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게임광고] 외전과 온라인으로 망한 코룸
2021.03.02 15:01 게임메카 류종화 기자
한국 게임의 성숙기였던 1990년대를 기억하십니까? 잡지에 나온 광고만 봐도 설렜던 그때 그 시절의 추억. '게임챔프'와 'PC챔프', 'PC 파워진', '넷파워' 등으로 여러분과 함께 했던 게임메카가 당시 게임광고를 재조명하는 [90년대 게임광고] 코너를 연재합니다. 타임머신을 타고 90년대 게임 광고의 세계로, 지금 함께 떠나 보시죠
얼마 전 코룸 시리즈의 전성기 광고들을 살펴봤습니다. 당시 코룸은 디아블로의 강력한 맞수로, 2000년 디아블로 2가 출시되기 전까지 3편이나 되는 후속작을 내놓으며 한때는 디아블로의 인기를 넘어 국내에서 ARPG를 대표하는 게임으로 자리매김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후 코룸 시리즈는 제작사의 사업적 위기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고, 그 와중 전혀 결이 다른 게임을 시리즈에 편입하면서 하락세를 겪었습니다. 이후엔 디아블로 2가 전무후무한 인기를 끌고 온라인게임이 대세가 되자 방향을 살짝 바꿔 온라인 진입을 시도했으나, 이 역시 실패로 돌아가며 현재는 죽은 시리즈가 되어버렸죠. 몰락세에 있던 코룸 시리즈 광고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코룸 3가 발매됐던 해인 1999년, ARPG 팬들이 디아블로 2 출시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을 무렵 코룸 시리즈가 신작을 발표했습니다. 바로 '코룸 외전: 이계의 강림자들' 입니다. 제우미디어 PC파워진 1999년 11월호에 실린 광고를 보면 주인공으로 보이는 사내와 왠지 무서워 보이는 여성이 보입니다. '11월 발매 확정'이라는 문구와 함께요.
당시 코룸 개발사 상황은 굉장히 좋지 않았습니다. 이미 전신이었던 하이콤은 1998년 부도를 맞이했으며, 하이콤 엔터테인먼트로 이름을 바꿔 게임 개발을 계속해 왔습니다. 전작이었던 코룸 3 역시 그런 상황에서 출시됐죠. 이후, 하이콤은 와이즈 내일과 합병하면서 와이즈 하이콤으로 사명을 변경하는데, 코룸 외전은 와이즈 하이콤에서 낸 첫 작품입니다. 위 광고를 게재할 당시까지만 해도 아직 합병 후 사명 변경이 이루어지지 않아 하이콤 엔터테인먼트로 표기돼 있었지만요.
다음달인 1999년 12월호에는 로고 표기에 와이즈하이콤이라는 이름이 보입니다. 왠지 시선을 잡아끌기 위함인 듯 보이는 노출도 높은 여성 캐릭터와 함께, 게임 시스템 설명이 곁들여져 있네요. 사실 예전부터 잡지 등을 통해 알려져 있던 것이긴 했지만, 코룸 외전의 가장 큰 특징은 실시간 액션 RPG 대신 턴제 RPG로 제작됐다는 점입니다. 혹자는 아예 다른 게임으로 제작 중이던 것을 억지로 코룸 시리즈에 끼워넣은 것이 아니냐는 추측을 내놓기도 했는데, 나름 설득력이 있게 들릴 정도로 게임성 면에서 전작과 상이했습니다.
광고에서도 '타격에 의한 밀어내기와 속성 타일을 이용한 택틱스 배틀', '속성 마법과 적 캐릭터 속성 조합에 따른 대미지 증감' 등 턴제 RPG 시스템을 중점으로 소개합니다. 반면, 코룸 시리즈와 연결되는 세계관이나 캐릭터 등은 전혀 나와 있지 않습니다. 당시 게이머들도 '이게 왜 코룸이지?'라며 의아해 했는데, 외전이라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너무나 낯선 느낌이었습니다.
해를 넘겨 2000년 1월에는 뜬금없이 광고지면에 캘린더 3달치를 넣었고, 게임에 대한 설명 없이 일러스트와 약간의 스토리 관련 문구만 넣었습니다. 다음달인 2월에도 실루엣과 로고 하나만으로 굉장히 심플한 느낌의 광고를 싣습니다. 사실 코룸의 이름값이면 저 정도만 해도 충분히 관심을 끌어모을 수 있다는 자신감과 함께, 회사측에서는 턴제로 변경 후 혹평을 받은 게임성을 굳이 드러내고 싶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와 함께 또 하나 터진 문제가 있었으니, 바로 버그입니다. 당시 버그 문제가 지속적으로 논란이 되자, 광고면에 사과문까지 올리며 이에 대한 해명을 하게 됩니다. 던전 부분의 '경미한 버그'에 대해 사과한다는 이야기와 함께 하이텔, 천리안, 나우누리 등 PC통신 자료실에 패치 파일을 올려놓았다는 이야기가 쓰여 있네요.
