에 초점을 맞춘 것이 나름 호응을 얻자, KSS는 차기작 역시 넘버링 대신 R을 이어가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렇게 나온 것이 무인도 이야기 RR로, 국내명은 연도에 맞춘 2000으로 나왔습니다. 얼핏 보기에도 그림체가 기존 작품과 꽤 많이 바뀌었는데, 무인도 생존보다는 왠지 탐험이나 바캉스를 연상시키는 가벼운 느낌이 듭니다.
아무튼, 연애 관련 요소를 크게 늘린 무인도 이야기 2000은 당시 난립하던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의 시류 속에서 큰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고, 결국 이 시리즈도 명맥은 끊기고 맙니다. 혹자는 일러스트 탓을 하고, 혹자는 시스템 탓을 하지만, 결국 이 이후 무인도 이야기라는 IP는 성인용으로만 소비되다가 그마저도 명맥이 끊겨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무인도 이야기 R 시리즈가 지지부진할 무렵, 느닷없이 넘버링 후속작인 무인도 이야기 4가 나왔습니다. 사실 일본 발매는 위에서 소개한 무인도 이야기 2000보다 먼저 나왔지만요. 그림체도 옛날 분위기를 나름 살리고, 게임 테마도 비행기가 무인도에 추락하는... 왠지 익숙하다고요? 그도 그럴 것이, 넘버링을 달고 나왔지만 결국은 무인도 이야기 1편의 리메이크였습니다. 시스템적으로는 굉장히 많이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주인공이나 스토리 등에서는 별 발전이 없었죠. 결과적으로 말하면 추억팔이에 그쳤고, 5편으로 이어지는 발판을 마련하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지금까지 90년대 생존+미소녀 게임을 책임졌던 무인도 이야기 시리즈를 살펴봤습니다. 지금은 생존게임도 다양해서 유저 간 협동을 요구하거나, 공룡이나 좀비가 등장하기도 하고, 서로 싸우는 무법지대에서 살아남거나, 혹독한 자연 환경과 대치하는 등 분류가 꽤나 다양해졌는데요, 가끔은 과거로 돌아가서 무인도 이야기 같은 생존 시뮬레이션도 다시 한 번 즐겨보고 싶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