어쨌거나, 코룸 외전은 1, 2, 3편의 명성을 등에 업었지만, 평가나 판매량 면에서는 전작의 명성을 깎아먹었습니다. 게임 자체는 나름 잘 만들어졌다는 평가도 있지만, 잘 나가던 액션 RPG를 턴제로 바꾼 점부터가 패인이었다고 볼 수 있죠. 이 게임을 코룸 시리즈로 봐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을 끝내 해결하지 못했고, 당시 국산 턴제 RPG는 창세기전 시리즈가 꽉 잡고 있었던데다 파랜드 택틱스를 기점으로 수많은 '택틱스' 게임들이 쏟아져 나오던 상황이었기에 자연스레 빛을 보지 못했습니다.
외전 이후 맥이 끊긴 것처럼 보였던 코룸 시리즈. 그러던 중 2003년 '코룸 온라인'이 등장합니다. 개발사는 하이콤에서 와이즈 하이콤이 되었다가 이소프넷으로 이름을 바꾼 원작 제작사로, 단순히 이름만 빌려준 프로젝트는 아니었습니다. 이미 몇 년 전부터 불고 있던 PC 패키지게임의 온라인화 열풍을 타고 나온 게임인데, 외전의 실패를 거울삼아 1, 2, 3편과 같은 액션 RPG로 회귀한 점이 특징입니다.
일단 넷파워 2003년 9월호 광고를 보면, 공개테스트를 시작한다는 소식과 함께 3,000여 개의 던전을 서로 빼앗고 지키는 점령 위주 게임성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당시는 리니지를 필두로 온라인게임의 공성전 시스템이 활발히 퍼져나가기 시작할 무렵이었는데, 지금도 그렇지만 공성전이 치열하게 벌어지는 이유는 희소성 때문이기에 성 숫자만 무턱대고 늘린다고 반드시 환영받진 못합니다. 물론 코룸 온라인도 추구하는 방향성이 있긴 했지만, '기존 공성전 게임은 끝났고 우리 게임은 던전이 3,000개다'라는 느낌의 광고는 당시에도 그리 큰 공감을 얻지 못헀습니다.
10월 광고도 일러스트는 바꼈지만, 글귀는 비슷합니다. 다음해 2월 광고도 캐릭터를 내세우긴 했는데, 뭔가 메인이 되는 캐릭터나 콘셉트가 있는 것이 아니라 계속 일러스트가 바뀌며 브랜드성 확립에는 실패한 느낌입니다. 실제로 첫 광고는 섬세하게 만들어진 3D 여성 캐릭터가 등장하다가, 나중에는 딱히 콘셉트가 통일되지 않은 캐릭터 일러스트를 연달아 보여주는 느낌만 듭니다. 차라리 기존 시리즈에 나온 주인공들이 NPC로 등장했으니 그 장면을 더 부각시키는 게 낫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2004년 3월, 넷파워에 실린 광고는 2월 코룸 온라인의 상용화 이후 게재됐습니다. 당시 코룸 온라인은 정식서비스 시작과 동시에 떨어져 나갈 '오베족'을 유지하기 위해 매일 1시간 무료라는 정책을 택했는데, 2000년대 초반 몇몇 온라인게임에서 채택했던 방식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강수에도 불구하고 상용화 이후 유저가 눈에 띄게 감소했고, 결국 그해 4월에는 운영팀을 대폭 축소하고 6월엔 전 서버 무료화까지 실시했습니다. 불과 4달 만에 상용화 실패를 인정한 셈인데, 무료화에도 불구하고 한 번 떠나간 유저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결국 이소프넷은 2006년 공중분해가 됐고, 코룸 온라인은 2005년 이소프넷의 독립법인인 넷타임소프트로 넘어갔으나 여기서도 이내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이후 2009년 엔도어즈로 적을 옮기지만 결국 2011년 서비스를 종료합니다. 참고로 넷타임소프트는 2006년 보도자료를 통해 코룸2 온라인이라는 명칭의 후속작을 발표했지만, 결국 이 게임은 테스트 한 번 진행하지 못한 채 맥거핀으로만 남았습니다. 그렇게 코룸 시리즈는 우리 곁을 완전히 떠났습니다.